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00화
초인종을 눌렀다.
“다녀왔습니다!”
“왔니!”
말하기가 무섭게 육성으로 대답이 들렸고, 뛰는 것 같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덜컥하고 문이 열렸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리 아들!”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래. 빨리 들어오렴.”
“네.”
어제의 파티가 끝나고, 다 같이 가볍게 몸을 푼 후 밤늦게까지 원카드를 비롯한 여러 보드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샐러드만 챙겨 먹고 버스를 탔다. 숙소 청소도 잊지 않았다.
버스에 타자마자 밤새 놀았던 축구부원들은 전부 잠들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한참 뒤에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고 우리는 대영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해 있었다.
로베르토의 개학 날까지 휴가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놀러 온 몇몇 학생들이나 부원들을 마중 나온 부모님들이 있든 말든 환호성을 지르고 해산했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바로 왔다.
“어, 뭐야? 형이 웬일이야?”
어머니나 동생 현지는 용잠군에 놀러 갔을 때도 봤지만, 형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9월 모의고사가 코앞이었기에 새벽에 학교에 가고 자정이 돼서야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 중이었으니까 당연했다.
지금은 대충 오후 두 시 정도. 오늘은 월요일.
야간자율학습이 아니더라도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학교는 오늘부터 방학. 이번 주 내내 학교 전체 페인트칠한대.”
“그럼 도서관 가야지. 수험생이 빠져 가지고.”
농담인 걸 안 형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받아쳤다.
“쉬는 날인데?”
“월요일이었나?”
“올, 도서관 닫는 날도 알아?”
형은 정말 놀란 거 같았다. 참고로 형은 독서실에 안 간다. 도서관에 못 가면 집에서 공부하는 편이었다.
아무튼, 도서관 닫는 날도 모르냐는 핀잔에 나는 당당하게 반박했다.
“형, 나 1학기 때 개 쩔었던 거 몰라?”
“너 커닝했지?”
“형!”
형의 한방은 강력했다. 발끈하자 형이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커닝한 거였어?!”
옆에서 현지가 충격받았다는 듯 소리쳤다.
“말이 되냐!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데. 근데 넌 학교 안 가고 왜 여기 있냐?”
“오빠 바보야? 방학이잖아~.”
“아.”
형도 방학이면 초등학생도 당연히 방학인 건데. 당황해서 그런가 머리가 순간적으로 안 굴러갔다.
순간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들의 대화를 보고 옆에서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남매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행복함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마침 나와 눈이 마주친 어머니가 말했다.
“모처럼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밥 먹겠네. 현준아, 시켜 먹을래? 한 달 동안 고생했으니까 네가 먹고 싶은 거로.”
“찜닭 해주면 안 돼요? 엄마가 해준 거 먹고 싶은데.”
정말 먹고 싶기도 했고,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활짝 웃으면서 팔을 걷으셨다.
“좋아, 모처럼 솜씨 좀 발휘해야겠네.”
“오오. 그럼 저는 이제…….”
짐을 정리해야지. 대화를 마무리 짓고 빠지려는데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우리 아들, 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게 말이 돼?”
갑자기 목 뒤가 서늘해졌다.
“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어머니의 얼굴을 봤는데, 관자놀이에 핏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착시겠지.
원래는 3일에 한 번씩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반성해야 한다.
“잘못했습니다!”
“……바로 사과하니까 재미없네. 앞으로 전화 잘해.”
어머니는 그렇게 투덜대고는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나는 어머니의 찝찝한 감정을 지워드리기 위해 애교를 듬뿍 담아 말했다.
“엄마, 나 배고파요.”
“이게, 말 돌리기는. 점심은 이미 준비하긴 했는데 좀 데워야 하니까 잠시만 기다려. 짐은 거기 대충 두고 밥 먹고 정리하고.”
한 방 더 필요할 거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했다.
“역시 엄마. 사랑해요.”
“어머, 이런 말도 하고. 다 컸네?”
어머니의 기분이 금세 좋아진 게 보였다.
“금방 해줄게~.”
“네, 그럼 짐 정리하고 있을게요.”
“빨랫감은 따로 빼놓고, 흰옷도 따로 모아 놓고.”
“네!”
어머니가 주방으로 향했고, 나는 맨 채로 방으로 향했다. 그때, 어머니가 주방에 들어가기 직전 고개를 돌렸다.
