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77화
합숙 3일째, 저녁 자유 시간.
오늘 오전에도 체력훈련을 했다. 어제처럼 말도 안 되는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축구부원들은 전부 뻗었다.
오히려 오늘이 체감상 더 힘들었다. 고무줄 인터벌 때 소모한 체력이 다 회복되지도 않았고, 근육통도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제보다 더 녹초가 된 부원들은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후에 친구들을 깨웠다.
“민우야, 공 차자.”
“좋아! 기다리고 있었어!”
“박종혁 씨?”
“간다고…….”
“티알, 모른 척해도 소용없다…….”
“……나는 힘들다.”
“괜찮아, 괜찮아. 태영이는…… 왜 여기서 자냐?”
“으음…….”
이민우와 박종혁은 알아서 준비했고, 티알은 억지로 일으켜 앉히고 체육복을 건네줬으며 엄태영은 깨웠다.
“왜 그렇게 열정적이야…….”
“훈련해야지!”
일부러 크게 말했다. 다른 1학년 부원들과 2학년들은 우리의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의욕을 얻을 것이다.
팀에 열심히 하는 무리가 있다면 중간 그룹은 자연스럽게 이쪽을 따라오게 돼 있으니까. 그것도 자기들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그룹이라면 더욱더.
다만 3학년들은 태평했다.
“오늘은 뭐 할래?”
“여친이랑 문자 할 거임.”
“……나 니 여친 통해서 소개 좀 해주면 안 되냐?”
“미드 보자, PMP에 담아왔어.”
우리가 뭘 하건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쏭~ 오늘도 30분밖에 못하는 거야?”
가장 먼저 준비를 끝낸 이민우가 복도에서 발을 동동대며 물었다.
“어, 그래서 너희들 훈련하는 거 도와주려고.”
“뭐? 정말?”
기운 없이 일어나던 박종혁과 눈이 반쯤 감겨 있던 엄태영이 날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막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나가려던 1학년 친구들도 그랬다.
그들을 전부 둘러보며 웃었다.
“응, 다 도와줄게.”
어제 세운 계획대로, 3학년의 의욕을 끌어내기 위해서 1학년들을 도울 생각이다.
“나도?”
“당연하지.”
겸사겸사 티알의 적응도 돕고.
티알의 표정이 밝아졌다.
* * *
“재미있었어!”
“나도.”
이민우와 뛰지 않는 1대1 드리블 대결을 실컷 한 후에 벤치로 돌아왔다. 어느새 체력을 회복한 이민우는 곧장 윤태상에게 달려갔다.
벤치에 앉으니 옆에서 우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았다…… 송현준은 날 속였다…….”
티알은 내 조언대로 30분째 리프팅을 하고 있었다.
통, 통 규칙적으로 들리는 공 소리가 듣기 좋았다. 티알은 공을 다루는 솜씨가 꽤 좋았다.
“너한테는 그게 가장 효과적이라니까. 제자리에서만 서서 하지 말고 움직여.”
티알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아까 했던 거다.”
“왜 해야 하냐고?”
“그렇다.”
“못하니까.”
툭, 퉁퉁…….
티알이 공을 놓쳤다. 충격을 받은 건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채로 멈춰 있었다. 채찍을 쳤으면 당근을 줘야 한다.
“대신 이거 계속하면 나랑 같이 전국대회 우승할 수 있어.”
“……전국대회? 그게 뭔가.”
티알이 공을 주우며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잘하는 모든 중학생끼리 붙어서 최고의 팀을 가리는 거지.”
“……오.”
“티알 너는 틀림없이 잘할 수 있어.”
확실한 당근을 줬다고 생각한다. 쑥스러운 건지 대답은 없었지만, 티알은 리프팅을 다시 시작했다. 아까보다 공이 튕기는 소리가 경쾌했다.
“야, 나도 도와줘.”
발목 스트레칭을 마친 박종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도와주냐. 알아서 잘하는데.”
“킥 말이야. 킥. 어떻게 하면 너처럼 깔끔하게 차냐? 축구부 들어오기 전에도 생각했는데 훈련 같이할수록 신기하던데.”
“연습…… 이라고 하고 싶지만, 자세 교정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그거면 돼.”
“근데 왜 킥이야?”
