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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68화 (6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68화

홍준서의 아버지는 더 뻔뻔하게 나왔다.

“그래서요? 전학 보낼 때 방해하실 겁니까?”

“아뇨. 원한다면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예?”

이 대답은 홍준서의 아버지에게도 의외였는지 얼이 빠졌다.

“원한다면 보내주겠습니다. 어느 정도 감수하고 새로운 훈련방식을 도입한 거니까요.”

“…….”

“그래도.”

박영대가 선언하듯 말했다.

“지금 떠나면 정말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로베르토의 훈련 프로그램과 코칭은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정도로 뛰어나거든요.”

당당한 박영대의 태도에 학부모 몇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으나 홍준서의 아버지는 물러나지 않았다.

“됐습니다. 우리 애들보고 기본기도 없다고 말하는 외국인이 무슨. 그냥 전학 가겠습니다.”

“그러세요. 바로 행정실에 얘기해 놓을 테니 절차대로 처리하세요. 그럼 볼일 끝났죠? 다들 나가시죠.”

“……별꼴이야 진짜.”

학부모 한 명의 투덜거림이 있었지만, 원하는 걸 얻어서 그런지 학부모들은 이사장실을 떠났다. 나가기 전에 불만스러운 시선을 한 번씩 쏘고 갔다.

문이 닫히고 약 십 초가 흐른 후, 학부모들이 다 떠났다는 걸 확신한 박영대가 의자에 주저앉으며 푸념했다.

“로베! 진짜 믿어도 되는 거지?”

“예. 자신 있습니다.”

“하……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떠날 2학년생들은 팀의 주축들인데…… 온 학부모 보니까 1학년생도 한두 명 떠나는 거 같고…….”

박영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냥 믿어주기로 한 이상 끝까지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이렇게 한 거지, 평소였다면 절대로 이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심정을 이해한 로베르토는 박영대를 위로하기 위한 최적의 이름을 찾았다.

“현준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지. 현준이가 있지…….”

“전국대회 4강도 계획대로만 된다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거예요. 작년 초에도 한 번 했다고 하니 내년에도 타면 우리는 명문이 되겠네요.”

“정말?”

박영대의 표정이 밝아졌다. 로베르토는 기회를 포착하고 말했다.

“네, 그러니까 다음 주 전지훈련비용 좀 얘기해야겠는데요. 선수들한테 걷은 거 이상으로 예산을 좀 올려주시면…….”

“…….”

박영대는 딴청을 피웠다. 로베르토는 집요했다.

“저기, 이사장님?”

“…….”

“영대 형님?”

“에휴…… 그래! 말해봐.”

* * *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 버리네.”

대영 중학교 축구부 2학년 숙소, 텅 비어버린 방들을 보며 정두식이 작게 중얼거렸다.

“…….”

박범철은 멍하니 거실에 누워 있었다. 2학년 축구부원이 다섯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윤태상은 주장이라 감독코치 숙소에 머무르기 때문에 이 큰 집에 정두식과 박범철 그리고 올해 초에 땜빵으로 들어온 두 부원밖에 없는 것이다.

“범철아.”

“응.”

“진짜 X 같다. 그지?”

“어.”

몇 번을 되새겨도 무뎌지기는커녕 아팠다.

지상철이 자기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기 팀에 데려와도 득이 없어서 그렇다.

박범철이 상체만 번쩍 일어났다.

“……본때를 보여주자.”

“본때는 무슨…… 인원 부족하다고 축구부가 제대로 돌아갈지나 모르겠는데. 이번에 7명 나가서 24명이잖아. 네 명만 부상 당해도 우리끼리 연습게임도 못 해.”

“그건…… 으음…….”

박범철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무슨 수로 본때를 보여주냐?”

“걔 있잖아. 송현준. 걔 윤태상보다 위야.”

“네가 털렸다고 윤태상보다 위냐?”

“아, 아니라니까! 초등학교 때도 붙어본 적 있고…… 훈련 몇 번 해보니까 확실해지더라고! 그리고 잘 지내보자고 사과도 했고. 어색하긴 한데 인사는 꼬박꼬박하고. 애가 예의도 바른 거 같더라. 좀 불편하긴 하지만 잘 해봐야지.”

