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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93화 (7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93화

“우리는 존재감도 없네…….”

“그러게 말이다…….”

정두식과 박범철이 잔디밭에 주저앉은 채로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라이너로 그린 경기장 안에서는 오늘도 친선경기가 한창이었다. 최근 급격하게 활기차진 노태신이 수비수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달려!”

“막아!”

오늘 상대는 대영 중학교처럼 전국대회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팀이었다.

다만, 이들은 작년 우승자와 4강 팀과 같은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결과를 받았고, 관계자들의 평가는 8강급 전력을 가진 팀이었다.

그런데 그런 강한 팀과,

“우리가 없어도 잘하네…….”

“그러게 말이다…….”

대영 중학교는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경기력이 들쭉날쭉하다지만 축구부 내부의 만족도는 높았다. 애초에 저런 강팀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것부터가 축구부원들에게는 꿈만 같았다.

송현준 같은 에이스가 있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애초에 초등학교, 중학교 축구부는 항상 그랬으니까.

그 와중에 자기 주도적으로 해도 된다는 알베르토의 지시는 축구를 더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정두식과 박범철의 자리에 올해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들어온 선수들이 뛰고 있음에도 대영 중학교는 마치 하나의 생물체처럼 끈끈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정두식이 왼쪽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니야.”

그들의 왼편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는 감독 로베르토가 서서 경기장의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정두식은 로베르토를 좀 더 쳐다보다가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옮기며 투덜댔다.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다.”

“왜, 넌 주전이잖아.”

“너도 주전이잖아.”

“근데 애매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둘은 푸념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로베르토의 훈련은 효과적이었다. 대영 중학교는 최근 전국대회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약체였다. 이렇게 강한 팀들과 맞붙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구부원들은 꿈만 같다는 얘길 간혹 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불과 한 달 만의 훈련에 이 정도 성장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성장을 많이 한 건 맞지만, 더 큰 요인이 있었다.

“천천히 합시다! 야! 이민우!”

바로 송현준과 이민우의 존재였다. 둘이 워낙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주니 상대 팀 선수들이 둘을 더 신경 쓰게 되고 나머지 선수들이 편하게 경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민우는 하루에 일정 시간 이상 뛰지 않는다. 어차피 떠날 훈련 파트너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민우가 없는 경기에서도 대영 중학교는 잘할 때가 꽤 있다.

왜일까?

정두식은 그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쟤는 인생 재밌겠다.”

“누구?”

“송현준. 완전 주인공 같잖아.”

친선경기 상대가 많아지자 로베르토는 경기를 20분 단위로 끊어서 여러 조합으로 최대한 많은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그렇다 보니 정두식은 이민우만 있거나 송현준만 있거나 둘 다 없는 팀 모두에서 뛰어본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민우만 있는 팀은 간혹 이민우가 개인플레이로 골을 넣을 때가 있긴 하지만 둘 다 없는 팀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하지만 송현준은 달랐다.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송현준은 오직 ‘지원’에만 초점을 맞춰서 플레이하고 있었다. 송현준이 중심을 잡기 시작한 팀은 모두의 기량 이상의 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두식은 언제 생겼는지 모를 가슴의 응어리를 느끼면서 투덜댔다.

“모난 데가 없어서 욕도 못 하겠고…… 뭐 저런 애가 다 있냐? 솔직히 윤태상은 질투 났거든? 근데 쟤는 참…… 따라갈 엄두도 안 나서 의욕도 안 생긴다.”

“맞아…….”

“넌 왜 쟤랑 이상하게 얽혀서.”

박범철이 체육대회 때를 떠올렸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저번에 말했잖아…… 빠따…… 아니, 전 감독…… 아니, 지상철이 도발했다니까.”

“그런 거에 넘어가는 너도 참…….”

“쟤가 아직도 그렇게 잘할 줄 몰랐지.”

대화가 잠시 멈췄다. 둘은 그 와중에 경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로베르토는 쉬는 선수들에게도 경기를 보면서 자기였다면 어떻게 뛸지 생각하라고 했다.

생각은 못 하더라도 경기를 보지 않는다면 얼차려를 주겠다고 했다.

그때, 1학년 무리가 다가왔다.

“범철 선배, 이따 8시에 부루마블 하실래요?”

“좋지.”

“오늘 친선경기 하러 온 애들이 초코파이 주고 갔거든요. 그거 상품으로 걸려고요.”

“정말?”

박범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학년은 큰 임무를 해낸 병사 같은 표정으로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거기! 집중 안 해?!”