“내일 전지훈련 첫 연습경기잖아. 기왕이면 잘하고 싶으니까.”
원하는 대답이라 속으로 웃었다.
“우리가 같은 팀이었지?”
박종혁이 갸웃했다.
“그랬냐?”
그걸 왜 물어보냐는 태도다.
오늘 훈련 막바지에 로베르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일 체력훈련은 없다.
-와아아아아!
로베르토는 축구부원들의 진심 섞인 환호를 기다려 주고, 이어서 본론을 말했다.
-대신 내부 친선경기를 한다.
축구부원이라면 지겨운 일반 훈련보다 경기를 더 좋아한다. 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두 팀으로 나눴으니 알아서 확인해라. 명단은 숙소 출입구에 붙여놓겠다.
박종혁이 손뼉을 쳤다.
“아, 명단 붙여놓는다고 하셨지?”
“확인 안 했냐?”
“……아하하.”
박종혁이 머쓱하게 웃었다.
로베르토가 친선경기 명단을 미리 붙여준 이유는 단순했다.
팀원들끼리 내일 경기를 준비할 시간을 주겠다는 거다.
깜짝 전술이라던가, 누가 주전으로 나갈지 포지션을 어떻게 할지 라던가.
“너랑 나랑 티알이랑 두식 선배님이랑 성주랑…….”
박종혁에게 우리 팀 명단을 읊었다.
“기억력 좋네. 그럼 우리 팀은 1학년 팀인 거네?”
“그렇지.”
로베르토는 1학년을 주축으로 한 1팀과 3학년을 주축으로 한 2팀으로 나눴다. 2학년은 수가 적었기에 양 팀에 나눠서 들어가 있었다. 이민우는 1학년이었지만, 양 팀의 밸런스를 위해서인지 3학년 팀이었다.
우리의 대화에 티알이나 근처에 쉬러 온 엄태영과 1학년 친구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 오늘은 내일 경기에 맞춰서 몇 가지 알려줄까?”
“미리 준비한다고? 치사한 거 아니냐?”
박종혁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감독님이 명단까지 붙여주신 건 준비를 하라는 거지. 안 하는 게 게으른 거야.”
마지막 말은 작게 했다.
박종혁이 곧바로 주변의 눈치를 봤다. 2학년 몇과 3학년 몇이 한창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야 이씨, 그런 말을 이런 데서 하냐.”
“안 들리게 작게 말했어.”
“됐다, 됐어. 맞는 말이긴 하네. 그럼 어떻게 준비할 건데?”
“시간이 없으니까 핵심만 해보자고. 일단 우리 명단이 이러면…… 내일 너는 왼쪽 윙이나 왼쪽 공격수로 나오겠지?”
“그렇지?”
“넌 네 신체 능력을 살릴 필요가 있어. 솔직히 너 키는 적당히 큰 편이지만, 점프력은 우리 팀에서 최고잖아?”
“흠흠, 그렇지.”
박종혁이 우쭐했다.
“내일은 헤딩을 적극적으로 해보자. 내가 올려줄게. 그리고 점프할 때 자세 말인데. 태영아, 도와줄래?”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다. 2학년에게, 연습 나온 몇몇 3학년에게도 들리도록 말이다.
엄태영에게 박종혁과 동시에 점프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태영은 재미있어 보였는지 그러겠다고 했다.
“나도 이따가 알려줘.”
“당연하지.”
“박종혁아, 다 좋은데 헤딩할 땐 비겁해 보일지라도 손을 잘 써야 해.”
“손을?”
“응, 최대한 편하게 점프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야 하거든. 자세 낮추고 자리 잡는 건 잘하는데 이것까지 하면 더 잘할 수 있어.”
“호오…….”
박종혁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기에 전생들에서 박종혁이 가장 쉽게 이해한 방식대로 핵심만 딱딱 말이다.
그러고 있자 선배들은 우리를 가끔 쳐다봤고, 1학년들은 대놓고 다가왔다.
그중 중앙 수비수 김성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준아, 헤헤헤…….”
“성주 왔네? 성주도 내일 우리 팀이니까 한두 가지 알려줄게. 내가 수비수도 아닌데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무슨! 주제 넘는다니!”
