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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1화 (5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1화

오늘의 조기축구는 평소보다 더 들뜬 분위기에서 진행됐고, 끝나기 무섭게 다들 스탠드로 몰려들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전만 뛰고 후반전부터 먼저 식사를 시작한 이사장 박영대는 또 한 번 막걸리 사발을 들이켜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캬, 진짜 쥑이네~!”

공감한다. 나 역시 눈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고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아직 아저씨들이 먼저 숟가락을 뜨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대 형님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래, 그래. 오늘은 내가 다 쏘니까 다들 맘껏 먹어! 만약에 부족하면 2차도 가자고~.”

총무 아저씨의 말에 박영대는 붉어진 얼굴로 호탕하게 말했다.

“하하하, 형님.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왜 그런지 알잖아~ 으하하하하!”

수육에 굴에 검은 오골계 삼계탕까지.

속칭 육해공이라고 불리는 정말 완벽한 잔칫상이다.

이사장 아저씨 최고다.

아저씨들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들고 이 잔칫상의 주인공인 로베르토에게 한 마디씩 건넸다.

“어이고, 이렇게 대접해 주는 사장님이 어딨냐.”

“영대 형님한테 잘해~.”

“네, 네네…….”

로베르토도 마찬가지로 전반전만 뛰고 후반전부터 이사장과 술을 마셨기에 약간 맛이 간 상태였다.

로베르토는 이사장 옆에 앉아 있었다.

이사장이 로베르토의 잔이 빈 걸 확인하고 막걸리를 채워 넣었다. 로베르토는 사색이 됐다.

“우리 감독 마셔~ 마셔~.”

“아이고 이사장님…….”

“아니! 이사장이 뭐야! 형님이라고 불러!”

“아니, 그러면 안 되잖아요…….”

“여보세요들! 로베가 있지! 나를 이사장이라고 불러!”

그 말에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너무하네!”

“로베르토 그렇게 안 봤는데. 그간 봐온 정이 있지.”

“영대 형님이 얼마나 섭섭하겠어!”

“아니…… 이 아저씨들이 진짜…….”

로베르토는 이사장을 봤다 아저씨들을 봤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희극적인 장면을 시트콤이라고 생각하며 굴과 수육을 쌈 싸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렇죠. 영대 아저씨?”

“그치! 우리 현준이가 말 잘하네.”

겸사겸사 한마디 거들기도 했다. 이사장과 아저씨들이 내 말에 호응해 줬다. 로베르토가 원망스러운 마음을 담아 날 노려본 건 덤이었다.

로베르토의 시선을 피하며 나처럼 열심히 먹는 중인 아버지를 봤다.

“아빠, 이거 진짜 맛있어요.”

“으음…… 영대 형님 친가에서 돼지랑 오골계 목장 하시거든. 거기서 가져온 신선한 것들이니 맛있을 수밖에 없지.”

“굴도 해요?”

“아니, 근데 단골 같은 곳이 있어서 가끔 이렇게 엄청 기분 좋은 일 있으면 잔치를 여시지.”

“오.”

전생에 축구부가 좋은 성과를 낼 때마다 얻어먹어 봤기에 알고 있었지만, 심심풀이로 대화를 나눴다.

로베르토는 여전히 쩔쩔매고 있었다.

어제 낮에 로베르토는 박영대에게 축구부 감독을 맡겠다고 전화했다.

그리고 오늘 조기축구회에 오니 이 상태였다.

박영대는 평소 로베르토에게 이탈리아 축구 얘기나 훈련 일화 같은 일상적인 얘길 듣는 걸 좋아했다. 전생들에서도 그랬다.

그렇다 보니 로베르토가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이번이 첫 감독 일이나 다름없는 초짜인데, 이게 또 성공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사장이 경험이 많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잡생각을 하면서 맛있는 음식들을 음미하고 있는데, 로베르토 쪽에서 날 언급했다.

