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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5화 (6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5화

일단 가만히 있었다.

3학년 숙소의 분위기는 노태신이 쥐고 있다. 노태신은 전대 주장이고, 현재 주장은 윤태상이었다. 그래도 영향력은 남아 있다.

또한, 노태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3학년은 2학년 초반 전국대회에서 4강을 이뤄서 고등학교 진학이 확정된 사람들이었다.

“저…… 여기서 말입니까? 지금?”

몇 초였지만 내가 말이 없자 박종혁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응. 너희도 입부했을 때 몇 명 했잖아.”

“그거는…… 다 같이하는 분위기였고…….”

“종혁아. 내가 너 이뻐하긴 하는데 지금은 가만있자?”

그래도 박종혁은 한마디 하려고 하는 기색을 보였다. 박종혁의 어깨를 툭 쳤다.

박종혁이 날 돌아보며 갸웃하든 말든 노태신을 보며 으쓱했다.

“하고 싶은 거 해도 되나요?”

“오? 하고 싶은 게 뭔데.”

“삼바 춤이요.”

“엥?”

노태신뿐만 아니라 박종혁과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던 3학년생 전부 당황했다. 망설임 없이 스텝을 밟았다. 일곱 번째 전생에서 이민우에게 풋살을 배운다고 브라질에 머무르며 자연스럽게 배운 거다.

탁, 탁탁, 타타탁.

음악 없이 춤을 추고 있으니 스텝을 밟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노태신을 비롯한 3학년생들은 어이없어서 그런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그렇게 삼십 초가량을 추자 노태신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으하하하하! 이 새끼 미친놈 아니야!?”

그제야 3학년생들의 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깜짝 놀랐네.”

“존나 뻔뻔하다?”

“신났네, 신났어.”

거칠게 말했지만 3학년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이야, 너 괜찮다. 깡이 있네.”

노태신의 말이었다.

3학년생의 시선은 전부 호의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생에서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기에 여유 있었고 자신 있는 상황이었다.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얼빠진 박종혁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줬다.

그리고 3학년생들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인사하겠습니다.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짐이 내일 와서 내일부터 숙소 생활할 예정이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이제 빨래를 가지고 나가면 되겠다.

근데.

“우리한테 잘 보이는 건 좋은데, 너 2학년들한테 이미지 안 좋더라? 걔네한테도 지금처럼 씩씩하게 잘 해봐.”

노태신의 말이 추가로 날아왔다.

“……네!”

대답하며 돌아보니 노태신이 실실 웃고 있었다.

“축구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거든.”

그의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진지했다.

작년 대영 중학교 전국대회 4강의 주역이자 U-16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된 또래 중에 항상 천재라고 불렸던 선배가 하는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날 걱정해서 해준 말일 테니 고마움을 담아 다시 한번 꾸벅 숙였다.

* * *

3학년 숙소에서 나온 후 박종혁에게 타박을 받았다.

-시바, 뭐 그렇게 미친 짓을 하냐. 저 선배들 심기 뒤틀리면 얼마나 무서운데.

-그럼 어떡하냐. 시키는 대로 해야지. 아무튼 빨래나 해라~ 난 밥 먹으러 간다.

-……그래. 내일 보자.

박종혁은 훈련 장비를 미리 깔아놔야 하니까 훈련 예정 시각인 9시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오라고 얘기했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왔다.

“아이고, 현준이 왔니.”

“늦었죠. 죄송해요.”

“아니야. 늦긴. 자자, 밥 먹자.”

어머니는 평소보다 살가우셨다. 집에는 나와 어머니뿐이었다. 아버지는 오늘 야근, 여동생은 태권도 학원에서 수련회, 형은 늘 하는 야간자율학습.

그래서 어머니와 단둘이 식사했다.

“오늘 메뉴 뭐예요? 대박이네요.”

잡채에 수육에 닭볶음탕에, 잔칫상을 방불케 하는 상차림이었다.

“뭐, 평소대로지.”

어머니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눈에 낀 걱정스러운 기색은 감추지 못하셨다. 일단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이것저것 맛본 뒤에 어머니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로 했다.

“오늘 체력 훈련을 했는데요.”

“그러니?”

축구부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실 거다.

“1등 했어요.”

“정말?”

“네, 그리고요. 3학년 선배들이 개인기를 해보라고 해서요…….”

삼바춤을 춘 얘기를 했다.

“뭐?”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깡이 있다면서. 선배들한테 잘 보였으니까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그리고 로베 형이 감독이잖아요. 이번은 초등학교 때랑 달라요.”

“……그렇니?”

어머니를 위해 축구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신 모양이었다. 차분하게 말씀하신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어지셨고, 밥도 깨작깨작 드셨다.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는…….”

“뭘요~.”

“엄마 걱정할까 봐 그런 얘기 한 거 아니야?”

“뭐…… 하하.”

“우리 착한 아들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몰라. 현지나 네 아빠나 철부지라니까.”

“흐흐. 그건 그래요.”

어머니와 말없이 눈을 맞추고, 서로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자주 놀러 올게요. 로베 형이 감독이니까 어떻게 잘 될 거예요.”

“그러면 안 돼.”

어머니가 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축구부에만 집중해. 알겠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마음은 잘 전해져 왔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듣고 싶어 할 대답을 해주자.

“알겠어요. 잘하고 올게요.”

* * *

<현준님, 잘 지내시는지,,^^>

“얘는 왜 컴퓨터만 잡으면…… 에휴, 말을 말자…….”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을 열자 이민우가 보낸 메일이 가장 위에 떠 있었다. 화려하고 촌스러운 이모티콘의 향연을 걷어내고 메일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이주 뒤 주말에 만나자.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이민우는 전생과 다르다는 느낌을 가장 크게 받는 친구다.