“와 이 새끼. 너 때문에 좀 고깝게 대했는데 태도 싹 바꾼 거 봐라.”

박범철의 뻔뻔함에 정두식이 혀를 내둘렀다.

“특별하게 고깝게 대한 애들 다 떠났잖아. 이제 친하게 지내면 되지.”

“새판 짜자?”

“응.”

그때였다. 현관 벨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도 되냐?”

“윤태상? 안 잠겨 있으니까 들어와!”

정두식이 크게 말하자 현관문이 열리고 윤태상이 들어왔다.

“진호 형이 남은 짐 있나 확인하고 오래서.”

“그래라.”

정두식과 박범철은 윤태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태상도 떠날 줄 알았는데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윤태상은 방들을 쭉 살펴보고 나왔다.

“그럼 가볼게.”

윤태상과 정두식, 박범철은 어색했다. 정확히 말하면 윤태상은 축구부원들과 다 어색했다. 윤태상에게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두식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야, 태상아. 너는 지상철한테 제안 안 받았냐?”

“받았지.”

“뭐? 근데 왜 남았어?”

“으음…… 뭐, 개인 사정.”

“개인 사정…….”

정두식은 개인적으로 윤태상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윤태상은 자기 얘기를 아예 하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그랬다. 친해지려고 해도 거리를 뒀다.

그게 1년 넘게 쌓여서 윤태상은 친구라기보다는 같은 축구부원이라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떠났지만 정두식의 그룹에서는 심심하면 윤태상을 고깝게 보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부럽네. 우리는 제안도 못 받았거든.”

“……그래? 미안.”

“미안할 건 없고. 우리 앞으로 어떡하냐. 3학년 선배들은 1학년 때 전국대회 4강 찍어봤으니까 몸 존나 사릴 거 같고, 2학년은 너 빼면 떨거지만 남았고.”

“떨거지라니…….”

“떨거지 맞지.”

정두식의 단호한 말에 박범철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상은 쓴웃음을 지었다.

“1학년생들은 경험이 부족하잖아. 뭣보다 축구부원도 너무 적고.”

“으음……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안 좋은데 괜찮다고?”

“응.”

윤태상이 말했다.

“현준이 있잖아. 현준이 진짜 잘해…….”

그렇게 말하는 윤태상은 정두식이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두식은 그 표정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았다.

“너무 잘하지…….”

정두식은 불현듯 깨달았다. 윤태상의 저 표정은 윤태상과 자신의 재능을 비교하며 좌절했을 때, 거울로 본 자신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아, 진호 형 기다리겠다. 가볼게.”

“……그래라.”

윤태상은 언제 그런 얼굴을 했냐는 듯 모범적인 미소를 짓고 떠났다.

* * *

이 주 만에 만난 김채아는 말이 많았다.

“진짜 죽겠다니까? 전지훈련 동안 사람보다 벽을 더 많이 본 거 같아. 체력 훈련할 때 말고는 벽에다가 언더핸드 토스랑 오버핸드 토스만 반복하라잖아.”

식어가고 있는 계란후라이가 올려진 햄버그는 무시하고 내게 재잘거렸다. 배가 고팠지만 김채아가 저러니 나도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시키는 대로 잘했고?”

“당연하지. 거기서 시키는 대로 어떻게 안 해.”

“그건 그렇네.”

“그래도 한두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저번 주부터는 스파이크 스텝 밟아보라고 하시고, 어제는 이제 팀 훈련을 같이하자고 하셨어.”

“실력이 팍팍 늘었나 보네.”

“응응, 그렇지. 근데 너무 신을 내서 그런가…… 하하. 이렇게 돼버렸네.”

김채아가 식탁 옆으로 오른발을 내밀었다. 그 발에는 반깁스가 채워져 있었다.

“많이 아프지?”

김채아는 전지훈련 중 발목 부상을 입었다. 진단과 치료를 위해 어제 대전에 왔고, 어젯밤에 우리 집에 전화했다.

-점심이나 먹을래?

원래 다른 약속이 잡혀 있었지만, 사정을 들으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인대 좀 늘어난 거라는데…… 젊어서 금방 나을 거래. 근데, 걱정해 주는 거야?”

“……그럼 안 하겠냐.”

“올~ 다칠 만한데?”

“농담이라도 그러는 거 아니야.”

