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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06화 (8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06화

“저도 이거 봐도 돼요?”

“응.”

로베르토의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진한 향이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훈련계획서를 읽고 있었다.

종이가 사각이며 넘어가는 소리가 로베르토의 방을 채웠다. 지금은 야간 자율 훈련 시간, 로베르토는 하루에 최소한 한 명씩 축구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학년순도 아니고 주전 순도 아니었기에 불려가는 부원은 무작위였다.

“으음…….”

내가 보고 있는 건 김진호인 척 보냈던 보고서를 로베르토가 만져서 완성한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 보고서’였다.

로베르토는 내가 이걸 보냈다는 걸 꿈에도 모를 거다.

이 보고서에는 내가 보낸 첫 버전과 로베르토가 만든 두 번째 버전이 한 면에 인쇄돼 있었다. 전지훈련 전과 후의 능력치 변화를 기록해 놓은 것이다.

“오, 저는 거의 다 100이네요.”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능력치 표기법을 따 와서 능력치 종류만 스무 개가 넘는데도 내 능력치는 대부분 만점인 100이었다.

“기고만장해지면 안 된다? U-15 기준이니까.”

“알죠.”

“그래.”

“근데 왜 점프력이나 최고속도나 몸싸움이 80인 거예요?”

“사실이잖아?”

로베르토는 전지훈련을 가기 전 시기와 전지훈련 초반 때 훈련을 빙자해서 선수들의 신체 능력을 확인했고, 확신이 있었다.

“네가 다 잘하는 건 맞아. 하지만 신체적으로 때려 부수는 타입은 아니야. 왜냐면 네 신체 능력은 최상위권이긴 하지만, 그 위는 아니거든.”

로베르토의 또렷한 눈동자에 장난기가 생겼다.

“보여드려요?”

“……장난치지 말고. 설마 훈련도 숨기면서 했다고?”

로베르토는 멈칫하더니 설마 하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동안 내가 여러 가질 보여줬다 보니 혹시나 하는 것이다.

나는 씩 웃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죠. 훈련 때는 항상 전력으로 했어요.”

성장기가 얼추 끝나고 신체의 균형을 잡으면 90 정도까지는 올릴 수 있겠지만, 육체적으로 타고난 괴물들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는 괴물들을 잡을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좌절하진 않는다.

“이 자식 진짜. 저번에 커피에다가 물이랑 얼음 타야 한다고 했을 때만큼 놀랐잖아.”

“……그거 진심인데요.”

“……너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물 1ℓ에 라면 하나 끓인 다음에 얼음 넣어서 준다?”

“잘못했습니다…….”

로베르토의 커피잔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중에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유행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생마다 봤는데도 기대됐다. 이번에도 내가 첫 번째로 놀릴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계속 넘겼다.

내 걸 보면서 농담하긴 했지만, 나는 진지했다. 열 번의 전생에서 로베르토가 이 보고서를 이 시기에 내게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전생의 보고서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했다. 축구부원도 달라졌지만, 겹치는 것들 위주로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아.”

“응?”

“아니에요.”

뭐가 다른지 깨달은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로베르토가 내게 왜 이걸 보여줬는지 짐작이 갔다.

“다 봤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보고서를 정리하자 로베르토가 말을 걸어왔다.

“네.”

“어때?”

“뭐가요?”

기왕이면 로베르토가 설명하게 두고 싶어서 그렇게 말했다. 로베르토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꽂이에서 파일철 하나를 꺼냈다. 파일철에는 종이 한 장만 들어 있었다.

“축구부원들이 전지훈련을 마치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눈에 보려고 만든 요약본이야.”

“으음…… 몇 명이 그대로네요?”

“그렇지?”

로베르토가 반응을 보였다. 2학년 박범철과 1학년 친구들 넷. 딱 이 다섯 말고는 전부 로베르토의 능력치대로라면 1.2배 이상 성장했다.

“근데 범철 선배랑 얘네들도 성장을 안 한 건 아닌데요?”

“그렇지. 평균 내면 대충 1.05배 성장했지. 근데, 이건 말이 안 돼.”

“왜요?”

내 질문에 로베르토는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우리 축구부는 내가 처음 봤을 때 기본기가 다 부족했어. 체력도 내 기준에 한참 못 미쳤어. 기본기와 체력, 이 두 가지는 축구부에서 뛰고 있을 정도라면 제대로 된 훈련만 하면 무조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해야 맞아.”

“1.2배 이상으로요?”

“1.1배 정도일까? 솔직히 눈으로 보고 감으로 판단하는 거고, 수치는 결과일 뿐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부원들은 내 기대보다 더 성장했어. 훌륭해.”

“그렇군요…….”

로베르토의 유망주 보는 눈은 상당히 정확하다. 축구계 내에서도 손꼽을 수준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긴 하지만,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로베르토는 얘길 계속했다.

“이 다섯 명의 퍼포먼스가 이상하게 안 올라와. 대체 왤까…….”

로베르토는 그렇게 말하면서 날 빤히 바라보았다. 저 눈빛이 뭐더라…… 아.

“설마, 저한테 알아보라는 건 아니죠?”

“……흐흐.”

로베르토가 이상하게 웃으며 자기가 마시던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이거 마시던 거잖아요.”

“엄청 비싼 커피야.”

정말 비싼 커피라는 건 알았지만, 마시던 걸 받는 건 좀 그랬다. 물론, 축구부 전체의 성장은 내 목표와도 맞닿아 있어서 그냥 도와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먹고 싶은 게 있었다.

“이건 마음만 받고, 소고기 어때요?”

