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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8화 (14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8화

“다들 준비해라! 곧 경기 시작할 거니까.”

“네!”

축구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침 건물 옥상에서 김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습니다!!!”

“예! 카메라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안다니까요!!”

로베르토는 그래도 걱정인지 옥상을 한 번 더 쳐다보고는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로베르토가 큰맘 먹고 구입한 비싼 카메라라는 걸 알았기에 속으로 웃었다.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장비가 적었던 시대다. 스마트폰이 빨리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경기는 45분 단판이다. 추가시간은 없다.”

“네.”

“예!”

각 팀 대표로 나온 윤태상과 정두식이 대답했다.

정두식 팀에는 나를 포함한 1학년들이 주축이고 티알과 1학기에 들어온 2학년 신입 부원들이 둘 있었다.

윤태상 팀에는 노태신을 비롯한 3학년들이 주축이고 역시 1학기에 들어온 3학년 신입 부원들과 이민우가 포함돼 있었다.

저쪽 팀의 노태신, 윤태상, 이민우 트리오는 고점이 터진다면 나도 막기 어려운 상황이 나올지도 몰랐다.

“얘들아, 잘해 보자.”

그래도 잘해야 한다. 전지훈련 기간은 한 달. 길어 보일 수도 있지만, 3학년들의 의욕을 끌어올리는 건 빠를수록 좋으니까.

“오케이.”

“좋아!”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

1학년들과 정두식에게 말을 마친 난 어제 정해둔 대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심판을 맡은 로베르토가 우리가 자리를 잡은 걸 확인하고 휘슬을 불었다.

노태신이 윤태상에게 패스하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패스! 패스!”

윤태상은 오른쪽 측면에서 격하게 손을 흔드는 이민우에게 패스했다.

이민우는 공을 멈춰 두고, 자기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엄태영을 향해 살살 공을 몰았다.

“태영아! 어제 말한 대로!”

엄태영은 이민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오른쪽으로 가는 척하다가 중앙으로 공을 모는 시늉을 하다가, 이민우는 계속해서 페인트를 시도했다. 혹할 만한데도 엄태영은 우직하게 이민우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헤에.”

이민우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뭔가를 시도하려 하는 거다.

하지만 축구장에서의 몇 초는 정말 긴 시간이다. 내가 엄태영을 도와 이민우를 압박하러 가기 충분할 정도로.

옆에서 달려오는 날 발견한 이민우가 뒤쪽 수비수에게 패스했다.

그 과정을 쭉 지켜본 노태신이 짜증을 부렸다.

“야! 질질 끌지 말고 패스해!”

“네~.”

이민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노태신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민우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태영아 나이스~.”

시선을 돌려 엄태영을 칭찬했다. 엄태영은 부끄러운지 작게 웃었다.

“덕분이야…….”

어제 엄태영에게 해준 조언은 수비에 관한 내용이었다.

-넌 평소에 차분한데 태클할 때는 너무 과감해. 태클은 정말 필요할 때만 해야 하는 거 알잖아.

-응…… 근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언제 시도해야 할지?

-응.

-그럼 그냥 태클을 하지 말자.

-응…… 아니, 뭐?

-확신이 설 때까지는 그냥 공간만 막자. 같은 팀 선수들 위치만 확인하면서.

-……그래도 되나?

-응. 넌 윙백이잖아. 역습 상황이 아니라면 네가 돌파돼도 뒤에 중앙 수비수가 있어.

-아.

-그리고 내일 경기에서는 나랑 같이 협력 수비해 보자. 수비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그래! 그렇게 해볼게.

엄태영은 기본기와 머리가 좋았다. 덕분에 이민우의 도발에도 발을 아예 뻗지 않았고, 성공적으로 이민우를 막아냈다. 물론 아직 경기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방금처럼 계속하자.”

“좋아.”

“뛰자!”

엄태영과 대화를 나누며 본래 위치로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상대 수비수에서 머물던 공이 단숨에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3학년들은 전대 주장인 노태신을 신뢰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미드필더도 거치지 않고 생각 없이 패스하는 거다. 노태신은 그들의 기대대로 공을 받기 위해 진작 밑으로 내려오고 있긴 했다.

그때, 1학년 친구이자 중앙 수비수인 김성주가 노태신의 뒤에서 튀어나와 노태신의 앞을 막았다.

“어!?”

먼저 자리를 잡은 김성주는 공을 헤딩으로 클리어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뛰었다.

김성주에게 엄지를 들어줬다. 김성주가 씩 웃었다.

-성주야, 너는 더 과감하게 해도 돼.

-과감하게?

-어, 솔직히 너 공 가로채는 거 자신 있잖아? 발도 빠른 편이잖아?

-어떻게 알았어?

-보면 알지.

칭찬이 좋은지 김성주는 대답 없이 실실거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장점을 살려 보자. 패스 뺏을 수 있을 거 같으면 뛰어나와.

-뒷공간 비면 어떡해.

-두식 선배가 커버 하나는 기똥차잖아. 당연히 두식 선배한테 얘기해 놔야지.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

“나이스! 어?!”

원하는 대로 플레이한 김성주를 칭찬하려다가 황급히 뒤로 뛰기 시작했다.

김성주가 가로챈 공을 받은 우리 팀원이 트래핑 실수를 했고, 어느새 공격진에서 수비진영까지 내려온 윤태상이 공을 가로챈 것이다.

윤태상은 고개를 한 번 들어서 노태신과 이민우의 위치를 확인하고 곧바로 패스를 찔렀다. 전방에 머물던 노태신이 바로 반응해서 뛰었다.

아직 김성주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위기였다.

하지만 괜찮다.

김성주에게 과감한 플레이를 요구한 근거는 노태신과 어깨를 부딪치며 뛰기 시작한 정두식의 침착함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아!”

