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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3화 (136/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3화

그때 리조트 입구 쪽에서 차 소리가 가까워졌다. 차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흰색 중형차 한 대가 빠르게 들어와서 우리 앞에 섰다.

강초록 교수님의 차다.

“안녕하세요.”

“현준이 안녕. 안녕하세요. 당신이 로베르토?”

차에서 내린 강초록에게 꾸벅 인사했다. 강초록은 내 인사에 손을 흔들어주고 로베르토와 악수했다.

“네, 반갑습니다.”

“뭘요~ 바로 설명 들어가도 될까요? 제가 좀 바빠서요.”

“네? 네. 그러시죠.”

“로베르토가 해줘야 할 건 이 잔디 운동장의 어느 지점에서 언제, 몇 시에 어떤 훈련을 했는가를 매일 기록해 주는 거예요.”

“어디에…….”

“여기, 뽑아왔어요.”

강초록은 두툼한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혹시 몰라서 60장 정도 뽑아왔으니까 넉넉할 거예요. 아, 날씨 같은 것도 기록해 주세요. 습도랑 온도도요. 여기, 온습도계요.”

“어…… 네네.”

“그럼 다 됐네요. 가볼게요. 중간마다 들르러 올게요.”

“네? 벌써요. 저녁은…….”

“바빠서요. 저 대신 대학원생이 올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차의 시동도 안 꺼져 있었다. 강초록은 다시 차를 타고, 몰고, 떠났다.

로베르토는 차가 떠난 후에도 멍하니 있다가 중얼거렸다.

“참 신기한 분이네.”

“전문가들은 바쁘죠. 부르는 데가 많으니까.”

“그렇지…… 그래, 뭐. 중요한 건 아니지. 모처럼 둘이서 훈련이나 할래? 잔디 테스트도 할 겸.”

“좋죠.”

* * *

용잠군에 있는 티알의 집. 티알은 아버지의 방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

“…….”

앞에는 티알의 아버지 류성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겉과는 다르게 류성호는 지금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대체 왜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가. 그냥 아빠 다리하고 앉지.

아까 티알이 심각한 얼굴로 ‘아버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라고 말한 게 아니었더라면 진작 티알을 일으켜 세웠을 것이다.

분위기와 흐름이라는 게 있었기에 류성호는 표정만큼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다만 티알은 그 상태로 꽤 오랫동안 우물쭈물하기만 했다. 답답해진 류성호가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머선 일이고?”

류성호는 작년에 만난 아들 티알을 살갑게 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한국인이 보면 동남아 사람 같고, 동남아 사람이 보면 한국 사람 같은 게 혼혈이다.

티알이 어린 시절 혼혈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는 얘길 들은 류성호는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면 원하는 건 최대한 다 해줄 생각이었는데…… 같이 놀러도 다니고 싶었는데…… 무뚝뚝한 류성호로서는 쉽지 않았다.

“저…….”

“…….”

티알은 또 입만 뻥긋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길래? 류성호는 답답했지만 참았다.

-자네! 요즘 대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가?!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면 잘 돌봐줘야지!

-갑자기 왜 그럽니까?

-니 아들이 맨날 동네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다니는데 불쌍해 죽겠다! 인마!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주머니에게 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생업도 해야 하고 좋은 중학교도 알아봐야 하다 보니 집을 자주 비웠는데, 아들이 그러고 있을 거라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했기에 참을 수 있었다.

“말해라.”

무슨 부탁이든 알겠다고 해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한 요구를 받고 안 된다고 하면 그건 또 그것대로 감정이 상할지도 모르니 조심스러웠다.

일단 부탁이라는 게 뭔지 듣고 싶었다.

“영어로 해도 된다.”

류성호는 필리핀에 산 적도 있었기에 영어에 능숙했다. 티알은 아직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았다.

“추, 축구부 시험을 보고…… 시, 싶습니다…….”

그런데 티알은 한국어로 말했다.

물꼬가 터지자 티알의 두 눈이 류성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기가 대체 뭐가 불편한 건지 티알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티알은 말은 더듬으면서도 느릿느릿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동네를 걷다가 한 친구를 만났다. 같이 축구를 해 봤는데 자기가 대영 중학교 축구부 소속이라고 했다. 그 친구에게 축구부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는 얘길 들었다. 관심이 있으면 전지훈련 장소로 찾아오라고 했다.

“여, 여기…… 여기 있습니다. 그 친구한테 받은 겁니다…….”

수첩에서 찢은 종이에는 감독의 연락처와 전지훈련 장소라는 곳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

류성호는 입을 다문 채로 그 종이를 뚫어지라 봤다.

종이의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방금 티알의 태도가 그의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티알은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로 말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할 말을 적어둔 종이도 흘깃거리면서까지.

그 모습에 티알의 진심을 느꼈다.

“나, 고향에 있을 때 축구 잘했습니다.”

류성호는 티알을 바라보았다. 고향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눈썹을 꿈틀했는데 티알이 움찔했다. 류성호는 아차 싶어서 시선을 돌렸다.

“축구 하고 싶습니다. 혼자 버스 타고 갔다 올 수 있습니다.”

류성호는 그제야 종이를 제대로 봤다. 도원군. 시내로 이동해서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위치다.

하지만 이 쪽지에 적힌 내용이 진짜일까? 류성호는 걱정이 됐다.

“안 돼.”