“근데, 재미있었니?”
잠시 생각해 봤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많은 경기를 했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어머니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사라졌다.
“형이랑 현지는 점심 먹었지?”
“응.”
“맞아. 오빠 혼자 먹어야 해.”
“어쩔.”
장난치는 현지에게 똑같이 돌려줬다.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현지는 형에게 딱 달라붙으면서 말했다.
“큰오빠, 나쁜 오빠 냅 두고 나랑 주니어네이버하자.”
“그럴래?”
“같이해 줄 거야?”
“그럼~ 우리 현지가 말하는데.”
“히히.”
화기애애한 남매다. 나 빼고 그러고 있는 걸 보니 참.
현지는 형 몰래 나한테 한쪽 눈 밑을 손가락으로 내리면서 혀도 내밀고 형의 방 쪽으로 향했다.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려는데 현지를 따라가던 형이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손을 못 들었다.
“야, 축구부는 어때? 할 만하냐?”
형은 진지한 사람이다. 나는 솔직한 심경을 얘기했다.
“형이 공부하는 거랑 비슷해. 재밌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계속할 수 있을 거 같아.”
형은 작게 소리 내서 웃었다.
“애늙은이처럼 말하긴, 그럼 됐다. 쉬어. 이따 저녁 때 보자.”
“응~ 현지 저거랑 잘 놀아줘.”
“저거라니!”
형의 방으로 들어간 현지가 소리를 질렀다. 나와 형은 서로 눈을 마주친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 없이 웃었다.
* * *
스트레칭을 하던 도중 무릎에 뻐근한 통증이 왔다.
“아으윽!”
괴상한 비명을 지르면서 동작을 멈췄다. 무릎이 살짝 욱신거리긴 했지만, 잠시 기다리니 평소와 비슷한 상태가 됐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 장면을 본 사람이 있을까 봐. 부끄럽잖아.
여름 방학인 데다가 축구부도 휴가인 대영 중학교 운동장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몇 명만이 운동장을 걷고 있었다. 그분들은 걷는 데에 열중한 나머지 나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무릎에 자극이 가는 걸 최대한 피하면서 스트레칭을 다시 시작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 7시.
아무리 휴가라도 오전 훈련은 해야 했다. 로베르토가 명령한 휴가였기에 강하게는 못하지만, 가볍게라도 말이다.
사람의 몸은 조금만 방심하면 쉬려고 한다.
그렇기에 나중에 프로 팀에 가서 경기 일정에 맞춰서 컨디션을 조정할 때까지 이 일정한 루틴은 유지해야만 한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공을 몰고 가볍게 달렸다. 이어서 리프팅을 살살 했다.
“현준아~.”
그때,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품이 넓은 곤색 체육복을 입은 정미영 담임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리프팅하던 공을 손으로 잡고,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현준아~ 방학 잘 보냈어?”
“네.”
“표정이 밝네! 축구부 생활은 어때? 걱정 많이 되는데 구경 갈 수도 없고. 저기 전라도에서도 남쪽으로 갔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답했다.
“선배들도 착하고, 동기들도 잘해줘서 너무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요.”
“그래? 너무너무 잘됐다!”
선생님은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줬다. 이어서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장난기 많아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로 팔꿈치를 이용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현준~ 저번 주에 들었는데 친선경기에서 전국대회 강호들을 다 박살 냈다면서?”
“어떻게 아세요?”
선생님이랑 로베르토는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 했을 텐데.
“지난주에 이사장님이랑 선생님들이랑 다 같이 단합대회 다녀왔거든. 거기서 이사장님이 몇 번을 얘기하시는지.”
“아아.”
이사장은 로베르토와 매일, 아니, 하루에 세 번은 통화하니까 그럴 만했다. 얼마나 관심이 많으신지 이사장을 상대하는 로베르토가 몇 번이나 불평할 정도였다.
“다른 선생님들은 지겨워했지만…… 선생님은 다르지! 종혁이랑 현준이랑 태영이가 잘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 있지? 특히 현준이는 막, 괴물이라고 소문났다고.”
“에이, 그 정돈 아니에요.”
“현준이 진짜 대단한 선수 되는 거 아니야? 막 국가대표 되고.”
그냥 웃었다.
