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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88화 (6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88화

노태신과 성시건은 U15 국가대표에서 같은 포지션을 경쟁하는 사이였다.

물론 성시건이 한 수 위였기에 성시건이 주전이었고 노태신이 후보였다. 다만, 노태신에게 있어 자존심이 상하는 포인트가 있었다.

성시건은 휘경 중학교에서 윙으로 뛰었고 전생을 떠올려 봤을 때 그건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성시건을 공격수로 포지션 변경해서 쓸 정도로 성시건과 노태신이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태신은 성시건에게 투쟁심을 가지고 있었다.

“……태영아, 오늘 열심히 뛰어라. 알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노태신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금은 이동하는 버스 안, 나는 엄태영과 함께 앉아 있었고 내 뒤에는 노태신과 3학년이 앉아 있었다.

“야, 태영아.”

근데 엄태영은 졸고 있었다.

“어, 으응. 왜?”

“……에휴.”

“옛? 예엣?”

뒤에서 들려오는 노태신의 한숨에 엄태영이 당황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주변에 앉은 부원들이 무슨 일 있나 해서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또 졸았냐…… 에휴, 마음 편한 놈.”

노태신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엄태영에게 꿀밤을 먹였다. 엄태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은 긴장해라. 너 고등학교까지 축구 하고 싶은 거 아니야? 국가대표 가고 싶은 거 아니야? 그러면 곧 만날 괴물들이랑 매일같이 겨뤄야 해.”

“예!”

노태신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성시건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성시건을 상대할 맞 포지션에 엄태영이 설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노태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엄포를 놓았다.

“조금은 긴장해라. 엉?”

“예!”

“목소리 좀 낮추고.”

“예…….”

“현준이는…….”

진작부터 뒤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던 나와 노태신의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휘경 중에 국가대표 주전만 네 명이야.”

“죽어라 하겠습니다.”

“……좋아.”

엄태영은 잠이 다 달아났는지 동그란 눈으로 노태신과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쉬어라.”

“예.”

노태신의 이어지는 말에 엄태영은 앞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 없이 한숨을 쉬는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괜찮다는 의미로 작게 웃어 줬다.

뒤에서 노태신과 3학년의 대화가 이어서 들렸다.

“솔직히 우리 전술 훈련보다는 체력, 체력…… 지긋지긋한 체력훈련만 팠잖아.”

“기본기 훈련도 많이 했지.”

노태신이 덧붙였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근데, 걔네는 더 뭔가 고차원적인 걸 했을 거 아냐?”

“…….”

노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3학년은 걱정 섞인 투덜거림을 계속 늘어놓았다.

“근데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 괜히 기만 죽는 거 아냐?”

“…….”

노태신이 계속 대답하지 않자 대화는 끊겼다. 아까 본 표정에서 노태신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었다. 옆에서는 엄태영이 잔뜩 긴장해서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혼자 조용히 웃었다.

노태신의 걱정대로는 되지 않을 테니까.

잠시 후 우리는 휘경 중학교 축구부가 머무르고 있는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 * *

로베르토가 화이트보드에 선발 명단을 적고 있었다.

“현준이가 오른쪽 윙백, 태영이가 왼쪽 윙백. 그리고…….”

로베르토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노태신이 날 보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노태신이 걱정하던 성시건을 내가 상대하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제 로베르토에게 따로 가서 얘기했다. 공격진에는 윤태상 이민우 노태신이 있으니까 뒤를 맡고 싶다고.

“공격수는 노태신, 이민우다.”

티알이 시무룩해졌다.

“정말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던 이민우가 기쁜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다른 축구부원들도 왜 임시부원을 친선경기에 내보내냐는 듯 의문 섞인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팀에 균열이 나는 걸 싫어했다.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해줬다.

“휘경 중학교 감독님이 친선경기를 치르는 조건으로 네가 45분 출전하길 원해서.”

“아…… 절 어떻게 알고요?”

“풋살대회에서 봤다던데?”

“누구지……?”

이민우가 갸웃하며 날 봤는데 마침 휘경 중학교 감독 나준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

“나준하 아니야?”

“나준하는 반말이고. 나준하 선수님이지.”

“뭐야?”

