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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09화 (90/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09화

이상하다.

경기가 시작하고 5분이 흘렀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송현준이 골키퍼를 맡고, 나머지 넷이 필드 플레이어를 맡는 걸 보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거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래서 팀원들을 독려했고, 더 잘해보려고 했다.

“박지훈 나이스!”

송현준이 자기 팀 공격수인 박지훈을 칭찬하고 있었다. 박지훈은 우쭐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골대 앞에서.

분명히 우리가 이기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했다.

이어서 몰려온 성동현과 적 팀원들이 박지훈의 어깨나 머리를 치면서 짧게 칭찬하고 자기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범철이 형…….”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박범철 앞에 축구공이 나타났다. 조재근이 공을 내밀고 있었다.

“아, 응.”

“킥오프해야죠.”

“그래.”

“죄송해요. 막을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니야, 우리가 앞에서 차단할 수 있었어.”

박범철은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송현준만 신경 쓰고 있었는데 미처 생각지도 않은 중고 신입 무리에게 크게 한 방 먹었다.

한 방이 맞나?

박범철은 머리가 아팠다. 지금 이렇게 충격을 받은 이유는 5분 내내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해봤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자기들이 저들보다 위라고 생각했는데, 혼란이 오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얘들아, 정신 차리자.”

박범철은 자기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모두에게 했다.

“네!”

“한 골 먹힐 수도 있죠. 아직 4분의 1밖에 안 지났다고요.”

김성호가 박범철의 말에 수긍해 줬다. 박범철은 긍정적인 반응에 기분이 풀리는 걸 느꼈다.

“맞는 말이야. 가자!”

“으아!”

박범철의 콜에 팀원들이 소리쳤다. 바깥에서 구경하고 있는 정두식이나 윤태상 같은 2학년들은 박범철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고 있었다.

그러건 말건 박범철은 경기에 몰입했다. 축 처졌던 기분이 좀 나아지는 걸 느꼈으니까, 빠르게 경기를 시작해야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5분 내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송현준이 뒤에서 양질의 패스를 뿌려주기 때문일 거다.

박범철의 눈에는 송현준만 보였다.

“박범철! 뭐 해?! 공 안 차?”

“……예!”

박범철은 경기 재개를 위해 들고 있던 공을 센터서클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얘들아! 파이팅 하자!”

다시 한번 소리치고, 뒤로 패스했다.

* * *

“기대 이상인데…….”

경기가 시작하고 10분이 지났다. 자기들을 6두품이라고 깎아내리는 박지훈 무리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을 박범철의 상대로 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로베르토의 훈련을 가장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고, 가장 많이 성장한 게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훈련을 성실하게 따라오는 건 다른 축구부원들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들은 사실만 말하면 다른 축구부원에 비해 기본기가 유난히 떨어졌다.

덕분에 기본을 중시하는 로베르토의 훈련성과가 다른 부원들에 비해 유난히 컸다.

로베르토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능력은 30% 이상 증가했다. 박범철의 팀이 5~10% 내외로 성장한 것과 다르게 말이다.

그래서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지더라도 비슷하게만 경기를 치른다면 저들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근데, 이들은 기대 이상을 해주고 있었다.

10분 내내 배운 것들을 적절하게 활용했고,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고 승리할 방법을 끊임없이 물색했다.

반만 해줘도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의 멋진 모습 덕분에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였다.

“어어어! 막아줘!”

성동현이 날 향해 간절하게 외쳤다. 규정까지 세세하게 똑같진 않지만, 풋살 경기와 다름없다 보니 단 한 번의 패스로 위기가 찾아왔다.

나와 똑같은 골키퍼 겸 최종수비수 역할을 맡은 조재근이 왼쪽 공격수 박범철에게 긴 패스를 했고, 박범철은 뒤에 서 있는 김성호에게 원터치로 패스하고 우리 팀 수비수를 등지면서 한 바퀴 돌아 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김성호의 긴 패스, 자기들끼리 연습한 패턴일 것이다.

공을 무사히 잡은 박범철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고, 눈빛은 강렬했다.

당장에라도 슈팅을 찰 수 있는 거리, 나는 침착하게 자세를 낮추면서 앞으로 살살 걸어서 슈팅 각도를 좁혔다.

골키퍼는 침착해야 한다.

골대는 크지 않다. 머릿속에서 박범철의 슈팅 궤적이 그려졌고, 손이나 발만 뻗으면 다 가로막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박범철이 순간 머뭇댔다. 슈팅 각이 한순간에 막혀 버리니까 당연하다.

예상하였기에 허벅지와 종아리에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폭발하듯 앞으로 뛰쳐나갔다.

“……!”

깜짝 놀란 박범철이 공을 옆이든 뒤든 빼려고 했지만 늦었다. 나는 깔끔하게 공을 빼앗아 냈다.

내 플레이에 넋이 나간 박지훈과 우리 팀원들이 멍하니 날 보고 있었다. 상대 팀도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게 보였기에 공을 잡은 채로 외쳤다.

“골 먹힐 걱정하지 말고 더 공격해요! 슈팅은 내가 다 막아줄 테니까.”

넋을 찾은 박지훈이 히죽 웃었다.

“개든든하네, 개든든!”

“헛소리하지 말고…… 받아!”

박지훈의 괴상한 농담을 받아주지 않고, 강하게 깔아서 패스했다. 풋살 때의 기억을 살린 맨 뒤에서 맨 앞으로 보내는 다이렉트 패스다.

박지훈은 깜짝 놀라 엉거주춤하더니 공을 받아냈다.

시간이 걸렸지만, 패스가 좋으면 공격수가 이 정도는 헤매도 됐다.

다급하게 박범철 팀의 수비수들이 쫓아왔지만, 박지훈은 어느새 도움닫기를 끝내고 발등으로 공을 때리고 있었다.

