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99화
전지훈련 마지막 날, 마지막 팀 훈련이 끝났다.
저녁을 먹기 전에 습관대로 리프팅 연습을 하러 가려던 선수들을 김정빈 코치가 불러 세웠다.
“얘들아~ 감독님이 오늘은 리프팅 연습 안 해도 된 대. 몸무게만 재고 저녁 시간까지 자유롭게 보내래.”
“몸무게요?”
몸무게나 키를 재는 건 수시로 있었던 일이었기에 축구부원들은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 김정빈은 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줄을 선 선수들의 몸무게를 확인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줄을 서고 있던 정두식이 자기 앞에 선 박범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까지 훈련할 줄은 몰랐다니까?”
“솔직히 하루는 쉴 줄 알았지.”
“맞아.”
둘이 투덜대고 있자, 정두식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정두식의 뒤통수를 툭 치면서 말했다.
“매일 훈련해야지. 이 자식이, 빠져 가지고.”
정두식이 돌아본 곳에는 노태신이 있었다. 언제 서 있었던 건지. 정두식은 노태신의 얼굴에 장난기가 서린 걸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투덜거렸다.
“너무 하잖습니까. 마지막 날은 빠따 새끼도 놀게 해줬는데.”
“난 걔보다 지금 감독님이 좋은데. 설마 빠따가 좋냐?”
노태신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함정에 빠진 걸 깨달은 정두식이 고개를 홱 돌리며 투덜거렸다.
“아니, 그 새끼가 저 버린 거 알잖습니까. 그리고 로 감독님은…… 괜찮긴 하죠.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빼면. 싫다는 게 아니라 마지막 날은 좀 널널하게 하면 안 됐나~ 이런 의미로도 말 못 합니까.”
“이게 대드냐.”
“죄송합니다.”
“아니, 바로 사과하면 재미없잖아.”
노태신의 불평에 정두식이 웃었다.
“박범철 68㎏, 다음. 정두식.”
“네.”
정두식은 대화를 멈추고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3초 정도 지나니 김정빈이 말했다.
“정두식 70㎏, 다음.”
이어서 노태신이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정두식은 깍지를 켠 채로 뒤통수를 잡고 전지훈련 마지막 날인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다가 건물 옆에서 나오는 김진호 코치를 발견했다.
김진호 코치는 훈련 중간에 차를 타고 시내로 나갔었다.
김진호 코치가 정두식을 발견하자마자 말했다.
“열 명만 데리고 와 봐, 치킨이랑 이것저것 사 왔는데 손이 부족해.”
“정말요?”
저녁때가 돼서 배가 정말 고팠기에 정두식은 곧바로 움직였다. 마지막 날에 아무것도 없다는 아쉬움은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정두식은 손을 확성기처럼 모으고 소리쳤다.
“1, 2학년 집합! 치킨이랑 피자 가지러 갈 사람!”
* * *
운동부 학생들은 잘 먹는다.
씨름부나 유도부 같은 덩치들이 많은 운동부가 최고라지만, 축구부도 일반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먹는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로베르토는 마지막 날 회식을 위해서 지갑을 털털 턴 것 같았다.
내 옆에 앉은 티알이 열심히 자기 팔뚝만 한 칠면조 다리를 뜯고 있었다.
“……맛있냐?”
“우, 우움. 쩝. 개 맛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마침 김진호 코치가 근처에 있었다.
“진호 형, 대체 칠면조는 어디서 구해온 거예요?”
김진호가 로베르토의 눈치를 봤다. 로베르토는 윤태상과 이모님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치킨집에서 팔더라. 감독님이 치킨이랑 피자는 기본이고 족발에 탕수육에…… 아무튼 먹을 수 있는 건 종류별로 다 사 오라고 했거든. 가급적이면 달고 짜고 맛있는 거로.”
“대단하네요…… 고생하셨어요.”
“올, 알아주는 거냐?”
“당연하죠.”
인원이 부족하고 시내와의 거리도 멀어서 음식이 좀 식긴 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맛도 있고 종류도 다양해서 좋았다. 너무 식은 음식은 틈틈이 이모님이 적당히 찌거나 볶아서 더 맛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로베르토의 대쪽 같은 훈련 방침에 평소와 같은 저녁을 예상했던 축구부원들은 이 풍성한 기습공격에 행복해했다.
그만큼 분위기가 좋아졌기에 마치 술자리처럼 농담도 오고 갔다.
“감독님! 두식이가 할 말 있답니다!”
“뭔데?”
노태신이 손을 번쩍 들었고, 정두식은 당황했다가 그냥 질러 버렸다.
“오늘까지 똑같이 훈련하는 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즐겁게 하자면서요!”
