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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87화 (148/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87화

나준하와 로베르토가 시킨 대로 휘경 중학교 축구부원들과 함께 훈련했다.

수준이 높아서 재미있었는데 티알은 아닌 모양이었다.

“……현준, 집에 가고 싶다.”

30분가량의 짧은 훈련이 끝나자마자 티알이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어깨를 토닥여 줬다.

티알은 훈련에서 엉망이었다. 혼자 흐름을 끊고, 혼자만 뒤처졌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였다.

제대로 축구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전국대회 최강팀의 훈련 템포는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골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점심 먹고 갈 거야. 여기 점심도 되게 맛있어. 치킨도 나오고 탕수육도 나오고 그래.”

“정말인가?”

티알이 반색했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여 줬다.

휘경 중학교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여럿 배출한 명문이었고, 그만큼 돈이 많았다.

“안녕?”

“또 만난다?”

“뭐 하고 지냈냐?”

그때였다. 우리에게 세 사람이 다가왔다.

질문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 왜 웃기만 해?”

“너는 안 반갑냐?”

고개를 저으며 입을 뗐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질문 여러 개가 동시에 오니까…….”

“아하.”

셋은 서로를 쳐다봤고, 중앙에 선 부원이 대표로 말했다.

“훈련하는 거 보니까 역시 잘하더라. 우리가 질 만했어.”

“운이 좋았지.”

여전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했다. 얘네들의 이름이 뭐였는지.

“그때 너한테 지고 얼마나 열 받았는 줄 아냐? 심지어 여자까지 끼고 져 가지고…….”

“채아는 잘하니까. 걔도 운동부 들어갔어.”

“역 시, 그 정도는 돼야 체면이 서지. 아무튼, 송현준 맞지? 반갑다.”

중앙의 부원이 손을 내밀었다. 바로 악수하지 못하고 손과 세 명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저기…… 그러니까?”

“넌 안 반갑냐. 손이 시린데.”

“정말 미안한데.”

셋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이름이 뭐냐…….”

“뭐?”

“아니.”

“너랑 풋살 결승전 했던 상대잖아!”

“아하하.”

황당하고 화난 것 같은 그들의 외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딴청을 피웠다. 전생에도 여러 번 만난 사이인데 이상하게 이들의 이름은 잘 외워지질 않았다.

절반 정도의 확률로 국가대표에도 이름을 올리는 친구들인데…… 모든 전생에서 이들은 존재감이 희미했다. 전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얘네들이 너무 평범하게 생기고, 플레이 스타일도 무난하다 보니까 자꾸 잊어버린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우찬우!”

“나는 장연준!”

“최윤찬이다!”

왼쪽, 오른쪽, 마지막으로 중앙에 있던 친구, 그러니까 최윤찬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렇구나. 난 송현준이야. 반가워.”

“알아! 아오…….”

“그러니까…… 강원도에 있는 중학교 축구부에서 뛰다가, 부가 해체되는 바람에 경기 감각 유지한다고 풋살대회 나왔다고 했었지?”

이어서 따지려는 것 같은 최윤찬을 막기 위해 이들의 정보를 먼저 얘기했다.

최윤찬의 어깨가 올라갔다가 축 처졌다.

“맞아…… 기억하는구만.”

“이름을 까먹어서.”

“……후.”

셋 다 억울해 보였다. 이들은 좋게 말하면 적당히 착한 친구들이다.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성격 말이다.

“풋살대회에서 스카웃된 거야? 대단하네.”

“크흠…….”

“그랬지.”

“운이 너무 좋았어. 제안 몇 개는 받을 줄 알았지만, 나 감독님이 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여기 와서 테스트받고 지난달에 정식 부원이 됐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했다. 전생들의 흐름과 같았다.

“휘경 중이면 무조건 가야지.”

“맞아, 근데 넌 왜 안 왔냐?”

최윤찬의 물음에 으쓱했다.

“미리 가기로 한 곳이 있어서.”

“어딘데?”

“대영 중학교.”

셋 다 생각하는 표정으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무시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몰라서 나온 몸짓 같았다.

“내일 친선경기하기로 했으니까 그때 보면 되지.”

“정말?”

“너도 나오는 거냐?”

“그때의 복수를 할 수 있겠네.”

삑, 삐익! 마침 휘경 중학교 축구부의 코치가 휘슬을 불었다.

“다들 다시 집합! 이번 세트만 끝나면 밥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원도 3인방과 함께 집합 장소로 뛰었다.

