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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94화 (75/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94화

점심을 먹은 후 쉬고 있었는데 로베르토가 날 호출했다. 코치 숙소에 도착하니 향하니 로베르토가 복잡한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방금 윤태상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한 윤태상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대화를 나누려고 불렀는데,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즉흥적으로 일주일 휴식을 명령했다는 것을.

로베르토가 마른세수하다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잘한 걸까 모르겠다…….”

“…….”

“윤태상의 컨디션이 별로인 건 알고 있었는데…….”

묵묵히 로베르토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태상이 모든 전생에서 이 시기에 슬럼프에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일단 미룬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대로 두면 뭔 일 벌어질 거 같은 얼굴이었단 말이지?”

“……그, 태상 선배 집에.”

윤태상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윤태상이 국가대표가 된 후 방송사에서 간혹 언급했기에 알고 있었다.

“당연히 전화해 봤지. 아무 문제 없다더라. 오히려 태상이한테 무슨 일 있어서 전화한 거 아니냐고 물어보셔서 말 돌리느라 진땀 뺐다.”

“……이상하네요.”

그런 적이 없었는데.

윤태상은 상수였다. 항상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줬다.

그렇다 보니 더 혼란스러웠다. 뭐가 또 꼬여서 이렇게 된 건지.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어떻게 할지 마음을 먹고 로베르토에게 말했다.

“저도 좀 알아보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응? 아니, 도와달라는 게 아니라 하소연 좀 들어달라는 거였는데. 축구 가르치는 거는 괜찮은데 이런 부분은 나도 자신 있는 건 아니라서…….”

“저도 걱정돼서요.”

진심이었다.

윤태상은 노태신과 동급으로 팀에 중요한 전력이었다. 솔직히 이 나이대에서는 전국구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데, 갑자기 그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가장 골치 아픈 건, 전생에서 나와 윤태상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둥글둥글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싸울 일도 없었고, 항상 일관된 경기력을 보여주곤 하니 깊게 엮일 일이 없었다.

전생을 떠올려 봤다.

-송현준 선수와 윤태상 선수는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던데 재미있는 일화 같은 거 없나요?

-어…… 현준이랑 제가 사이가 좋긴 했는데 둘 다 모범생 스타일이라서요.

-현준 씨는요?! 후배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잖아요.

-태상 선배가 워낙 착해서 딱히…… 하하.

-아하하…….

한 방송에 둘이 출연했다가 어색해진 상황이었다.

성인이 돼서 프로팀이나 국가대표팀에서 만났을 때도 중학교 선후배 관계 그 이상은 아니었다.

“걱정된다면 할 수 없네.”

로베르토의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여러 전생을 경험하면서 이런 상황을 한두 번 맞이해 보는 게 아니다. 언제나 차근차근하면 된다.

“선수만 알 수 있는 것도 있잖아요? 일단 뭐라도 알아보고 얘기해 드릴게요.”

“좋아.”

* * *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숙소에서 자율 훈련 준비를 하던 정두식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자기 눈에만 그게 보이는 게 아닌지 다른 축구부원들도 정두식이 바라보는 곳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윤태상이 이불을 깔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노태신이 어디 아프냐고 묻자 힘없이 그렇다고 대답한 이후로 방 안의 모두가 다들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가자.”

노태신과 3학년들이 자율 훈련을 위해 떠났다.

“현준아? 안 가?”

“가야지.”

송현준을 비롯한 1학년들도 움직였다. 송현준은 마지막까지 윤태상을 쳐다보다가 방을 떠났다.

그렇게 방에 정두식과 윤태상만 남았다.

정두식은 축구화를 챙겨 품 안에 안은 채로 윤태상에게 말을 걸었다.

“야, 뭔 일 있냐?”

윤태상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힘없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니…….”

“훈련 안 해? 너 몸살 걸렸을 때도 했었잖아.”

“아아, 1학년 때?”

“엉.”

정두식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로가 신입 부원이었을 때, 윤태상은 유난히 튀었다.

정두식은 그게 지상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윤태상이 특혜를 받고 있으니 1학년 중에 제일 잘해야 한다는 말을 툭하면 했기 때문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1학년도 있었고, 쟤가 뭔데 특혜를 받냐는 1학년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윤태상의 이미지는 안 좋아졌었다.

하지만, 정두식만큼은 윤태상을 다르게 봤다.

윤태상은 순한 겉모습과는 달리 지독한 독종이었다. 누구보다 일찍 훈련을 시작하고 누구보다 늦게 훈련을 마치곤 했었다.

오죽하면 윤태상은 훈련을 하다가 두 번이나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중 한 번은 정두식이 직접 병원에 데려갔었기에 윤태상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축구부 안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학년들이 윤태상을 비웃을 때도 정두식은 꿋꿋하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정두식은 윤태상이 힘없이 누워 있는 게 이해 가지 않았다.

윤태상이 힘없이 말했다.

“감독님이 금지래…….”

“금지? 왜?”

“쉬어야 한대.”

정두식은 윤태상의 얼굴을 제대로 살폈다.

창백했고 눈에는 실핏줄이 서 있었다. 쓰러졌을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유난히 지친 것 같아 보였다.

“그래 보이긴 하네.”

정두식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태상은 대답 없이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썼다. 정두식이 바로 떠날 줄 알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대화를 더 하기 싫다는 표현인지.

정두식은 가만히 서서 윤태상을 바라보다가 방 밖으로 나섰다.

오늘 훈련 할당량은 채워야 했다.

“아이 씨, 깜짝이야. 송현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1학년 에이스 송현준과 눈이 마주쳤다.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것 같은 송현준이 멋쩍은지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놓고 나간 게 있어서요.”

“그러냐.”