김성주의 말에 1학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진심으로 해왔다.
이들은 내가 훈련하는 몇 주 동안의 모습만 보고도 나를 인정하고 있었다.
“고마워. 그럼 박종혁은 그거만 연습해 보고, 성주 너는 일단 말이야…….”
1학년들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생의 기억들을 활용할 때다. 그들에게 당장 내일 써먹을 수 있는 개인 맞춤형 꿀팁을 전수했다.
이들의 장점이 뭔지 단점이 뭔지 로베르토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정리해놔서 팁을 막힘없이 전수할 수 있었다.
“태영아. 너도…….”
내가 잘하는 모습을 아무리 보여줘도, 이민우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3학년들에게 큰 효과가 없을 걸 잘 안다.
매 학년 천재들은 꼭 있고, 그런 친구들이 잘해봤자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당연한 현상이니까.
그래서 그들이 아래로 볼 1학년 친구들에게 내일 경기에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팁을 전수한 거다.
그리고.
“티알! 너 정식 경기는 해본 적 없지?”
“어…….”
“그럼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줄게.”
특히, 정식 축구도 별로 해본 적 없는 티알에게 당한다면 더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선배들이 쳐다보든 말든 나는 최선을 다해서 1학년 친구들에게 조언했다.
* * *
합숙 넷째 날, 오전 내부 친선경기.
체력훈련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로베르토의 이어지는 말만 아니었다면 이 분위기는 계속됐을 것이다.
“두 팀 다 주전이랑 포지션은 정했나?”
“네? 아뇨?”
축구부원들은 로베르토를 빤히 바라보았다. 윤태상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생각은 같았다.
당연히 로베르토 감독님이 정해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로베르토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미리 명단을 알려준 건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너희들은 기회도 활용 못 하는 건가?”
“…….”
힐난하는 어조에 기분이 상한 건지 3학년들은 딴청을 피우거나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빨리 정하겠습니다.”
“그래.”
윤태상의 말에 로베르토는 또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당연히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실망했나 보다.
1학년들은 어제 나와 훈련하며 포지션을 대충 정해놨다. 다만 눈치가 없지는 않았기에 윤태상에게 금방 정해오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정두식과 2학년 두 명과 함께 뭉쳤다.
엄태영이 작게 말했다.
“현준이 말이 맞았네.”
“그러게, 우린 미리 정해놨으니까 선배들한테만 말할게.”
박종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며 말했다.
“잘해 보자. 우리 주전 확실하게 따내야지.”
내부 친선경기만큼 주전 경쟁에 영향을 끼치는 게 없었다. 내 말에 1학년들의 표정이 진지해지는 게 보였다. 축구부 인원은 스무 명이 넘고, 이중 뛸 수 있는 건 절반뿐이니까.
최대한 많은 걸 보여줘야 다음 단계인 고등학교나 프로로 진출할 수 있다.
“선배님. 이렇게 짜도 되겠습니까?”
박종혁이 대표로 말했다.
“너희들 되게 빠르네. 난 상관없다.”
“나도.”
“……응.”
정두식이 말하고 비주류 2학년생들이 차례로 답했다.
2학년들은 일단 다 주전으로 넣었고 25분이 되면 못 뛴 친구들을 교체해서 할 계획이었다.
“예!”
박종혁이 힘차게 대답했다. 정두식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 이씨, 크게 대답하지 마.”
“예…….”
정두식이 웃었다.
“그건 너무 작은 거 같고, 아무튼, 난 수비 보면 되는 거지?”
“예.”
정리가 금방 됐다. 미리 정해놓은 덕분이다.
3학년들은 포지션을 정하는 걸 넘어서 주전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탐탁잖은 기색으로 그걸 보고 있었다.
* * *
“잘 보입니까?!”
“네!”
“떨어뜨리면 진짜…… 큰일 납니다!”
“압니다!!!”
김진호 코치와 로베르토가 큰 소리로 대화하고 있었다.
김진호 코치는 건물 옥상에서 카메라로 경기장 전체를 찍고 있었다. 김진호는 정말 별의별 일을 다 한다. 코치를 빨리 구해야 할 텐데. 단 두 명이 우리를 코치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로베르토처럼 꼼꼼하게 봐주고 싶어 하는 코치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