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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2화 (58/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2화

“네!”

분위기메이커인 박종혁이 평소보다 더 씩씩하게 대답했다. 박종혁은 이어서 송현준에게 손만 흔들어서 인사를 건넸다. 둘이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김진호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이사장의 얘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축구부.”

“예!”

“다들 1학기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딱딱하고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지상철 전 감독이 이사장 앞에서는 반듯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라고 거의 세뇌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박종혁이 이사장 앞에서 장난을 치다가 숙소에서 몽둥이찜질을 당한 적도 있었다.

“이번 전국대회는 아쉽게 떨어졌지만, 부답복철이라는 말이 있다.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뜻으로 앞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사자성어지. 우리 축구부도 너희들을 위해서 다음 전국대회에서는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예!”

이사장이 로베르토와 송현준을 보며 실실거리는 느낌으로 웃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새 감독님을 모셔 왔다.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선수로 잠시 뛰었고, 몇 년 동안 코치 공부하다 온 분이다. 다들 박수!”

짝짝짝짝!

각을 잡은 것처럼 균일한 박수가 컴퓨터실을 가득 채웠다. 김진호도 열심히 손뼉을 쳤다.

“그리고 새 감독님이 오면서 축구부원도 한 명 새로 입부하기로 했는데…… 너희 중 몇 명은 이미 안면이 있다고 들었다.”

“안녕하세요. 1학년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현준이는 가서 앉아라.”

“네.”

짧은 자기소개를 마친 송현준은 먼저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박종혁과 엄태영 옆에 끼어 앉았다. 박범철을 비롯한 2학년들이 조금이나마 안 좋은 시선을 보내긴 했지만, 그들의 관심은 바로 로베르토에게로 옮겨졌다.

로베르토는 송현준이 인사하는 동안 컴퓨터에 CD를 넣고, 파워포인트 파일을 스크린에 띄웠다.

스크린에는 로베르토의 이탈리아 프로팀 시절 사진과 함께 간단한 약력이 적혀 있었다.

“로베르토 그릴로라고 한다. 이사장님께서 프로출신이라고 소개해 주셨지만, 솔직히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이탈리아 명문 팀 피오렌티나의 유소년팀에서 오래 뛰었고, 이론적으로는 자신이 있다. UEFA에서 코치 자격증도 있고, 실제 코치들이나 현역으로 뛰고 있는 동료들, 그리고 교수님들에게 전문적으로 이론을 공부했다. 너희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구체적인 숫자나 내용은 화면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축구부원은 숫자나 글자에 약하기도 했고, 이국적인 외모의 로베르토가 한국말을 잘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쏠렸기에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로베르토는 개의치 않고 얘길 계속했다. 김진호에게 손짓해서 PPT를 다음 화면으로 넘겼다.

축구부원들이 웅성거렸다.

스크린에는 ‘공식 팀 훈련은 최대 3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앞으로의 훈련방침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겠다. 방학 중에는 온종일 훈련하겠지만, 학기 중에는 공식 훈련은 최대 세 시간이다. 보통은 두 시간 정도 진행할 계획이다. 나머지 시간은 학교 공부를 하든 자율 훈련을 하든 너희들 자유다.”

축구부원들이 옆 부원들과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자 컴퓨터실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당황한 김진호가 축구부원들을 일단 진정시켰다.

“조용, 조용!”

김진호도 새 감독의 말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축구부 활동은 새벽 훈련, 수업이 끝나자마자 오후 훈련, 그리고 저녁 식사 후의 저녁 훈련으로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고작 3시간만 훈련해서 뭐가 된단 말인가.

김진호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사장을 봤지만, 이사장은 로베르토의 말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율 훈련의 강도는 알아서 해도 되지만, 공식 훈련 때 퍼질 수준으로 하면 안 된다. 또, 자율 훈련 프로그램을 짜지 못하는 부원은 내가 운동장에서 대기하며 도와주겠으니 얼마든지 물어봐라. 훈련 파트너가 없으면 나와 코치가 직접 도와주겠다. 또, 궁금한 거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훈련 중에도 언제라도 물어봐라.”

축구부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내용은 김진호의 귀에도 들렸다.

“야, 고작 3시간으로 충분해?”

“2시간만 한다는데.”

“아니, 이건 좀…….”

“거기, 하고 싶은 말 있나?”

당연히 로베르토의 귀에도 들렸기에 대놓고 물어봤다.

하지만 축구부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깔렸다. 이들은 질문하거나 자기 의견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박종혁이 손을 들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감독님.”

“그래.”

“왜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시나요?”

박종혁은 나서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다만 이런 스타일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때도 있다. 지상철 전 감독이 있었다면 박종혁은 바로 엎드려뻗쳐 후 몽둥이 행이다. 김진호는 머리를 감싸 쥐려고 하다가.

“어머니가 한국분이다. 외할머니가 수육국밥 집 하시니까 다음에 다 같이 한번 먹으러 갈 생각이다. 다음.”

태연하게 대답하는 로베르토를 보고 벙쪘다.

앞으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축구부가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진짜 이거 맞냐?”

“아씨…… 모르겠다.”

로베르토의 방침에 불만을 가진 2, 3학년생들의 꿍얼거림을 들으면서 박종혁, 엄태영과 나란히 걸었다.

전생에서 언제나 이랬기에 로베르토가 걱정되진 않았다.

지금 걱정하는 건,

“…….”

“…….”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이다.

알고 있는 건 대처하면 되지만 체육대회 출전으로 미묘해진 박범철과 2학년생 그룹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축구부는 2학년생이 주축이 돼서 운영되기에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었다.

“야 이 자식아. 온다고 미리 얘길 하든가.”

