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02화
오늘은 개학일.
방학이 끝나고 전교생이 학교로 돌아오는 날이면서 축구부가 훈련을 재개하는 날이었다.
나를 포함한 축구부원 전원은 새벽 6시부터 운동장 스탠드 앞에 모여있었다.
“…….”
그런데 축구부 전원이 모여있음에도 침 삼키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닥에 놓여 있는 체중계와 그 앞에 서 있는 로베르토를.
“윤태상.”
로베르토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윤태상이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3초 후, 로베르토가 말했다.
“통과, 오른쪽으로 가라.”
윤태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시에 로베르토가 서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선 축구부원들이 탄식했다.
“아아아아.”
“태상이가 여기로 오겠냐.”
“우리 편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는데.”
그들 중에는 노태신도 있었다. 노태신이 한마디 하자 로베르토가 도끼눈을 떴다.
“편? 이것들이 정신 못 차리지.”
왼쪽에 서 있던 축구부원들은 합죽이가 됐다.
윤태상이 막 합류한 오른쪽에 서 있던 축구부원들이 몇 마디 거들었다.
“그러니까 잘했어야지.”
“태상이 어서 오고.”
로베르토는 오른쪽에 선 축구부원들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그들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로베르토의 앞에 선, 나를 포함한 아직 몸무게를 재지 않은 축구부원들을 바라보았다. 주변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어제 로베르토가 숙소에 있는 체중계를 전부 치워 버렸기에 체중을 모르는 부원들이 대부분이라 불안해하는 것이다.
“참나…… 생각보다 탈락자가 많아서 어이가 없네……. 다들 뒤로 숨지 말고 빨리빨리 나와! 엄태영!”
“예!”
“올라가!”
“예!”
로베르토는 지금 휴가 전 약속대로 몸무게를 재고, 탈락자들과 통과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었다.
숙소로 복귀한 날은 어제였지만, 오는 시간이 제각각이었기에 로베르토는 오늘 새벽에 몸무게를 재겠다고 공지했다. 그리고 식사를 거르는 걸 막기 위해 직접 감시까지 했다. 식사를 거르면 몸에 안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살이 찐 것 같은 축구부원들은 밤늦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는 등 발악했지만, 야속하게도 오늘 아침이 오고야 말았고 지금은 하나하나 처형식이 진행 중이었다.
그중 3학년 에이스 노태신이 3.2㎏ 나 쪄서 오는 바람에 로베르토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던 게 백미였다.
“현준, 살려 줘라…….”
그리고 내 뒤에는 노태신만큼 로베르토의 표정을 썩게 만들 수 있는 두 번째 후보가 있었다.
“티알, 포기하면 편해.”
“아니, 현준…… 진짜 방법이 없나.”
티알의 얼굴은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것 같은 착시가 느껴질 정도였다. 자기관리에 약한 녀석이었기 때문에 어릴 때 버릇을 고쳐놔야 했다.
티알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힘내.”
“현준!”
“티알!”
“……응? 나 불렀나?”
“내가 안 불렀는데?”
우리 사이에 끼어든 목소리에 두리번거리니 다른 축구부원들이 다 우릴 보고 있었다.
“티알! 안 나와?!”
이어지는 외침에 로베르토가 티알을 불렀다는 걸 깨달았다.
“가라, 티알.”
“현준, 살려줘라.”
“가.”
티알은 사형장에 끌려 나가는 죄수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로베르토의 앞으로 향했다. 로베르토의 눈매가 벌써 가늘어졌다.
티알은 체중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로베르토가 턱짓으로 체중계를 가리켰다. 티알이 얼굴을 푹 숙이며 신발을 벗고 체중계 위로 올라갔다.
“바로.”
티알은 한 발을 뒤로 빼서 몸무게를 줄여보려고 했지만, 로베르토에게 딱 걸렸다. 티알이 우물쭈물 말했다.
“바로라는 말이 뭔지 모릅니다…….”
“한국어 못하는 척은 나한테 안 통해. 똑바로.”
로베르토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티알의 몸무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티알은 고개를 떨구고 로베르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티알…… 왼쪽.”
“아아…….”
티알이 탄식하자 로베르토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올라왔다.
“이 자식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빠져 가지고. 넌 두 배로 굴릴 줄 알아.”
“아……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라 감독님!”
“……예, 감독님.”
티알은 고개를 숙인 채로 터덜터덜 걸어서 왼쪽으로 향했다. 노태신이 격하게 환영해 주다가 로베르토의 눈빛 빔을 맞고 또 고개를 숙였다.
티알의 입장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얼굴이 포동포동해진 채로 처음으로 숙소에 온 티알은 내가 ‘너 살찐 거 아니냐?’라고 물어보자마자 사연을 설명했다.
