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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1화 (6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1화

강 교수, 그러니까 강초록 교수님과는 전생들에서 몇 번 친분이 있었다.

한국 프로리그에서 뛸 때 강초록 교수님이 리그 경기장들의 잔디 관리 자문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리그 최고 선수이자 해외파 출신이었던 나와 의견 교류를 자주 했었다.

덕분에 그녀의 성격도 잘 알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할 말을 다 한다.

“아이고, 오늘 쉬는 날이었어? 미안해. 용건 말하라고? 아, 용건, 용건을 말해야지.”

신정우는 내가 했던 얘기를 간결하게 전달했다.

“거짓말이라고?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중학생이 그런 얘기를…… 그러니까 거래를 제안하고 있다고. 안 궁금해? 응? 뭐? 지금 온다고?”

또, 일이나 궁금증이 생기면 빨리빨리 확인하고 처리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면 성격이 급하다.

“1시간이면 온다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다.

신정우에게 보이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급한 사람이 기다려야죠. 뭐.”

* * *

“안녕하세요. 신 사장님.”

“왔어?”

하얀 와이셔츠에 훈련 바지라는 정말 편안한 차림으로 온 강초록은 신정우에게서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강초록은 대답 없이 터벅터벅 걸어와서 내 앞 소파에 눕듯이 주저앉았다.

“어휴, 힘들어. 현준이라고 불러도 돼?”

“네.”

“중학교 축구부원이고…… 신 사장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길어질 거 같으니까 생략하고…….”

“우리 회사에서 공식으로 후원해 주는 애야.”

“……친절한 설명 감사해요. 신 사장님.”

“뭘. 차는 뭐 마실래?”

“믹스커피 아무거나요. 고마워요.”

“우리 사이에 뭘.”

둘은 상당히 친했다. 신정우가 강초록을 기술자로서 존중해 준 덕이라고 알고 있다.

하랑물산 일과 교수 일로 바쁜 그녀가 신정우의 개인 운동장들을 가끔 봐주는 이유기도 했다.

신정우가 커피를 타는 동안 강초록은 말을 계속했다.

“오늘은 모처럼 쉬는 날이었어. 신 사장님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면 집에서 계속 책을 읽었을 거야.”

“사장님께 고맙네요.”

“뭘.”

“신 사장님. 그만 좀 끼어들어요.”

“응…….”

신정우가 시무룩해졌다. 강초록은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시선은 계속 내게 꽂혀 있었다.

“그래서, 축구부원들이 한 달 동안 훈련할 잔디 운동장이 필요하다?”

“네, 평지면 좋고요.”

“……너 오늘 나 처음 만나는 거 아니니? 대체 뭘 믿고 그런 제안을 건너서 해?”

“제안은 누구나 해볼 수 있잖아요? 이렇게 직접 오신 거 보면 가능성도 있는 거 같고.”

“…….”

처음으로 강초록의 말문이 막혔다.

“그냥 생각해 봤어요. 제가 드린 잔디 아이디어를 ‘전문가’에게 전달했고, 그걸 토대로 사장님이 제게 호감을 보인 거 보면 ‘전문가’는 그 아이디어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한 거겠죠.”

강초록이 내 얼굴을 뜯어보듯이 세세히 보고 있다. 개의치 않고 계속 말한다.

“그럼 그 ‘전문가’는 뭘 할까요? 잔디 전문가라면 틀림없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고 싶을 거예요. 그리고 사장님의 개인 운동장을 봐줄 정도면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전문가겠죠. 적어도 업계에서 꽤 유명한 분이던가요. 그런 분이라면 개인적으로 연구할 만한 공간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 같고요.”

강초록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벌어지고 있었다. 잘 먹히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내게는 전생의 정보가 있다.

강초록은 실제로 매번 신정우에게 아이디어를 전해 듣고 여러 지역의 골프장 폐쇄지역이나 미개장 골프장에 실험해 본다. 그런 사실을 알기에 이 상황을 만든 거다.

전생들에서 전지훈련 장소를 정하는 건 항상 지상철이나 로베르토나 이사장이 다 알아서 했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훈련 장소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역시 아는 건 많을수록 좋다는 걸 직접 느끼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생각해서 제안해 본 거예요.”

