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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6화 (13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6화

본격적인 체력 훈련이 시작되었다.

지옥의 고무줄 인터벌의 첫 번째 세트는 2/3가량이 중도 탈락했지만, 모두 끝까지 걷기는 했다. 로베르토가 선두 그룹이 끝마칠 때까지 절대로 주저앉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상이면 바로 열외였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첫 번째 세트가 끝나자마자 대부분이 탈진했다.

그래서 이어진 두 번째 세트에서는 선두 그룹마저 느릿느릿 뛰었고, 대부분 좀비 떼처럼 어기적거리며 걷는 둥 뛰는 둥 했다.

같이 뛰던 로베르토는 선두권에 있긴 했지만, 우리처럼 느려졌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1조의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우웨엑…… 우욱…….”

토해낼 게 없는지 박종혁은 이제 헛구역질을 하고 있다.

같은 1조였던 주장 윤태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누운 채로 헉헉대고 있었고, 중도에 탈락해서 기듯이 뛰었던 티알은 누운 채로 눈을 가리고 아무 말도 않고 숨만 색색거리는 중이다.

삑!

“지금 걷는 거냐, 뛰는 거냐!”

김진호가 휘슬에서 입을 떼고 한창 훈련 중인 2조 인원들을 재촉했다. 저들도 별다른 바 없이 뛰는 둥 걷는 둥 하고 있다.

3학년 에이스 노태신도 언제나 즐거운 이민우마저도 괜히 여기 왔나 싶은 얼굴로 뛰고 있다.

“자자! 다들 빨리 움직여라!”

그 와중에 로베르토는 앉은 채로 2조 부원들을 독려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쉬고 있는 1조 부원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2조의 훈련도 끝났다.

“…….”

“…….”

“…….”

침묵이 흘렀다. 2조가 뛰는 동안 회복 시간을 가졌던 1조 부원들의 체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1조 부원들은 로베르토의 눈치를 살피며 딴청을 피웠다. 아니, 그럴 힘도 없어서 누워만 있는 부원이 부지기수였다.

로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잔디를 탁탁 털었다.

“다들 뭐 하나? 3세트 해야지. 코치님? 애들 일으켜 세우셔야죠.”

“……음, 네, 그래야죠.”

김진호 코치는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막 쓰러진 2조 부원들도 조금은 회복한 1조 부원들도 한결같이 질린 얼굴로 로베르토를 봤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로베르토는 짙은 눈썹을 꿈틀대며 좌에서 우로 모두를 살펴보고 도발했다.

“이 정도로 뻗는 거냐? 내가 너희들 체력 모자란다고 했을 때 너희들이 뭐라고 했더라?”

“이익!”

윤태상이 박차고 일어났다. 박종혁을 비롯한 축구부원들 몇도 일어났다. 막 훈련을 마치고 쓰러진 2조의 일부 부원들도 로베르토를 노려봤다.

로베르토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응을 보인 이들을 눈에 하나하나 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전생에서 처음으로 이 훈련을 하고, 몰래 로베르토에게 따졌을 때가 떠올랐다.

-이거 오버 훈련 아니에요? 국가대표도 이 정도로는 안 해요.

-맞아.

태연한 대답에 어이가 없어 목소리를 높였다.

-근데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다치면 어떡해요?

-과학적인 이유로는 신경을 적응시키기 위해서지. 극한 상황을 미리 경험해 보면 비슷할 정도로 힘들 때가 또 오면 몸이 능숙하게 대처하거든. 체력 훈련의 목적은 심폐지구력이나 근지구력을 기르는 것만이 아니야. 신경이 극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도 그만큼 중요해.

로베르토의 침착한 답변에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낮아졌다.

-……과학적인 이유라면, 다른 이유도 있어요?

-어중간한 마음으로는 프로가 될 수 없으니까.

로베르토는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어린 시절부터 코치를 할 생각이 있었던 건 거짓말이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긴 했어. 근데 한계가 보이더라. 거기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게 뭔지 아냐? 솔직히 재능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 근데…….

-…….

-인성 파탄 난 천재들조차도 나보다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더 강하더라.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은퇴했어.

로베르토는 자신의 가슴 부근에 손바닥을 올렸다.

-마음, 의지만큼은 다르잖아? 이건 스스로가 어쩔 수 있는 요소야. 나는 내가 아쉬웠던 걸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선수라면 자기의 모든 걸 끌어내려고 발버둥 쳤으면 좋겠어. 그래야 포기할 때 후회가 안 남으니까.

전생을 통해 로베르토의 철학에 관해 알고 있었고, 그 철학에 동감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장 먼저 운동장으로 향했다.

“송현준, 이 미친 새끼…….”