정두식의 외침에 축구부원들은 습관적으로 움츠러들었다. 감독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건 그들의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로베르토는 여유 있게 받았다.
“훈련을 즐겁게 하자는 얘기지~ 겨울 전지훈련도 기대해.”
“와…….”
로베르토의 뻔뻔함에 정두식은 말문이 막혔고, 축구부원들은 로베르토를 신기해했다. 로베르토가 윤태상과 정두식과 좀 더 친해지긴 했지만, 다른 부원들은 아니었으니까.
다들 로베르토를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이 흐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 눈앞에 놓인 치킨을 먹는 데나 집중하기로 했다. 티알은 오른쪽에서 묵묵히 먹고 있었고, 우리와 동떨어진 친구, 이민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로베르토와 축구부원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지?”
“응, 분위기 좋네. 새 팀도 이런 분위기면 좋겠다.”
“괜찮을 거야.”
사실 나도 몰랐지만, 덕담 하나 건넸다. 그리고 이어서 먹는 치킨,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엉치살을 먹고 있으니 이게 천국인가 싶었다.
이런 자극적인 음식을 평소에 피하다 보니 행복도가 몇 배였다.
“나도 경기 많이 뛰고 싶었는데…….”
이민우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감상에 잠겨 있었다.
“그 정도면 많이 뛰었잖아.”
이민우 덕에 친선경기를 많이 치를 수 있었고, 이민우는 최소 30분씩은 뛰었다. 다만 매번 아쉬워했다. 풀타임을 뛰지 못했으니까.
“그래도 좋았어. 다들 착하고 재미있더라.”
이민우의 소감이 마음에 들었기에 덕담을 또 했다.
“가서 잘할 거야. 연락 가끔 하고.”
이민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연락 안 해도 알걸? 기사에 나올 테니까.”
“와, 건방진 거 봐. 아무튼, 가기 전에 점심이나 먹자. 내가 맛있는 데 앎.”
“좋아 좋아. 아, 그 여자도 오냐?”
이민우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췄다.
“그 여자? 아, 김채아?”
모르겠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 그때 진짜 무서웠어. 네가 안 볼 때 째려보는 게…….”
“……아하하, 그랬냐. 어, 감독님이 한마디 하려고 하나 보다.”
마침 로베르토가 자리에서 일어난 덕분에 화제를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었다.
이민우도 로베르토를 보기 시작했다.
“다들 수고 많았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훈련이라는 걸 너희들도 잘 알 거다.”
로베르토가 감독이 된 건 한 달 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분위기를 확실하게 휘어잡았다. 뭣보다 친선경기의 결과나 내용이 다 좋기 때문에 축구부원들은 로베르토를 신뢰하고 있었다.
아무튼, 잘 됐다.
“길게 말 안 한다. 다들 맛있게 먹고, 개학 날까지 휴가다.”
“휴가요?”
“정말요?!”
“당연히 또 할 줄 알았는데…….”
“날 뭐로 보는 거야.”
로베르토의 불평에 식당은 웃음바다가 됐다. 로베르토는 어느새 표정을 바꿨다. 악마 같은 미소였다. 난 로베르토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
“다만.”
로베르토가 운을 띄우자 하나 둘 조용해지다가 전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깔렸다.
“휴가는 휴가지만,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이러면 안 된다. 아까 몸무게 잰 거 기억하지?”
“예.”
“그것보다 3㎏ 이상 쪄 있으면 주전이라도 살 빼기 전까지는 훈련에서 빼고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이번에 했던 체력훈련 계속 시킬 거다. 알겠지?”
“아니, 감독님…….”
“휴가 주고 먹지 말라니…… 그게 뭡니까?!”
“너무합니다!”
원성이 쏟아졌음에도 로베르토는 단호했다.
“예외는 없다. 이상.”
당연하게도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전생에서 여러 번 본 연설이고, 처음에는 나도 분개했지만 축구 선수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급격한 체중 변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뭣보다, 3㎏는 그렇게 빨리 찌지 않는다.
로베르토가 다시 일어났다.
“하루에 한 번은 먹어도 상관없다. 우리들의 몸은 생각보다 살이 빨리 찌지 않는다.”
거기에 성장기인 중학생들이다 보니 더 안 찐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이 프로가 될 때를 대비해서 스스로 체중 관리를 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한 선수가 아닌 진짜 프로 선수들이라면 체중 관리를 확실하게 하거든. 설마 5일짜리 체중 관리도 못 한다는 건 아니겠지?”
몇몇 선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습관적으로 알아서 잘한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짜 프로 선수들’이라는 말에 현혹된 축구부원들의 불만이 슬슬 줄어들기 시작했다. 로베르토의 도발도 일품이었다.
축구부원들은 전부 넘어가 버렸다.