“너 숙소에 있잖아. 뭐로 연락하냐?”

“그건 그러네.”

일단은 박종혁과 실없는 소리를 즐기며 걸어 운동장에 도착했다.

로베르토를 소개했던 이사장이 어느새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있었다. 첫 훈련을 구경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사장이 날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고개만 살짝 숙이고 축구부원들을 관찰했다. 같은 1학년 몇몇을 제외하고 그들은 내게 인사하지 않았다.

체육대회 때 적으로 만났던 박범철의 무리는 날 좋지 않은 눈으로 보긴 했지만, 나머지는 악감정이 있는 게 아니다. 감독으로 부임한 로베르토에 더 관심이 쏠린 거다.

“드디어 왔네. 현준이라고 했지? 앞으로 잘해보자.”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대영 중학교 축구부의 에이스이자 주장인 윤태상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좀 더 빨리 왔다면 좋았을 테지만…… 지나간 일이니까.”

“전국대회는 아쉽게 됐습니다.”

“그렇지. 넌 풋살대회 우승해서 방학식 때 상도 받았잖아? 대단하네.”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지…… 맞아.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운이 필요하지. 우리는 이번에 운이 없었던 거고…….”

윤태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랑 똑같은 훈련 말입니까?”

갑자기 들려온 코치 김진호의 목소리가 꽤 컸기에 대화를 멈추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진호와 로베르토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훈련했는지 보고 싶네요.”

“아, 네, 그…….”

김진호의 눈이 잠시 이사장 쪽을 봤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안절부절못하는 게 이사장 눈치가 보이나 보다.

로베르토는 김진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김진호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네, 하겠습니다. 태상아.”

“예.”

“어제 했던 대로 세팅하자.”

“알겠습니다.”

윤태상은 박종혁과 엄태영을 비롯한 1학년생들을 불렀다.

“훈련 장비 세팅하는 건 1학년이 해.”

“똑같네.”

“초등학교 때랑?”

“응.”

우리는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운동장 연설대 밑에 있는 체육 창고로 향했다.

체육 창고에서 꺼내는 물품들을 보니 무슨 훈련을 할지 짐작이 갔다. 엄태영과 함께 공이 잔뜩 담긴 철제 보관함을 끌고 가면서 틈틈이 다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장 중앙에 꼬깔콘을 대략 15~20m 정도 간격으로 양쪽으로 13개씩 배치했다. 이후 개인 축구화와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고 박종혁 옆에 섰다. 아직 유니폼이 없어서 체육복을 입었다.

“자자, 운동장 열 바퀴부터!”

“네!”

김진호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스트레칭을 하고 운동장을 열 바퀴 돌았다.

돌아와서 모이자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어제처럼 셔틀런을 할 건데…….”

아까 예상한 단어가 김진호의 입에서 나왔다. 김진호는 날 쳐다보면서 이어 말했다.

“절반씩 할 건데…… 송현준, 셔틀런 해본 적 있어?”

“네!”

“좋아.”

지금은 방학이다. 수업이 없어서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축구부가 체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많이 한다. 마치 프로팀의 프리시즌처럼 말이다.

전국대회에 나간 팀들은 한창 경기를 준비하겠지만 우리는 탈락했으니 어쩔 수 없다.

셔틀런은 내가 매일 새벽에 한 인터벌 훈련과 같은 계통의 컨디셔닝 훈련으로 체력을 기르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는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을 달성한 멤버들이 주로 한 체력훈련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덕분에 운동부에도 꽤 도입됐다.

“잘 따라오려나 몰라.”

“퍼지겠지. 뭐.”

나한테 하는 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박범철이 속해 있는 2학년 무리였다. 자기들끼리 투덜거리는 소리지만 다 들렸다.

저 무리는 인격자 정두식을 제외하면 다 평범한 성격이다. 친구가 나 때문에 망신을 당했으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내일 숙소에 들어가면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잘해라.”

박종혁도 당연히 들었고, 기분이 나빠 보였다.

자신감 있게 웃었다.

“맨날 새벽에 하는 거 못 봤냐. 이런 거 껌이야.”

“그러면 1등 해라.”

“당연하지.”

박종혁은 나 대신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이 정도 신경전은 당연히 예상했다. 지금부터 할 일은 단순하다.

실력을 보여주면 된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제자리에서 뛰기도 하며 몸을 예열했다.

중학교 운동부든 프로축구팀이든 축구만 잘하면 장땡이다. 그 진리를 알고 있는 나는 자신만만했다.

“그럼 시작한다.”

“예!”

삑!

각자의 고깔 앞에 일렬로 선 우리는 휘슬 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건너편에 설치해 놓은 꼬깔콘까지 뛰었다.

“범철이! 더 빨리!”

김진호는 페이스 배분을 하려고 느리게 뛰는 부원들을 재촉했다. 거기에 새 감독이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박범철을 비롯한 축구부원들은 전력으로 달렸다. 꼬깔콘에 전부 도착하자마자 또 삑! 하는 휘슬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전부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삑!

다시 꼬깔콘까지 뛰었다.

삑!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게 셔틀런이다.

셔틀런은 국가대표급 선수들도 힘들어한다. 왕복 50회에 달하자 축구부원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고, 60회쯤부터 탈락자가 우수수 나오기 시작했다.

70회쯤이 되자 대부분의 축구부원이 탈락했다. 박범철과 정두식이 물러나며 처음과 표정 변화가 없는 나를 괴물 보듯이 봤다.

100회째의 셔틀런에서도 처음과 똑같은 페이스로 꼬깔콘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다른 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훈련을 구경하는 축구부원들의 놀람에 가득 찬 시선을 구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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