수비형 미드필더인 내가 정두식을 도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정두식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 노태신은 내 재빠른 슬라이딩 태클에 공을 쉽게 빼앗겼다. 화가 난 것 같은 노태신의 얼굴을 뒤로하고, 크게 외쳤다.

“티알!”

“응!”

뻐엉!

티알을 보지도 않고 머릿속에 그려놓은 대로 우측을 향해 긴 패스를 찔렀다.

티알에게 해준 조언은 가장 단순했다.

-내가 공을 잡으면 앞으로 뛰어. 만약에 상대 수비수 뒤로 뛰어가기 전에 공을 받으면 주변에 다가온 선수한테 패스하고 또 뛰어. 이걸 원투라고 부르자. 어떻게 하냐면…….

티알은 신입 부원이다. 많은 걸 요구하면 안 된다.

이렇게 단순한 플레이만 반복하면 체력소모가 많아지지만, 이 친선경기는 전지훈련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패스를 하는 동시에 티알의 움직임을 봤다. 티알은 내 말대로 진작부터 뛰고 있었다. 티알은 최고로 빠른 편은 아니지만, 준족 정도는 된다. 축구부 내에서 중상위권 정도다.

티알의 장점은 스피드보다는 공을 다루는 능력이다. 온갖 환경에서 축구를 해왔기에 마치 브라질 선수들처럼 전신을 사용하는 트래핑에 일가견이 있다.

티알은 가슴으로 공을 세게 튕겨서 속도를 죽이지 않고 계속 달렸다.

“최고!”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티알의 외침과

“어어?”

당황하는 상대팀원들의 목소리가 섞였다.

패스 한 방에 티알은 골키퍼와 1대1 찬스를 맞이했다.

골키퍼가 다급히 달려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티알을 응원했다. 만들어주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결정짓는 건 본인이 해야 하니까.

티알은 가까워지는 골키퍼를 보며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뒷모습이었지만 표정이 상상 갔다. 골키퍼의 빠른 압박에 당황한 것이다. 경험 부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패스!”

그때, 박종혁이 티알을 불렀다.

박종혁은 왼쪽에서 중앙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티알은 곧바로 패스했다.

패스 방향이 살짝 아쉽긴 했지만, 너무나도 완벽한 찬스였다. 티알을 향해 달려 나오던 골키퍼는 황급히 멈추고 방향을 바꿔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박종혁의 발에 공은 도착했고, 골대는 텅 비어 있었다.

박종혁은 오른발로 공을 받아 주발인 왼발로 바꿔서 툭 차 골을 넣었다.

“나이스 티알!”

그리고 티알에게 달려가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

티알도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물론 웃고 있었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채로 우리 진영으로 돌아왔다.

세레머니는 없었다. 친선경기니까.

일부러 앞으로 나가 돌아온 티알의 등을 손바닥으로 툭 치며 한마디 했다.

“잘했다.”

“현준이 네 덕이다! 패스가 예뻤다!”

“패스가 예쁜 게 뭐냐.”

“굉장했다! 쩔었다!”

마침 우리 곁을 지나가던 윤태상이 티알을 빤히 바라보았다. 왠지 모르게 얼빠진 얼굴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목표인 3학년들을 슬쩍 봤다. 꽤 많은 수가 우릴 보고 있었다. 티알의 내 덕이라는 외침 때문이겠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말했다.

“또 하나 만들어보자. 오늘 네 데뷔전이잖아.”

“데비전? 데비전이 뭔가?”

“데-뷔.”

“아! 맞다! 내 데뷔다.”

“이번엔 원투 해보자, 원투. 알겠지?”

“응!”

* * *

“어어어어어!?”

“막아!”

이번 생의 티알은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직 기량이 많이 올라온 상태가 아닌데도 3학년들을 독특한 드리블로 무너뜨리고 있었다.

티알의 드리블은 부드럽지는 않지만, 3학년들이 본 적 없는 특유의 리듬감이 있었다. 이민우가 불타는 눈으로 티알을 막기 위해 달려오는 걸 보면 티알의 재능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낀 모양이다.

……근데 너 공격수잖아. 왜 여기까지 와.

“티알! 패스 달라고!”

다만 우리 팀원의 외침에도 티알은 상대 팀 수비수를 앞에 두고 공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패스! 패스!”

티알은 가끔 몰입할 때 시야가 좁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원인은 모른다. 아마 어릴 때 정식 축구를 별로 안 해서 그럴 거라는 추측만 하고 있었다. 성인이 돼서도 이 점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패스했으면 더 깔끔했겠지만 티알은 수비수를 뚫어내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 뒤로 상대 팀 두 명이 더 있었다는 점이었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티알이 당황했는지 멈칫했다. 어느새 티알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갇혀 있었다.

지금이었다.

“패스~ 패스~ 패스~!”

크게 여러 번 외치면서 티알이 패스할 수 있는 유일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티알은 날 발견하고는 드리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허접한 패스를 내게 줬다.

“원투!”

내 외침에 안심하면서 멈추려던 티알이 다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수비수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전부 내게 쏠려 모두 티알을 놓쳤다.

티알이 뛰어가는 곳으로 받기 좋게 패스를 찔러 줬다.

“어어어?!”

당황하는 수비수들의 외침을 뒤로 하고, 티알은 또 한 번 1대1 찬스를 맞았다.

이번에는 골키퍼가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티알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슈팅을 시도했다. 수비수나 골키퍼의 압박이 없어서 그런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공은 티알의 발등에 완벽하게 얹혔다.

삑!

“으아아아아아아!”

골을 알리는 로베르토의 휘슬과 동시에 티알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1학년 축구부원들이 티알에게 달려가서 축하를 건넸다.

1골 1어시스트.

티알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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