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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80화 (68/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80화

“오늘부터 함께할 김정빈 코치다.”

로베르토가 뒤로 물러나며 김정빈이 앞에 섰다. 김정빈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축구부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김정빈이라고 합니다.”

반말이 아닌 존댓말, 운동을 전혀 안 한 것 같은 깡마른 체구와 하얀 피부, 모범생처럼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쓴 김정빈의 외형은 축구부원들에게 불신을 심어 줄 만했다.

축구부원들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박수를 치긴 했다. 이들에게 있어 김정빈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운동부와 모범생은 학교에서도 잘 엮이지 않는 부류니까.

“앞으로 코치님이라고…… 아니, 뭐라고 부르게 할까요? 원하시는 대로 하시죠.”

로베르토는 이어서 말하다가 김정빈에게 물었다.

“형이라고 부르는 게 좋습니다.”

“알아들었지?”

“예!”

축구부원들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며 로베르토는 김정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더 하실 말 있습니까?”

“네.”

김정빈이 축구부원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아마도 기대감으로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여러분.”

“…….”

김정빈이 입을 열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반응도 시큰둥했다. 방금 로베르토의 물음에 씩씩하게 대답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그런지 더 비교됐다.

다만 김정빈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신경 못 쓰는 것 같았다.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준비한 말을 이어 나가는 데 정신을 쏟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감독님께서 코치라고 부르셨지만, 저는 전문적인 코칭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감독님과 코치님을 돕는 일을 주로 할 거 같습니다.”

김정빈은 솔직하게 자신의 스펙을 드러냈고,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많은 자료를 찾아보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축구 이론에 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부심도 내보였다.

허세는 아니었다. 분명 김정빈은 웬만한 축구인보다 지식이 많았다. 전생에서 김정빈 본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익! 현준이 이 자식아! 그때 얘기하지 말라니까. 그땐 내가 대한민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 아는 줄 알았단 말이야.

어떤 카페에서 김정빈을 놀린다고 중학교 축구부 시절 얘기를 꺼냈다가 들었던 말이었다. 김정빈이 축구계의 수많은 직업 중 코치부터 도전한 이유는 축구 지식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갈수록 당당해지는 김정빈의 목소리에 아까보다 박수 소리가 커졌다.

“좋아, 그러면 오전 훈련 준비하자.”

“예!”

로베르토의 말에 축구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훈련 장비를 옮기러 가면서 김정빈을 슬쩍 바라봤다.

역시, 김정빈은 자기가 똑바로 말했다는 사실이 기쁜지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제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겠다고. 김정빈의 성장은 이것부터 시작이니까.

* * *

삑!

“뛰어!”

김정빈의 힘찬 목소리에 축구부원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로베르토가 김정빈에게 처음으로 맡긴 일은 인터벌 랩타임을 재고 기록하는 일이었다.

김정빈이 하는 걸 한 세트 내내 지켜보기만 하던 로베르토는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본격적으로 선수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노태신! 힘 남은 거 보인다! 더 뛰어!”

“……예!”

“엄태영!”

“예!”

첫 세트만 해도 설레는 거 같아 보이던 김정빈의 얼굴은 어느새 굳어져 있었다. 첫 세트를 마치고 축구부원들이 토하는 것도 보고, 그러면서도 달리는 걸 보면서 기가 질린 것이다.

“뛰어!”

“악!”

체력이 좋은 편인 박종혁도 힘에 부친 건지 괴성을 지르며 힘을 짜내고 있었다.

김정빈은 조마조마한 얼굴로 할 일을 끝까지 마쳤고, 축구부원들도 대부분 2세트를 무사히 끝마쳤다.

“30분 휴식!”

“예!”

“예이!”

로베르토의 말에 축구부원들이 환호했다.

“정말요?”

“그럼 무른다?”

“아니에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박종혁의 대답에 로베르토는 피식 웃고 김진호 코치와 함께 건물로 향했다.