“복수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내일 봐야 알지.”

“뭐? 우리는 안 져. 여기 오고 얼마나 충격이었는데. 너 신정호, 성시건 모르냐?”

“알지. U-15 쌍 S잖아.”

“근데도 그렇게 말하냐?”

“재밌을 거 같잖아.”

축구부 안에서 내부 친선경기를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향후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할 네임드와의 대결이 더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휘경 중학교는 명문, 괜히 2002년 월드컵 멤버 출신 감독이 있는 게 아니다. 이 축구부에는 유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경험이 있는 멤버가 절반이 넘었다.

“현준, 괴상하게 웃는다.”

“기뻐서 웃는데 괴상하다고 하지 마.”

“너희들! 다른 중학교 축구부라고 봐줄 줄 알아? 집중 안 해!”

“예!”

코치의 따끔한 호칭에 큰 목소리로 우리는 대답하고, 이어지는 훈련에 집중했다.

* * *

송현준의 어머니 이미영은 최근 축부모 카페의 게시글을 읽는 데 재미를 붙였다.

자신과 똑같이 축구 하는 아들을 둔 부모들의 모임이다 보니 공감 가는 얘기도 많았고, 유용한 정보에 웃긴 얘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게시글을 읽는데 익숙한 단어가 들어간 게시글이 보였다.

─────

[회원님들. 대영 중학교라고 아세요?]

─────

이미영은 게시글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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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불효자 아들내미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내일은 원래 쉬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대영 중학교라는 팀이랑 친선경기가 잡혔다더라고요?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는 몰라서……. 알려주실 회원님 있을까요?

─────

─────

┖재작년에 4강 간 팀이에요.

┖┖정말요? 대단한데…… 왜 안 유명하죠?

─────

안 그래도 이미영도 그게 궁금한 참이었다. 전국대회 4강이면 정말 대단한 성적인데 불구하고 대영 중학교에 관한 언급은 정말 적었다.

─────

┖운 좋게 올라온 거라서요.

┖┖운 좋게요?

┖┖┖네, 그때 3학년 애들이 전부 많이 뛰는 팀플레이어 스타일이어서 정말 어중간했는데…… 마침 팀의 마침표를 찍어줄 노태신이 입학했거든요.

┖┖┖┖노태신이요? U-15 국가대표 후보 공격수요?

┖┖┖┖┖맞아요. 그때 팀 합이 기가 막히게 맞아서 4강까지 올라왔어요. 대진운도 정말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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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4강은 대단한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새로고침을 하니 실시간으로 댓글이 추가됐다.

─────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까지는 아니에요. 노태신이랑 윤태상이 전국구급이긴 한데…… 나머지가 너무 부족해서요. 매번 16강 전에 떨어지질 않나, 이번에는 예선 탈락하질 않나.

┖┖맞아요. 이번엔 2학년 주전들도 다른 중학교로 옮겼다면서요?

┖┖┖네……. 대영 중학교 망했죠.

┖┖┖┖근데 그런 팀이랑 친선경기를 잡은 거예요? 나 감독님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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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은 그럼 팀이라는 단어를 보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건 애써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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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 아닐까요?

┖┖알아보고 그런 거면 항의할 거예요. 얼마 전에 아는 교수님한테 물어보니까 성장기 선수는 휴식이 정말 필요하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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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자의 댓글을 보던 이미영은 어느새 대댓글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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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중학교가 뭐 어때서요? 이번에 잘하는 선수들도 많이 들어왔는데요.

┖┖┖┖신입 회원인 거보니까 대영 중학교에 들어간 신입 부원 어머닌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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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의 입술이 꿈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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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이쪽을 잘 모르는 사람 같아서 하는 말인데요~ 축구부도 급이 있어요~ 휘경 중학교는 1년에 전국대회 4강 이상은 무조건 한 번은 가는 명문이라고요~ 명문은 명문끼리 경기하는 암묵의 룰이 있답니다?

─────

“이익!”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송현준의 아버지 송상진이 흠칫했다.

“……여보?”

“이 사람 열받아! 물결표 짜증 나!”

“뭔데?”

송상진이 이미영에게 다가와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잠시 후.

“이 망할 사람이! 줘 봐, 내가 욕 좀 써야겠다. 내가 스타크래프트에서 가다듬은 솜씨를 지금…….”

“욕?”

이미영은 멈칫했다. 꼼꼼하게 읽은 카페 안내문에 욕설은 절대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안 돼. 카페에서 잘려.”