뻐엉!

공은 허무하게 골대 밖으로 나갔다. 골대 근처에도 가지 못한 똥볼이었다.

“까비.”

민망한지 박지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자후를 했다.

“집중했으면 넣었잖아! 더 집중해!”

내 달라진 모습에 박지훈을 비롯한 팀원들이 멍청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한마디 더 했다.

“집중해!”

“……갑자기 왜 열심이야!”

정신을 차린 박지훈이 외쳤다.

왜긴, 생각보다 잘하니까 얼마나 더 잘할지 궁금해서 그렇지.

전국대회 레벨이면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서도 무쌍을 찍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거의 반년 넘게 세심하게 몸을 관리해 줘야 하는 상황이라 조금이라도 확률을 더 높여놓고 싶었다.

더불어 나랑 같은 팀에 있던 사람들은 잠재 능력을 다 끌어내고 싶다는 작은 바람도 있다. 다 즐겁게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

즐겁게 하려면 잘해야 한다. 축구부에는 프로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아까우니까 그렇지!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내 말에 박지훈이 또 쑥스러워했다. 별 대답은 없었지만, 다들 근질거리는지 괜히 발을 쿵쿵 구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공격받았다. 이번에도 박범철의 슈팅이었다. 아까보다 기세가 약했기에 가볍게 막았다.

“이것도 받아봐!”

이번에는 측면에 자리 잡은 성동현에게 패스했다. 그다음에는 두 선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계속 몰아붙일 생각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린 이길 것이고, 자연스럽게 박범철 들도 깨닫게 될 거다.

자기들이 헤매는 동안 동료이자 경쟁자들이 더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 * *

얼굴에 땀이 흘러내리고, 턱에 맺힌 뒤 떨어진 후에도 박범철은 미동도 앉고 앉아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주어진 10분의 쉬는 시간, 박범철은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두식은 그런 박범철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박범철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범철아, 어디 아프냐?”

“……아니.”

박범철은 고개도 젓기 귀찮았다. 기운 없이 말하자 정두식이 짜증을 냈다.

“정신 나갔냐? 갑자기 왜 그래? 경기 져서 그래?”

박범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두식이 박범철을 빤히 바라보다가 또 말했다.

“한 경기 진 건데 왜 장례식 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이게 무슨 한 경기야.”

박범철이 반응했다. 정두식은 박범철이 무슨 얘길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 경기가 한 경기지 왜 아니라고 하는 건지.

그래도 친구인 박범철이 시무룩하고 있으니 정두식은 응원해 주고 싶었다.

“송현준이 다 막아서 그런 거잖아.”

“……송현준?”

“쟤는 참 대단해. 대체 2년 동안 뭘 했길래 골키퍼도 우리 축구부에서 제일 잘하냐.”

박범철이 정두식을 쳐다봤다. 정두식도 마주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왜 그렇게 쳐다보냐. 화났냐?”

박범철은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그 순간 박범철은 눈에 힘이 들어간 걸 깨달았다.

당황한 박범철이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답답해서.”

“뭐가 답답한데?”

정두식은 뒤끝이 없었다. 금세 기분을 풀고 이유를 물었다.

“너도 알지, 나랑 우리 팀 애들이 한 달 동안 몰래 훈련한 거.”

“……당연히 알지. 같은 방 쓰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그러니까 말이다. 근데…… 한 달이라도 더 열심히 한 게 맞는데, 쟤네는 심지어 축구 쉰 애들인데…… 하, 진짜 짜증 난다.”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축구를 쉬었던 애들한테 경기력을 7대 3 정도로 압도당했다.

박범철은 얘기를 다 듣고 부드럽게 웃어줬다.

“오늘 컨디션이 나쁜가 보네. 어떻게 매일 이기냐.”

“……고맙다. 그래도 오늘은 수업 시간에 좀 자야겠다.”

“난 컨디션 안 나빠도 그러는데.”

정두식의 농담에 박범철은 작게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은 오전 훈련까지 마친 박범철은 학교에 갔다.

정두식 덕분에 잠시 좋아졌던 기분은 금세 땅에 떨어졌다.

박범철은 송현준과 중고신입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수업 시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범철아 점심 안 먹어?”

“…….”

점심시간에도 엎드려 있었다.

“아파?”

“아니…… 피곤해서. 내 거 그냥 버려줘. 미안.”

박범철이 워낙 우울해 보였기에 반 친구들도 박범철을 그냥 뒀다. 박범철은 화장실도 안 가고 종일 엎드려 있다가 오후 훈련에 참여했다.

오후 훈련도 기운 없는 상태로 홀린 듯 수행한 박범철은 저녁도 거르려고 했다.

“몸이 아프지도 않은데 저녁을 거른다고? 지금 감독한테 반항하냐?”

물론, 로베르토라는 장벽이 있었다. 박범철은 입맛이 없어서 저녁을 먹기 싫었지만, 로베르토가 저 말을 한 후 말없이 박범철을 계속 노려봤다.

박범철은 어쩔 수 없이 저녁을 먹었다.

신기한 게 박범철은 저녁을 먹고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걸 느꼈다.

기운을 차린 덕분에 야간 자율 훈련 때는 평소 컨디션대로 훈련했다. 정두식도 박범철이 우울해한 걸 알았기에 열심히 도와줬다.

야간 자율 훈련이 끝나고 샤워하면서 박범철은 마음을 다잡았다.

한 경기는 운으로 질 수도 있으니, 오늘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렇게 다시 10시가 지났다. 축구부원들이 잠든 밤이 됐다.

평소처럼 축구화를 챙겨서 아파트를 나섰고,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선배님.”

자길 기다리고 있던 것 같은 송현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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