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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57화 (5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57화

학교에 오자마자 좋으면서 안 좋은 소식을 들었다.

교실 문 앞에서 만난 지상준이 내게 말했다.

“현준아, 축구부 지역 예선에서 떨어졌어.”

“헐, 보고 왔냐?”

“응, 분전하긴 했는데 결국 지더라.”

“박종혁이랑 엄태영은?”

“지금 저기압이야…… 감독도 아침 훈련에 안 나왔대.”

“헐…….”

나는 그런 얘기를 나누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어! 친구!”

박종혁은 억지로 텐션을 올리는 게 눈에 보였다.

엄태영은 고개를 숙인 채로 책상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우울한 얼굴을 보니 내 기분도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엉, 좋은 아침.”

평소처럼 인사를 하니 엄태영도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안녕, 현준아.”

“그래. 어제 드라마 봤냐?”

평소처럼 얘기해 주기로 했다. 가급적이면 풋살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말은 내 입으로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 다들 축하해 줘. 현준이가 전국 풋살대회에서 우승했대! 박수!!!”

우승 사실은 금방 들통났다. 교무회의를 끝내고 교실에 온 정미영 선생님이 모두에게 얘기했다. 선생님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오오오!”

“와 송현준 말도 안 하냐.”

“대박이네, 몇 팀 나온 거여?”

웅성웅성해지는데 선생님이 끼어들었다.

“선생님도 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구경 갔었는데, 참가한 팀이 백 팀도 넘었고, 현준이는 수비수도 하고 골키퍼도 하고 중거리 슛도 하고, 아무튼 대단했다니까!”

“오오오!”

“햄버거 사라!”

“피자 사라!”

그 말에 선생님이 책상을 퉁 하고 쳤다.

“뭐 사라고 하는 건 금지!”

반 분위기가 싸해지려는 찰나 선생님이 이어서 말했다.

“어차피 오늘 내가 살 거였으니까. 지난주에 얘기했던 거 안 잊어버렸지? 오늘은 영어 시간에 영화도 보고, 치킨이랑 피자도 먹을 거야.”

“오와아아아!”

내 우승 얘기는 치킨과 피자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그동안 박종혁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힘이 들어간 게 감정이 느껴졌다.

“아 진짜. 조용히 있어서 우리처럼 망한 줄 알았더니…… 개 부럽다…….”

엄태영이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눈치는 있으니까. 너희들도 고생 많았어.”

“그래…… 고맙다.”

“그렇게라도 말해주는 게 어디야. 어제 감독님은 진짜 심했어…….”

엄태영마저 불평할 정도였다.

“자, 조회는 여기까지 하고, 현준이는 잠깐 나 좀 따라올래?”

“네? 네.”

나는 어리둥절하며 교실 앞문으로 나갔다. 먼저 나간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현준아, 너무너무 축하해.”

“일요일에 충분히 축하받았어요.”

“오올, 어른스러운데.”

“감사합니다.”

가볍게 얘기하며 복도를 걸었다.

“근데 저 어디 가는 거예요?”

“교무실. 이사장님이 찾으시거든.”

“아.”

“선생님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이사장님이 현준이랑 채아가 우승한 걸 알고 있더라? 어차피 방학식에서 시상식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그냥 애들한테도 얘기한 거야. 괜찮지?”

“네 괜찮아요…… 뭐요? 시상식?”

“응,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고 하시더라.”

이사장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농담이었는데.

“근데 축구부는 어떻게 됐니? 교무회의에서는 언급도 없고, 선생님들이랑 얘기도 못 하고 바로 교실로 와서 못 들었는데. 당연히 올라갔지?”

“어…… 아뇨. 예선 탈락했다는데요.”

“뭐어?! 아, 종혁이랑 태영이한테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은 안절부절못하셨다.

“괜찮아요. 이따 치킨이랑 피자 하나씩 더 주세요. 어차피 진 거 어쩌겠어요.”

“현준이는 뭔가 냉정하네…….”

“위로도 해줬거든요. 그리고 다음에는 저랑 같이하면 되니까요.”

“오오, 중학생의 자신감?”

선생님은 다시 기운을 찾으신 모양이었다. 교무실 앞에 도착하니 국어 선생님이자 김채아의 담임선생님과 함께 오는 김채아가 보였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김채아도 자연스럽게 받아줬다.