송현준이 방으로 들어갔다. 둘이 혹시 무슨 얘기를 나누지 않을까 궁금해서 정두식은 조금 기다려 보려고 했지만, 송현준은 금방 나왔다.

“선배, 같이 훈련하실래요?”

오히려 송현준이 정두식에게 말을 걸었다.

* * *

야간 조명이 비추고 있는 잔디밭에는 축구부원들이 각자 무리 지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벤치 앞에는 정두식과 내가 마주 보고 서서 느릿하게 패스를 주고받고 있었다. 정두식이 말했다.

“너 무릎 아프다면서.”

“돕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돕는 것도 도움이 돼요.”

“참나…….”

정두식 빤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넌 차암 성격 좋다.”

“하하.”

“난 그런 거 거절 안 해. 태상이가 없으니까 도움 좀 받아 보자.”

정두식의 퉁명스러운 말에 웃음이 나왔다.

송현준이 기억하기로 윤태상은 특별히 친한 친구가 없었다. 그나마 정두식과 교류가 있었다. 그래서 정두식과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훈련을 돕고 싶다는 건 진심이었기에 먼저 훈련 얘기부터 나눴다.

“자율 훈련 때 뭘 중점으로 하세요?”

“뭐…… 그냥 전체적으로 싹 하지.”

“괜찮네요. 그럼 뭘 도와드릴까요?‘

“여러 높이로 패스를 줘 봐라. 무릎도 안 좋은데 뛰게 하면 나만 나쁜 놈 되잖아.”

“아하하, 그런 것까지 걱정하실 필요 없는데. 일단 받으시죠.”

정두식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일단 바닥에 깔리는 패스.

“이번엔 머리.”

발끝으로 톡 찍어서 정두식의 머리로 보내는 패스. 정두식은 이마로 단숨에 공을 돌려줬다.

“다시 머리.”

또 한 번 톡 찍어서 보내니 이번에는 한 걸음 물러나 가슴으로 받는다.

“키야, 진짜 정확하네. 천재 자식.”

정두식이 패스를 돌려주며 말했다. 대답 없이 웃었다.

그렇게 여러 방식으로 패스를 줬고, 정두식은 여러 상황을 상정해서 패스를 받아냈다.

“속도도 조절해 드릴까요?”

“그것도 돼?”

“당연하죠.”

완벽한 정확도로 빠른 패스와 느린 패스를 섞기 시작했다. 정두식은 진지하게 훈련에 집중했다.

그렇게 30분이 순식간에 흘렀다.

“잠깐 쉬자. 땡큐.”

“네. 물 드실래요?”

“힘이 남냐……?”

“제자리에서 했으니까요? 발목만 썼고.”

“대단하다. 줘 봐.”

정두식이 주저앉은 채로 물을 꿀꺽꿀꺽 소리 나게 마셨다. 그리고 남은 물을 내게 건넸다. 물을 두 모금 정도 마시고 있으니 정두식이 말했다.

“괜히 1학년들이 너한테 몰리는 게 아니네. 훈련이 잘되는 느낌이 드는데.”

“축구부 쉴 때는 훈련법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거기서 다 배운 거예요.”

“……그래? 대단하네.”

정두식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았다. 내 용건은 정두식의 얘길 들은 이후에 말하기로 했기에 차분하게 기다렸다.

“그런데, 너 1학년들한테 딱 필요한 조언만 해 줬다면서. 꿀팁이라면서.”

3학년들 자극하겠다고 대놓고 하기도 했고, 박종혁과 친하기도 하니 들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랬죠.”

“……나한테는 뭐 없냐?”

사실 1학년뿐만이 아니라 물어보면 다 대답해 줬었다.

최근에는 노태신도 물어본 적이 있어서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강한 슈팅보다는 감아 차는 슈팅을 더 연습하라고 조언해 준 적이 있었다. 타고난 근력이 달라서 노태신에게는 정확한 슈팅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런 조언이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나오는 거다. 정두식은 중학교 이후에 축구를 그만뒀다.

그리고 뭣보다 정두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었다.

“조언할 게 없어요. 두식 선배는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

정두식이 씁쓸하게 웃었다.

“칭찬인데 후벼 파인다?”

“……왜 후벼 파여요. 정말로 두식 선배는 필요한 것만 딱딱 하고 있는걸요.”

“더 발전할 게 없다는 얘기잖아. 내가 모를 줄 아냐?”

핵심을 바로 찔러올 줄 몰랐기에 속으로 당황해서 말을 삼켰다. 정두식의 시니컬하면서도 자조적인 성격은 예상치 못하게 날 당황스럽게 만들곤 하는데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나 같이 재능 없는 놈이 훈련하는 거 보면 한심하지 않냐?”

“……아니, 뭔 그런 소릴 해요.”

“맞잖아. 거짓말할 필요 없어. 난 그런 거로 안 갈궈.”

“알죠…… 종혁이가 선배 칭찬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요.”

“뭐? 그 자식이?”

정두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유난히 슬프게 들렸다. 전생에서도 정두식은 항상 이랬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말문이 막히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재능 있는 사람이었고, 정두식은 아니었으니까. 정두식은 그걸 일찍 깨닫고 받아들인 케이스였다.

그래도 정두식은 강한 사람이었다. 항상 극복해 내니까.

그렇기에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한심하진 않아요.”

“그러냐.”

“진지하게 말하면 멋있죠. 재능이 부족하면서 노력한다는 건…… 선배랑 같은 실력을 갖고 있는데 더 재능 있는 사람보다 정신력이 더 강하다는 뜻이니까요.”

“뭐? 뭐라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하냐.”

“그냥 선배 정신력이 대단하다고요.”

“그게 왜 그렇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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