막 세트를 끝마친 축구부원들은 잔디밭에 대자로 누웠고, 앞 조에 소속된 축구부원들은 화장실로 향하거나 화이트보드에 2세트 기록을 적고 있는 김정빈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코치 형.”

“어…… 그래. 안녕, 잠깐만.”

마치 전학생 주변으로 모인 학생들 같은 모습이었다. 아, 학생 맞지. 아무튼, 축구부원들은 그냥 김정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모여들었다. 나도 그사이에 끼어 있었다.

로베르토가 시킨 대로 기록을 마친 김정빈이 축구부원들을 돌아봤다.

“…….”

“…….”

다섯 명의 축구부원과 김정빈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미묘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거 같았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코치형은 대학교 졸업 했어요?”

“어…… 응!”

“무슨 대학교요?”

“백록대학교인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축구부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백록대학교요?”

“헐 쩐다.”

“공부 엄청 잘한 거 아니에요?”

축구부원들은 공부와 가장 거리가 먼 부류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을 보듯 신기해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뭐…… 그냥저냥.”

“공부 잘하는 애들은 꼭 그런 말 하더라.”

“우리 반 1등도 그러던데.”

“근데 왜 대기업 안 가고 여기 왔어요?”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이 바뀌었다.

“진호 형은 툭하면 공부 좀 더 할걸…… 이러던데.”

“진호 형…… 김진호 코치님을 말하는 거지?”

“네.”

“으음…….”

김정빈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졸업할 때가 돼도 축구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어서…… 일단 직접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근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구인 공고 찾아보는데 마침 여기 축구부에서 막내 코치를 뽑는다는 거야.”

“오.”

“안 될 줄 알고 지원했는데 뽑아주셔서 열심히 하려고.”

“그럼 진짜 축구부 생활해 본 적 없어요.”

“응…….”

그렇게 말하는 김정빈은 우리들의 눈치를 봤다. 김정빈에게 먼저 다가온 축구부원들은 배경보다는 호기심이 더 중요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별 신경 쓰지 않고 궁금한 걸 물어봤다.

“우리 훈련하는 거 어땠어요?”

김정빈의 표정이 밝아졌다.

“너희 정말 대단하더라. 토하면서 뛰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어.”

그 모습이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참고로 토하면서 뛰던 사람은 정두식 선배였다.

대단하다는 말에 축구부원들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슬슬 대화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 번째로 끼어들었다.

“코치 형, 우연히 지원했다고 해도 여기까지 온 건…… 일이 잘 풀리면 코치가 하고 싶은 거죠?”

“어…… 그렇지?”

“그러면 형은 어떤 축구를 목표로 하세요? 코치로 시작한다는 건 감독이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감독……?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으음…… 내가 목표로 하는 축구라…….”

일방적인 말이었지만, 목표로 하는 축구라는 단어에 꽂힌 김정빈은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움직였다.

처음에 뭔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냐는 듯 날 쳐다보던 축구부원들이 김정빈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정빈이 화이트보드에 그려가면서까지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목표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긴 한데…… 그냥, 이런 축구를 하는 팀을 보고 싶어.”

화이트보드에 축구장을 그린 김정빈은 왼쪽 팀원들은 X로 표시하고 오른쪽 팀원들은 O로 표시했다.

그리고 오른쪽 팀원들을 뜻하는 O를 왼쪽 팀의 진형으로 전부 집어넣었다. 심지어 골키퍼까지도 중앙선까지 올라오는 진형이었다.

“공격할 때 이렇게 전원이 올라오는 거야. 그리고 모든 선수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패스하면서 상대방이 빈틈을 보일 때까지 말려 죽이는 거지. 이렇게 하면 움직이는 거리가 짧아져서 체력을 보존하면서 계속 공격할 수 있어.”

“그럼 수비는요?”

