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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4화 (13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4화

해가 중천에 뜨자 낡은 승합차가 주차장에 도착했고, 뒤이어 축구부원들을 태운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로베르토와 나는 그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먼저 도착한 승합차의 창문이 열렸다. 꾸벅 인사하니 김진호 코치가 피곤함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고, 조수석에 앉은 이모님이 손을 흔들어 줬다.

“안녕 현준아~ 감독님도 안녕하세요~ 호호.”

김진호가 이어서 로베르토에게 말했다.

“감독님, 저는 이모님이랑 찬거리 좀 사러 다녀와야 할 거 같습니다. 애들은…….”

로베르토가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애들은 제가 알아서 하죠. 오느라 수고 많았고…… 또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김진호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 지상철 시절에는 코치가 하나 더 있어 잡일도 분담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김진호에게 업무가 가중돼 있었다.

“이사장님이 최대한 빨리 새 코치를 구해서 보내준다고 했으니, 조금만 더 힘냅시다.”

로베르토의 말에 김진호는 자기가 피곤한 티를 냈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아,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이따 봐요~ 호호.”

김진호가 창문을 닫는 와중 뒤에서 이모님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로베르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와…… 대박.”

“시설 뭐냐?”

“X나 좋은데?”

“진짜 개 넓다!”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어느새 버스에서 내린 축구부원들이 저마다 감탄했다.

이들의 행동은 대부분 비슷했다.

먼저, 넓게 펼쳐진 잔디밭과 배경처럼 뒤에 늘어선 산들을 멍하니 본다. 이어서 깔끔한 최신식 건물을 보며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그중 박종혁, 이민우, 엄태영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여~ 먼저 와서 뭐 했냐?”

“이것저것…… 훈련도 하고 그랬지. 밥은 먹었냐?”

“어! 여기 시내 떡갈비 X나 맛있더라. 고깃결이 살아 있어.”

“맞아 맞아.”

박종혁의 말에 이민우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 먹어본 적이 있었기에 부러웠다. 그래서 장난을 겸해서 투덜댔다.

“나랑 감독님은 컵라면 먹었는데…….”

“……애도를 표합니다.”

“나쁜 놈들.”

합장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박종혁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져서 웃었다. 반쯤 졸고 있는 눈을 한 엄태영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암…… 근데 현준아……. 쟤는 누구야……?”

엄태영이 보는 곳에는 로베르토와 티알이 있었다.

티알은 수많은 축구부원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티알을 발견한 건 엄태영 하나가 아니었다. 다른 1학년들과 2, 3학년들도 하나둘 티알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대놓고 쳐다봤다.

티알은 점점 불안해하며 괜히 로베르토의 뒤에 숨으려고 했다.

갸웃하는 친구들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임시 부원, 자세한 건 감독님이 소개할 거야.”

“자자, 집합! 내 기준으로 왼쪽 1학년, 가운데 2학년, 오른쪽에는 3학년 선배님들이 서주십쇼!”

마침 로베르토와 이야기를 마친 윤태상이 축구부원들을 불러 모았다. 모인 축구부원들은 이제 대놓고 티알을 바라보았다. 티알의 표정이 굳었다.

“다 모였습니다.”

축구부원들이 그러건 말건 다 모일 때까지 잠자코 있던 로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오느라 수고 많았다. 일단 짐을 풀기 전에…… 자.”

로베르토가 티알의 등을 살짝 밀어 앞으로 보냈다.

“임시 부원이다. 일단 일주일 동안 함께 전지훈련을 소화할 거다.”

“…….”

“뭐 해? 자기소개 해.”

로베르토의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말에 티알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라에 리베라 류, 티알이라고 부르면 된다!”

사투리까지 뒤섞여 악센트도 이상한 어수룩한 한국어였지만, 티알은 용기를 냈다.

“자, 잘 부탁한다!”

티알이 꾸벅 허릴 숙이며 인사했다.

티알을 빤히 보던 윤태상이 손뼉을 쳤다. 이어서 축구부원 전체가 가볍게 박수를 보냈다.

특별히 불만을 드러내는 부원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큰 관심이 없었다. 티알의 이질적인 외형만 신기해할 뿐이었다.

흔한 건 아니지만 축구부원 테스트를 받기 위해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 제대로 적응하고 정식 부원이 되기 전까지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신기하네.”

