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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79화 (14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79화

자기의 장점을 다 보여주는 티알의 모습에 로베르토는 몹시 흥미로운 눈이 됐고, 3학년들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또, 윤태상과 2학년, 그리고 1학년 중에 티알과 같은 오른쪽 윙 포지션인 부원들은 티알을 진지하게 관찰하듯 보기 시작했다.

“현준! 고맙다! 재미있다!”

팀원들에게 축하를 받던 티알이 내게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티알은 오늘 컨디션도 좋아 보였다. 솔직히 전생들의 첫 경기에서는 이만큼 하지 못했다.

“또 잘했다.”

“응! 또 원투 하면 되나?”

“그래.”

그렇게 경기가 계속되었다. 3학년들은 티알 특유의 리듬에 슬슬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티알이 점점 막히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1학년들이 내 기대보다 훨씬 잘하고 있었다.

“…….”

“……!”

말없이 따봉을 교환한 친구도 있었고,

“어제 괜찮았지?”

“어! 도움 많이 되네! 너 천재냐!”

내 물음에 호탕하게 대답하는 친구도 있었다. 일부러 어제 훈련이 도움 됐다는 식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3학년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를 듣게 됐다.

그리고 경기 시간이 절반쯤 지났을 때, 티알이 퍼졌다.

“흐엑, 흐엑, 흐에에엑!”

“티알, 버텨. 진짜 축구는 90분짜리인데 25분 뛰고 이러면 어떡해.”

“죽을 거 같다…….”

티알이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풀썩 주저앉았다.

“야, 야!”

삐익! 삑! 삑!

내 다급한 외침을 들은 로베르토가 경기 정지를 알리는 휘슬을 불며 달려왔고, 티알의 맹한 얼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것저것 물었다.

“어지럽냐?”

“네에…….”

“혼자 못 일어나겠지?”

티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르토가 날 봤다.

“오버 페이스로 너무 뛰어서 그런 거 같아요.”

“전력으로 했다는 말이구나. 고생했다.”

로베르토의 말에 티알은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가 금세 찡해졌는지 눈물을 글썽였다.

“티알 교체! 교체 인원들 티알 옮겨라.”

“네!”

티알이 나가고 경기가 재개된 후부터는 박종혁을 중심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박종혁에게 조언해 준 헤딩 플레이를 시도해 보려고 했지만, 박종혁은 티알만큼 한 번에 해내진 못했다.

“미안…….”

“괜찮아. 이게 정상이야. 다른 애들은 운이 좋은 거 같아.”

시무룩해진 박종혁을 위로하며 경기를 끝까지 마쳤다. 티알 대신 들어온 2학년 신입 부원은 평범한 플레이를 했고 경기 종료 직전 박종혁의 추가 득점을 마지막으로 3-0으로 친선경기를 끝냈다.

삑, 삐이이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우리는 얼싸안고 좋아했다. 마침 정두식이 내 옆을 지나쳐 갔다.

“두식 선배 최고였습니다.”

“……너도 잘했다.”

걸음을 멈추고 떨떠름한 기색으로 대답한 정두식은 상대 팀에서 누워 있는 박범철에게로 향했다. 경기 내내 드리블 돌파를 두 번밖에 성공하지 못한 이민우는 축 처져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기뻐하는 엄태영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이 계획의 목적인 3학년들은

“야, 쪽팔리지도 않냐?”

“아니, 그게…….”

“에휴.”

싸우거나, 시무룩해 있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경기에서 진 분을 풀고 있었다. 노태신은 아무 말 없이 골대를 걷어차고 로베르토의 해산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숙소로 돌아갔다.

* * *

3학년들은 오후 훈련 내내 저기압이었다.

훈련에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고, 잡담도 거의 하지 않았다. 1, 2학년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눈치를 봤고, 오후 훈련은 평소보다 몇 배는 조용하게 진행됐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리프팅 프로그램까지 진행한 후에 저녁을 먹었다.

쉬는 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평소처럼 운동장으로 나왔다.

“선배님들도 있네……?”

박종혁의 중얼거림대로였다.

운동장에는 우리보다 먼저 3학년들이 대부분 나와 있었다. 평소였다면 리프팅을 마치고 숙소에서 쉬기만 하던 그들이 우리보다 먼저 나와 있었다.

우리를 힐끔힐끔 보는 게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시끄러워. 니들 일 봐라.”

“옙!”

박종혁의 힘찬 인사에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노태신은 뚱한 얼굴로 박종혁 그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노태신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걸 보니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았다.

“왜 실실거리냐.”

“웃는 거거든.”

“뭐가 좋아서?”

“계획대로 잘 풀려서.”

