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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6화 (6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6화

“그…… 그렇게 심각하게까지는 말고. 나 이래 봬도 마음 약하다.”

로베르토와 나는 눈을 마주치고, 큭큭 거리며 웃었다.

“반 농담 반 진담이긴 한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로베르토랑 한 훈련은 재미있고 효율적이었거든요.”

“고맙다. 근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가르쳐보는 건…… 참. 잘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참 많다.

“저만 믿어요. 로베르토가 설명하면 제가 척하면 척해내서 축구부원들을 간접적으로 유도할게요. 또, 1학년 친구들이 로베르토 말 잘 듣게 얘기할 거고요…….”

“오.”

“근데, 2학년이나 3학년들은 안 친하기도 하고 절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어서 어려울 거예요. 그건 알아서 하세요.”

“2학년? 3학년? 안 좋다고? 아…….”

로베르토는 말을 하다가 머뭇거렸다. 어제 보낸 메일을 떠올린 거 같아서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왜요? 뭐 아는 거 있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어제 코치님한테 축구부원들 분석한 자료를 받았거든?”

“정말요? 근데 그게 왜요?”

“여기 오기 전에 코치님한테 잘 봤다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그런 거 보낸 적 없다고 해서.”

“……그래요? 코치님은 그거 보고 뭐래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처럼 정리돼 있고, 자기 메일로 보낸 게 맞아서 당황스럽다네.”

둘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상상하고 속으로 웃었다.

“코치님 몽유병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 그런가?”

로베르토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저도 보여주시면 안 돼요?”

“……꽤 세세하게 적혀 있어서 그건 어려울 거 같다.”

“그러면 어쩔 수 없죠.”

로베르토가 머쓱하게 웃었다. 대화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고, 만족한 나는 로베르토를 위해 화제를 돌렸다.

“3학년이랑은 괜찮을 거 같은데 대선배들이라서요. 2학년들이랑 화해는 했어요.”

“화해?”

체육대회 때 박범철과 있었던 일을 얘기했고, 어제 잘해보고 싶다고 그들에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보낸 파일에 적힌 내용 그대로다. 로베르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잘했네. 그런 거 방치하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

“그렇죠. 그러면 슬슬…….”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근데 말이다.”

다만 로베르토는 여전히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박범철 말고 다른 2학년생들은 잘 모르냐? 윤태상이라든가.”

“태상 선배는 가끔 인사하는 사이긴 해요. 나머지는 잘 몰라요.”

로베르토에게 보낸 파일에 적은 윤태상의 정보를 떠올렸다.

<부모님이 없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어렵게 자랐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

로베르토는 별말 없이 진지한 표정만 짓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태상 선배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로베르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주장이고 실력도 출중한데 친한 부원이 없는 거 같아서.”

“……그래요?”

“신경 쓸 필요는 없어. 그냥 물어본 거니까.”

“알겠어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로베 형이 원한다면 스파이 해줄게요.”

“뭐? 스파이?”

그렇게 물은 로베르토는 언제 심각했냐는 듯 크게 웃었다.

* * *

아홉 시가 되자 로베르토가 축구부원들 앞에 섰다.

“Tactical periodization.”

갑작스러운 영어에 다들 조용해졌다.

“한국어로 말하면 전술 주기화라고 하는 훈련 이론이다. 나는 이 이론을 중심으로 코칭을 공부했다.”

축구부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박종혁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날 봤다. 나는 꿋꿋하게 로베르토를 바라보았다.

어련히 알아서 설명해 줄 것이다. 말로 하면 어려운 이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용어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다. 너희들이 알 건 하나, 앞으로 가능한 많은 훈련을 공을 가지고 할 거라는 거다. 축구는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이니까.”

“아.”

“아아.”

축구부원들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하나둘 수긍했다.

사실 공을 가지고 모든 훈련을 한다는 건 전술 주기화 훈련 이론을 설명하는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전술 주기화는 말 그대로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전술’이라고 생각하고 전술 위주로 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나온 이론이다.

기존에 신체, 기술, 전술, 심리훈련으로 나눠서 하던 걸 전술을 가장 우위에 두고 통합해서 짧고 굵게 하는 훈련이다.

