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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0화 (56/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0화

“……아들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어머니가 장난스럽게 웃었고,

“틀림없이 잘할 거다, 아들. 아빠가 너 풋살대회 뛰는 거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아냐? 그때 우리 아들이…….”

아버지는 날 격려해 줄 겸 풋살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풋살 대회에서 얼마나 멋졌는지 신나서 얘기하시는데 옆에 앉은 어머니가 뚱한 표정을 하다가 내게 하소연하셨다.

“자기만 봤다고 맨날 자랑한다니까.”

“맨날이라니. 그렇게 많이 말하지는 않았잖아.”

“현준이가 골키퍼 했다는 얘기를 한 열 번은 했을 거야. 이제는 꿈에 나올 거 같다니까?”

“그러면 우리 아들이 잘한 걸 얘기 안 해?”

“들으면 좋긴 하지만 자기만 보고…… 치사해서 그러지…….”

어머니의 반응에 나와 아버지는 눈을 마주치고 웃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달래드렸다.

“앞으로 많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기대해도 되니? 아니, 기대 안 할 테니까 재미있게만 해.”

“아니에요. 기대하세요.”

“오오, 아들.”

내 포부에 아버지가 기뻐했다. 화기애애한 와중에 내 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꿋꿋하게 고등어구이를 발라내던 김현지가 물었다.

“오빠, 축구부 들어가면 힘든 거 아니야?”

“……? 네가 웬일이냐.”

전생에서 항상 내가 축구를 하든 말든 축구부에 들어가든 말든 관심도 없던 애가 느닷없이 걱정해 주니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런 말이 나갔다. 어쩔 수 없다.

김현지가 팔짱을 끼며 불만스러운 눈으로 날 흘겼다.

“흥, 걱정해 줘도.”

전생들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풋살대회에 참가하고 우승한 것. 거기서 상금을 받아 김현지가 좋아하는 오빠들의 앨범을 사준 것.

그렇기에 여동생의 심리를 금방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아아, 저번에 아이돌 앨범 사줘서 그렇구나.”

“…….”

정곡을 찔린 건지 김현지가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부모님이 웃기 시작했다.

“아니거든…….”

김현지는 차마 당당하진 못한지 날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이번 인생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나비효과였다.

* * *

송현준이 축구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은 시각,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은 저녁 훈련을 하고 있었다.

다만, 박종혁을 비롯한 몇몇 말고는 다들 성의가 없었다.

“야,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 감독도 잘렸고 코치님도 대충하시는데.”

몇몇에 포함된 축구부 2학년 정두식이 박종혁의 훈련을 도와주면서 투덜거렸다.

얼마 전 지상철 감독이 잘리고 축구부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전국의 다른 축구부들은 한창 대회를 치르고 있는데 이들은 운동장에 질서 없이 모여 있었으니까. 심지어 여름이라 날씨도 엉망이라 축구부원들은 대부분 얼이 빠져 있었다.

심지어 팀에 남은 유일한 코치인 김진호도 분위기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다.

김진호는 대학교 축구팀에서 프로 무대로 가는 걸 포기하고 군대에 다녀오자마자 축구부 코치 일을 시작한 지 반년밖에 안 되는 초짜였기 때문이었다.

김진호가 할 수 있는 건 신참이었던 겨울방학 때 언제 무슨 훈련을 했는지를 떠올려서 그걸 지시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저녁 자율 훈련을 하면서 잡담하는 건 다반사였다. 땡땡이친 부원도 상당수 있을 정도니 훈련을 하고 있는 게 용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대답도 안 하고 뭘 그렇게 뜸 들이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니까?”

박종혁은 머쓱하게 웃으며 정두식에게 말했다.

“뭐…… 그냥 하는 겁니다.”

“부러운 놈. 재능 있는 놈. 나도 너만큼 재능있었으면 열심히 했는데.”

“선배님~ 또 왜 그러십니까~.”

박종혁은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솔직한 대답을 떠올렸다.

송현준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다.

갑자기 미친 실력을 보여주질 않나, 질투할 수도 없게 온종일 노력하질 않나. 심지어 엄태영과 자신에게 다음 전국대회에서 함께해 보자는 얘기까지 했다.