“그러니까 오늘은 즐겨도 된다. 오늘 아침이랑 점심은 일부러 칼로리를 줄였으니까 맘껏 먹어라. 대신 내일 아침은 가볍게만 줄 거다. 다들 알겠지?”
“오오!”
젓가락을 내려놓았던 축구부원들이 환호했다.
“그럼 끝! 다들 맛있게 먹어라!”
“예!”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다들 힘차게 대답했다. 전생과 다른 모습을 보는 건 신선했지만, 똑같은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픽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태상 선배 자리에 맛있는 게 있어서.”
로베르토와 윤태상의 자리에는 수육과 빨간 보쌈 무김치가 있었다. 저건 못 참는다…… 도 맞고, 윤태상에게 할 말도 있었다.
로베르토가 여러 테이블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윤태상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이모님도 돌아다니시면서 식은 음식들을 데워줬다. 다들 먹으라고 했지만, 다들 자기 아들들이라면서 더 챙겨주고 싶다고 하셨다.
“주장님. 앉아도 되죠?”
나도 로베르토에게 다 맡긴 건 아니었다.
윤태상을 위해서 준비한 게 있었다. 로베르토와 부원들을 보며 웃던 윤태상이 깜짝 놀라서 내 쪽을 봤다.
“뭐야, 현준이잖아. 앉아. 그리고 둘이 있을 때는 그냥 형이라고 불러.”
“그래도 돼요? 태상이 형?”
“물어보면서 말하네.”
윤태상은 그 어떤 전생보다 심적으로 편해 보였다. 여기에 작은 날개라도 달아준다면 미래가 기대됐다. 국가대표가 될 가능성이 있는 동료의 실력이 느는 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형, 내일부터 5일 동안 휴가잖아요. 첫날에 시간 있어요?”
“바로 고향 가려고 했는데…….”
윤태상이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밀어붙였다.
“중요한 일이에요. 부모님도 좋아하실걸요?”
로베르토와 윤태상, 정두식의 면담이 있었던 날에 나는 아르드의 사장 신정우에게 로베르토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은 안부 전화 한다고 핑계 대면서 빌렸다.
아무튼, 신정우에게 전화해서 요즘 잘 지낸다는 얘기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본론을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정도는 아니에요. 하지만, 국가대표급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배예요. 이 정도면 마케팅적으로 쓸 만하지 않을까요? 저는 해외, 선배는 국내를 맡으면 되잖아요.”
윤태상의 어려운 집안 사정을 신정우에게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신정우의 대답은 의외였다.
-에휴…… 안부 전화인 줄 알고 좋아했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 뱃속에 구렁이가 든 놈. 네가 말하는 선배, 윤태상이지?
그 순간 뇌 정지가 왔었다.
-나 로베랑 친한 사이인 거 모르냐. 로베가 진작 물어봤고, 로베도 괜찮다고 해서 얼굴 보고 정할 생각이었다.
“헉.”
-헉은 무슨. 아무튼, 윤태상이랑 같이 찾아와라. 전지훈련 얘기를 듣긴 했는데, 너희가 전국대회 4강, 8강 팀들을 상대로 선전했다는 건 직접 들어보고 싶으니까.
“당연히 가죠. 휴가 첫날에 갈까요?”
-일정 비워두마.
로베르토에게 물어보니 아직 윤태상에게 얘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감독님도 추천해 줬어요. 이상한 거 아니니까 같이 가봐요.”
“아니, 뭔데.”
“좋은 거예요.”
“……그렇게 말하니까 점점 더 수상하잖아.”
윤태상의 말대로 옆에서 보면 이상한 대화처럼 보일 거 같았다.
“알겠어요. 그럼 다른 친구나 선배들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윤태상의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기업의 후원을 받는 거예요. 저도 받고 있는데, 감독님이 형도 추천했어요.”
윤태상이 주변을 보고 작게 말했다.
“후원? 그게 뭐야?”
“축구화 같은 장비도 공짜로 주고, 매달 용돈도 줘요.”
“……그런 게 있어?”
윤태상은 정말로 놀란 것 같았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계기나 선이 없다면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당연하죠. 대신 실력이 출중해야 해요.”
“……아. 내가 괜찮을까.”
윤태상이 날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당연하죠. 우리 팀의 주장인데요.”
이어지는 내 말에 윤태상은 픽 웃었다.
윤태상과 내일 따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리고 나와 윤태상은 시끌벅적한 전지훈련 마지막 날의 파티에 참가했다.
맛있었고, 즐거웠다.
뭣보다 식사가 끝나고 하나둘 나와서 몸이라도 푸는 모습이 흐뭇했다.
여전히 아직 어색한 사이들도 있었지만, 점점 하나의 팀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학기가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