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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86화 (14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86화

“네, 맞아요.”

나준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에 네가 왜…….”

로베르토와 날 번갈아 본 나준하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구만, 내 환상적인 제안을 거절하고 들어간다는 중학교가 여기였구만.”

나준하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날 봤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강성빈 이 건방진 짜식이 왜 정신을 팔았나 했더니, 쯧즈…… 야! 강성빈! 구경났냐? 다 뛰었으면 다시 훈련 합류해야 할 거 아니야아아악!”

“……예엡!”

아까 날 쳐다보고 멍해졌다가 혼쭐난 강성빈은 풋살 전국대회 결승전에서 상대로 만났던 강원도 출신 축구부원이었다.

그렇다. 오늘 난 풋살전국대회에서 생긴 인맥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다른 전생에서는 이민우를 꼬셨을 때처럼 티알, 로베르토와 실력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이번 인생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혹시 몰라서 티알을 데려온 건데 잘 풀려서 다행이었다.

“흐으음…… 송현준이가 있다면 혹하긴 하는데…….”

순식간에 긍정적으로 변한 나준하의 반응에 로베르토가 놀라서 설명해 줬다.

“풋살 전국대회에서 만난 적 있어요.”

“아.”

“이민우 기억하시죠?”

나준하에게 추가타를 날렸다.

“너희랑 8강에서 붙었던 애지? 걔도 정말 탐나던데 한국인이 아니더만. 거기에 걔 고향으로 간다며.”

“비행기 일정이 미뤄져서 잠깐 저희 팀에서 훈련하고 있어요.”

“그래? 그럼 한판 붙어보자.”

나준하는 결심이 빨랐다.

“정말입니까?”

로베르토의 물음에 나준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예, 하죠. 얘랑 이민우면 친선경기 할 가치가 있죠.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뭡니까?”

“저는 친선경기도 실전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총 90분 동안의 친선경기를 원합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얘랑 이민우가 최소 45분 이상 출전하는걸 원합니다. 무조건 동시에요.”

로베르토는 정말 잠깐 생각해 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좋군요, 좋아. 그럼 언제 할까요?”

“최대한 빠르면 좋은데…….”

로베르토가 말끝을 흐리자 나준하가 시원하게 정해줬다.

“내일 하죠. 내일 오전에 가능합니까?”

“좋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여기서 하죠. 직접 오실 수 있다고 했죠?”

“물론이죠!”

로베르토의 얼굴이 밝아졌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너희, 점심도 먹고 갈래? 근데 걔는 아까부터 왜 네 뒤에서 숨어 있냐?”

나준하는 나와 티알을 보며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느낌이었다.

“점심 좋아요. 그리고 얘는 감독님이 무서운가 봐요. 야, 티알, 이분 대단한 분이야.”

“……대단?”

“응, 우리나라 월드컵 4강 주역이셨어.”

“정말? 와…….”

티알이 놀라는 모습이 싫진 않았는지 입술을 꿈틀대던 나준하는 툴툴대는 말투로 말했다.

“점심값으로 애들한테 공 좀 차는 거 보여줘 봐. 우리 애들이 건방져 가지고 한번 눌러줄 필요가 있었거든.”

“에이, 제가 그 정도는…….”

“맞잖아?”

나준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고, 여기서는 겸손을 떨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긴 하죠. 근데, 감독님. 해도 돼요?”

옆에 서 있는 로베르토에게 허락을 구했다. 로베르토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르토는 바보가 아니다. 휘경 중학교는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문, 괜히 2002년 전설의 멤버가 감독을 맡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 축구부의 훈련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였다.

“얘랑 같이 해도 돼요?”

이제 몸을 드러낸 티알을 가리키며 물으니 나준하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얘도 너만큼 하냐?”

“아뇨, 근데 볼 다루는 건 저랑 비슷할지도요.”

“속내를 드러내는구나. 건방진 놈. 아주 건방져. 좋아, 둘 다 같이 훈련해 보자. 곧 쉬는 시간이니까 쉬는 시간 끝나고 할 준비해라.”