“뭐? 날 거덜 내려는 거냐. 감독 월급 쥐꼬리만 해.”

“그러면 안 할래요.”

“알았어.”

의외로 로베르토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히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 더 비싼 거 부를걸.”

아쉬워서 투덜댔다.

로베르토가 히죽댔다.

“계약 끝이다? 그런데 너 자꾸 이러니까 스파이 같다.”

그동안 해온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러게요?”

맞는 말이었다.

* * *

“현준~ 어디 보는 건가? 현준, 나 슈팅 봐준다고 했다.”

티알의 말에 옆에 선 티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냥 하던 대로 차라니까.”

“축구 잘하고 싶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늘부로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정식 훈련에 합류한 티알에게 로베르토가 비슷한 조언을 하긴 했다. 하지만, 로베르토의 말뜻은 그런 게 아니었다.

괜히 요즘 티알과 함께 다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코칭이 다르게 전달될 때 바로잡아주기 위해서였다.

“기본이라는 건 정해진 게 아니야. 보편적으로 배우기 쉽게 만들었을 뿐이지.”

“보편? 말이 어렵다.”

“그냥 네가 편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을 기계처럼 할 수 있게 끊임없이 연습하라는 게 기본을 쌓으라는 거야.”

“……뭐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렵다.”

어떻게 설명할까 잠깐 고민했다.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시키는 대로 할래?”

“알겠다. 현준은 믿을 수 있다.”

곧장 나오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올~ 좋은 말 해도 떡은 안 떨어지는데?”

“떡이 왜 떨어지나?”

티알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피식 웃었다. 나이를 먹고는 다 알아들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악질이 되어버리지만, 지금 티알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였다. 가끔 아는 걸 모르는 척할 때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티알의 이상적인 슈팅 폼을 잘 알고 있었다.

“티알,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해? 그때 내가 벽에다가 슈팅하던 거.”

“아! 기억한다.”

“너도 그거 하자.”

“어떻게 하면 되나?”

“아무 벽에나 하면 혼나니까…… 저기, 운동장 스탠드에다 하자. 맞추고 싶은 위치를 정해놓고 거기에 연속으로 10번 공을 맞히는 걸 1번 목표로.”

“알겠다.”

“최대 파워로 10번 맞추는 걸 2번 목표로 하자.”

“좋다.”

“그럼 시작해 볼까?”

티알은 내 말대로 슈팅 열 번을 했고, 당연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티알의 자세를 수정해 줬다.

이상적인 자세를 최대한 흉내 내서 보여주고 따라 해보라는 것도 가능했지만, 티알은 몸으로 배우는 게 빨랐다. 앞으로도 수시로 자세를 교정해줄 생각이다.

“그럼 혼자 하고 있어.”

“고맙다!”

티알을 뒤로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의 끝에는 정두식과 1대 1 드리블 대결을 하고 있는 박범철이 있었다.

선수가 적절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훈련성과가 기대보다 떨어진다면 살펴야 할 건 몇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일단, 훈련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사흘 동안 지켜봤다. 박범철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두 번째는 잘 먹고 있는가.

역시 사흘 동안 지켜봤다. 편식 없이 골고루 잘 먹는다.

세 번째는 휴식을 확실하게 취하고 있는가.

정규 훈련 시간에 과도한 훈련은 로베르토가 통제하기 때문에 없다. 야간 자율 훈련 시간에는 지금처럼 열심히 하긴 하는데 무리까지 하진 않았다.

수면도 마찬가지였다. 정두식과 함께 쓰는 가장 작은 방의 불은 항상 가장 먼저 꺼졌다.

겉으로 봤을 때는 셋 다 아니었다.

그렇다면 재능의 한계라던가 가정사 문제 쪽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해결하기 어렵다.

전생에서 박범철에게 이런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됐다. 박범철은 축구부에서 주전은 아니지만, 주전과 후보 선수를 오가는 인원으로 팀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모든 축구부원이 내게 다 중요했다. 박범철뿐만 아니라 나머지 넷도 박범철처럼 검증과정을 거쳤고, 다 특이한 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찝찝한 게 하나 있었다.

이들은 항상 피곤해 보였다. 그래서 오늘을 마지막으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시간대를 점검할 생각이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자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취침 시간 이후의 시간대를 말이다.

* * *

불이 꺼지고 30분 동안 안 자려고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버티다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

엄태영은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체처럼 자고 있었다. 왠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은 수준의 고요함이었다.

“크아학, 드렁, 크아아학.”

박종혁은 오늘따라 피곤한지 코를 평소보다 심각하게 골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지 않은 건 박종혁의 코골이 덕분이기도 했다.

“으윽…… 으으으으.”

박종혁 옆에는 코골이 때문인지 악몽을 꾸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말았다 하는 티알이 보였다.

친구들의 자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흐뭇해졌다.

잠시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갔다. 거실에서는 일단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을 보지도 않고 변기 물을 내린 후, 화장실 문을 소리 나게 닫았다.

잘못 들어온 척을 하기 위해서다.

그다음은 정두식과 박범철의 방문 앞에 섰다.

“드르릉……. 푸우…….”

희미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었다.

먼저 정두식이 보였다. 하지만, 박범철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갑자기 불을 다 끈 후에 로베르토가 숙소를 나간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박범철이 나가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마리를 얻었다.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우리 방으로 돌아갔다.

당장 쫓아갈 생각은 없었다.

“하아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일단은 평소처럼 잘 생각이었다. 내일은 박범철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쫓아갈 생각이었다.

“드렁, 드르렁, 크억.”

박종혁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든 말든 나는 바로 내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순식간에 잠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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