로베르토한테 혼쭐이 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흘깃거린 박범철이 키득거렸다.

빤히 보고 있던 정두식이 물었다.

“친해졌냐?”

“응, 방을 같이 쓰니까, 재밌는 애들이 많더라고.”

로베르토의 방 섞기도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의도를 모르는 정두식은 부럽다는 얼굴을 했다.

박범철이 그걸 보고 물었다.

“너도 태상이랑 같은 방이잖아. 거긴 나만 2학년이라 가끔 소외된다고.”

“태상이?”

정두식이 미간을 찌푸리며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주장 윤태상을 바라봤다.

2학년이 세 명밖에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나머지 2학년들은 모두 올해 인원을 채우기 위해 급하게 들어온 무리들이었고,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다녔다.

1학년부터 함께한 2학년은 윤태상, 박범철, 정두식 셋이었다.

박범철이 갸웃했다.

“훈련도 같이하던데 안 친하냐?”

“……한마디도 안 해.”

“진짜? 어떻게 그래? 태상이 성격 좋잖아.”

윤태상은 뒷담을 들어도 허허 웃고 마는 동기였다. 박범철이 진심으로 의문 섞인 얼굴을 하고 있자 정두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몰라, 쟤 요즘 이상해. 툭 하면 멍하니 있고…… 어어, 저거 봐.”

마침 송현준이 중앙에 있는 윤태상에게 패스했다.

윤태상의 발로 향하는 완벽한 패스, 그런데 윤태상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공은 상대팀에게 쉽게 넘어갔다.

“윤태상! 뭐 해!”

노태신의 외침에 윤태상이 고개를 숙였다. 윤태상은 이어서 송현준에게 말했다.

“미안…….”

“괜찮아요! 또 하면 되죠.”

송현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수비를 위해 진영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윤태상도 수비를 위해 움직여야 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정두식이 말했다.

“저거 봐.”

“쟤 왜 저러냐. 생각해 보니까 요즘 잔 실수가 늘긴 했네.”

“그러니까. 이제는 큰 실수도 하는데. 어어?”

송현준이 공을 빼앗더니 방금 한 말처럼 윤태상에게 비슷하게 패스해 줬다. 그런데, 윤태상은 또 공을 제대로 터치하지 못했다. 공은 멀리 튕겨서 이번에는 터치 라인 밖으로 나갔다.

송현준마저도 순간 당황했는지 멍청한 얼굴로 윤태상을 바라보았다. 정두식과 박범철은 말을 멈추고 똑같이 윤태상을 쳐다봤다.

“윤태상! 교체다!”

그때, 옆에서 크게 들린 로베르토의 목소리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윤태상은 그렇게 말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교체 사인이 떨어졌는데도 정신이 어디 팔렸는지 움직이지 않는 윤태상을 보며 축구부원들이 이상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로베르토는 윤태상에게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교체다! 나와!”

윤태상은 그제야 무슨 말인지 깨닫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경기장 밖으로 나왔다. 윤태상의 자리에는 다른 1학년이 들어갔다.

“야, 윤태…….”

정두식은 윤태상에게 이쪽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려고 손을 들었다.

하지만 윤태상은 교체로 나가자마자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황급하게 건물로 뛰듯이 걸어갔다.

로베르토, 정두식을 포함한 경기를 뛰지 않는 모두가 윤태상이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화장실이 급했나?”

“아마 그렇지 않을까.”

정두식의 말에 박범철이 동의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걸 무의식중에 깨닫고 있었다.

“아무튼, 쟤 이상하지.”

“네 말 맞네. 어디 아픈가?”

박범철과 정두식은 진지하게 윤태상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로베르토가 정두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두식과 박범철은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윤태상이 축구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동네에서 공을 차는 건 좋아했지만, 축구부 생활은 윤태상에게 있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돼서 집에만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혼자 하는 식당 일로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윤태상은 어린 시절부터 집에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회비를 내야 하고 축구화를 주기적으로 사야 하는 축구부에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던 윤태상에게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윤태상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있었는데, 체육 시간에 같이 공을 차던 축구부 소속 친구가 윤태상을 감독에게 추천한 거였다.

윤태상은 자존심 때문에 돈이 없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감독에게 가서 테스트까지 봤다. 그리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축구부에 바로 들어오라고 감독은 말했다. 그리고 감독이 부모님의 연락처를 물었다. 윤태상은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말했다.

-저…… 가난해서 축구 못 해요.