“외국인인가? 우리 축구부 글로벌하네.”

엄태영과 박종혁이 차례로 말했다. 박종혁은 이민우를 장난스럽게 툭 치면서 말했다. 둘이 친화력이 좋아서 그런지 금세 친해졌다.

“글로벌하긴 해~.”

다들 관심이 없다고 해도 나는 티알을 책임져야 했다. 녀석을 데려온 건 나니까. 친구들에게 티알의 정보를 전달했다.

“쟤 꽤 잘해. 아마 정식 부원도 될 거야. 우리랑 동갑이고.”

“정말?”

박종혁, 엄태영, 이민우가 관심을 보였다. 인사가 끝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티알에게 손을 흔들었다.

“티알, 이리 와~ 감독님이 우리랑 같이 다니래.”

로베르토와 얘기는 끝내 뒀다.

“어, 어어, 알겠다!”

티알은 자길 부른 날 발견하고 안도한 얼굴로 뛰어왔다.

“안녕……?”

“너 축구 잘한다며?”

“어, 어어…… 조금이다.”

엄태영의 평범한 인사와 이민우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보며 티알은 당황했다.

“자, 그럼 일단 짐을 풀자. 학년별로 방을 정해줄 테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짐 챙겨서 따라와라!”

티알을 구해준 건 로베르토였다.

“네!”

축구부원들은 힘차게 대답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티알은 우리를 따라 대답하고 우리를 졸졸 따라왔다.

* * *

한 달 동안 묵을 숙소의 문을 열었다. 스무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아주 큰 방 세 개와 이모님이 머무르실 작은 방 하나를 빌리기로 했다.

“오…… 넓다.”

이민우는 감탄했고,

“근데 더럽다.”

박종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인테리어를 마치고 남은 자재나 먼지와 부스러기들이 방 안 곳곳에 널려 있었다.

“청소나 하자.”

엄태영은 빗자루를 잡았다.

“선배님들 그 방 쓰실 겁니까?”

“그래~.”

복도에서는 윤태상과 노태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태신은 그렇게 말하고 3학년들과 가장 안쪽 방으로 3학년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럼 2학년이 여기, 1학년이 맨 앞 방…….”

윤태상은 1, 2학년에게도 방을 배정하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다들 뭐 하는 거야?”

“예?”

윤태상의 얼빠진 물음에 로베르토가 턱짓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마다 문 옆에 명단을 붙여놨는데 왜 1, 2, 3학년으로 나뉘는 거냐?”

“아…….”

윤태상은 그제야 문 옆 벽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어 있는 A4용지를 발견했다. 방을 구경한다고 미처 신경 쓰지 못한 거다.

“정해둔 대로 다시 움직여서 짐을 풀어라.”

“네!”

윤태상은 재빠르게 3학년들이 들어간 방으로 움직였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방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1학년들과 나를 보고 로베르토가 말했다.

“오늘 온 티알은 현준이 방에서 같이 자라.”

“예!”

티알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동안 축구부원들은 의뭉스러운 얼굴들로 방문 옆에 붙은 A4용지를 보기 시작했다.

용지에는 로베르토의 손글씨로 방마다 명단이 적혀 있었다.

“…….”

뒤늦게 나온 노태신을 비롯한 3학년들은 마음에 안 드는 기색이었지만, 로베르토는 개의치 않았다. 초짜 감독이지만, 로베르토는 체격도 상당했기에 무표정하게 있으면 위압감도 있었다.

“쳇.”

3학년들은 작게 혀를 차고는 각자 방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만 다른 방이네…….”

엄태영은 아쉬워하며 2번 방으로 떠났다.

“우리 같은 방인데? 개꿀이다.”

“그러게.”

박종혁이 어깨동무를 걸었다.

“들어가자.”

“나도?”

“어.”

더불어 이민우의 어깨도 툭 쳤다. 이민우와 티알은 둘 다 임시 부원이자 나와 친분이 있었기에 로베르토는 내게 맡기겠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맡겨달라고 했다.

그리고.

“같은 방이네. 잘 부탁해. 현준아.”

“네, 선배님.”

주장 윤태상도 같은 방이었다. 우리는 출구와 가장 가까워서 1학년들이 쓰려고 했던 1번 방에 배정됐다.