박종혁은 자기가 송현준에게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적어도 곧 돌아올 친구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으니까.

진지한 생각을 하든 말든 정두식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툴툴대고 있었다.

“이눔 시키, 빈말로라도 재능있다고 안 하네.”

“그러면 화내잖습니까?”

“따박따박 대들기는.”

박종혁은 2학년 축구부원 중에서 정두식을 가장 좋아했다.

툭하면 부정적인 얘길 하고, 거친 단어를 쓰고,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정두식은 정이 많고 성실하기에 존경하는 선배였다.

“같은 훈련만 너무 한 거 아녀? 길게 패스해 줘?”

“뒤에서 대각선으로 길게 가능하겠습니까?”

“뒤에서 대각선?”

“어렵습니까? 그, 경기에서 태상이 형이 중앙에서 측면으로 찔러주는 것처럼…….”

“……내가 수비수라도 패스는 잘해.”

“알죠.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그려~.”

알아서 훈련 메뉴를 신경 써줄 정도였다. 뭣보다 훈련을 도와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선배들과 비교할 수 없다.

박종혁은 선배들 눈치를 보면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1학년 골키퍼에게 슈팅 연습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큰 꼬깔콘 두 개를 가져와서 페널티박스와 엔드라인 쪽에 한 개, 페널티박스 앞쪽에 한 개를 놨다.

“귀찮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

“실전에서 자주 나오는 상황을 만들어서 훈련하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려? 누가?”

“우연히 들었습니다. 선배님도 하실 생각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흐음…….”

정두식이 진지한 눈으로 꼬깔콘을 살폈다. 박종혁은 기말고사가 끝난 후 송현준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 훈련 팁 같은 거 없냐. 외국 훈련 많이 찾아봤다며.

-있긴 있는데…… 자세히 들어가면 이해 안 가고 복잡하거든.

-그래도 좀 알려줘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크크, 그러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우리가 보통 전술이나 패스 훈련하면 뭘 하냐? 축구에서 가장 흔하게 나오는 상황들을 훈련하잖아? 정면에서 패스하고 정면에서 패스받고. 측면에서 크로스 올려서 헤딩하고, 뭐 이런 것들.

-그렇지.

-특별한 훈련도 별다를 건 없어. 정면 패스 같은 기본적인 훈련을 반복하는 것처럼 특정 포지션에서 자주 나오는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뿐이야. 기본적인 훈련으로는 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연습하는 거지.

-어떻게?

-예를 들어서 네 포지션은 오른쪽 윙이잖아? 평소에는 너도 정면으로 패스를 받지만, 라인 깨면서 침투할 때는 뒤에서 날아오는 패스를 받아야 하잖아?

-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그래, 해본 적도 있을 거야. 근데 축구부는 코치가 적으니까 세부적으로 훈련하는 데는 한계가 있거든. 그러니까 시간 있을 때 자주 나오는 것 같은 상황을 꾸준히 연습하면 된다 이거지.

-오오, 쉬우면서 그럴듯한데. 이해했다.

송현준은 정말 많이 변했다. 신기하면서도 부러운 부분도 많아서 박종혁은 송현준을 따라 하고 싶었다.

“에잉, 열심히 해봤자 윤태상 같은 천재들 따까리밖에 더 되냐.”

박종혁은 정두식이 투덜거리는 걸 듣고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에이, 선배님.”

박종혁은 작게 말하면서 정두식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 밤마다 훈련하시는 거 압니다…….”

정두식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 작게 쉿 이라고 말했다.

“뭐 그런 걸 보냐.”

“우연히 봤습니다. 역시 선배님입니다.”

“됐다. 띄우지 마. 아무튼 열심히 해봤자 소용없다.”

정두식은 고개를 돌렸다.

박종혁은 정두식이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고 정두식이 안 보이게 고개를 돌리고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오늘은 유난히 툴툴거림도 심했고, 훈련 때도 평소와 달랐다.

정두식은 늘 평소 훈련에 열심히 임하는데 오늘은 대충이었다. 저녁에도 늘 달리는데 지금은 자기 훈련을 도와주고 있었다.

분위기가 풀어져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성실한 정두식은 어제 비슷한 분위기에서도 열심히 했다.