“…….”

강초록은 침묵했다. 조용히 있던 신정우가 끼어들었다.

“강 교수. 내 말 맞지? 이게 중학생으로 보여?”

“이거라니요…….”

“아, 미안. 이 녀석이 중학생으로 보여?”

강초록은 테가 없는 안경을 올려 쓰고, 관자놀이를 검지로 툭툭 친 후에 말했다.

“머리 아프네. 너 뭐니. 이게 천재인가?”

전생의 정보를 토대로 추론한 척한 거고 그게 다 사실일 테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별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깜빡한 말을 추가로 덧붙였다.

“또, 잔디 전문가시면 지금은 골프장 위주로 하실 것 같은데…… 앞으로도 골프장만 다루시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축구장에도 관심 있으시지 않아요? 여러 분야에서 연구하면 좋잖아요.”

강초록은 기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어린 내게 지기 싫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연구는 여러 분야보단 하나를 깊게 하는 게 좋단다.”

“무슨 연구가 잘 될지 모르잖아요. 아내를 사랑한 남편이 만든 대일밴드처럼 좋은 결과는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실험 기회…… 그것도 좋은 실험 기회는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요?”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강초록은 여전히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안경을 괜히 고쳐 쓰고 관자놀이를 검지로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신정우는 옆에서 재미있다는 듯 웃고만 있다.

강초록이 드디어 한마디 했다.

“너 정말 중학생이니?”

그리고 나는 강초록의 구두 허락을 받아 냈다.

* * *

“자, 그렇게 됐다.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전지훈련 장소로 출발할 거다.”

강초록은 일 처리가 정말 빨랐다. 오전 훈련 중에 로베르토는 전화를 받았다.

강초록이 하랑물산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인조잔디와 일반 잔디를 섞는 실험을 한 미개장 골프장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이다.

리조트도 같이 있는데 공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지저분하긴 한데, 거길 직접 청소하고 침구를 가져온다면 써도 상관없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만 너무 더럽히지 말라는 경고도 했다고 들었다.

로베르토는 오전 훈련이 끝나자마자 부원들을 모아놓고 전지훈련 얘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윤태상이 손을 들었다.

“그럼 골프장에서 훈련을 한다는 건가요?”

“그래. 평지라니까 축구장이랑 다를 거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 거다.”

축구부원들이 오오~ 하고 탄성을 냈다. 이 시절 잔디 훈련장은 쉽게 접하기 힘들었다.

“골대는요?”

“이사장님이 아는 분을 통해서 가져다주시겠다더라. 다만, 너희들이 옮겨야 한다.”

축구부원들은 별 불만 없었다. 실제로 골대를 다 같이 옮기는 경우도 흔했기 때문이다. 무겁긴 하지만 못 들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가자마자 숙소 청소를 해야 할 거고, 침구를 챙겨가야 한다.”

에어컨은 설치가 안 돼 있지만, 선풍기는 이미 설치돼 있다고 했다. 산골이니 그 정도면 괜찮을 거다. 애초에 에어컨을 편하게 못 틀던 시대기도 하고. 미래처럼 그렇게 덥지도 않고.

“그럼 얘기는 끝이다. 해산! 점심 먹으러 가라!”

“감사합니다!”

축구부원들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저마다 그룹을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박종혁, 이민우, 엄태영과 나를 비롯한 1학년들은 훈련 장비를 정리했다.

“골프장에서 축구라니 신기하네.”

“그러게. 근데 재미있겠다. 주변이 뻥 뚫려 있을 거 아냐. 풍경도 좋겠고.”

“올, 그렇네?”

하루 사이에 친해진 박종혁과 이민우가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박종혁이 날 향했다.

“야, 전지훈련 가기 전에 내일 노래방 어떠냐? 여자애들이 저번에…….”

“나 답사 가야 해.”

박종혁의 말을 끊고 말했다.

“답사?”

“응. 나 후원해 주시는 분 통해서 훈련 장소 구한 거라서, 먼저 가봐야 해.”

“오? 진짜?”

“응, 근데 소문은 내지 마. 너희들만 알고 있어.”

“그래.”