박종혁은 투덜거리면서도 어기적어기적 따라왔다.

티알은 한숨을 쉬면서 일어났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녀석의 눈동자가 그렁그렁했다. 모른 척했다.

로베르토에 쏟아지던 눈빛이 내게도 쏟아진다. 질린 얼굴을 한 부원들도 있었고, 조용히 날 노려보는 노태신이나 윤태상도 있었다. 같은 조인 윤태상은 빠른 걸음으로 날 쫓아왔다.

로베르토는 날 향해 희미하게 웃었다.

어차피 오늘만 이렇게 하고 내일부터는 조정해서 한다. 오늘은 신체능력 보다는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이 프로그램을 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세트가 끝났다.

“우욱…….”

준비했던 나조차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박종혁은 토할 힘도 없는지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나마 나를 비롯한 몇몇만 앉아 있었다. 앉은 채로 엎드린 부원도 있을 정도였다.

다 숨만 몰아쉬고 있다. 모범을 보여야 했던 로베르토도 예외가 아니었다. 로베르토는 나처럼 앉아서 숨을 고르는 중이었다.

“이 미친 말도 안 되는 새끼…… 어떻게 앉아 있는 거냐…….”

“맞는…… 말이다…….”

박종혁의 투덜거림과 티알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웃었다.

삑!

아직 2조가 하는 중이다. 이쪽에서는 이민우가 돋보였다. 같이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구경했다.

“우우웨에에엑!”

2조 차례도 끝나고, 10분가량 더 쉰 후에 로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그 상태로 들어라.”

“…….”

“고생했다.”

“예! 감독님!”

대답에 담긴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단 한 번의 훈련이었지만, 이만큼 힘든 훈련을 감독이 함께하는 건 정말 의미가 크다. 프로 레벨에서도 먹힐 정도다.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달성한 지단은 선수와의 프리킥 대결에서 이기기도 하고 멋진 연계를 보여 선수들의 존경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 몇몇 유명한 감독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

축구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다. 선수들이 감독을 신뢰해야 팀이 하나의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

로베르토도 선출이라는 자기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린 거다. 아마 속은 죽어가고 있을 거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로베르토가 감독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훈련 마지막까지 하고 허세를 부리는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대답을 열심히 했다.

“다들 푹 쉬어라.”

“네!”

“훈련은 끝이다.”

“와아아아아!”

모두 소리를 질렀다.

“오전 훈련이 끝났다는 말이다.”

로베르토는 마치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어어……?”

사실을 깨달은 축구부원들이 사색이 됐다.

“지금부터 한 시 반까지 점심시간이다. 두 시에 건물 앞에서 집합이다. 시간은 건물 입구 시계 기준이다.”

리조트 건물 앞에는 대형 시계가 걸려 있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열한 시. 아직 점심도 안 먹었다는 사실에 축구부원들은 좌절했다.

* * *

오후 훈련은 네 시에 끝났다. 오전 훈련에서 체력 소모가 심했기에 로베르토는 가벼운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오후 훈련이 끝난 후에는 리프팅 뺑뺑이였다. 학교에서 하던 것의 연장이었기에 다들 별말 없이 해냈다. 물론, 오전의 격한 체력 훈련의 여파 때문인지 추가로 통과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가자가자, 쏭! 빨리 가자!”

문밖에서 이민우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야, 소화는 시키고 움직여야지.”

“살살 하면 되지.”

“무슨 말을 하겠냐…….”

투덜대며 옷을 갈아입으니 이민우 옆에 선 엄태영이 인자하게 웃었다.

누워 있던 티알이 고개를 들었다.

“……또 뭐 하는 거가? 팀 훈련 없다매.”

“개인 훈련.”

“……나도?”

“응, 넌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해야지.”

“……우우. 힘들어 죽겠다.”

티알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난생 첫 축구부 생활이니만큼 끌고 가기로 했다. 습관은 초반에 들여놔야 하고, 적응을 위해서는 시간과 몸을 갈아버리는 수밖에 없다.

방 중간의 정두식도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의 3학년들은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방의 3학년들이 노태신에게 놀러 와서 여섯 명이나 있었다.

“태신아, 이제 뭐 함?”

“잘 거야…… 힘들어 죽을 거 같아.”

“1학년 애들은 훈련 나가는데?”

“우린 괜찮잖아…… 자율이라며…….”

노태신이 앓는 소리를 냈다. 3학년들도 노태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부르마블 콜?”

“올? 괜찮은데?”

노태신이 벌떡 일어났다. 3학년들은 킬킬대면서 부루마블 판을 깔았다.

“꼴찌 벌칙 뭐 하지?”

“벌칙이 있어야 하냐? 힘들어 죽겠는데.”