박종혁은 그 사실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님은 오늘따라 더 부정적이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어.”

“무슨 일 있으십니까?”

“응. 빠따 있잖아.”

“예.”

빠따는 얼마 전에 확실하게 해고당한 지상철 전 감독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선수들이 말을 안 들으면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때리곤 했기에 몽둥이의 비속어인 빠따라는 별명을 붙인 거다.

정두식은 주변을 살펴보고, 근처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거 비밀이다. 1학년 애들 몇 명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뭡니까?”

“빠따가 진현 중학교 축구부 감독이 됐거든?”

“진현 중학교요?”

진현 중학교는 대전 내에서도 전국대회에 자주 나가는 명문이었기 때문에 박종혁은 정말로 놀라서 되물었다.

“응, 거기도 이번에 집단 식중독 걸려서 전국대회 망했잖아. 거기 학교 누가 빠따랑 친한 사이라서 관리 소홀 핑계로 기존 감독 자르고 데려갔대.”

“재수도 좋네요.”

“그렇지. 그리고 빠따가 거기 가면서 몇 명을 데려가려고 한다 이거야…….”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애들한테 들었다. 몇 명은 부모님한테 연락까지 왔고, 만난 애도 있다더라.”

처음 듣는 얘기였기에 박종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두식의 말은 계속됐다.

“건너 들은 얘긴데 우리 학교에 불만도 많고 명예 회복도 하고 싶은가 봐. 그러니까 부원을 빼가겠다 이거지.”

“짜증 나네요.”

“그렇지. 더 짜증 나는 게 뭔지 아냐?”

박종혁은 정두식을 바라보았다. 정두식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연락도 못 받았다는 거다. 시바…….”

“아…….”

“이게 재능 없는 사람의 최후라는 거야~ 중요한 순간에 선택받지 못해~ 재능 넘치는 육식동물한테 뜯어 먹히는 거지~ 사바나의 법칙이야~.”

“어…….”

“너도 나 뜯어 먹을 거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선배님 존경합니다.”

“입만 살아가지고…….”

박종혁은 정두식의 심정을 예상하기 어려웠다. 축구부원을 빼가려는 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런 제안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우울할 것 같았다.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정두식이 화제를 바꿨다.

“거기에 새 감독이 외국인이란다.”

“외국인이요?”

“응. 학교 직원한테 어떤 부모님이 들었다는데 아부지, 어무니들 모임에서 소문이 돌고 있어. 한국말도 잘하고, 유럽 프로출신이고, 코치 공부를 하고 있다가 이사장이 스카웃 했다는데.”

문득 박종혁은 송현준과 함께 훈련한다는 외국인이 떠올랐다. 이름이 로베르토였나.

“감독은 잘리고, 2학년 중에 주축을 빼가려고 하고, 학기 초에 축구부원도 빠졌고, 감독은 외국인이라고 하고, 여기 대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정두식의 말대로 혼란스러웠다.

그때였다.

“야! 박종혁! 왜 여깄어!”

“응?”

“어디 갔나 했더니! 한참 찾았잖아. 아, 선배님. 죄송합니다.”

같은 1학년인 김성주가 화가 나서 씩씩대며 다가오다가 정두식을 발견하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정두식이 고개를 까딱이자 김성주가 눈을 부릅뜨고 박종혁을 노려봤다.

“미친놈아. 빨래 당번인데 훈련하고 자빠졌냐! 숙소에서 기다리다가 여기까지 뛰어왔잖아!”

“아.”

“아? 아앙?!”

정두식이 박종혁을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박종혁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박종혁은 정두식에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에휴, 어여 가라. 훈련도 할 건 하고 해야지.”

“그렇죠. 죄송합니다.”

박종혁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고 김성주와 함께 숙소로 향했다.

“빨리 가자, 3학년 선배들한테도 혼난다고.”

“고고~.”

“너 진짜…… 하. 범철 선배한테 X나 갈굼 당했다고.”

김성주가 정색하자 박종혁은 어깨를 움츠리며 사과했다.

“진짜 미안…… 내가 다음에 당번 한번 해드림.”

“진짜?”

박종혁의 진심 어린 사과에 김성주는 금세 기분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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