우리 축구부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나준하는 2002년의 영웅, 우리나라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는 동경 그 자체다.

이민우가 나준하를 확인하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누군가 했더니.”

“야, 나준하 선수 몰라?”

박종혁이 이민우를 팔꿈치로 치며 물었다.

“아파 이 자식아. 누군지 알지, 풋살대회 때 만났었어.”

나준하가 말을 하자 시선이 집중됐다.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지? 만나서 반갑다.”

다들 얼어붙었다. 주장 윤태상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앞으로 나가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안녕하십니까!”

윤태상의 지시에 따라 동시에 인사했다.

씩씩한 인사가 마음에 드는 건지 나준하가 씩 웃고 손을 흔들어줬다.

“로 감독님. 오늘 경기 잘 부탁합니다.”

“제가 먼저 갔어야 했는데.”

나준하와 로베르토가 악수를 나눴다.

“괜찮아요~ 여유 되는 사람이 먼저 오는 거죠. 아무튼, 너희들 오늘 너무 거칠게 하면 안 된다. 우리 애들한테도 거칠게 하라고 안 했어.”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짜식, 명심까지 할 필요 없어.”

박종혁의 오버하는 것 같은 말이 웃겼는지 나준하는 박종혁의 어깨를 툭 치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나와 이민우를 한 번씩 보고는 손을 흔들며 떠났다.

박종혁이 내게 다가오더니 몽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꿈이냐? 나준하 선수가 왜 저깄어?”

“휘경 중학교 감독님이니까. 너 오늘 잘해야겠다?”

“당연하지. 이 악물고 할 테니까 나한테 크로스 존나 올려 줘. 알겠지? 진짜 꼭이다?”

“상황 보고.”

나준하는 월드컵 당시 팀의 공격수였고, 박종혁의 우상이였다. 박종혁의 눈이 이글거리는 건 착각이 아닐 거다.

“전술 회의에나 집중해.”

“당연하지!”

씩씩한 목소리를 들으며 화이트보드 앞에 모였다.

박종혁과 노태신이 투톱, 윤태상과 이민우가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에 중앙 수비수 세 명, 그리고 왼쪽 윙백 엄태영과 오른쪽 윙백은 나.

상대 팀이 강팀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로베르토는 5-3-2 포메이션을 화이트보드에 그렸다.

“태영아, 우리 오늘 큰일 났다.”

“……그러게. 죽어라 뛰게 생겼다.”

측면 수비수는 원래 체력 소모가 심한 포지션이지만, 이런 윙이 없는 전술에서는 더 지독하게 뛰어야 했다.

역량에 따라 수비진부터 공격진 전부를 커버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격 전개는 우측면에서 한다. 엄태영은 오버래핑보단 후방에 주로 머물러라.”

“예!”

그렇다 하더라도 많이 뛰어야 하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로베르토가 휘경 중학교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팀에는 국가대표가 여섯 명이나 있고 그중 다섯 명이 주전이라고 한다.”

정보가 차단된 시대가 아니었다.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은 휘경 중학교에 대해 알았고, 자기 세대 최고인 U15 국가대표에 선발된 전국구 선수들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주의할 지점은 양쪽 측면이다. 왼쪽 윙이면서 왼발잡이인 성시건은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를 맡을 만큼 다재다능하고 개인 기술이 매섭다고 알고 있다. 단, 달리기가 엄청 빠른 편은 아니다. 송현준, 잘해라.”

“예!”

길게 말하지 않았다. 의미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윙 신정호는 중학생 중에 가장 빠른 거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엄태영 네가 공격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알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수비 라인을 맞추는 걸 신경 쓰고…….”

로베르토가 몇 가지 더 얘기하긴 했지만, 평소 훈련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평소대로 하자는 얘기다. 그거면 충분하다.”

“예.”

대답에 힘이 없었다.

“대답에 힘이 없다!”

“예!”

“멍청이들아! 실력이 부족한 걸 알면 기세라도 끌어올려!”

“예!!”

목소리를 더 크게 했다. 기분이 고양되는 게 느껴졌다. 이번 생에서 가장 투쟁심이 끌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좋아, 그럼 5분 뒤에 경기 시작이니까 각자 마음을 가다듬고…….”

