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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7화 (63/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7화

“네, 영대 아저씨한테 코치도 하나 더 구해달라고 해요. 혼자 못해요. 이거.”

로베르토의 눈썹이 꿈틀댔다.

“……너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었구나.”

“조금은요. 2002년에 4강을 갔다고 해도…… 시스템적으로 많이 부족해요.”

“하…… 머리 아프네 이거. 어제는 긴장해서 그런가 했지. 축구부라고 해서 2/3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1/3만 괜찮네.”

나중에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개선하며 전체적으로 괜찮아지긴 하지만…… 물론 그때도 부족한 친구들이 많긴 하다. 아무튼 지금은 기본기가 부족한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아무래도 문화상 ‘팀’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의 기술을 키울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독기 품고 연습하는 탑클래스 선수들이나 타고난 선수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았다.

백 년 전부터 꾸준히 축구가 문화에 녹아 있던 게 아니다 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제가 열심히 도와드릴게요.”

수시로 생각에 잠기던 로베르토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 당장 오후부터 프로그램을 다시 짜야겠네.”

로베르토의 고생길 시작이었다. 그만큼 큰 성과가 있을 테니 옆에서 열심히 도울 예정이다.

* * *

정두식을 비롯한 2학년들은 말이 없었다. 어제 말다툼 이후로 숙소에서도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정두식은 그래도 가장 편한 박범철에게 말을 걸었다.

“야, 훈련 어떻게 생각하냐?”

“재미는 있는데…….”

“재미로 되냐?”

박범철의 중얼거림에 홍준서가 쏘듯이 말했다.

“앞으로 방학 끝나면 몸 깔짝 풀고 미니게임만 한다는 거 아니야.”

이민재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노기가 서려 있었다.

“그래도 오후 훈련은 봐야 하지 않냐?”

정두식의 말에 박상호가 고개를 저었다.

“방학 끝나면 방금 한 것처럼만 훈련한다며. 그럼 우리 전국대회는 어떡해. 다른 팀들은 하루 종일 훈련하고 나올 텐데. 재미가 무슨 소용이야.”

“맞아. 선배들처럼 전국대회 4강을 따놓은 것도 아니고.”

이들이 막 1학년으로 들어왔을 때 지금의 선배들은 2학년 초, 겨울에 전국대회 4강을 이뤄냈다.

1학년 때 이들은 자기들도 선배들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 내년 초까지 4강 못 가면 큰일이잖아…….”

이민재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이들에게는 기회가 몇 번 없었다. 이들은 인생을 걸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이런 가벼운 훈련이 정말 승리와 결과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우리가 윤태상도 아니고…….”

홍준서의 목소리에는 패배감이 서려 있었다. 개인 기량이 엄청 출중한 것도 아니니 전국대회 4강 특기가 아니라면 내년으로 다가온 고등학교 진학에 어려움이 있을 게 틀림없었다.

“그냥 떠날까?”

“X발 진짜 모르겠네…….”

“지상철이 X 같긴 해도 작년 초에 전국대회 4강도 가봤고, 훈련도 빡빡하잖아.”

“아 맞기 싫은데. 지금 외국인 감독은 너무 널널해서…….”

하지만 이들의 투덜거림에 정두식은 공감하지 못했다.

“가려면 가든가. 몇 번을 얘기하냐.”

“너는 정도 없냐?”

홍준서가 눈을 부릅떴다.

“나 같이 재능 없는 놈은 선택지도 없어서 말이다.”

정두식은 그렇게 투덜대고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벤치로 향했다. 박범철은 이들의 눈치를 보다가 정두식을 따라갔다.

“쟤 진짜 요즘 짜증 나게 말하네.”

“두식이가 저러는게 하루 이틀이냐. 그래도 마음 상하겠지. 쟤랑 범철이만 제안 못 받았으니까.”

“그래도 짜증 나잖아. 내가 제안했냐고. 왜 나한테 짜증 내냐고.”

홍준서의 말에 이민재와 박상호는 말없이 동의했다.

“근데 말이야. 어제 엄마한테 들은 건데. 저 감독이랑 송현준이 왜 같이 입부한 줄 아냐?”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홍준서가 말했다.