“오올~ 쏭~ 어제 대단했다면서~.”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국어도 대단하게 해주지…….”

“아, 선생님!”

나는 국어 과목에서만 세 개를 틀렸다. 그래서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이자 국어 선생님은 이런 패턴으로 날 최근에 놀렸다.

국어 선생님과 정미영 선생님은 킥킥 웃더니 함께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왔네. 앉아.”

회의용 탁자 가운데에 이사장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앞에 아이들 취향의 과자들이 놓인 거 보니 우리를 배려해 주는 모양이었다.

이사장, 나, 김채아, 두 담임선생님이 테이블에 앉았다. 수업이 없는 선생님도 둘 정도 있었는데 일을 하는지 이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어제 정말 잘했어. 결승전만 잠깐 봤는데 대단하던데?”

“어? 이사장님 어제 오셨었어요?”

“어, 서울에 간 김에.”

“어제는 사실 8강이 진짜였어요.”

정미영 선생님은 우쭐하듯이 말했다.

“현준이가 골키퍼로 서서 다 막아버리고, 채아가 두 골 넣어버리고. 최고였다니까요?”

“정말요?”

“허…… 부럽구만.”

국어 선생님과 이사장이 차례로 말했다.

이사장이 이어서 날 봤다.

“골키퍼까지 한다고? 진짜 현준이 넌 어디서 튀어나온 괴물인지 모르겠구나.”

“뭐…… 운이 좋았어요.”

“채아도 대단하더구나. 결승전에서 골을 아주 깔끔하게 넣던데.”

“……감사합니다.”

“우리 학교도 여자 운동부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이 김에 만들어 봐?”

김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고, 너무 기대는 하지 말거라. 여자 운동부는 선수 모으는 것도 힘들고 종목 정하는 것도 힘들거든. 나도 몇 번 알아보기는 했는데…….”

김채아가 시무룩해졌다.

열악한 건 사실이었으나, 김채아의 마음을 들썩이게 만든 이사장을 가늘게 눈을 뜨고 쳐다봤다.

그동안 정미영 선생님과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눴다.

“체육대회 때 잘하는 건 알았지만 풋살대회에서까지 우승할지는 몰랐다니까요?”

“저도 현준이 보러 갔다가 채아 잘하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 긴 다리로 슉슉! 하는데 그냥 막 쉽게 제치고!”

머쓱해졌던 이사장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도 봤어. 헛다리로 제치고 바로 왼발 슈팅! 상대 골키퍼가 꼼짝을 못 하더구나.”

“감사합니다…….”

김채아가 부끄럽긴 한 건지 귀가 붉어진 채로 말했다.

“여기 부른 건 잠깐 어제 경기 얘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고…… 방학식 때 시상식도 한 번 더 하고 싶으니까 둘 다 메달 가져와라.”

“네.”

“네?”

김채아가 당황했지만,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이 추가로 말했다.

“응, 생활기록부에도 써야 하니까 겸사겸사 가져와~.”

“아이고, 내가 수업 시간을 너무 빼앗았구만.”

“기말고사도 끝났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이사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것도 그렇네. 그러면 그날 경기 얘기 좀 더 해주려무나.”

그렇게 나와 김채아는 경기 때 있었던 얘기를 하면서 과자를 집어 먹고, 음료수를 먹으면서 합법적으로 수업을 빠졌다.

대화는 다음 교시 중간까지 이어졌고, 이사장의 일정 때문에 끝이 났다.

“그럼 수업 들어갈게요.”

정미영 선생님은 다른 수업에 들어갔고,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은 남아 있었다.

김채아는 나처럼 나오지 않고 선생님에게 붙어 섰다.

“응? 채아야? 할 말 있어?”

“아, 네, 상담할 게 있는데…….”

그러면서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무슨 상담을 할지 예상이 됐기에 알아서 자리를 빠져줬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 * *

김채아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명함을 보여주며 배구부 제안을 받은 걸 선생님에게 얘기했다.

“여자 배구부? 하나 여중?”

“네. 대회에서 만난 분이 명함을 주셨는데, 아버지가 알아보시더니 진짜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채아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저는…….”

김채아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거기 가면 전학도 가야 하는 거겠죠?”

