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81화
식판에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만 나고 있다. 김정빈의 옆에 앉아 말없이 식사만 하고 있으니 그가 날 힐긋거리는 게 느껴지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기다렸다.
마침, 산골짜기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잔디밭을 흔들었고 김정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신기하다.”
“뭐가요?”
“골프장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게. 이사장님은 어떻게 이런 곳을 구한 걸까?”
“음…… 모르겠는데요.”
“아, 그냥 해본 말이었어.”
김정빈이 머쓱한지 괜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물꼬가 트였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죄송해요.”
“응? 뭐가?”
“아까 제가 괜한 질문을 한 거 같아서요.”
“질문?”
“어떤 축구를 하고 싶냐고 물어본 거요.”
“아…… 그게 너였어?”
김정빈이 날 찬찬히 살펴보았다.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김정빈이 작게 웃었다.
“그걸 왜 사과하냐?”
“그 말 한 이후로 기운 없어 보이셔서요.”
지금의 내 컨셉은 중학교 1학년생 축구부원이다. 할 말 다 하는 당차고 똑똑한 중학생이다.
“그건…… 뭐, 할 말이 없네.”
이어서 김정빈이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애들이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젓가락을 멈춘 채로 저 멀리 있는 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기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게 정면에서 반박당하면 어떤 기분일까.
“근데,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쉽게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반박한 사람들이 축구부원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식으로만 말했지만, 김정빈은 정말로 진지하게 외국어 사전까지 뒤져가며 온갖 나라의 자료를 찾아보던 사람이었으니까.
“형이 어떤 과정으로 그 전술을 생각했을지는 짐작이 가요. 크루이프즘을 큰 틀로 놓고, 사키이즘을 결합한 느낌이죠?”
“어……?”
틀림없이 핵심을 꿰뚫었을 말에 김정빈이 당황했다.
세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끝도 없겠지만, 이 정도만 말해도 충분했다. 김정빈이 말했던 전술은 전생에서 본 적도 있고 상대도 해본 적 있는 괴물 같은 전술이니까.
축구를 보지 않는 사람도 흔하게 쓰게 되는 단어, ‘티키타카’를 유행시킨 펩 과르디올라가 이끌던 바르셀로나의 전술이 바로 김정빈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축구였다.
“정확해! 맞아! 앞으로 현대축구를 이끌어갈 두 이론이 적절하게 결합하려면 그 비율이 맞는다고 생각했어.”
“두 쪽 다 강점이 있죠. 사키이즘 이론을 기반으로 크루이프즘을 첨가한 축구도 구현만 된다면 굉장할 거예요. 선수가 적응하기도 상대적으로 편할 거고요.”
도르트문트로 돌풍을 만들고, 명가 리버풀을 부활시켰던 클롭의 게겐프레싱이 떠올랐다.
“오오, 너, 너너너, 너.”
김정빈은 흥분해서 말을 심하게 더듬기 시작했다.
“천천히 말하세요.”
“이론도 꽤 아는구나…….”
내 말에 자기 꼴을 깨달은 김정빈은 천천히 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흥분은 감춰지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니까요. 근데, 이론이 좋다고 다가 아니에요. 괜히 아까 안 좋은 말 들은 것도 아니고요.”
“……왜? 이유를 알려줄 수 있을까?”
“축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거예요.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들이 가장 잘하는 걸 시켜야 하죠.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구현이 안 되면 똥이잖아요? 그리고 그 전술을 수행할 능력을 훈련시켜 줄 코치도 있어야 하고, 그 나라의 기후나 잔디 상태도 살펴야 해요.”
“기후랑…… 잔디까지?”
“당연하죠. 비가 많이 오는 곳이면 짧은 패스 위주의 전술을 사용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공이 잘 안 굴러요.”
“아…….”
김정빈은 깨달았다는 얼굴을 했다.
“잔디 상태가 안 좋아도 짧은 패스를 하기 어려워요.”
“공이 제멋대로 튈 수 있으니까?”
“그렇죠. 불확실하잖아요.”
“그렇구나, 이론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구나…….”
“그렇죠.”
김정빈은 작게 탄성을 내다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생각도 못 한 것들까지 고려해야 하네……. 괜히 애들한테 그런 소리를 들은 게 아니었어…….”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김정빈을 보며 픽 웃고 작은 목소리로 능글맞게 말했다.
“솔직히 애들은 거기까지 생각 못 했을걸요? 이건 제가 좀 똑똑해서 아는 거예요.”
“뭐?”
또 한 번 멈칫한 김정빈은 잠시 후 정말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다른 벤치에서 밥을 먹던 부원들이나 건물 주변을 돌아다니던 부원들도 이쪽을 잠깐 바라볼 정도였다.
그들이 쳐다보든 말든 김정빈은 왠지 모르게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똑똑한 송현준아. 그러면 내가 아까 말한 전술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높은 수준에서도?”
“아뇨, 가능하죠.”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답하자 김정빈이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네, 미드필더 위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선수가 있고, 중심에서 공을 순환해 줄 월드클래스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어야 하고, 중간을 채워줄 중앙 미드필더도 필요하고…… 패스 잘하는 수비수도 필요하고…… 볼 잘 다루는 풀백도 필요하고…… 그리고 이 선수들이 같은 유소년팀에서 성장한다면 성공할 확률은 더 높아지겠죠. 아, 골키퍼도 공을 잘 다뤄야 하는데.”