아버지 집에 돌아가니 어머니가 어느새 돌아와 계셨고, 먹을 걸 계속 주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 집에서 체중계로 재봤을 때 4㎏ 가 쪄서 진작 포기했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체중 관리해야 오랫동안 프로 축구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고, 그럴 땐 양을 많이 먹지 말고 맛을 보면서 예의만 지키면 된다고 꿀팁을 말해줬다.
티알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게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고 투덜거렸다.
“송현준, 오른쪽!”
결국, 티알을 비롯한 일곱 명이 체중 관리에 실패했다.
일곱 명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 실실거리다가 로베르토가 쳐다보면 시무룩해지는 행태를 반복했다.
“우리는 오늘 뭐 하려나~.”
박종혁이 기지개를 켜면서 느긋하게 말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겠지.”
“그런 걸 누가 모르냐? 재미없는 놈.”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박종혁이 투덜거렸다.
그때, 근처에 있던 윤태상과 눈이 마주쳤다. 윤태상은 입꼬리를 살짝만 올려서 작게 미소 짓고 내게 살짝 고개를 까딱였다.
며칠 전 아르드의 신정우 사장과 함께 만났고, 윤태상도 후원받는 거로 잘 풀렸다. 앞으로도 윤태상이 잘 되길 바란다.
“처음부터 잘하길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베르토가 체중 관리에 실패한 부원들을 모아 놓고, 얘길 시작했다. 티알과 노태신은 혹시 봐주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들다가 로베르토의 호통에 고개를 또 숙였다. 오늘 대체 인사를 몇 번을 하는 건지.
“내가 말한 건 지킬 생각이다. 너희는 앞으로 2㎏ 이상 감량할 때까지 김진호 코치님이 맡아서 전지훈련 때 했던 체력훈련을 반복할 거다.”
“아아…….”
“죄송합니다. 감독님!”
“죄송하기 전에 잘했어야지. 그리고 팀 훈련에서도 전부 열외다. 이상!”
살찐 부원들이 당황하는 게 느껴졌다. 말이 아니라 현실이 되자 실감 나기 시작한 모양새다.
김진호 코치가 로베르토의 옆에서 그들에게 손짓했다.
“따라와라, 얘들아. 재밌게 놀아보자.”
김진호가 밝게 말하자 7명의 부원도 긍정적인 얘길 하기 시작했다.
“뭐, 하던 거 하는 건데.”
“우리끼리 파이팅 해보자고.”
“7인 파티네.”
“티알 이 자식 빠져가지고.”
“아…….”
“농담이야 농담.”
“다행입니다.”
“농담 같지?”
티알을 놀리면서 놀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엉망이 되기까진 30분, 아니 10분도 안 걸렸다.
“똑바로 안 해! 발 질질 끌지 말라고 했지!”
김진호의 고함에 7명의 돼지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몇 초 만에 급속하게 느려졌지만.
그걸 보던 박종혁이 말했다.
“다행이다. 2.5㎏ 쪘는데. 더 쪘으면 큰일 날 뻔.”
전지훈련 때 아무리 많이 훈련해서 익숙하다지만, 마지막까지 적응한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다.
심지어 운동선수는 며칠 동안 급격하게 살이 불면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다. 운동을 보통 안 했을 테니까, 체중 증가는 분명히 영향이 있었다.
“그치? 송현준…… 어어?”
“집중해야지~.”
딴소리하는 박종혁에게 기습적으로 패스했다.
박종혁은 내 패스를 놓쳤고, 나에게 원망 어린 눈빛을 보내며 축구부원들이 모여 만든 원 중앙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지금 살인 축구, 왕따 축구라는 멸칭이 있는 론도라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중앙에 수비수를 한 명에서 세 명 정도 놓고, 나머지가 원을 만들어 그들을 둘러싸고 패스를 주고받는 훈련이다.
수비수가 공을 빼앗으면 빼앗긴 사람과 자리를 바꿀 수 있고, 방금처럼 패스를 놓치면 가장 일찍 수비수가 된 사람이랑 교대하는 규칙이었다.
론도를 위해 만든 원은 세 개 있었고, 이건 패스를 비롯한 볼을 다루는 훈련이자 몸풀기 훈련이기도 했다.
“하면서 들어라. 예전에 알렸던 대로 앞으로 몇 가지 특수한 스트레칭을 제외하면 준비운동은 따로 안 한다. 전부 공을 가지고 할 거다.”
이어지는 훈련도 로베르토의 말 대로였다. 론도로 몸을 푼 후에는 2인 1조로 조를 짜서 공을 가지고 여러 방식으로 주고받게 하며 다양한 동작을 시켜서 추가로 몸을 풀었다.