“어라? 송현준이랑 박종혁이 아니야? 두식이도 여기냐?”

“예, 선배.”

전대 주장 노태신도 3학년 두 친구와 함께 1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노태신보다 먼저 정두식이 들어왔다.

축구부에 막 들어온 나를 빼면 축구부의 여러 무리의 분위기를 담당하거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부원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에서 묘한 기 싸움이 느껴졌다.

“우리는 청소부터 하자.”

그러건 말건 나는 티알, 박종혁, 이민우를 재촉해 청소를 시작했다.

방 배치를 이렇게 한 이유는 아까 점심을 먹으면서 들었다. 참고로 티알은 자기 아버지와 식사를 하러 가서 없었다.

-외국 애들도 텃세 같은 거 부리고, 부조리 같은 것도 한국이랑 똑같이 있어. 근데, 그게 경기장에서는 큰 영향을 안 끼쳐.

-그래요?

-근데 한국은 좀 다르더라. 연습경기나 훈련을 시키면서 지켜보니까, 선후배 관계가 경기장까지 따라오는 거야. 이런 점이 장점이 되는 스포츠도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 축구에서는 아니거든.

-공감해요. 2002년 월드컵 때는 서로 반말하라고 했다던데.

-그 방법도 괜찮지. 근데, 중학생들이라 싸움 날지도 모르니까 안 돼.

-방을 왜 섞었는지는 이해했어요. 그런데, 이 명단 말이에요. 1번 방에 각 학년 실세들이 모여 있는 거 같은데.

-맞아. 2, 3번 방은 각 무리의 중심에 있던 애들이 없어.

-왜 이렇게 한 거예요?

-무리의 중심이 있으면 걔 주변으로만 모이거든. 다른 무리 사람들끼리 서로 접점을 만들어준 거야.

-왜요?

계속 물어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의 로베르토와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로베르토는 픽 웃었다.

-그냥. 축구는 각 무리가 모여서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한 무리가 되어야 하는 스포츠거든. 너, 스페인이랑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이 왜 좋은 성적을 못 내는지 아냐? 프로리그에서 그렇게 잘하는데도.

-흐름상 팀 내에 무리가 나뉘어서 그런 거겠죠? 그것도 아주 사이가 나쁜.

-그렇지! 스페인이나 잉글랜드나 내부 파벌 간의 갈등이 심하다고 툭하면 소문이 나와. 잉글랜드는 팀 간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스페인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지역감정 때문에. 그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선수를 데리고 있어도 좋은 결과를 못 내는 거야.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봐. 강한 선수들로 확실하게 결집하니까 결과를 내잖아.

-그래서 작년에 우리나라한테…….

-야야, 2002년 월드컵 얘기는 나한테는 금기다…….

정색하는 로베르토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농담이에요. 잘 될까요?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지. 감독이나 코치라는 직업은 방향을 제시하고 선수를 믿어주는 직업이거든.

-오, 멋있는데요?

-사실 걱정돼 죽겠다. 어떻게 되려나.

-이 말은 안 멋있는데요.

-어쩌겠냐. 나도 사람인데.

나는 로베르토의 대답에 매우 만족했다.

-그러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참나, 너나 잘해라.

알찬 대화였다.

그렇게 말하며 웃었던 로베르토는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서운 얼굴이었지만 나는 안다. 로베르토는 지금 잘 될까 몹시 긴장하고 있다.

우리는 재빠르게 청소를 마쳤다. 물론 2, 3학년은 조금 설렁설렁했다. 로베르토는 그 정도는 눈감아줬다.

본격적으로 짐을 풀며 자리를 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창가! 태상이 내 옆에 와라.”

“예.”

노태신은 당연하다는 듯 원하는 곳으로 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이동했다.

“선배님. 제 옆에 오실래요?”

“응? 어…….”

정두식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로베르토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겸 아까부터 표정이 좋지 않은 정두식을 위해서였다.

“맞아요. 선배! 이쪽으로 오세요.”

내 바로 옆에는 박종혁이 있었다. 그 옆으로 티알과 이민우가 있었다.

“됐다. 태상이 옆으로 갈란다.”

퉁명스럽게 말한 정두식은 자신의 커다란 백팩을 윤태상의 짐 옆에 놨다.

그렇게 짐을 풀고 있으니 로베르토가 복도에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10분 안에 옷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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