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69화
“솔직히 지난번에 졌을 때 정말 기분 나빴는데…… 재미도 있었어. 사실 나랑 비슷한 녀석한테 중요한 경기에서 지는 건 난생처음이었거든.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는데도 졌단 말이야. 근데 그게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 또 붙어보고 싶어. 너 같은 사람은 풋살보다는 축구에 많겠지? 나는 그때같이 치열하면서 재미있는 경기를 많이 하고 싶어.”
이민우의 눈은 정말 맑았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민우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다면 얼마나 대단해질지 상상해 봤다.
전생들에서 매번 브라질 풋살 국가대표팀 핵심 멤버였던 이민우, 자꾸 까먹는데 이 녀석 국적은 브라질이었고 이민우는 가명이다. 본명은 베르나르도 미누 페레이라다.
풋살과 축구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가능성만큼은 충분해 보였다. 같은 길을 같은 높이에서 걸으며 승부할 수 있는 동료이자 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긴장도 됐지만. 동시에 가슴도 두근거린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진지하게 말했어. 축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 브라질에 돌아가고 싶다고. 혼자라도 보내달라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같이 가자고 사업 정리하신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두 달 정도가 붕 떴거든?”
브라질로 돌아가는 시기도 빨라졌다.
“응.”
“그래서 말인데 너희 축구부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함께 훈련할 수 있을까? 시간이 아까워서 말이야. 너랑 훈련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고.”
의외의 제안이라 잠시 생각을 해봤다. 이민우와 함께하는 훈련이라. 이민우는 최상위의 개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근데 곧 전지훈련 가는데 괜찮겠냐? 정식 부원도 아니니까 장학금 같은 건 무리고 전지훈련비에 축구부 회비 같은 것도 있거든.”
“당연히, 아버지한테 허락받았지.”
“준비성 좋은데? 그러면 감독님한테 여쭤볼게.”
“정말? 고마워!”
이민우가 해맑게 말했다.
잠자코 얘기를 듣고만 있던 김채아가 입을 열었다.
“축구 시작한다니 잘됐네. 축하해.”
“오! 고마워!”
“그럼 이제 볼일 다 본거지?”
이민우가 갸웃했다.
“응? 그렇지?”
김채아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제 가.”
이민우는 충격을 받은 얼굴을 했다.
“너무해…….”
“농담이야. 그럼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이민우의 표정이 밝아지려다가 멈칫했다.
“가라는 거잖아…….”
* * *
“안녕하세요! 베르나르도 미누 페레이라라고 합니다. 한국 이름은 이민우입니다. 그냥 이민우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민우는 로베르토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씩씩하네? 반가워.”
로베르토는 이민우와 악수하며 송현준을 흘긋 봤다.
어제저녁, 송현준은 로베르토에게 풋살대회를 통해 만난 이민우라는 브라질 친구가 있고,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축구부 생활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현준이한테 들었는데 너 좀 찬다면서?”
“네!”
그리고 자기보다 더 나은 부분도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유망주홀릭 로베르토는 당연하게도 그 말에 넘어갔다. 다만, 직접 실력을 보지 못해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자신 있어요. 오늘부터 끼워주세요!”
송현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큼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로베르토는 송현준 정도의 천재를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기에 떨떠름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어…… 그래. 대신 오늘 많이 별로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해라. 부원들이 납득할 정도는 돼야지.”
한두 달 훈련하고 갈 거면 축구부에도 득이 되는 게 있어야 한다. 로베르토의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축구가 하고 싶었어요. 동네 친구들은 방학하니까 부모님 따라 여행 간다는 놈도 있고, 시골 가서 일해야 한다는 놈도 있고, 어떤 놈은 귀찮다고 안 나와서 같이 축구 할 친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니까요?”
이민우의 ‘정말 축구가 하고 싶었다.’라는 말이 로베르토의 가슴에 와닿았다. 내일 이민우가 송현준보다 못하다고 해도 실망하는 표정을 짓지 말자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주자고 로베르토는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아홉 시가 되었다.
“이민우입니다! 1학년이고 일일 테스트를 받으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민우는 송현준 옆에 붙어 다니면서 1학년이 할 일을 하고, 훈련 시작 직전에는 씩씩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로베르토는 지금 기절할 거 같았다.