어느새 두 손을 다 써서 손가락을 접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조건이 많은 전술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사기지.
나는 전생에서 수없이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라는 괴물들을 꽤 자주 상대해 봤다. 분명 어떻게 공격해 올지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러 번 당했었다.
자기들만 공을 갖고 있으려는 이기적인 그들을 상대하려면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반드시 골로 만들어야 했기에 매 경기가 피곤했다.
그만큼 성취감도 좋았다. 이번 인생에서도 빨리 그들을 상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열한 조건들에 기가 질린 건지 입을 다물고 있던 김정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지…… 골키퍼도 볼을 잘 차야지…… 근데, 그거 불가능하다는 거 아니니……?”
“혹시 모르죠? 지금 그런 팀이 만들어지고 있을지. 아마 나온다면 크루이프즘이랑 사키이즘을 기반으로 유소년을 육성하고 있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쪽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아니면 크루이프의 나라인 네덜란드에서 나올지도 모르고요.”
“우리나라는…….”
“힘들겠죠.”
“그렇겠지?”
김정빈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난 안 된다고 한 적 없었다.
“아까 말했잖아요. 선수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전술을 써야 한다고. 우리는 우리만의 승리법을 찾아야 해요. 그렇게 할 거예요.”
“누가?”
“내가요.”
김정빈은 한 템포 늦게 되물었다.
“……미친놈이니?”
“제 꿈이거든요.”
김정빈은 이제 웃지도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어려서 그런 건지 당당해서 그런 건지…… 부럽네.”
“제가요?”
“응…….”
“근데 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아직 일한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다 보니……. 에휴,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머리가 어지러울 거다. 그래도 김정빈에게 도움이 될 말은 지금 이 타이밍에 해야 했다.
“그중에선…… 선수 생활을 해본 적 없는 게 아쉬우시죠?”
크게 움찔한 김정빈을 잠깐 바라보고, 가벼운 말투로 진지한 말을 했다.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우리 마음을 잘 알아주고,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서.”
“말만이라도 고맙다. 근데 슬슬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
축객령이 떨어졌다. 점심은 아까 다 먹었다. 다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다. 김정빈은 날 보내고 혼자 생각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난 끝까지 말할 거다.
“그렇죠. 일어나야죠.”
식판을 들고 벤치에서 일어나면서 남은 말을 했다.
“말뿐만인 건 아니에요. 물론, 선수 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면 코치는 몰라도 감독은 거의 불가능할 거예요.”
비선출 감독이라고 알려진 감독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유소년 시절까지는 축구를 배운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선수 출신이 아닌 다양한 코치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적이 많기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심지어 축구와 하나도 관계없는 타 종목 출신 코치에게도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선수 출신이 아니니까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예요.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보는 관점이 다를 거거든요. 축구부 애들한테 말이라도 많이 걸어 보세요. 축구는 선수가 하는 거고 선수는 사람이니까, 대화를 많이 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고맙다.”
김정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다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라는 건 잘 알겠어.”
“맞아요. 그거면 돼요.”
할 말을 다 해서 떠나려고 하는데 김정빈이 날 불러세웠다.
“근데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해준 거냐? 뭔 어른이랑 얘기한 줄 알았네.”
준비해 온 대답을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애늙은이라는 소리는 듣죠. 하하.”
“좋은 말들이긴 한데…… 갑자기 왜 신경을 써주나 해서.”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김정빈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댔다.
“감독님이 힘들어질까 봐요.”
“감독님이? 왜?”
“아까 형 얼굴을 보니까 금방 그만둘 것 같았거든요.”
김정빈은 민망한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렇게 심각해 보였어?”
“네.”
“근데 내가 그만두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축구부는 코치가 너무 없거든요. 감독님이 이런저런 일을 다 하니까 선수 봐줄 시간이 부족해서요. 형이 그런 역할을 맡아주면 감독님의 부담이 줄거든요.”
“이해가 가네.”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던 김정빈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이렇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첫날에도 감독님이랑 같이 있었지? 원래 아는 사이야?”
“제가 축구를 쉬고 있을 때 훈련 장소를 제공해 주신 분이에요. 그래서 은혜를 갚아야 해요.”
“은혜를 갚는다고?”
“네, 감독님의 첫 대회가 될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안겨주려고요.”
“……뭐?”
“전국대회 우승이요.”
잘 못 들은 거 같아서 한 번 더 강조해 줬다.
김정빈은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내가 축구부를 아직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여기 들어오기 전에 다음 카페에서 정보를 얻었거든…….”
전국에 있는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부모님이 정보를 교환하는 카페를 말하는 거다. 이 시절에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역할을 포털 사이트들의 카페가 대신했었다.
“근데요?”
“이 축구부…… 그러니까 대영 중학교 축구부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던데? 아니, 언급 자체가 없던데?”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금세 언급이 늘어날 것이다. 장담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래도 할 거예요. 그러니까 형도 열심히 해서 도와주세요.”
“하하, 그래.”
김정빈이 날 ‘중학생은 중학생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애 취급하는 게 묘하게 기분이 나빴지만, 결과를 증명한 후에 김정빈이 어떤 얼굴을 할지 상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아무튼 고맙다. 열심히 할게.”
대화도 잘 됐으니 자존심 상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난 지금 정말 중학생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