때문에, 어중간한 코치는 괜히 따라 하다가 팀의 체력이 부족해지거나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해져서 팀을 망칠 수도 있는 게 전술 주기화 이론이다.

로베르토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전술 주기화 이론에 입각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프로팀보다 낮은 수준인 축구부에서도 훈련의 난이도를 낮게 조정해서 적용할 정도다.

물론, 코치가 부족해서 허술한 부분도 많지만, 엉망진창이고 무식한 구시대적 훈련보다 몇십 배는 낫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시작은 코디네이션부터다. 김진호 코치님.”

“네!”

서로 존댓말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김진호는 기운 차 보였다.

“시작하시죠.”

“자자, 다들 모여.”

축구부원들은 2열로 서서 코디네이션 훈련을 할 준비를 했다.

“뺑뺑이는요? 몸은 풀어야 하지 않나요.”

주장 윤태상이 대표로 물었다. 평소처럼 운동장을 돌지 않냐는 물음이었다.

“감독님이 이걸로도 충분히 몸이 풀린다고 하셨다.”

“아…….”

로베르토의 대답에 윤태상은 주억거리면서 입을 닫았다. 대부분의 축구부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30분가량 스텝 레더와 고깔 등을 활용한 코디네이션 훈련 겸 몸풀기를 했다.

이어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우리는 크게 공격 두 팀, 수비 두 팀으로 나눠서 운동장을 반으로 갈랐다.

전술 주기화 방식은 대개 실전의 상황을 가정하고, 실전처럼 훈련한다.

체육대회 축구팀이나 풋살 팀에 제안했던 훈련들도 전술 주기화 훈련의 일종이었던 거다.

반은 센터서클부터 시작해서 오른쪽과 중앙을 활용해서 공격하고 수비하는 훈련, 나머지 반은 왼쪽과 중앙을 이용해 공격하고 수비하는 상황을 가정해서 훈련을 시작했다.

“이거 미니게임이잖아. 그럼 앞으로 미니게임만 한다는 거야?”

2학년 사이에서 그런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그들은 착실하게 훈련하긴 했다.

다만 시원시원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냥 뛰고, 같은 패스만 반복하고, 같은 드리블만 반복하다가 가끔 연습경기를 하던,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만 반복하던 평소와 달리 직접 생각하면서 해야 했다.

그래서 이들은 느렸다. 그리고 로베르토의 눈치를 수시로 봤다.

평소였다면 이렇게 얼을 타면 혼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베르토는 혼내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굳어 있었다.

“감독 화난 거 아니야?”

“왜 저러지.”

주변 축구부원들이 속닥대는 게 들렸다. 속으로 작게 웃었다.

로베르토는 화난 게 아니라 막막한 거다.

전술 주기화 훈련법은 어려운 훈련법이다. 훈련을 압축하는 만큼, 당연하게도 기본기가 어느 정도 완성돼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팀 단위로 뺑뺑이만 돌았던 축구부원 절반 이상은 기본기가 다져지지 못했다. 열심히는 했지만, 그걸 집중적으로 다질 시간 자체가 없었던 거다.

로베르토는 어제 얘기한 대로 기본기 훈련을 어떻게 할지 머리가 아픈 거다.

전생에서도 매번 이랬다.

작은 축구부지만 로베르토도 감독직은 처음이었다. 자기 이론을 마음대로 실험할 수 있는 첫 무대인 거다.

그렇기에 ‘전술 주기화 방식으로 훈련하겠다!’라고 무조건 선포한다.

그리고, 10분 만에 현실을 깨닫고 좌절한다. 전술 주기화는 무슨. 아무리 감독이 능력이 있어도 선수가 받쳐줘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베르토는 오늘 훈련이 끝나자마자 전술 주기화 특유의 ‘공을 갖고 실제 게임을 하듯 훈련한다’라는 요소와 훈련 프로그램 몇 가지만 가져와서 사용하고, 선수들의 기본기 훈련을 독려하는 식으로 수준을 낮출 것이다.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다.

나는 로베르토의 이런 점을 아주 높이 샀다.