한 달이었지만, 선생님을 만나니까 그냥 얘기만 하고 있어도 재미있었다.
선생님의 칭찬과 장난을 열심히 들어주던 나는 선생님의 말이 점차 줄어들자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선생님은 방학인데 왜 나오셨어요?”
“나? 나만 나온 게 아니라 원래 일주일 먼저 나와서 수업 준비하시는 분들 많아.”
“오올, 열심히 하시네요.”
“제자가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
“저는 더 열심히 할게요.”
“이게?”
선생님은 까르르 웃었다.
“축구부는 전국대회가 목표지? 전국대회는 내년에야 열린다던데…….”
“맞아요. 아직 꽤 남았어요. 내년 겨울에서 봄 넘어가는 때쯤? 매번 달라져서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아하.”
시간이 꽤 있었다. 전지훈련에선 팀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봤으니, 2학기부터 겨울 방학까지 우리는 학교생활과 축구부 활동을 병행하며 그 가능성을 천천히 끌어내며 탄탄하게 다질 것이다.
“현준아, 내가 성적 떨어져도 봐줄게.”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말에 당당하게 답했다.
“안 떨어질걸요? 제가 반 평균 책임질게요.”
“오오? 나 기대해도 되는 거야?”
“당연하죠.”
선생님이 재미있다는 듯 다시 한번 까르르 웃었다.
“현준아, 오늘 몇 시까지 있니? 만약에 점심때까지 있을 거면 맛있는 거 사줄까?”
평소였다면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얻어먹어도 괜찮았을 거다.
“아…… 죄송해요. 오늘 선약이 있어서요.”
“그래?”
선생님은 아쉬워했다. 설명을 덧붙였다.
“풋살대회에서 만난 친군데 이번 주에 브라질로 떠난다고 해서 송별식 해야 하거든요.”
자세히 설명하자 선생님이 오히려 안타까워하셨다.
“아이고, 송별식 잘 해줘.”
“네, 그러면 학교에서 뵐게요. 아니면 내일 사주세요.”
“내일? 내일도 나오니?”
“저는 몸이 아프거나 회복해야 하는 날 아니면 하루도 안 빼먹고 해요.”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가 어른인지…… 좋아, 그러면 내일 사줄게.”
오늘 점심도 맛있게 먹고, 내일 점심도 그러게 생겼다. 식단을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건물로 돌아가는 선생님을 배웅했다.
* * *
오전 훈련을 가볍게 마친 나는 집에서 쉬다가 시간에 맞춰서 시내로 나왔다.
체육복이 아닌 청바지에 흰색 티를 입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대전 시내에 있는 한 안경점 앞.
나처럼 혼자 서서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 안경점은 건물이 독특하면서 멋지게 생겼고, 특유의 로고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에 만남의 장소로 자주 활용되는 곳이었다.
“빈정빈치 다빈치~”
중독성 있는 로고송을 흥얼거리며 거리를 구경했다. 여러 번 살았음에도 크게 이질감을 느끼진 않았다. 표지판이나 간판이나 버스정류장 같은 걸 제외하면 2022년과 크게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따지자면 사람들 손에 스마트폰이 없는 게 어색했다.
나도 손이 괜히 심심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상대의 검지가 내 볼을 쿡 찔렀다.
“…….”
싱글거리는 이민우가 있었다.
“뭐하냐…….”
뭔가 기분이 나빠져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투덜대자 이민우는 그저 해맑게 대답할 뿐이었다.
“장난! 맛있는 거 사준다며. 어디 갈 거야?”
“그래, 사줘야지.”
아르드에서 용돈을 받은 게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웠다. 오늘은 중학생이 맛볼 수 있는 최대 호화 코스를 탐방할 계획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한 명 더 와야 하는데.”
“한 명이 더 온다고?”
“송현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이민우가 날 먼저 바라봤다. 이민우의 눈에는 ‘설마?’라는 단어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제 전화 통화를 한 상대가 이민우와 점심을 먹는다는 얘기를 듣기 무섭게 자기도 가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이었다면 거절했겠지만, 이민우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았고.
“이민우, 브라질 간다며!”
간만에 김채아랑 잡담도 하고 싶었다.
전지훈련 때문인지 까무잡잡해진 김채아는 이민우의 어깨를 짝 하고 쳤다.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