“무슨 계획?”

“안 알려줌. 훈련이나 해~.”

“…….”

박종혁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지만 개의치 않고 벤치에 앉았다. 3학년 중 몇은 다른 벤치에 앉아 있는 로베르토에게 무언가 물어보기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 나이대에서는 선배, 후배 부르면서 어려워할 격차지만, 사실 우리보다 두 살 더 많은 수준일 뿐이다. 한 마디로 같은 중학생이다.

우리 또래는 한두 살 더 먹는다고 성숙하지 않는다.

감정은 격하고 쉽게 변하며 그만큼 유도하기도 쉽다.

“현준아! 나 패스 자세 좀 봐줄 수 있냐? 네가 오늘 경기에서 한 것처럼 공이 떨어질 때 속도를 죽이는 거 어떻게 하는 거야?”

1학년 친구들이 어느새 내 근처로 몰려와 있었다.

눈동자들이 또렷하다. 더 발전하고 싶다는 열의가 넘쳐흐르고 있다.

그래, 감정이 쉽게 변하는 만큼 축구에 더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게 우리 또래기도 하다. 그래서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이 시절의 축구는 항상 즐거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옆에 놓인 공을 잡아 회전을 걸며 리프팅을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백스핀 거는 거야.”

“백스핀?”

“엉, 알려줄게. 봐봐.”

백스핀을 건 공을 왼쪽으로 찼다. 공은 떨어지자마자 왼쪽으로 더 튀지 않고 제자리에서 한 번 더 튀었다.

“탁구처럼 하는 거구나?”

“그렇지. 맞아. 당구 쳐본 사람? 시내루랑 똑같은 건데.”

“오? 나 알아!”

2000년대는 일종의 과도기다. 스스로 정보를 찾는 게 가능해지고 있긴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동료나 감독, 코치를 만나냐에 따라 이렇게 간단한 기술도 못 배우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스스로 터득하거나 찾기 어려운 자료를 찾아서 배우는 친구들도 있지만 소수다.

“방금 보여준 걸 킥으로 하는 거야. 잘 봐.”

무릎을 아껴야 한다지만 이 정도는 허용범위 내다.

튕기고 있는 공을 발바닥으로 눌러 고정하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난 후에 공의 밑바닥을 발등으로 강하게 찼다.

“오오!”

공은 시원하게 날아가서 바닥에 튕기고 거의 제 자리에서 튀었다.

“와아, 나도 해볼래.”

“나도, 나도.”

나는 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다 알려줄 생각이었다. 축구는, 다 같이 재미있게 하는 게 좋으니까. 혼자 하면 재미없으니까.

* * *

1학년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있으니 로베르토가 나를 주차장 쪽으로 불렀다.

로베르토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참…… 도움을 많이 받네.”

“로베르토 덕분에 축구부 들어오기 전에 제대로 훈련할 수 있었잖아요? 은혜를 갚는다고 생각하시죠~.”

로베르토는 피식 웃으면서 내 머리를 툭 쳤다. 친근함의 표현이었다.

“건방지긴.”

“뭣보다 저도 같이 축구 하는 사람들이 잘했으면 좋겠어서요. 꼭 로베 형을 위한 건 아니에요.”

“잘했으면 좋겠다고? 왜?”

“같은 팀이잖아요.”

로베르토는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있다가 피식 웃고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지. 그거면 충분하지.”

“그렇죠.”

그때였다. 차 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보였고, 차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어?”

“영대 아저씨 오시기로 했어요?”

검은 에쿠스에 익숙한 번호, 이사장의 차였다.

금세 주차한 차에서는 이사장이 내렸다.

“어서 오세요. 구경 오셨어요?”

“안 내리고 뭐 해?”

이사장은 로베르토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고, 보조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재촉했다. 선팅이 진해서 누군지 보이지 않았지만, 보조석 문이 열리고 그 사람의 얼굴이 보이자 나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이 미소를 자연스럽게 인사로 연결했다. 일단 이사장에게.

“안녕하세요!”

“오, 현준이 표정이 밝은데? 로베도 간만이야.”

“이 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로베르토가 보조석에서 내린 빼빼 마른 안경잡이 청년의 눈치를 보며 작게 물었다.

“구경도 할 겸…… 새 코치 소개도 할 겸해서 왔지!”

“새 코치님이요?”

“안녕하세요!”

그제야 가만히 있던 새 코치가 꾸벅 인사했다.

“김정빈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새 코치시라고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정빈은 로베르토와 악수를 나눴다. 로베르토는 그러면서 김정빈의 전신을 훑었다. 로베르토의 눈빛에는 미심쩍음이 그득했다.

“저기, 이사장님?”