“아! 그리고 현준이도 축구부로 데려가려고 하는데요.”

“정말?”

“정말로?”

아저씨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이미 알고 있는 아버지만 식사를 계속했다.

“진짜냐?”

“네. 로베 형이랑 같이해 보려고요.”

“오오!”

“현준이! 왜 얘기 안 했어! 이리 와서 한 잔 받아!”

로베르토의 ‘나만 죽을 수 없다!’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나 이사장이 앉은 자리로 향했다.

“술은 안 되고 식혜나 받을게요.”

“뭐가 됐든 받기만 하면 좋지~.”

로베르토와 이사장의 좌우에 나란히 앉으니 아저씨들이 말했다.

“아이고, 그러면 로베랑 현준이 둘 다 자주 못 나오겠네.”

다들 아쉬워했다. 고개를 빼꼼 내밀어 로베르토와 눈을 마주치고, 아저씨들에게 말했다.

“시간 나면 놀러 올게요.”

“맞아요. 특히 현준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로베르토와 몇 가지 얘기를 나눈 것도 있고, 전생의 경험들도 있었다.

로베르토는 내 사정을 듣고 자유시간을 상당히 많이 준다. 로베르토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사장님…… 아니, 영대 형님. 이따가 서류 같은 거 보실 수 있어요? 준비해 온 게 있는데.”

“이 정도는 문제없지! 지금 가져와!”

“지금요?”

“응!”

이사장은 술이 셌다. 텐션이 높아 보였지만 괜찮다고 말하니 로베르토는 뒤에 있던 자기 가방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내 왔다.

“뭐야?”

이사장과 아저씨들의 시선이 모였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옆 테이블 아저씨들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로베르토가 파일철을 이사장에게 건넸다.

“축구부 운영 계획서예요.”

“운영 계획서? 계획서가 있단 말이야? 이야, 역시 축구 선진국에서 온 감독은 다르구만!”

“……지금 안 읽어도 되니까 나중에라도 잘 읽어주세요.”

로베르토가 진지하게 얘기하자 이사장도 텐션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파일철의 겉면을 봤다. 파일철에는 <대영 중학교 축구부 운영 계획서>라고 적혀 있다.

이사장은 신나서 계획서를 넘기기 시작했다.

계획서에 빠져들어 술도 안 마실 정도였다.

그동안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덕담을 해줬다.

“로베, 우리가 농담한 거 알지?”

“틀림없이 잘할 거야. 하하하!”

“자주 놀러 오고.”

“저는 좀 어려울지도요. 처음으로 하는 거고, 감독 일이 좀 바쁠 거 같더라고요. 그래도 시간 나면 밥이라도 먹으러 올게요.”

로베르토가 고마움과 난색을 표했다.

“그럼 현준이는 자주 오는 거야?”

“가끔 들를게요. 아저씨들이랑 축구 하는 건 재미있거든요.”

아저씨들이 찡한 얼굴을 했고,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감동 먹었잖아.”

“어이구, 진짜 우리 아들이 배웠으면 좋겠다니까. 말을 참 이쁘게 해. 자, 마셔라.”

“야 이 자식아 술은 안 돼! 술은!”

총무 아저씨가 술을 건네다가 옆 아저씨에게 혼났다. 옆 아저씨는 자기가 먹으려고 했던 것 같은 큼지막한 쌈을 내게 내밀었다.

“중학교 1학년이잖아. 술은 안 돼. 아무튼 정말 축하한다! 자, 쌈 하나 먹어라.”

아저씨들은 순식간에 쌈을 여러 개 싸 왔다.

“내가 싼 쌈도 먹고.”

“내 거 안 먹으면 섭섭한 거 알지?”

아버지는 입이 터질 것처럼 쌈을 먹고 있는 날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 * *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은 학교에 하나밖에 없는 컴퓨터실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왜 컴퓨터실로 모이래?”

“오후 훈련 안 하나?”

“헐, 대박 좋은데.”