“응! 되게 신기하다. 후원도 받아?”

“그러지 뭐…….”

박종혁 이민우 엄태영이 차례로 말했다.

“응, 운이 좋아서.”

“헐, 그러면 너 토요일 훈련 빼먹는 거야? 일요일도? 개 치사하네.”

“그러게!”

그 말에 잘난 척하는 시늉을 했다. 친구들은 억울해했다.

사실 골프장에 답사를 가는 건 일요일이다. 다만, 토요일에 할 일이 있어서 로베르토에게 부탁했다.

골프장의 위치는 원래 합숙 장소인 용잠군에서 1시간 거리다.

하루 만에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축구부에서 뛸 친구를 찾아보러 갈 생각이었다.

* * *

“앞으로 휴가는 못 올 줄 알았는데…… 자, 현준아. 먹으렴.”

“엄마…… 너무 많아요.”

“성장기잖아~.”

삼계탕을 내온 어머니는 싱글벙글 웃고 계셨다. 우리는 어젯밤 용잠군에 왔고, 밤바다 구경을 한 후 고기를 구워 먹고 일찍 잤다.

오늘은 휴가 2일 차이자 토요일 아침이었다.

“갑자기 얘기했는데도 어떻게 됐네요.”

부모님이나 아버지의 도움을 못 받는다면 축구부에 있는 척하고 혼자라도 용잠군에 올 생각이었다. 따로 쓸 수 있는 돈은 있었으니까.

근데 용잠군에 가고 싶다는 내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금요일과 토요일에 휴가를 내셨고, 순식간에 민박집을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

어제 여기 도착하기 무섭게 술을 잔뜩 마셔서 아직도 술 냄새가 나는 아버지가 말했다.

“뭘…… 아들이 가고 싶다는 데 와야지.”

아버지는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송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현지도 바다 보러 가고 싶다고 얘기했고. 어디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딱 네가 전화를 한 거 있지.”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리는 여행 온 기분을 느끼면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설거지를 하고 한 시간가량 쉰 후, 나는 옷을 갈아입고 축구공을 들었다.

“오전에는 훈련하고 올게요. 점심때는 돌아올게요.”

시각은 9시. 딱 좋았다.

“모레부터 전지훈련 한다며. 오늘은 푹 쉬면서 놀기만 하면 안 되니?”

어머니가 질색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버지도 덧붙였다.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루라도 헛되게 보내면 안 돼요. 대신 오후에는 꼭 같이 놀아요. 아침에는 여름이라도 바닷가라 쌀쌀하니까 운동하기 딱 좋아요. 모래사장이라서 운동도 더 되고요.”

“어휴, 못 살겠다.”

“그래, 우리 아들 잘하고 와라.”

“오빠…… 잘 갔다 와…….”

밥도 대충 먹고 꾸벅꾸벅 졸던 송현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형도 여기 왔다면 좋을 텐데, 고등학교 3학년은 어쩔 수가 없다.

“아빠가 도와줄까?”

“괜찮아요. 러닝 위주로 할 거라서요.”

“그러니. 그럼 아빠는 더 잔다.”

“푹 쉬세요.”

나오자마자 달리기 시작해서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해수욕장을 한 바퀴 돌았다. 모래밭에는 아침 훈련에 한창인 축구부가 두 팀이나 보였다.

코치나 감독들이 날 흘긋 봤지만 동네 아이라고 생각했는지 시선을 금세 거뒀다.

“하나, 둘, 셋이 아니라 기합은 악! 으로 통일한다. 시작!”

“악! 악! 악! 악!”

수십 명의 중학생이 바지만 입은 채 맨발로 모래밭을 뛰며 악 소리를 지르는 건 참 익숙하면서도 정겨웠다.

전생들의 어린 시절에 자주 저랬었지. 라는 생각을 하며 해수욕장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찾는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다음은 마을로 향했다. 내일 오전까지 못 만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용잠군은 전지훈련의 명소, 운동부원으로 보이는 중, 고등학생이 길에 꽤 많이 보였다. 다만 나는 혼자 다녔기에 가끔 시선을 받았다.

나는 오직 한 사람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그리고.

“찾았다.”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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