류성호의 단호한 말에 티알은 순간 절망한 얼굴을 했다.

류성호는 진짜 내가 그 정도로 신뢰가 없나 싶어 속으로 한숨을 쉬고 이어서 말했다.

“내가 태워다 주마.”

무뚝뚝하게.

티알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니 자기가 아버지가 된 건 맞나 보다 싶은 류성호였다.

“그런데 어머니한테 허락은 받았냐?”

“아.”

티알이 미처 생각 못 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류성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머니가 허락하면 나도 반대 안 한다. 그리고 지금 전화해 볼 테니 빨리 테스트 약속 잡아보자.”

“네! 네네!”

힘찬 대답에 류성호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종이에 적힌 내용이 사기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

* * *

“어서 와!”

“응…….”

류성호는 제 아들이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봤다.

“감독님은 방금 화장실에 가셔서…… 일단 시설 좀 보고 계시겠어요? 아, 저는 송현준이라고 합니다. 대영 중학교 1학년 축구부원이에요.”

“그래, 류성호다. 티알의 아버지지.”

“그렇구나. 아저씨도 운동 잘하죠? 티알 얘 공 되게 잘 차더라고요.”

생김새가 다름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송현준의 모습에 류성호는 깊은 호감을 느꼈다.

티는 내지 않았다.

“조금은.”

류성호의 대답에 송현준은 해맑게 웃었다. 티알은 류성호를 슬쩍 바라봤다. 눈을 마주치니까 또 피한다. 류성호는 섭섭함을 조금, 아주 조금 느꼈다.

류성호는 그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서 시설을 둘러보며 송현준에게 말했다.

“근데, 여기 골프장 같은데?”

“예. 여기에 골대 갖다 놓고 훈련할 거예요. 아직 개장 안 한 곳이라서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어요. 잔디 운동장에서 전지훈련 잡는 거 아무 학교나 못 해요.”

송현준이 우쭐하는 걸 들으며 류성호는 내심 감탄했다. 아무래도 막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정말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도 마음에 들었다.

“아, 오셨다. 저분이에요.”

멀리서 로베르토가 류성호와 티알을 발견하고 황급히 뛰어왔다.

류성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외국인이 감독이라는 상황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티알을 보니 티알도 마찬가지인지 놀란 기색이었다.

“안녕하세요! 로베르토라고 합니다. 어제 전화하셨죠?”

“아, 예.”

어제도 로베르토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류성호는 그게 그냥 별명이라고 생각했었다.

“네가 티알이구나? 일단 몸부터 풀어볼까? 오후에 축구부 애들이 올 거라 테스트는 오전 중에 끝내야 하거든.”

“네…… 네!”

티알은 진지한 얼굴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류성호는 한국어를 너무 잘하는 서양인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티알의 기운찬 모습을 보고 그런 쪽에는 관심을 껐다.

간단한 준비운동 후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운동에 문외한인 류성호가 보기에도 테스트는 무척 체계적이었다. 짧은 거리 달리기 같은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서 공을 여러 방식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여러 질문이 오고 갔다.

그리고, 티알은 생각보다 잘했다. 국가대표 축구 정도만 보는 류성호가 보기에도 잘하는 거 같아 보일 정도였다.

테스트가 끝났는지 로베르토가 종이를 들고 다가왔다.

“좋습니다. 마음에 드네요.”

“정말입니까?”

“네, 축구부 아이들과 잘 어우러질지, 경기에서 어떨지 봐야 하니 일주일 이따 확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일단 전지훈련에 합류시키고 싶습니다.”

티알은 멀리서 송현준과 함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중간마다 이쪽을 보니 결과가 궁금한 듯했다.

류성호는 티알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우리 아이가.”

“예.”

“잘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

로베르토는 류성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연하게 웃었다.

“저도 혼혈이고 이탈리아에서 자랐습니다.”

“네?”

“이탈리아에서 프로축구팀 산하 유소년팀에서 뛴 적도 있죠. 거기에서 인종차별도 당하고 그래 봐서, 티알이 우리 축구부에 온다면 어떤 심정일지 어떤 생각을 할지 보통 감독보단 잘 알아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게 잘하겠다고 장담은 못 하겠지만요.”

로베르토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류성호가 보기엔 애매한 대답과 어우러지는 그 미소가 몹시 믿음직스러웠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류성호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 아들 잘 부탁합니다.”

“제가 더…….”

둘은 어색하게 허리를 꾸벅거리며 악수를 나눴다.

티알은 류성호가 그러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류성호는 티알에게서 시선을 뗐다.

“짐은 오후에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네네.”

“축구부에 합격한다면…… 전학 수속도 알아서 밟겠습니다.”

“아, 네. 일주일 내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대영 중학교 당직실에 직접 전화도 해보고, 교육청에 전화도 해 봐서 로베르토나 대영 중학교 축구부가 진짜라는 건 확인했다.

류성호는 처음으로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

류성호는 티알과 송현준이라는 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봤다.

“그리고 쟤가 꽤 어른스러워서 적응하는데 잘 도와줄 겁니다.”

“편견 없이 봐주더군요.”

“맞아요. 그런 애예요. 축구도 정말 잘하고요.”

“좋은 친구가 돼줬으면 좋겠네요.”

“그럴 겁니다.”

로베르토는 확신에 차 보였다.

류성호는 묘하게 안심되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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