“이사장, 저 감독, 송현준 다 같은 조기축구회 출신이래.”

“정말?”

“그거 낙하산이라는 거 아니야?”

이민재와 박상호가 제대로 반응을 보였다. 홍준서 또한 팔짱을 끼며 마침 학교 건물에서 같이 나오고 있는 송현준과 로베르토를 흘겼다.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 엄마가 동네 아저씨한테 어제 얘기 들었다니까. 오늘 학부모회 가서 얘기한다고 했어.”

“헐, 그러면 부모님들이 화낼 수도 있겠네.”

“그렇겠지.”

* * *

로베르토가 부임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래서 뭘 바라시는 겁니까?”

“그 로베르톤가 뭔가 하는 감독을 해고하고 좋은 감독을 데려오자는 거죠.”

“…….”

이사장 박영대는 팔짱을 끼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요 며칠 축구부 훈련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아침도 기분 좋게 학교에 나왔는데 이사장실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이 무리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

심지어 이들은 자기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이 무리의 이름은 축구부 학부모회였다. 정확히는 그중 일부.

박영대는 이들을 이사장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이들의 불만을 듣고 있었다.

“애들한테 얘기 다 들었어요. 학기 중에는 3시간 이상 훈련 안 한다고 못 박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3시간짜리 훈련이라는 것도 미니게임만 반복하고. 대체 감독이 하는 게 뭡니까?”

“날로 먹으려는 거 아니에요?! 지금!? 네?”

홍준서의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옆의 학부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대가 아무 말도 없지 기세가 오른 홍준서의 아버지가 계속 말했다.

“처음에 우리 애들이 불평할 때, 우리가 어떻게 말해줬는지 아세요?”

“어떻게 했습니까?”

“‘첫인상으로 모든 걸 평가하면 안 된다. 일단 일주일은 지켜봐라.’라고 했어요! 근데! 일주일 내내 오전에는 미니게임만 시키고, 오후에는 체력 훈련만 시키고, 저녁에는 기본기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무의미한 리프팅만 계속 시킨다잖아요. 지금! 이런 훈련은 아마추어도 시킵니다! 심지어 여기에서 학기 중에는 체력 훈련을 뺀다는 거 아닙니까? 말씀 좀 해보세요!”

“으음…….”

전부, 로베르토에게 설명을 들은 내용이었다. 로베르토의 말에 따르면 이들이 말하는 미니게임은 전부 다른 방식으로 치러졌고, 선수들의 어떤 능력을 향상시킬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목적성이 있는 훈련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반응이다. 원리를 모르면 겉만 보고 욕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문물을 들여오는 건 정말 피곤하다는 생각을 박영대는 했다.

“일단…… 로베르토 감독을 불렀으니…….”

“이런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요.”

박상호의 어머니가 박영대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 외국인 감독이 이사장님이랑 같은 조기축구회 출신이라면서요?”

“그래서요?”

불쾌해진 박영대가 날카롭게 말했다. 박상호의 어머니는 움찔하더니 주변 학부모를 둘러보고 힘을 얻었는지 눈을 부릅떴다.

“그 외국인 정말 실력 있는 거 맞아요?”

“자꾸 외국인, 외국인 그러시는데…….”

박영대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렸다.

“우리 감독에게는 로베르토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로베르토는 우리나라 프로리그보다 몇 단계 위인 이탈리아 1부리그 유소년 팀에 있었고, 짧지만 프로 경력도 있습니다. 프로 경력이 짧은 이유도 코치 준비를 하기 위해서고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학부모들이 조용해졌다.

“저는 인맥으로 감독을 뽑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한테 진 팀이잖아요?”

“아니…… 하.”

박영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뭐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리나라가 이탈리아를 이긴 게 그렇게 기뻤던 이유는 수준이 다른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축구 인프라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는 건 박영대 같은 마니아도 알았다.

박영대의 한숨 이후 이사장실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점점 냉각되었다.

“이사장님? 부르셔서 왔는데…….”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로베르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베르토는 박영대의 부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 명가량의 학부모들의 시선이 쏠렸음에도 로베르토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그 분위기에 멈칫하던 학부모들을 대표해 홍준서의 아버지가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왜 왔는지 들었습니까?”