흥미가 생겼기에 알겠다는 답장을 간략하게 적어서 보냈다. 그리고 로그아웃한 후, 전생에서 알아 놓은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김진호>

축구부 코치의 이름이었다. 우연이 아니라 이 계정은 정말로 축구부 코치 김진호 거다. 전생에서 대신 로그인해 달라고 들은 비밀번호가 1q2w3e4r이라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나도 전생에서 현역으로 두 번 군대에 다녀온 적이 있었기에 잊을 수가 없었다.

-로베 형…… 아, 크흠. 감독님이 보여준 메일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니까? 내가 몽유병이 있었다니……. 잠든 내가 쓴 거 보고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전생의 김진호가 비밀이라며 털어놓은 말이 떠오른다. 재미 삼아 저질렀던 일이 로베르토와 김진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었지.

픽 웃으며 메일 쓰기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로베르토 그릴로 감독님, 축구부 코치 김진호입니다.>

1학기부터 틈틈이 만들어놓은 워드 파일을 첨부했다. 제대로 첨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파일을 열었다.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 능력치 보고서]

파일에는 3학년부터 1학년까지 모든 부원의 특징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누락된 걸 확인하는 것이었기에 빠르게 마지막 장까지 내렸다.

<송현준>

성격 : 모름

특이사항 : 모름

친한 부원 : 박종혁, 엄태영

안 친한 부원 : 모름. 2학년들 사이에서 안 좋은 이미지이나, 어제 먼저 가서 말을 거는 걸 목격했다.

정리 : 관찰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선수인 것 같다. 아래의 능력치는 임시로 적었다. 차후 수정하겠다.

___

개인기 15, 골 결정력 ??, 공격 위치선정 15 ……

___

직접 내 칭찬을 하고 내 능력치를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한 이유는 전생에서 김진호가 FS라는 게임을 즐기던 유저였기 때문이었다.

FS, 풋볼 시뮬레이션은 유저가 감독이 돼서 팀을 관리하는 게임이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즐길 수 있게 자유도도 높아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정말 많았다.

축구 마니아층이 즐기는 게임이라 꽤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실제로 프로축구 선수나 코치들이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FS에서는 선수의 능력치를 나타내는 수많은 스탯이 존재하고, 최대 20, 최저를 1로 두고 점수를 매긴다.

FS의 방식을 사용했기에 김진호는 정말 자기가 잠든 사이에 한 건가? 생각하게 되고, 자료가 내 전생 기반이라 몹시 정확하기에 로베르토는 감독 일을 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이 메일을 꼭 보내놔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김진호는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축구부원들의 정보가 정리돼있는 걸 보고 영감을 얻어 코치로서 몇 단계 발전하게 된다.

대단한 코치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는 사람이 잘 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파일이 제대로 업로드된 걸 확인하고,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현준아~ 안 자니?”

“다 했어요. 지금 컴퓨터 끌게요.”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어머니가 화장실에 들어가며 한마디 했다. 메일이 보내진 걸 확인하고, 금방 메일이 ‘읽음’으로 변하는 걸 확인한 후 컴퓨터를 껐다.

준비는 마쳤다.

내일 만날 로베르토의 반응이 기대됐다.

* * *

어제 박종혁이 해준 말대로라면 여덟 시까지 운동장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일곱 시에 학교에 왔다.

“현준아…… 나 어제 이상하지 않았냐?”

로베르토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잘하던데요?”

“코치도 아니라 처음부터 감독이라니…… 맡는다고 하는 게 아니었어…… 한숨도 못 잤고…….”

로베르토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잘했다니까요?”

“그러니까 말이야…… 뭐?”

이제야 제대로 들었는지 로베르토가 고개를 들었다.

“괜찮았다고요. 적당히 딱딱한 게 좋았어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흠흠.”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로베르토의 입가가 꿈틀댔다.

“근데 이거 물어보려고 새벽부터 부른 거예요?”

“응, 내가 너 아니면 누구한테 물어보냐.”

워낙 뻔뻔하다 보니 놀리기도 어려워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너랑 내가 친한 게 알려져서 좋을 거 없으니까.”

“네네, 기억해요. 우리는 조기축구회 덕분에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지인이다, 축구부 활동할 때는 격식 있게 대해라.”

“그렇지. 기억하는구나.”

처음 감독을 맡아 정신이 없고, 불안할 테니 이해해 주기로 했다.

“아, 그리고 물어볼 게 하나 있었다.”

“뭔데요?”

“예전에 축구부 활동할 때 전지훈련 가본 적 있지? 일반적인 훈련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냐? 프로그램은 짜 놨는데 참고 좀 하려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될 텐데요.”

“그래도, 문화라는 게 있잖아.”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축구부에서 어떤 식으로 전지훈련을 하는지 십 분 동안 간단하게 얘기해 줬다. 로베르토는 수첩에 필기할 정도로 열심히 얘길 들었다.

“좋아…… 좋아, 고맙다.”

“궁금한 게 더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요.”

“이 짜식…….”

로베르토는 수첩에서 고개를 들고 씩 웃었다.

“오늘부터 내가 공부한 내용을 훈련에 적용해 볼 건데…… 만약에 이상하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면 솔직히 말해주라. 선수 입장에서 어떻게 느끼는지 의견이 필요하거든.”

아주 바람직한 태도다. 그렇다면 전력으로 해준다.

“당연하죠. 아주 낱낱이 까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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