“어어…… 채아를 앞으로 못 보게 될 수도 있는 거구나.”

선생님은 깊이 아쉬워하셨다.

대영 중학교는 사립 중학교라 1학년 담임이 3학년이 될 때까지 쭉 맡는 형태라 선생님의 아쉬움은 더 컸다.

선생님이 물었다.

“부모님이랑 상의는 해봤니?”

“얘기는 했는데 저한테 선택하라고 하셨어요.”

“어렵겠네…….”

중학생으로서 인생의 방향을 정할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기회는 잡으라고 하고 싶긴 한데…… 운동부 쪽은 정말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거든…….”

담임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웃었다.

“나도 지금은 모르겠다. 일단 선생님도 좀 알아볼 테니까 그다음에 얘기할까? 사흘 뒤 어때?”

“네…… 알겠습니다.”

시무룩한 김채아를 담임선생님이 격려했다.

“요즘 채아를 보면 요즘 눈빛도 달라지고 태도도 달라지고, 한층 어른이 된 것 같거든.”

“네?”

“채아는 뭘 선택해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김채아는 격려를 듣고 교무실에서 나왔다.

* * *

“꺄아아.”

“채아 멋지다.”

“전국대회 우승했다면서? 왜 얘기 안 했어?!”

김채아가 1학년 9반으로 돌아오자, 기말고사가 끝나서 영화를 보고 있던 반 친구들이 김채아에게 장난스러운 환호와 칭찬을 건넸다.

“큰 대회는 아니라서…….”

김채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교탁에 앉아 있는 가정 선생님이 교탁을 몇 번 두드렸기 때문에 반 친구들은 김채아에게 다가오진 않았다.

김채아 주변의 친구들만 더 축하해 줬다.

김채아는 자리에 앉아 짝꿍 정은영을 봤다.

“지혜가 너 어디 갔냐고 물어봐서 가정쌤이 애들한테 말했어. 내가 말한 거 아니야.”

“아니, 뭐라고 안 했는데.”

“그냥, 오해할까 봐.”

정은영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김채아는 멍하니 영화를 봤다. 포레스트 검프다. 저번 주에 중간고사 끝났을 때도 봤던 영화였기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가서 잘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고, 차라리 여자 축구팀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도 싶었고, 무엇보다 전학 가서 새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중간까지 교무실에 있다가 왔기에 수업 시간은 금세 끝났다.

“반장, 몇 분 몇 초인지 적어 놔. 다음 내용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보자.”

“네!”

가정 선생님이 나가고,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채아야, 네가 나간 대회 남자애들도 나오는 대회라며?”

“진짜 채아는 대단하다니까?”

“아하하, 고마워.”

김채아는 쉬는 시간 내내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주변에 서서 김채아를 서운한 눈으로 보는 이지혜와 김혜진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왜 저런 얼굴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최근 관계가 애매해지기도 했고, 자기들에게 먼저 말해주지 않아서다.

이따가 얘기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김채아는 문득 피곤함을 느꼈다.

그냥 자기가 항상 맞춰주는 게 옳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채아는 점심시간까지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고, 정은영, 이지혜, 김혜진과 평소처럼 반을 나가서 학교 주변을 걷다가 한 벤치에 앉았다.

평소 같은 대화가 이어졌지만, 수시로 끊겼다. 김채아가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잠겼기 때문이었다.

이지혜가 못 참고 물었다.

“채아야? 아까부터 무슨 생각해?”

“나 전학 갈지도 몰라서.”

“뭐?”

“뭐?!”

“……?”

김채아는 고민 끝에 결정했다. 솔직하게 다 얘기하기로.

사소하고 쪼잔해 보일지언정 앞으로는 감정에 솔직하게 살아보자고.

그냥 거리낌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송현준이 해준 말도 있었지만, 스스로도 그게 더 편했다.

김채아는 일단 배구부 얘기를 꺼냈다.

“풋살대회에서 하나 여자중학교 배구부 감독님을 만나서 명함을 받았어.”

그래서 배구부로 전학 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짧게 했다. 정은영에게도 하지 않은 말이었기에 셋 다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자신이 맞췄든 아니든 그 사실은 변함없었다.

그러니까 김채아는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되던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할 말이 있는데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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