“예…… 뭐, 제 방식이 다르다 보니 설명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은 했었습니다. 제가 먼저 모실까 했었는데…… 직접 오셨으니 잘됐네요.”

로베르토의 유창한 한국어에 학부모들은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유를 잊진 않았다.

“일단 제 훈련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설명해도 되겠습니까?”

“뭐…… 해보든가요.”

“축구는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훈련도 전부 공을 가지고 해야 한다. 이게 제 훈련의 핵심입니다. 공을 가지고 뛰는 것과 무작정 뛰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로베르토의 차분한 설명에 어머니들은 집중했고 아버지들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면서도 집중해서 들었다.

박영대는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박영대가 아까부터 이성을 잡을 수 있었던 건 이 사태를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있는 학부모들은 전부가 아니다. 대표들도 아니다.

이들은 지상철 전 감독에게 진현 중학교로 전학 오라는 제안을 받은 축구부원들의 학부모들이었다.

박영대는 로베르토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어제 윤태상과 면담하는데 지상철 전 감독 얘기가 나왔습니다.

-지상철? 걔가 왜?

-진현 중학교라는 곳에 부임했는데 여기서 잘하는 애들을 빼가려 한다고 합니다.

-뭐?! 이 새끼가! 내가 전화를…….

박영대는 분노했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로베르토의 태연함에 당황했다.

-뭐가 괜찮아. 우리 축구부는 학기 초에도 한 번 부원이 나가서 부원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다 떠난다고 해도 24명입니다. 그리고 남을 축구부원들이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그래?

-다만, 솔직히 저랑 김진호 코치님 둘이서 다 가르치는 건 너무 힘듭니다. 코치 좀 더 뽑아주세요…….

-코치를 구하고는 있는데…… 쉽지 않아.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다 보니…….

대영 중학교는 탈락했지만, 다른 곳은 한창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막 여름에 들어가고 있어서 프로리그는 진행 중이고, 대학교도 중간까지밖에 안 끝났다. 코치를 구하기엔 최악의 시기였다.

-뭐, 당장은 현준이가 있어서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래애?

박영대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박영대는 한번 믿기로 한 거 적어도 내년 전국대회까지는 무지성으로 믿어줄 생각이었다.

-그럼 알아서 해 봐. 곧 부모님들이 들이닥칠 수도 있겠구만. 근데 태상이는 왜 그 얘기를 해준 거래.

-우리 축구부에는 가장 실력이 좋은 한 명에게 회비 면제를 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그렇지. 그건 왜?

-윤태상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고, 회비 면제만 보장된다면 남겠다고 했습니다.

윤태상이 가난하다는 건 이사장도 잘 알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런 제안을 해오는 건지 생각하다가 송현준에게까지 생각이 닿았다.

윤태상은 송현준에게 자기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다.

-참…… 마음이 안 좋구만. 그렇게 해주겠다고 전해줘. 태상이도 면제해 주고 현준이도 면제해 주면 되는 건데…… 그런 걱정을…… 할만…… 하겠구만…….

“지금 뭐라고 했어요?”

큰 목소리에 박영대는 회상을 멈췄다. 로베르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있던 박영대는 화가 난 것 같은 학부모들을 보며 당황했다.

이들이 왜 화가 났는지는 바로 알게 됐다.

“기본기 부족이요? 우리 애가요?”

“네, 하루에 최소 한 시간씩 리프팅을 해야 합니다. 축구부원 중에 기본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로베르토의 단호한 말에 학부모들이 부글부글 끓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이사장님! 이런 축구도 잘 모르는 감독 계속 쓸 거예요?!”

“우리 애들 고등학교 못 가면 책임지실 거예요?”

학부모들의 정신없는 항의를 이사장과 로베르토는 묵묵히 받았다. 이들이 다음으로 꺼낼 말을 기다렸다.

홍준서의 아버지가 대표로 말했다.

“사실 오늘 최후 통첩하러 온 건데, 안 되겠네요. 개선의 의지가 없어 보여요. 우리 애들 전학하겠습니다!”

“진현 중학교로요?”

박영대의 물음에 학부모들이 전부 경악했다.

“어, 어떻게…….”

“저도 귀는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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