축구를 하고 싶은데 부끄럽기도 해서 윤태상은 손과 입술을 벌벌 떨었다.

그 당시 감독은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윤태상에게는 축구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사람이었다.

감독은 너 같은 애 한둘 보는 게 아니라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우리 축구부에서 가장 잘할 수 있으면, 돈 안 내도 되긴 하는데.

-정말요?

-근데 인정받을 때까지 회비는 내야지. 그건 나도 해결 못 해준다.

결국 윤태상은 어머니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한 달 회비를 받아서 축구부에 임시부원으로 들어갔다.

윤태상은 한 달 만에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잠도 줄여가면서 지독하게 연습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한 달째가 되는 내부 친선경기에서 윤태상은 6명을 제치고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감독은 처음의 퉁명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보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윤태상에게 앞으로 회비는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명문 축구부가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그 이후 윤태상은 전국대회를 치렀고, 이 팀은 처음으로 전국대회 예선을 뚫는 데 성공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윤태상은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길을 택한 게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감독은 자기 친구라면서 지상철 감독을 연결해 줬다.

충청도의 작은 도시에서 살던 윤태상이 대전에 있는 대영 중학교로 이사 오게 된 이유였다.

지상철은 그 감독보다 더 지독했다.

윤태상이 조금이라도 쉬려는 모습을 보이면 회비 면제를 들먹였고, 심지어 다른 부원들 앞에서까지 쟤는 회비를 면제받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입 부원이었던 윤태상은 당연하게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윤태상은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더 지독하게 노력했다. 축구를 더 하고 싶었고,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또, 축구는 팀 게임이었기 때문에 부원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웃기 시작했다. 자기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 도와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윤태상은 축구부 내에서 자기 위치를 공고히 했고, 주장직까지 받았다.

지상철도 어느 순간부터 회비 면제를 들먹이지 않고, 윤태상 너만 믿는다는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근데 왜…….”

코치와 감독이 쓰는 넓은 방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윤태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걘 대체 뭐야…….”

윤태상의 머릿속에서 송현준이 공을 차는 모습이 생생히 재생됐다. 박종혁과 슛 내기를 했을 때, 송현준이 찬 공은 윤태상이 상상하는 가장 이상적인 슈팅이었다.

그걸 따라 해보려고 수없이 연습했지만, 비슷하게만 되지 똑같이는 되지 않았다.

윤태상의 손이 벌벌 떨렸다. 윤태상은 왼손으로 떨리는 오른손을 붙잡았다.

“어떻게 하지…….”

불안했다.

자율 훈련 시간에 축구부원들은 송현준 주변으로 모인다. 경기장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송현준이 모든 걸 주도한다.

자신의 역할을 송현준이 다 가져가 버리고 있었다.

밉진 않았다.

그저, 좌절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머릿속이 깜깜했다.

전지 훈련 전부터 시작된 불안감이 이제는 너무 커져 버렸다. 최근에는 잠도 못 들고 뒤척거리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덜컥.

윤태상이 문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로베르토였다. 윤태상은 그제야 자기가 왜 이곳에 있었는지 깨달았다. 경기가 끝난 후 로베르토가 찾아와서 면담이라면서 감독 코치 방에 가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냐? 미안하다. 화장실 갔다 온다고 좀 늦어서…….”

왜 불렀을까. 윤태상은 자기가 오늘 경기에서 못해서 한 소리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감독님. 전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래서 로베르토의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응?”

“오늘은 죄송해요. 그런데 또 경기에 내보내 주시면 증명할게요.”

윤태상이 토해내듯 말했다.

“…….”

로베르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윤태상을 바라보았다. 윤태상은 지금 자기의 눈에 실핏줄이 잔뜩 서 있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태상은 로베르토를 바라봤다가 옆을 봤다가를 반복했다.

로베르토가 굳은 눈동자로 윤태상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태상.”

“예?”

“일주일 동안 출장 금지다.”

“예, 예?”

“너, 좀 쉬어야 할 거 같다.”

경기에 뛰지 말라니. 윤태상은 순간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에요, 뛸 수 있어요!”

“됐다. 쉬어라. 팀 훈련도 원하면 빼 주마. 나가 봐라.”

“아니.”

“나가라니까? 감독 권한으로 하는 말이야. 넌 쉬어야 해.”

“그…….”

“쉬어라.”

윤태상은 로베르토 앞에서 말을 몇 마디 삼키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윤태상은 도망치듯 방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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