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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85화 (146/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85화

축부모, 전국 축구부 학부모 모임 카페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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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경중, 다담중, 벽제중, 진성중 회원님들~ 저희 애들 잘 지내고 있을까요? ^^;;]

전지훈련 간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 전화 한 통 없어서요...

전화했다가 괜히 애한테 피해 갈까 봐 연락도 못 하겠고요... ㅠ.ㅠ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 좀 달아주시겠어요?

┖어제 제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서로 친선경기하면서 잘 지내고 있대요~ ^^

┖┖부러워요~~

┖┖저희 아들내미는 언제 전화할까요. 쌍놈시끼. 지 아빠 닮아가지구... =_=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회원님 너무 웃겨요~~

┖┖┖우리 집 불효자도 전화를 안 해요 ㅡㅡ^ 같은 학교 친구들은 다 전화 왔다든데...

┖아들 너무 보고 싶어요...

┖┖저도요

┖┖저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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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고 싶다는 어느 부모님이나 할 법한 댓글도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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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내미가 이번에 휘경중에 들어온 애들이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정말요?

┖┖걱정이네요. 제 아들이랑 포지션이 겹치는 거 같던데...

┖┖┖잘 이겨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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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경쟁 같은 진지한 얘기도 오고 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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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계 전국대회 끝나고 휘경중 감독님이 바뀌었죠?

┖┖맞아요. 나준하 선수님으로요.

┖┖┖대박, 정말요? 사인받고 싶다.

┖┖┖잘 가르친대요?

┖┖┖┖아들 말로는 너무 좋대요. 학생들이 다 좋아한대요 ^^

┖┖┖┖┖그럴 만해요. 작년에 얼마나 대단했어요? 월드컵에서 뛴 선수들은 우리 애들 우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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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부임한 휘경중 감독의 신상부터 시작해서 실력에 관해 묻는 본격적인 질문도 나올 정도였다.

이 카페는 전국에 퍼져 있는 중학교 축구부의 정보를 얻기 가장 좋은 장소였다.

오늘 등업에 성공한 송현준의 어머니, 이미영은 카페에 올라온 글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특히 지금 글을 진지하게 읽는 이유는 가족과 함께 여행 갔던 용잠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축구부들의 학부모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용잠군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송현준이 훈련하고 있을 테니까, 혹시라도 대영 중학교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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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준하 감독님이 한마디 하면 선수들이 군인들처럼 충성한다던데요. 구경 한번 해보고 싶어요.

┖┖휘경중은 다음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 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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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댓글까지 확인했지만, 대영 중학교와 송현준에 관한 언급은 눈을 씻어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영은 아예 카페에 ‘대영 중학교’를 검색했다.

그리고 눈을 찡그렸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이 부정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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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중학교 망했다면서요?]

지상철 감독이 다른 중학교로 옮기면서 주전 애들만 쏙 빼갔다는데.

┖저희 애가 거기 있었는데 잘 빠져나온 거 같아요. 이상한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질 않나, 임시부원들을 그대로 쓰질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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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에 댓글 하나, 관심도 못 받는 글이었지만 이미영은 발끈해서 대댓글을 달려다가 포기했다.

싸워서 뭐 하나 싶기도 했고, 아들이 실력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아들을 믿는 이미영이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송현준은 열흘에 한 번씩 세 번만 전화하기로 약속했다.

요 몇 개월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모습을 보였다지만, 이미영에게 있어 송현준은 애일 뿐이었다.

본인이 원해서 축구부를 들어갔으니 잘했으면 좋겠지만, 더 중요한 건 즐겁게 다치지 않고 축구 하는 거였다.

믿는 신은 없지만, 오늘은 기도하고 싶었다.

현준이가 무사히 전지훈련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 * *

“저도 갈래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주차장으로 향하려는 로베르토의 앞을 송현준이 막아섰다.

“……내가 어딜 가는데?”

“친선경기 잡으러 가는 거 아녜요?”

로베르토가 자기 팔을 만지작거리며 불평했다.

“……소름이 끼치네. 어떻게 알았냐.”