“……그래?”

송상진이 아쉬운지 혀를 찼다.

댓글을 안 달고 있으니, 갑자기 쪽지가 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시지를 클릭했다.

─────

[‘축구도사’ :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지금 싸운 분은 휘경 중학교 에이스인 성시건 선수의 어머니거든요. 아들 자부심도 많고, 학교 자부심도 많아서 원래 저러니까 참으세요.]

─────

“성시건?”

“성시건? 나 아는 거 같은데…… 잠깐만.”

이미영이 컴퓨터 의자에서 일어나고 송상진이 앉았다.

송상진은 성시건이라는 이름을 검색했고, 그가 U-15 국가대표 주전 왼쪽 윙이라는 걸 읽었다.

“맞네. TV에서 본 적 있었어.”

“……국가대표네?”

이미영은 왠지 모르게 기가 죽는 것 같았다.

“그리고 휘경 중학교면…… 2002년 멤버 중에 처음으로 감독 일을 시작한 나준하 선수가 맡은 곳이네. 거기 정말 명문이야. 지금 국가대표 중에 세 명이나 거기 출신이야.”

“……헐.”

송상진은 신나서 정보를 쏟아냈고, 이미영은 점점 우울해졌다. 그 모습을 뒤늦게 깨달은 송상진이 아차 하며 달래기에 나섰다.

“괜찮을 거야. 우리 아들이 세상에서 축구 제일 잘해.”

“……현준이가 잘하는 건 아는 데 대체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까. 내일 친선경기한다는데 마음이나 안 상했으면 좋겠는데…….”

성시건은 U-15 국가대표였다. 성시건을 빼고도 휘경 중학교에는 U-15 국가대표가 여섯 명이 더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도 송상진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송상진이 마지막으로 축구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건 풋살대회, 그때 송현준은 그 누구라도 이길 수 있을 거 같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축구 마니아인 자기 눈으로 본 것이니 틀림없다.

송상진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아내를 위로하려고 했다.

“괜찮을…….”

“아니!”

갑자기 이미영이 소리를 질러 송상진이 멈칫했다.

“왜, 왜 그래 여보…….”

“생각해 보니까 열받아서. 현준이 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해? 집에 오면 간 이상하게 맞춘 갈비찜이나 해줘야겠어…… 흥.”

이미영의 투덜거림에 송상진은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웃었다.

그렇게 말해놓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괘씸하긴 하네.”

송상진은 이미영에게 동조해 주다가 문득, 양심에 찔렸다.

무뚝뚝한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송상진의 어머니, 그러니까 송현준의 할머니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오늘 오전 훈련은 없다.”

“정말요?”

“와아아아아!”

로베르토의 선언에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기뻐했다.

로베르토가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자 축구부원들은 금세 조용해졌다.

그제야 로베르토가 추가로 말했다.

“대신 오늘은 다른 중학교랑 친선경기다. 휘경 중학교는 알겠지?”

“네?”

“……휘경 중이라고요?”

“오반데.”

3학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노태신 또한 그게 정말이냐는 얼굴로 로베르토와 김진호 코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김진호 코치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제 감독님이 직접 잡아 오셨다. 30분 후에 버스 타고 이동할 예정이니까 다들 장비 꼼꼼하게 챙기는 거 잊지 말고.”

“예.”

노태신은 고개를 숙였다.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이해했다.

왜냐면 1학년 시절 4강에 올라서 만났던 상대가 바로 휘경 중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태신과 대영 중학교 축구부는 7-0이라는 끔찍한 스코어로 4강에서 탈락했다.

로베르토가 준비하라고 말하고 떠났다.

그러자마자 3학년들의 쑥덕거림이 점점 커졌다.

“또 개 털리는 거 아냐?”

“하…… 성시건 걔 괴물인데.”

“정호도 잘하잖아.”

U-15 국가대표에 한 번 뽑혔던 적이 있는 두 명이 그들과 친한 척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번 뽑힌 이후에 더 이상 합류하지 못했다.

조용히 있던 노태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침을 먹으며 들떠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강한 팀이랑 친선경기 하면 좋지.”

“아, 우리 팀엔 태신이가 있지.”

“간만에 제대로 뛰겠네?”

어느새 평소처럼 여유 있는 표정을 한 노태신이 어깨를 으쓱했다.

“친선경기일 뿐인데 뭐 어때. 대충 하는 거지.”

그리고 난 잠깐이었지만 노태신의 표정이 진지해졌던 걸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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