이어서 코디네이션 훈련을 했고, 마무리는 공을 활용해서 전력 질주와 느리게 뛰기를 반복시키면서 인터벌 방식으로 체력훈련을 했다.
전지훈련 때 쌓아놓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었다.
이러다 보니 순식간에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우리는 운동장 중앙에 집합했다. 체력훈련만 한 일곱 명은 반 시체가 돼서 헉헉대고 있었고, 나머지도 숨을 몰아쉬긴 했지만, 이들 정도는 아니었다.
로베르토는 첫 훈련이 만족스러운지 옅은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다들 해산, 수업 열심히 듣고 네 시 반에 여기로 집합해라.”
* * *
“헐.”
“뭐야.”
반 친구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키가 큰 게 실감이 났다.
나와 비슷하거나 올려다보던 친구들이 나를 살짝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역시 키가 큰다는 건 좋은 거다.
정미영 선생님도 휴가 첫날은 반가워하느라 몰랐지만, 점심을 사준 날에는 깨닫고 엄청 놀라 했었다.
“후후…….”
친구들 앞에서 우쭐거렸다. 왜냐면 난 키가 컸으니까. 그것도 많이.
“약 먹었냐?”
“이제 종혁이 따이는 거 아냐?”
“뭘 따이긴 따여!”
박종혁은 최근 불안해하고 있었다.
“얘들아? 거상 하실?”
“…….”
역사 덕후 지상준은 여느 전생에서처럼 온라인게임 거상에 빠졌다.
재미있는 게임이다. 인정한다. 근데 얘는 좀 심하게 권유한다. 방학 때 전화로도 물어본 적이 있었고, 전생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봤기에 가볍게 무시했다. 다른 친구들도 시선을 돌렸다.
반 친구들과 간만에 얘길 나누니 즐거웠다. 내 인생에서 정말 몇 안 되는 축구와 관계없는 지인들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잘해줄 생각이었다.
“현준아. 거상 하실?”
“안 해.”
할 수 있는 걸 잘해줄 생각이었다.
“방학 때 뭐 했냐?”
“너랑 박종혁 빼고 피시방 존나 갔지.”
“개 부럽네.”
진심이었다. 게임을 좋아하긴 하는데 루틴이 깨질까 봐 억지로 참고 있었다. 확실하게 궤도에 올라 여유가 생긴다면 반드시 게임을 할 계획이었다.
“부러우면 축구부 그만해~.”
“그럴 순 없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도 게임 얘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 아빠가 리니지 시키는데 1시간마다 용돈 준다? 부럽지?”
“나 겟앰프드 개 고수 됨.”
“거상 하실?”
쟤는 저기서도 저러고 있네. 지상준이 소름 돋는 놈인 게 지금 나온 게임을 2020년대까지 계속하고, 그때도 같이하자고 말한다. 미친놈이다.
이 시절 친구들은 바깥에서 노는 만큼 게임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과도기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운동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나 스타리그 보고 왔다?”
“미친? 어떻게?”
“아빠랑 같이 갔지.”
“홍진호 또 준우승했잖아.”
“다음엔 우승하지 않을까?”
추억을 되살려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전생에서 나는 축구와 게임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즐거웠다. 기억을 되새기는 과정이.
“팬더 쌤 왔다!”
체육대회 때 함께 대회를 나갔던 김성환이 복도에서 뛰어놀다가 창문에 대고 외쳤다. 흩어져 있던 우리는 느릿하게 자기 자리에 하나둘 앉았다.
“전학생이다!”
“오?”
“뭐야?”
“누구야?”
김성환의 이어지는 말에 반 친구들이 창가 쪽으로 몰려 나갔다. 나와 박종혁, 엄태영만 제외하고 말이다. 누가 전학 오는 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인데?”
“나 영어 잘함.”
“웃기시네! 숫자밖에 못 세는 게. 너 영어 양 받았잖아.”
“크흠, 1월부터 12월까지도 말할 수 있거든?”
친한 친구들의 속닥거림을 킬킬거리면서 들었다. 잠시 후, 교실 문을 열고 정미영 선생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 뒤엔 역시나 티알이 서 있었다.
“모두 방학 잘 보냈지?!”
“네!”
반 친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럼 숙제도 다 했지?!”
“……예.”
이번엔 소수만 대답했다. 정미영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까르르 웃고, 교단 위에 섰다.
“숙제 얘긴 이따 하고, 자, 너희들도 보다시피 전학생이 왔어. 한국말 잘하니까 부담 없이 대해 주고, 축구부 소속이니까 현준이 옆에 앉으면 돼. 티알, 자기소개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