“김 코치님이 말하는 거 들었죠.”

송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실직고했다.

“한마디 해야겠네, 김 코치라…… 아니, 둘 다 김 씨잖아 이 자식아. 둘 중에 누구한테 들은 거야.”

로베르토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송현준을 추궁했다. 송현준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저 데려가 주면 알려 드릴게요.”

“됐다. 훈련이나 해라. 개인 훈련 못 한다고 팀 훈련은 열심히 하겠다며?”

“아쉽지만 오늘은 안 돼요.”

“왜?”

“무릎이 시큰거려요.”

“이걸 걱정해야 하는 건지 좋아해야 하는 건지.”

“키 크면 좋죠. 로베 형보단 더 클 거 같은데.”

“에이, 그건 아니지.”

송현준은 자신 있게 자신의 검지를 내밀었다.

“여기에서만 손톱만큼 컸거든요. 로베 형은 금방 따라잡을 거예요.”

“뭐? 그만큼이나 컸다고?”

“방학 시작하곤 이만큼 컸고요.”

송현준은 검지를 뒤집으며 손가락 한 마디 반을 반대 손으로 가늠해 줬다.

미친 성장 속도였다.

얼빠진 로베르토는 걱정부터 했다.

“너무 빠르지 않냐? 밸런스가 무너질 텐데.”

“리프팅 시간에 따로 밸런스 잡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그렇구만.”

“아무튼!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무릎이 좀 시큰거려서요. 데려가 주세요.”

“…….”

대답 없는 로베르토에게 송현준은 당당하게 주장했다.

“절 데려가면 도움이 될걸요? 용잠군으로 가는 거죠? 거기에 전지훈련 온 중학교면 아마 절 아는 축구부원들이 있을 거예요.”

“흐음…….”

로베르토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주차장이라 아니라 건물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바로 안 가요?”

“너 병원 간다고 김 코치한테 인수인계는 해야지.”

“예스!”

기뻐하는 송현준의 모습에 로베르토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베르토는 잊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발설한 거냐? 김정빈? 김진호?”

입을 싸게 놀렸을지도 모르는 코치의 존재를.

“그거 거짓말이에요.”

“뭐?”

“어제 복도를 걸어 다니다가 회의하는 게 들렸을 뿐이에요. 한밤중에는 아무리 방 안에서 조용히 얘기하더라도 바깥까지 잘 들리거든요. 앞으로 조심하세요.”

로베르토가 허탈하게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로베르토가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 뒤에는 훈련장으로 가다가 붙잡혀 온 티알이 불안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설마 나…… 쫓겨나는 건가.”

“뭐? 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크게 웃었다. 로베르토도 모처럼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티알이 더 불안해해서 사실대로 말해줬다.

“아니야. 갑자기 용잠군에 가게 돼서 네 아버지 얼굴이나 보고 오라고. 갑자기 축구부에 들어오게 된 거잖아.”

“아…… 그렇구나. 살았다.”

“살았다니.”

로베르토와 눈을 마주치고 끅끅대면서 웃었다.

용잠군에는 금방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내려주니 티알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

“11시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혹시 우리가 너무 늦는 거 같으면 감독님한테 전화하고.”

“알겠다!”

티알은 순식간에 마을로 사라졌다.

“그럼 슬슬 가볼까.”

“어디부터 갈 거예요?”

“청소년수련원에서 묵고 있는 다담 중학교랑 진성 중학교부터.”

“좋아요.”

로베르토는 힘차게 악셀을 밟았다.

11시 정각에 우리는 티알을 다시 만났다.

“감독님 왜 그러나.”

“망해서 그래.”

로베르토가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기에 대신 말했다. 우리는 다담 중, 진성 중, 벽제 중 축구부에 방문했고 모두에게 친선경기 요청을 거절당했다.

로베르토는 힘없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망하다니, 아직 중학교 하나 남았거든…….”

그렇게 말하는 로베르토조차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가야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로베르토는 차 문을 잠갔다.

“티알, 용잠 초등학교 어딨는지 알지?”

“예!”