축구부 코치 김진호는 대형 스크린에 연결된 컴퓨터를 켜며 축구부원들의 잡담을 들었다.

“피카츄 배구 한판 고?”

“내 V스파이크 맛을 보여주마.”

부원들은 김진호가 있음에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붙어서 게임까지 했다.

‘어휴…….’

김진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감독대행을 맡기 전부터 김진호는 축구부원들에게 편한 형 같은 느낌의 존재였다.

김진호 본인도 자기를 감독대행이라기보다는 임시 땜빵으로 생각했다. 뭣보다 축구부의 규율 같은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회 초년생인 자신을 축구부 코치로 고용한 게 지상철인데, 그 지상철이 해고당했다. 자신의 일자리 걱정도 됐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았다.

뭣보다 김진호는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유형이었다.

축구부원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게임을 하면서 자기들끼리 욕설을 주고받고, 낄낄거리고 있었다.

중학생에다가 운동을 하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이런 좁은 공간에 있으면 너무 왁자지껄해서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야야, 너무 시끄럽다. 적당히 떠들어라.”

“네 형!”

“알겠사옵니다!”

동생 같은 축구부원들의 대답에 피식 웃은 김진호는 컴퓨터를 켜고 CD롬이 되는지 확인했다. 자기도 어릴 때 저렇게 밝고 활기찼었다. 그 생각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김진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12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 먹고 1시까지 축구부원들을 모아놓으라고 했는데.

아침 교무회의에서 이사장에게 지시받은 내용이었다. 새 감독과 새 부원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김진호는 드디어 이 귀찮고 부담스러운 감독대행이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거기에 앞으로 자신의 상사가 될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새 감독이 오면 해고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여러 직원에게 물어봐서 소문은 대략 알고 있었다.

새 감독은 외국인이고, 이탈리아에서 프로축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코치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김진호는 새 감독의 경력에는 불만 하나 없었다. 프로출신이다. 실제로 자신도 망했고, 자신의 친구들이 매년 프로 도전에 실패해서 헤매는 걸 보다 보면 프로출신이라는 얘길 들으면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때 문이 열렸다. 이사장 박영대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 김진호는 벌떡 일어나서 인사했다.

“다들 잘 모여 있네.”

박영대 뒤에는 잘생긴 갈색 머리 외국인이 있었다. 그 뒤에는 송현준이 있었다. 송현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지상철이 툭하면 뒷담을 해 댔기 때문이었다.

컴퓨터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운동부원들 특유의 산만함이 줄어든 게 아니라 외국인을 보고 집중을 하는 거다.

김진호는 이사장에게 먼저 인사하고 새 감독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이탈리아어로 작게 인사했다. 며칠 전에 인터넷을 뒤져서 알아낸 인사법이다.

“피, 피아체레 디…….”

“만나서 반가워요. 어? 이탈리아어를 하세요?”

“어, 어어? 아뇨? 그냥 인터넷 보고…….”

자신의 어수룩한 인사와 동시에 유창한 한국어가 들리자 김진호는 크게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로베르토가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만나서 반가워요. 김진호 코치죠? 저는 로베르토 그릴로라고 해요. 로베르토나 로베, 로비, 롭이라고 부르면 돼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감독님…….”

로베르토는 쓴웃음을 지었다.

로베르토의 등 뒤에는 송현준이 보였다. 김진호는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드디어 들어오는구나. 지상철이 욕할 때 별말 안 하긴 했지만, 송현준이 대단하다는 얘기는 1학년생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윤태상도 지나가는 말로 칭찬할 정도였다.

송현준에게는 인사하지 못했다. 이사장이 단상 위에 섰기 때문이었다.

김진호는 물러나면서 축구부원들을 살폈다. 축구부원들도 로베르토의 유창한 인사를 들었는지 앞자리에 앉은 1학년생들이 몹시 신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직 웅성거리긴 해서 김진호는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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