“네~.”

“건방져, 아주 건방져.”

건방져는 나준하의 말버릇이라는 걸 알았기에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나준하의 얼굴에도 비꼰다기보단 재밌어 한다는 게 드러날 정도였으니까.

* * *

나준하는 쉬는 시간 동안 송현준과 티알을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소개했다.

풋살 결승에서 송현준을 만나본 휘경 중학교의 일부 부원들이 송현준에 관해 다른 부원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눈에 띄었다.

이어진 훈련에서 송현준은 나준하의 기대 이상으로 좋은 기량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복잡한 전술 훈련이어서 조금이나마 헤맬 줄 알았는데 설명 한 번 듣고 휘경 중학교의 어떤 선수보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로베르토는 그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 지켜봤다.

“……쟤 뭡니까?”

로베르토의 옆에는 나준하가 서 있었고, 나준하의 옆에는 코치 하나가 서 있었다. 지금은 코치가 나준하에게 물은 거였다.

나준하가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나라 축구의 미래야. 기억해 둬라. 쟤, 분명히 성공한다.”

“……감독님이 그 정도로 극찬하는 건 처음 보네요.”

“나도 쟤 처음 보고 충격 받았었어. 봐봐, 모든 동작에 군더더기가 없잖아. 내가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선수들이랑 한따까리 했잖아.”

“아니, 그 멋진 순간을 한따까리라고 표현하는 게 맞습니까…….”

“내가 한따까리라면 한따까리지. 아무튼, 걔네랑 비슷한 느낌을 중학생한테 받았다고. 믿어져? 쟤 진짜 크게 될 거야.”

“……잘 봐둬야겠네요.”

송현준을 칭찬하고 있는 걸 들으니 로베르토의 기분도 좋아졌다. 내용에도 공감이 많이 갔다. 로베르토가 송현준을 처음 본 날에도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생각하는 거지만, 송현준의 모든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아무리 프로 선수라도 불필요한 동작이 있는데 송현준을 보면 지적할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이상적인 축구 선수, 월드클래스 프로 선수도 아닌 중학생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건 난생처음이었다.

“풋살대회에서 쟤 보자마자 영입하려고 별 지랄을 다 했거든? 근데 ‘들어가기로 약속한 곳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라면서 대번에 거절해 버리는 거야.”

“감독님이 누군지 못 알아본 건 아니고요?”

“거절하자마자 자기 아빠한테 사인 좀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던데 뭐. 자기 필요한 건 해달라고 하고, 내 부탁은 거절하고. 뻔뻔한 놈이지, 아주.”

“하하하, 배짱 있네요.”

“그렇지. 근데, 그날 이후로 쟤가 어디 갈까 궁금해서 협회에도 자주 물어봤었거든. 이제 그 궁금증을 좀 풀 수 있겠네. 대영 중학교에 로베르토 감독님이라…… 얘기 좀 하죠?”

자길 향한 나준하의 급커브에도 로베르토는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히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러죠.”

“우리 축구부 훈련은 어떻습니까?”

“수준 높네요. 히딩크 감독님에게 배운 걸 애들 수준에 맞춰서 적용한 거죠? 2002년 한국 축구팀의 훈련방식이 보이네요.”

“당연하죠. 나한테는 그게 최고의 축구니까요.”

로베르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훈련을 계속 지켜봤다. 티알도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송현준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로베르토, 경력이 어떻게 되죠?”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말은 하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세리에 C에서 한 시즌 주전으로 뛰고, B에서 후보로 1년 뛰다가 은퇴했습니다. 그 후로는 코치 라이센스 따고 대학교에서 공부했죠.”

“오호…… 그러면 송현준의 적정 포지션은 어디일 거 같습니까?”

나준하는 로베르토가 송현준을 맡기에 적절한 지도자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나준하는 세리에A에서도 두 시즌 주전으로 뛰었던 적이 있었다. 월드컵도 무려 4강에 갔다. 로베르토는 이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레벨에서 말하는 거죠?”