송현준이 자기보다 더 나은 부분도 있다고 한 건 전혀 거짓말이 아니었다. 기술적인 부분, 특히 창의적인 부분에서는 이민우가 송현준보다 더 나아 보였다.
끼리끼리 논다는 건지 둘이 아는 사이라는 게 신기했다.
이걸 느낀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김진호 코치도 아까부터 이민우에게 시선을 빼앗겼고, 로베르토에게 다가와서 ‘쟤 새 부원입니까? 우리 전국대회 우승하는 겁니까?’라고 물을 정도였다. 사정을 얘기하자 실망하는 게 괜히 미안했다.
축구부원들은 이민우의 화려한 개인기에 시선을 빼앗겼다.
이민우가 적응하기 쉬워지라고 송현준과 같은 팀에 배치해서 공격 역할을 맡겼는데…… 둘이서 다섯 명을 가볍게 상대하고 있었다. 같은 팀의 부원들은 둘의 템포가 워낙 빨라서 따라가지도 못했다.
2달 뒤에는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못 박았기에 직접 키우지 못한다는 점이 정말 아쉬웠다. 적어도 축구는 계속하면 좋겠는데…….
“저기…… 감독님? 쟤네 둘 같은 팀으로 계속 두면 애들 다 맛 가겠는데요. 찢어놔야 할 거 같습니다.”
“아.”
평소 침착한 송현준마저도 신났는지 정신없이 수비팀을 패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휘슬을 입에 가져갔다.
삐익-!
큰 휘슬 소리와 함께 축구부원들이 동작을 멈췄다.
“다들 그만! 잠깐 휴식!”
평소였다면 주저앉거나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려야 할 축구부원들은 모두 이민우와 송현준 쪽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로베르토는 이민우가 전지훈련에서 틀림없이 팀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전지훈련 계획을 다시 짜야겠다.’
일주일 내내 고생해서 짠 계획을 갈아엎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 * *
김진호 코치의 눈이 휘둥그레 해져 있다.
“합격이죠?”
통, 통. 테스트에 통과했는데도 일정한 리듬으로 리프팅을 계속하는 이민우를 김진호는 질린 표정으로 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통과야. 앞으로 저녁에는 자유롭게 운동해.”
“감사합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이민우는 리프팅을 계속하며 내게 다가왔다.
“쏭! 너는 왜 이거 안 해.”
“난 이미 통과했어.”
로베르토는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기본기를 향상하기 위한 첫 번째 대책으로 리프팅 뺑뺑이를 내세웠다.
공식 훈련 외 시간은 자유라고 했던 자기 말을 뒤집게 됐지만, 로베르토는 ‘너희의 기본기가 생각 이상으로 부족해서 이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대놓고 말했다.
축구부원들은 자존심이 상했고, 윤태상이 로베르토에게 대표로 불만을 드러냈다.
로베르토는 기다렸다는 듯 ‘양발 리프팅을 하면서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 수 있으면 저녁 시간은 자유다.’라고 선언했다. 학기 중에도 이 조건을 통과해야 공식 훈련 외 시간에 자유를 주겠다고 말했다.
축구부원들은 자기들이 그것도 못 할 것 같냐며 투덜거리고 리프팅을 하며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고…… 날 제외하고 전부 실패했다.
심지어 2학년 에이스이자 주장인 윤태상마저 첫 시도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축구부원들은 열받은 얼굴로 계속 시도했다.
윤태상은 세 번째 시도에서 성공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아무도 통과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고로 로베르토는 통과 못 하면 하루에 두 시간은 리프팅을 계속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입부한 이민우가 이 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한 것이다. 심지어 거의 뛰듯이 했다.
운동장 한복판에 책상을 가져다 놓고 전지훈련 프로그램 구성에 한창이던 로베르토의 시선이 이민우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하여간 유망주를 정말 좋아하는 양반이다.
“아, 그렇겠구나.”
“근데 왜 갑자기 쏭이라고 부르냐?”
“부르기 편하잖아~ 브라질에 살 때는 친구들을 애칭으로 불렀거든. 너도 나중에 외국 갈 거 같은데 애칭 미리 정해놓는 게 좋을걸? 현-준은 외국에서 익숙한 이름이 아니라고. 쏭이나 준으로 통일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 고마워.”