“안내 좀 해줘. 휘경 중학교 축구부는 거기서 생활한대.”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기에 적당히 맞장구쳐 주면서 어깨가 축 늘어진 로베르토를 따라갔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기운 없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용잠 초등학교는 티알이 살던 마을과 붙어 있었다. 약 5분 만에 도착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축구부원들이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신기하게도 잔디밭이었다. 물론 천연은 아니고 인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훌륭했다.

용잠군이 전지훈련의 메카이기 때문에 가능한 환경이었다.

“그럼 갔다 온다.”

“이번엔 저도 가요?”

“네가? 왜?”

툴툴대는 로베르토에게 잊었냐고 되물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그게 휘경 중학교에요.”

“누군데?”

“그게…….”

마침, 롱 패스 연습을 위해서 운동장 구석까지 물러난 축구부원과 눈이 마주쳤다.

“어?!”

그 축구부원은 내게 시선을 빼앗겼고,

“아악!”

날아오는 패스를 받지 못하고 머리에 맞았다. 휘청거리는 게 많이 아파 보였다.

“야! 이 새꺄! 집중 안 해?!”

“죄송합니다!”

지금 축구부원을 혼낸 사람은 휘경 중학교의 감독이었다. 그리고 역시 날 만난 적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훈련을 실전처럼! 까먹었냐!”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1바퀴 전력질주!”

“예!”

축구부원은 날 원망하는 눈으로 힐긋거리며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로베르토는 훈련 장면을 보고 있었다.

코치도 네 명이나 되고, 부원들도 훈련에 열정적이었다. 로베르토는 그 광경에 깊은 인상을 받은 거 같았다.

그때였다.

집중을 잃은 축구부원을 혼냈던 감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로베르토와 나와 티알. 유럽사람과 한국인과 동남아인의 기묘한 조합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일단, 누구시죠?”

가까이 온 감독은 날 보면서 갸웃거렸다. 얼굴이 생각날 듯 말듯 하는 모양이지. 휘경 중학교 축구부원 중 몇도 날 알아보는 게 대놓고 보였다.

끝까지 내 이름을 생각 못 해낸 감독은 일단 로베르토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대영 중학교 감독 로베르토 그릴로라고 합니다.”

“……대영 중학교요? 아, 제 명함도 드리죠.”

명함 교환식이 끝났다. 로베르토는 앞의 세 팀에게 거절당한 트라우마가 있는지 우물쭈물했다.

“대체 무슨 일이시죠. 저 바쁩니다.”

감독의 단호한 말에 로베르토는 정신을 차렸다.

“친선경기를 잡고 싶어서 직접 왔습니다.”

“아, 친선경기.”

“시간만 내주신다면 저희가 직접 여기까지 데리고 오겠습니다.”

“흠…… 간절해 보이긴 하는데…… 글쎄요. 저희도 일정이 있어서. 잠시만요.”

감독은 품에서 두꺼운 수첩을 꺼냈다. 일과를 정리해 놓은 내용을 보며 감독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 감독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드디어 이번 인생에서 처음으로 2002년 멤버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구나.

감독, 나준하는 2002년 멤버 중에서도 얼마 안 되는 해외파였다.

덕분에 인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실력지상주의 마인드가 가장 강했다.

원래는 2002년의 성과 덕분에 프로 리그 감독으로도 요청을 받았지만 나준하는 다 거절했다.

본인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어려울 것 같은데…… 이미 계획이 다 짜져 있어서…….”

“그렇습니까…….”

좌절한 로베르토를 부활시킬 시간이었다.

나준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할 만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감독직을 물려받는 하계 전국대회 이전까지 발로 뛰어서 선수 수급에 애썼다.

나준하와 나는 풋살 전국대회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나준하는 그 대회 결승전의 상대였던 강원도 축구부팀을 자기 축구부로 데려갔으니까.

내가 거기 있었던 만큼, 나한테도 제안했었다.

인사를 하면 기억할 거다. 노트에 빠져 있는 나준하에게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안녕…… 어?! 너 송현준 아니냐?”

나준하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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