“당연히, 국가대표급 레벨이죠.”

“높게 보시네요.”

“옆에서 들었잖아요? 나 쟤 보고 눈 돌아갔어요. 지금 당장에라도 우리 축구부에 데려와서 금이야 옥이야 지도하고 싶어요.”

높게 본다는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나준하가 퉁명스럽게 쏘듯이 말했다.

로베르토는 지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 국가대표라면…… 성인이 된 현준이 키가 최소 180㎝를 넘는다는 가정하에……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뭐? 지금 우리 국가대표팀 무시하는 거야?”

나준하의 말이 거칠어졌다.

“아뇨, 그럴 리가요. 월드컵 4강급 팀에서도 전 포지션 소화가 가능할 거 같다는 얘기에요.”

“아이고, 내가 실수했네. 역시 그렇지? 하하하하, 작년에 우리가 그쪽 이겼으니까.”

“……그건, 에휴.”

로베르토는 억울했지만 더 말은 못 하고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하하. 내가 그쪽 나라에 살짝 맺힌 게 있어서.”

나준하가 로베르토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말했다. 나준하의 말에는 뼈가 서려 있었다.

“저도 알아요.”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이겼다는 이유로 나준하는 억울하게 세리에에서 쫓겨났고, 마침 나이가 다 됐다며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럼 비긴 거로 하지 뭐! 하하. 근데, 모든 포지션은 오버하는 거 아닌가?”

“말 편하게 하시죠.”

“그러지 뭐.”

“그리고 과장 아닙니다. 제가 몇 개월 봐온 바론 그래요. 당연히 가능성이지만요.”

화제의 전환에 나준하는 금세 침착해졌다.

“……정말인가?”

“네, 무슨 포지션에서든 필요한 플레이나 움직임, 심지어 지식까지 다 갖고 있어요.”

“……그게 말이 되나.”

“풋살대회에서는 골키퍼를 했다던데요?”

“그건…… 봤지. 근데 국가대표 레벨에서 그게…….”

“당연히 가능성이죠. 근데, 옆에서 보고 있으면 될 거 같아요. 심지어 어른으로서 부끄러워질 정도로 열심히 계획적으로 훈련해요.”

나준하가 못 믿겠다는 어투로 되물었다.

“아니, 심지어 열심히 한다고? 저 재능에?”

“성실하고 겸손하죠.”

“탐나서 미치겠구만, 감당은 할 수 있나?”

직접적인 물음에 로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원래는 인맥을 다 동원해서 세리에로 보내주려고 했습니다만…… 요즘 들어선 그냥 즐겁게 축구 하는 것만 도와줘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재능이 뛰어나면 더 개발해 줘야지.”

로베르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쟤한테 감독이 필요한가 싶습니다. 저보다 이론적으로 더 잘 압니다. 풋살대회를 보진 못했지만, 아마 그때보다도 훨씬 잘할걸요. 일주일마다 실력이 올라가서요.”

“도통 이해가 안 가네…….”

“저는 뒤에서 구경할 테니까 훈련이나 같이해 보시죠. 그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겁니다. 원래 체력훈련 해야 하는 날인데 안 하고 여기 와서 팔팔할 겁니다. 아, 근데 무리한 방향 전환을 시키면 안 됩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성장기라서 관리해 주고 있습니다. 타고난 내구도도 평범한 거 같고요.”

“관리……?”

나준하는 로베르토를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등을 세게 쳤다.

“악! 왜 그러십니까.”

“그건 마음에 들어서! 천재는 어릴 때부터 관리해 줘야지. 그게 안 되면 선수나 팬들이나 주변인이나 괴롭거든…….”

“……?”

로베르토가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준하는 자기만의 생각에 잠겼다. 그의 머릿속에는 현 국가대표 에이스이자 언론과 팬들에게 자기의 부상…….

정확히 말하면 무릎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후배이자 존경하는 선수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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