“근데 너 지금 뭐 해?”
“축구부원들 관찰해.”
이민우가 옆에 앉았다.
“왜?”
“전국대회 우승을 하고 싶으니까.”
“네가 잘하면 되잖아.”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축구는 혼자 못하는 거 알잖아. 혼자 해내는 것도 주변이 어느 정도 받쳐줄 때 가능한 얘기지.”
테스트에 통과한 후 벤치에 앉아서 공책에 선수들에 관해서 추가 생각나는 걸 적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생들의 기억이 바로 생각이 안 나다 보니 빼먹은 게 있었다. 나중에 파일로 정리해서 김진호인 척 로베르토에게 보낼 생각이었다.
운동장에서는 여러 무리를 지은 축구부원들의 리프팅이 한창이었다. 다섯 바퀴를 도는 걸 포기한 건지 공을 떨어뜨려도 그냥 그룹원들이랑 같이 돌고 있었다.
노태신을 중심으로 한 3학년 한 무리, 나머지 3학년 한 무리, 2학년 정두식과 박범철, 3학년 1명 2학년 2명 1학년 2명으로 구성된 땜빵 무리. 그리고 1학년 두 무리.
윤태상은 혼자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꼼꼼하게 적네.”
“응, 그러니까 나 대신 저기 윤태상 선배한테 가서 대결하자고 해.”
“……들켰어?”
“당연하지. 프리킥이든 1대 1이든 시합하자고 온 거 아니야.”
“맞아…… 근데 저 선배 테스트도 통과 못 한 거 아니야? 아까 수비 하는 것도 아쉽던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3번째에 통과했는데 한 번에 통과 못 한 게 마음에 안 드나 보더라고.”
윤태상은 어느 무리에도 섞이지 않고 혼자서 심각한 얼굴로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아까 한 번에 성공한 이민우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었는데 이민우는 모르나 보다.
“오? 통과를 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축구부 차기 에이스야. 그리고…… 저기 맨 앞 무리 중간에서 히죽거리고 있는 선배 있지.”
“응.”
“노태신이라고 하는데 3학년 주장에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간 사람이거든? 테스트할 때 보니까 일부러 탈락하더라.”
이민우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두 명한테 가라는 거야?”
“응. 이거 완성하면 같이하자. 한 며칠 걸릴 거 같아.”
전지훈련 전에 보내놔야 했다. 로베르토와 축구부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이민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너랑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 근데 전지훈련 전에는 완성해야 해서.”
“어쩔 수 없지! 그러면 가볼게!”
윤태상 근처까지 달려간 이민우는 슬금슬금 접근했다. 그 모습을 보며 공책에 <윤태상>이라고 적었다.
<축구부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나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축구를 시작했음에도 항상 팀의 에이스였다.>
이민우는 다시 리프팅을 시작하며 윤태상 옆에 나란히 섰다. 윤태상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왜 옆에 왔냐고 묻는 거겠지.
그리고 잠시 후, 윤태상은 이민우와 함께 운동장 중앙으로 향했다. 운동장 중앙에는 미니게임용 작은 골대가 두 개 남아 있었다.
둘의 1대 1 미니게임을 구경하며 윤태상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적었다. 예전에 적은 파일이랑 맞춰보고 빠진 게 있으면 추가하기 위해서다. 뭘 적고 뭘 안 적었는지 기억 못 하니 그냥 처음부터 적는 거다.
<보호자라곤 할아버지 하나뿐인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초등학생 동생이 둘 있다. 어릴 때부터 동생들에게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축구부원 중 가장 간절하게 축구를 하고 있다. 회비를 못 내게 되면 축구부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민우의 화려한 드리블 앞에 윤태상은 굳건히 섰다. 하지만 윤태상은 치욕적인 알까기를 당했다.
<다만, 축구를 시작한 기간이 짧아 기본기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번에는 윤태상이 이민우를 몸으로 튕겨내며 반격했다.
<즉, 기복이 심하다. 물론 신체 능력이 뛰어난 편이고, 훈련에도 성실하게 임하고, 살아남겠다는 또렷한 목표가 있어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