김채아는 히히 하고 웃었다.

“전지훈련 초반부터 다쳤는데 긍정적이기라도 해야지.”

그 말에 나도 피식 웃었다.

“내가 그래도 초등학교 때 축구부원이었잖아.”

“응? 으응.”

“그때 우리 축구부에서는 막 들어온 애가 초반에 부상 당하면 나중에 잘한다는 징크스가 있었거든.”

“오? 정말?”

“응,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위로도 해주는 거야? 반할 거 같아.”

그 말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딴청을 피웠다. 김채아가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이런 농담을 하다니 배구부에 들어가기 전보다 기운 차 보였다.

“다쳤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이네.”

“응, 뭐. 금방 낫는다고도 하고, 좀 해보니까 적응도 할 만해 보이더라고. 원래는 한 사흘 쉬다 오라고 하셨는데 그냥 내일 돌아가서 오버핸드 토스만이라도 연습할 계획이야.”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쉴 땐 확실하게 쉬는 게 낫지 않냐. 그리고 내일 돌아가는 거면 오늘은 가족들이랑…….”

“엄마도 너 보러 간다고 하니까 좋아하시던데?”

“…….”

“아빠는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 같았지만. 아빠니까.”

“……그래. 거기 밥은 잘 나오냐?”

할 말이 없어져서 화제를 돌렸다. 김채아는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빤히 바라보다가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 맛있어! 코치 오빠가 밥해주는데 최고야! 그리고 거긴 나 같은 애들만 있어서 다 같이 막 비빔밥 비벼 먹으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훈련이 힘들지는 않고? 운동부 생활은 처음이잖아.”

“무슨 엄마 아빠처럼 말하네. 당연히 힘들고 정신도 없는데…….”

김채아는 잠깐 뜸을 들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다른 생각할 틈도 없는데, 그래도 하루하루 충실한 거 같아.”

나까지 확신에 차오르는 힘찬 목소리였다.

“다행이네.”

진심으로 말했다. 그때였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누군가가 섰다.

“오랜만이야!”

“어. 왔냐.”

원래 만나기로 약속했던 친구, 이민우였다.

김채아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이민우를 보고, 날 봤다.

“……뭐야?”

“네 얘기 듣다가 말하는 걸 깜빡했는데, 원래 이민우랑 보기로 했었거든.”

김채아가 갸웃했다. 말을 잘해야 했다.

“근데 네가 다쳤다길래 얘한테 전화해서 다음에 보자고 얘기했는데…… 중간에 잠깐 들러서 용건만 얘기하겠다고 했어.”

“아.”

김채아는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용건 빨리 말하고 사라져~ 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은 뚱한 얼굴로 이민우를 바라보았다.

이민우는 옆 테이블에서 의자를 가져와 우리 중간에 앉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영혼을 걸고 승부한 상대이자 친구한테 그런 차가운 반응은 너무한 거 아니야?”

“친구는 무슨 친구야.”

“와, 같이 경기했으면 친구지. 프랜드지. 토모다치지. 야박해!”

“뭐라는 거야, 빨리 용건이나 얘기하고 가. 훠이훠이.”

이민우가 해맑게 말해서 그런가 둘은 묘하게 티키타카가 됐다. 이민우는 생글거리며 날 봤다.

“빨리 얘기하라니까 용건만 빨리 말할게. 나 앞으로 진지하게 축구 해보려고.”

“축구? 11대 11?”

“응! 너희 팀한테 지고 너무 열 받아서…… 혼자 공 차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어…….”

전생들과 다른 패턴이었다. 몸을 이민우 쪽으로 기울였다.

“나 브라질에 있을 때 산토스 유소년 팀에 있었어. 산토스가 어느 팀인지 안다고 했었지?”

“브라질 명문 팀 중 하나지.”

“그래. 그때…… 성인팀 아저씨들이랑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저씨 중에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어. 전부 일이라고 생각하시더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까, 어릴 땐 좋았는데 프로 선수가 되고 매주 같은 걸 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

고개를 끄덕이자 이민우가 말을 이어 했다.

“그 얘길 들으니까 의욕이 뚝 떨어지더라. 그래서 풋살 쪽으로 노선을 틀었던 건데…….”

“근데 왜 다시 축구를 하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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