인사를 마친 로베르토가 이사장을 불렀다.

이사장은 김정빈에게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독이랑 나랑 얘기 좀 나눌 테니까 구경하고 있어. 이따 정식으로 소개할 테니까.”

“네! 여기 풍경이 참 좋네요!”

“현준이는…….”

“현준이도 같이 듣죠.”

무슨 얘기를 하나 궁금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로베르토와 이사장을 따라갔다.

김정빈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후에야 로베르토가 이사장을 보며 말했다.

“영대 형님, 저 사람 선수 출신 아니죠?”

“오? 어떻게 알았어?”

“운동 안 한 사람은 딱 봐도 티가 나요.”

“그래? 근데 뭐 어때. 어차피 잡일 담당으로 필요하다며?”

이사장은 당당했다. 이사장이 이러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옆에서 로베르토가 열을 내는 걸 구경했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고요. 이해 못 하는 부분도 많고, 부원들이 잘 따를지도 의문이고.”

“처음에는 나도 걱정하긴 했는데…… 지원자들이 다 신통찮아서 어쩔 수 없었어.”

“……그래요?”

그럴듯한 이유에 로베르토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추가로 물었다.

“그러면 저 사람을 뽑은 이유가 뭔가요?”

“가장 똑똑하고 열정적이었지.”

“똑똑해요?”

“그래, 자그마치 백록대학교 출신이라니까?”

로베르토가 백록대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아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에요.”

“역시 현준이는 잘 아네.”

“……그렇게 좋은 대학교에서 왜 중학교 코치를 합니까? 거기 스포츠학과 출신이랍니까?”

이사장이 재미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경제학과. 근데 학과 공부는 하나도 안 했대. 축구가 좋아서 축구에만 빠져 살다가 아슬아슬하게 학사경고만 면하고 졸업했다지 뭐야? 하하하하! 웃기지 않나?”

“…….”

로베르토는 머리가 아픈지 관자놀이를 검지로 찌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로베르토에게 이사장이 아까부터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건넸다.

“저 친구의 이력서야. 일단 한번 봐봐.”

“예…….”

이사장은 그 말을 남기고 김정빈에게 돌아갔다. 나는 로베르토 옆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로베르토는 봉투에서 이력서를 꺼내 가로등 불빛을 비추며 진지한 얼굴로 읽기 시작했다.

이력서의 내용은 안다.

운동은 더럽게 못 하는데 축구는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찾아본다고 밤을 새웠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자기가 몸으로 선수들에게 시범을 보일 수 없다는 걸 안다고도 적혀 있다.

하지만, 김정빈은 군대에서 엑셀을 비롯한 서류작업을 배웠고, 방송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진과 영상촬영, 편집기술을 배웠다는 걸 어필한다.

그 내용을 읽었는지 로베르토의 표정이 누그러지고 있었고, 이력서를 더 꼼꼼하게 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코치는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지만, 이런 서류나 영상 작업도 정말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김정빈에 대해 생각했다.

항상은 아니었지만 로베르토가 감독을 맡으면 절반 정도 확률로 오게 되는 코치다.

그리고 김정빈은 코치로 성공 못 하는 사람이었다. 이력서에 쓴 대로 서류작업이나 영상작업은 기가 막히게 하지만, 코치에는 적성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재능이 있었다.

우리나라 축구계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해설가로서의 재능이다. 전생들에서도 축구부에서의 인연을 이어 나가 방송에 자주 출연하거나 사적으로 식사도 자주 하는 사이였다.

“현준아. 이거 좀 봐줄래?”

“제가요? 개인정보 아녜요?”

“마지막 줄만 봐주면 안 되냐? 내가 지금 고민돼서 그래.”

“그렇다면…….”

“봐.”

로베르토가 이력서의 윗부분을 손으로 대충 가린 채 마지막 두 줄을 보여줬다.

[시켜만 주신다면 어떤 잡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내가 김정빈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마지막 문장에 담긴 진심 때문이었다.

[저는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축구와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습니다.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저를 채용해 주세요.]

성인 축구부나 프로팀 아카데미에 코치로 고용되긴 어렵겠지만, 우리 축구부에선 아주 훌륭한 인재다.

“비선출…… 아무리 중학교 축구부라지만 이게 맞나 싶은데…… 이 말에 마음이 흔들리네.”

“저도 좋은데요? 솔직히 우리 가르치는 건 로베 형이나 코치님이 하시면 되잖아요? 데이터 정리해 주시고 이런저런 잡일해 주실 분이 계시면 훨씬 편해질 거예요. 심지어 백록대학교잖아요?”

“그……으래. 그래, 그럼 같이하자고 하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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