“그럼 깔끔하게 딱밤으로 하자.”

“콜.”

3학년들이 둥글게 모였다.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어기적거리는 티알을 일으켰다.

“너도 가야지.”

“……눈치 빠른 놈.”

잠자코 있던 박종혁도 일으켜 세웠다. 말은 그렇게 해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고무줄도 손에 쥐고 있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녀석이다.

우리는 방을 나섰다. 문을 지나기 직전 나는 3학년 무리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 1학년들은 열정적이야.”

“열심히 해야지.”

“우리는?”

“우리가 훈련해서 뭐 하냐~ 부상 당하면 엿 되는 거야~”

“그건 맞지~.”

“낮에도 할 만큼 했다고.”

“오늘 진짜 죽는 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걸음을 늦췄다.

“쏭~ 빨리 가자니까~?”

“응.”

전지훈련을 통해 축구부의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그건 로베르토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불가능하다.

지상철이 축구부의 주축이었던 2학년을 빼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저 3학년들의 의욕을 끌어올려야 한다. 실력만큼은 2학년들보다 더 뛰어나지만, 열심히 할 이유가 없는 저들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물론, 저들도 저 마음가짐으로는 단 한 명도 프로 레벨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저들도 좋고 나도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친구들의 개인 훈련을 도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쏭! 왜 이렇게 살살해.”

이민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미안, 무릎 관절이 좀 약해졌다고 해서.”

“뭐?!”

이민우가 리프팅하던 공을 내버려 두고 달려왔다. 발목을 열심히 마사지하던 박종혁도 고개를 들어 날 빤히 쳐다봤고,

“관…… 절이 뭔가?”

티알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갸웃했다. 티알을 위해 내 무릎을 가리켰다.

“여기.”

“아니, 쏭? 그게 무슨 말이야? 설명 좀 해봐. 처음 듣는다고.”

“괜찮냐?”

이민우는 조급하게, 박종혁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아니, 요즘 좀 시큰해서 병원 갔다가 왔거든. 키가 크려는 게 아니려나.”

전생에서 대놓고 성장판 문제라고 두 번 설명했다가 두 번 다 대화가 꼬이거나 이 대화를 들은 선배들이 핑계를 댄다고 뒷담화를 한 적이 있었기에 아픈 거로 퉁치기로 했다.

“야, 그럼 훈련도 빼야지. 멍청이냐?”

박종혁이 정색하고 말했다.

“응 난 강해서 괜찮아~.”

“지랄하네.”

박종혁은 고개를 홱 돌렸다. 이민우는 여전히 내 무릎만 보고 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어. 오전 훈련도 내가 1등이었잖아.”

“……1등은 난데?”

“아닌데? 내 기록이 1등인데?”

“아닌데?”

대화가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진짜 괜찮은 기가?”

티알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괜히 미안해졌다.

“응, 감독님한테도 얘기해서 훈련도 조절하기로 했어.”

“그렇다면야…….”

이민우는 납득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팀 훈련은 다 참가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개인 훈련은 조금만 하다가 영상자료 공부하거나 마사지랑 스트레칭 할 거야.”

“그래~ 네 몸이지 내 몸이냐~.”

“그래그래.”

박종혁이 불퉁스러웠지만 그러려니 했다. 날 걱정해서 저러는 거니.

“화장실 좀.”

“엉.”

“그래.”

얘기는 다 했고 아까 생각을 이어서 해야 한다. 건물 안의 화장실을 찾으니 3학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오~ 아직도 띵하네.”

“오늘 개 힘들었다.”

“우리 방 애들은 저녁 먹고 바로 뛰어나가던데.”

“걔네는 열심히 해야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얘길 들었다.

“우린 적당히 하면 되는 거야.”

“감독님이랑 선배들이 다쳐서 오면 죽인다고 했단 말이야.”

3학년들은 전국대회 4강 출신들. 이미 고등학교 팀이 내정된 인원들도 있었다.

“그치.”

로베르토의 도발에 욱하긴 했지만, 승부욕이 유달리 강한 노태신을 제외하면 오늘 훈련에서 죄다 하위권이었다. 전력으로 뛰면 중상위권은 될 만한 실력들인데도 그렇게 했다.

조심하는 건 이해하지만, 부상은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거다.

태풍이 두렵다고 집을 안 지을 수는 없는 것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훈련에 소홀히 하는 건 저들 스스로에게 최악의 행동이다.

뭣보다 저들이 필요하다.

저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전생에서 2학년들이 이렇게 빠져나간 적이 없었기에 저들을 북돋아야 한다.

“태평하게 가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번갯불이 친 것 같았다.

“위기감…….”

위기감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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