“공을 뺏기는 순간 주변 선수들이 일제히 덮쳐서 짧은 패스를 할 길을 막아 버리는 거지. 상대 선수는 롱패스를 할 수밖에 없고, 롱패스는 확률적으로 부정확하니까 우리 수비수가 낚아채 주는 거야. 그리고 다시 공격을 반복하는 거고. 만약에 롱패스가 정말 길게 날아오면 골키퍼가 받아서 패스해 주면 되는 거고.”

“…….”

축구부원들은 갸웃거리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화이트보드를 보다가 3학년 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에이, 형, 그게 어떻게 돼요.”

“안 돼?”

“당연하죠. 상대 선수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렇게 라인을 올리면 중앙선에서 기다리다가 롱패스 한 번 받아서 골 넣으면 되잖아요. 그리고 골키퍼는 발도 느리고 공도 잘 못 차는데, 이렇게 앞까지 나와 있으면 어떡해요?”

“아니, 그러니까 전방 압박을 세게 해서 실수를 유도하고, 골키퍼의 발 기술은 훈련을 한다면…….”

“에이, 코치 형이 선수로 안 뛰어봐서 그러는데 일단 그렇게 완벽하게 둘러싸기도 어렵죠.”

“골키퍼도 골키펀데 수비수들도 공 잘 차는 애들 없어요.”

그 말에 발끈한 1학년 수비수 부원이 끼어들었다.

“공격수들은 수비 못 하고요.”

“아니거든, 우리는 수비도 잘하거든.”

“아닌데?”

“아닌데?”

두 부원의 자존심에 불이 붙은 건지 서로를 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고,

“니들, 뭐 하냐.”

“……죄송합니다.”

“그게…… 죄송합니다.”

3학년에게 단번에 제압당했다.

3학년 부원이 우리의 의견을 정리해서 말했다.

“한 마디로 꿈 같은 소리예요. 형이 뛰어 보면 알 거예요. 자기 할 일 잘하기도 벅찬데 거기까지 어떻게 잘해요?”

“외국 선수들도 안 되나?”

“우리도 외국 선수들 경기하는 거 가끔 보는데 걔네도 역할이 딱딱 나뉘어 있어요.”

“…….”

김정빈은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자! 2분 후에 훈련 시작한다. 다들 집합!”

“예!”

축구부원들은 김정빈을 뒤로하고 로베르토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끼어든 채로 고개를 돌려 김정빈을 살펴봤다.

김정빈은 딱 봐도 풀이 죽은 것 같았다.

이론과 현실과의 괴리를 맛본 것이다.

계획대로였다.

3세트 훈련에서도 김정빈은 맡은 역할을 했지만, 수시로 생각에 잠기거나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오전 훈련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됐다.

“맛있게 먹어라~.”

“감사합니다. 이모님.”

“아이고, 인사성도 밝아라. 남편이 현준이 칭찬 많이 하더라고.”

“아하하, 감사합니다.”

여기는 전지훈련 전문 시설이 아니었기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가져온 식판에 원하는 만큼 밥과 반찬을 푸고, 벤치나 회의실 등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서 식사를 하곤 했다.

“오늘은 따로 먹을게.”

“어? 왜?”

평소 같이 밥을 먹는 박종혁, 엄태영, 티알, 이민우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오늘 온 코치 형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정빈이 형? 그래라.”

워낙 여러 가지 일을 해와서 그런가, 박종혁을 비롯한 친구들은 날 쿨하게 보내줬다.

그렇게 나는 혼자 벤치에 앉아 밥을 먹는 김정빈을 찾아냈다.

“옆에 앉아도 돼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김정빈이 깜짝 놀랐는지 숟가락을 놓쳤다.

“여기요. 저는 젓가락만 쓰거든요.”

“어…… 고맙다. 송현준이라고 했지?”

“네, 앉아도 돼요?”

“어어, 그렇지. 앉아 앉아.”

김정빈은 그렇게 말하며 날 빤히 바라보았다. ‘대체 왜?’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작은 미소를 지었다.

현실을 알려줬으니 이제는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줄 차례다.

김정빈은 한국 축구계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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