자기의 이론과 선수단의 현 상태가 맞지 않을 때, 양측을 타협해서 선수단에 맞는 훈련법을 뽑아낼 수 있는 유도리 있는 감독은 정말 몇 없기 때문이다. 로베르토는 정말 좋은 지도자다.

“느린 건 괜찮지만 딴짓하지 마!”

김진호의 외침에 생각에서 벗어났다.

“감독님이 최대한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하라고 하셨다! 그렇지! 송현준! 그거다!”

로베르토는 지금처럼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발전할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일은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거다.

이 훈련은 경기에 필요한 체력과 기술과 전술을 길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방식을 경험해 보고 경기에서 더 빠르게 팀으로 움직이기 위한 ‘전술적’인 훈련이다. 괜히 전술적 주기화에서 나온 훈련이 아니었다.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을 맡은 나는 오른쪽으로 넓게 벌려주기도 하고, 깊게 찔러주기도 하고, 수비수와 수비수 사이를 노려 땅볼로 깔아주기도 하고, 직접 드리블하면서 움직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며 훈련에 도움이 되게 플레이했다.

그렇게 50분가량이 흘렀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박종혁이 내 옆에 주저앉았다.

“야이…… 다들 설렁설렁하는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받기 힘든 패스 주냐. 전력으로 몇 번을 달렸는지 알아? 뒤지겠네…….”

“다 널 위해서 한 거야. 알베르토 감독님이 가져온 훈련 말이야. 요즘 세계축구계에서 핫한 훈련이라고.”

“정말?”

당장은 아니지만 내년부터 이 훈련을 자기 스타일대로 도입한 무리뉴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엉, 나 쉬는 동안 해외 자료 보고 공부했다고 했잖아.”

“아…… 그랬지.”

“……정말? 이게 그렇게 대단한 훈련이야?”

근처에서 뻗어 있던 엄태영이 관심을 보였다. 엄태영은 평소 왼쪽 윙백으로 뛰나 오늘은 오른쪽 윙백으로 뛰면서 박종혁과 호흡을 맞춰 내 패스를 받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이론은 간단한데 실제 훈련 프로그램을 잘 짜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하더라.”

“오오…….”

“호오…….”

1학년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모였다. 특별한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른 친구들은 아직 어색한 사이도 있지만, 박종혁과 엄태영은 날 신뢰하기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 화장실 좀.”

“뛰어갔다 와라.”

“오케.”

이 정도면 되겠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며 각 학년 무리들의 분위기를 관찰했다.

1학년 중 주류는 방금 내가 있던 곳에 똘똘 뭉쳐 있었고, 분위기가 좋았다. 내 말에 현혹됐다.

3학년도 표정이 좋았다. 사실 이들은 훈련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을 거다. 2학년들은 한두 명씩만 이야기를 나누고 전체적으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 말고 또 한 무리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거나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는 부원들. 1, 2, 3학년이 뒤섞인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다. 이 무리는 1학년 주변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지상철이 축구부 인원을 때운다고 여러 곳에서 모은 속된 말로 땜빵 선수들이었다.

“현준아.”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흠칫했다.

“아, 깜짝이야. 로베…… 감독님. 왜 부르시죠?”

“잠깐만 이쪽으로 와볼래?”

로베르토의 목소리는 심각했다. 무슨 용건인지 알았기에 순순히 로베르토를 따라갔다.

“훈련 곧 시작하는 거 아니에요?”

로베르토는 김진호에게 자기가 늦으면 먼저 훈련을 시작하라고 말했다며 나를 복도 구석으로 데려갔다.

* * *

로베르토는 예상했던 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는 설마 했는데 생각보다 기본기가 엉망인 애들이 많은데?”

준비해온 대답을 꺼냈다.

“세리에 유스팀이라도 생각했던 거예요? 어제 얘기하는 거 보니까 진작 눈치챈 줄 알았는데.”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훈련이 효과를 보려면 어느 정도 기본기는 있어야지. 또, 체력은 어떻고.”

“그러면 연습하면 되죠. 다들 운동 신경은 좋아요. 다들 제대로 된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에요.”

“하…… 미치겠구만.”

미리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직접 보고 깨닫는 게 확실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와닿지 않으니까.

웃으며 말했다.

“축구부원들 기본기 연습시키는 거 도와드릴게요.”

“정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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