로베르토는 그렇게 말하고 코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전으로 출전할 선수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쫄리지 않냐 태상아?”

“예…… 무섭네요.”

“요즘 기운이 없다?”

“그렇습니까? 컨디션이 안 좋은 거 같기도 하고…….”

노태신과 윤태상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이민우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쏭, 너무 재미있겠다. 그치?”

“당연하지.”

“너희들은 참…… 긴장도 안 되냐?”

“맞아…….”

박종혁과 엄태영의 불평에 나와 이민우는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부담은 없었다.

“긴장해서 뭐 해. 이기면 되지.”

이민우의 태연하고 순진무구한 말에 박종혁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게 쉬운 게 아니니까 그렇지. 쟤네가 올해 전국대회 우승 후보 중 하난데…….”

“그래서 못 이기는데 경기를 뛰겠다고? 축구 선수잖아. 이기기 위해서 뛰는 거 아냐?”

“……크흠, 그게 말이지.”

말문이 막힌 박종혁이 날 보며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민우 말이 맞지. 이길 수 있어. 우리 팀 잘해.”

“에휴, 뭐라고 하겠냐. 태영아. 천재들은 우리 마음 모른다니까. 그치?”

긴장해서 그런가 입가가 굳은 엄태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옅게 웃었다.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니 마침 날 빤히 바라보고 있던 윤태상과 눈이 마주쳤다.

윤태상, 주장이자 노태신 다음 대의 에이스. 나랑 이민우가 들어와서 위치가 좀 애매해지긴 했지만, 이민우는 어차피 곧 떠날 사람, 앞으로 팀의 주축이 되어줘야 하는 선배다.

“선배님?”

“아, 아니야.”

“좋은 경기 하죠.”

“……그래야지.”

최근 윤태상은 계속 어두웠다.

“다들, 운동장으로!”

“네!”

휘경 중학교의 코치가 심판을 맡기로 한 모양이었다. 심판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태신아!”

“여어.”

성시건이 휘경 중학교 진영에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노태신이 손을 흔들었다.

경쟁심이 있다고 하더라도 둘은 꽤 친한 사이일 거다. 국가대표에서 같은 포지션으로 분류되니 훈련도 함께하고, 이야기도 자주 나눴다고 알고 있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우리 감독님이 갑자기 잡았다더라. 살살 해라.”

노태신의 말에 성시건이 인상 좋게 웃었다. 성시건은 볼살이 살짝 있고, 까무잡잡하면서 두꺼운 입술이 돋보였다. 끼가 많아 보이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훌륭한 킥과 개인기를 주력으로 하는 선배다.

“외국인 감독님이야? 어떠냐?”

“이탈리아에서 프로 하다 와서 잘 가르쳐.”

“오올. 신기하다.”

“시건아~ 경기 준비해라.”

심판이 중재하자 성시건은 바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네~ 그럼 간다. 태신아, 좋은 경기 하자.”

“그래.”

이 친선경기에는 많은 게 달려 있었다.

“지더라도 2-0으로 졌으면 좋겠다.”

“한 골 정도는 넣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좋긴 하겠는데.”

“종혁아, 너무 긴장하지 마라. 적당히 해, 적당히.”

“어어, 옙!”

먼저 로베르토의 훈련으로 자기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는 우리 축구부원들을 일깨워야 한다.

이어서 로베르토와 나준하 쪽을 바라보았다. 둘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번째 목적은 나준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서 친선경기를 치를 상대를 더 끌어모으는 것이다.

다음으론 휘경 중학교 쪽을 바라보았다. 여유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이들의 표정은 허세가 아니었다. 명문 축구부의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이들은 재능이 넘치고, 훈련도 더 열심히 하는 이들이었다. 전생을 봐도 이들 중 상당히 많은 인원이 프로가 된다.

나는 내 경쟁자이자 동료가 될 사람들이 가급적 많이 강해지길 원한다.

그러니까 세 번째 목적은 이들에게 큰 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준하가 원하는 대로, 세계급 재능을 가진 브라질리언 이민우와 함께.

이민우는 설레는 건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재밌겠다!”

“인정이야.”

물론, 축구도 즐길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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