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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10화 (9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10화

무슨 일이냐는 박범철에게 1학년들이 다 오면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박범철은 복잡한 얼굴을 하더니 말없이 벤치에 걸터앉아서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서 있으니 발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현준이 아니야?”

1학년들 네 명이 다 같이 오고 있었다.

“어? 송현준? 왜 여깄어?”

가장 친분이 있는 김성호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놀라서 물었다. 1학년들은 자연스럽게 박범철 주위로 모였다.

다들 의문 가득한 얼굴로 내가 말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본론을 얘기해 줬다. 뱅뱅 돌려본다고 의미 없으니까.

“야간 훈련 그만하라고 말하려고 왔어. 감독님도 알고 계시거든.”

“……헉.”

“아니.”

“으음.”

1학년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그 와중에도 박범철만은 조용히 있었다.

김성호가 나섰다.

“……언제부터 아셨대?”

“얼마 안 됐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직접 안 온 건 한 번 모른 척해 줄 테니까 앞으로는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의미래.”

“……그래?”

김성호가 시무룩해졌다. 다른 1학년들도 포기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난 아까부터 박범철을 보고 있었다. 박범철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였지만, 화가 난 게 얼굴에 드러나 있었으니까.

“나 참, 훈련을 금지하는 감독은 처음 보겠네.”

박범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먹고 자율 훈련 시간이 있긴 하니까…….”

“시간이 정해진 게 자율이야? 고등학교 형들도 자율학습이라고 말만 하지 강제로 하잖아.”

좋게 말하려고 했는데 박범철은 신경질적이었다.

“훈련 내용은 자유로우니까요.”

“……그게 부족하면 어떡해?”

“음…… 그건.”

“윤태상이나 너 같은 애들은 깔짝 훈련해도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는 부족한 거 같은데?”

박범철의 동의를 구하는 듯 1학년들을 바라보았다. 1학년들은 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깔짝이라는 말에 나도 기분이 좀 상했다. 눈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다스렸다. 오늘 그런 친선경기를 한 이유는 박범철이나 1학년들이 지금처럼 ‘재능 차이’라고 말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직접 말하는 게 마음이 쓰리다.

“깔짝 훈련이라니요? 저희랑 똑같이 훈련하고 오늘 아침에 상대한 제 팀원들도 깔짝 해서 그렇게 잘해진 건가요?”

살짝 감정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도 사람인걸.

박범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

박범철의 목소리가 커졌다. 고요한 밤이어서 목소리가 크게 퍼져나갔다.

“……똑같이 하면 되죠.”

“똑같이? 장난쳐? 봐봐. 너는 2년 쉬었잖아. 근데 그때 체육대회에서 그건 뭔데? 난 네가 쉬는 동안 열심히 했는데 넌 뭐냐고! 걔네도 너랑 똑같은 거 아니야? 중고 신인? 2학년들끼리 그렇게 부르던 애들이 한 달 했다고 그렇게 실력이 늘었는데 그냥 재능이 다른 거 아니냐고! 그걸 그냥 받아들이라고?”

화를 내는 박범철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렇구나, 훈련이 효과가 있다는 쪽으로 생각하기보다 쟤네도 사실 재능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지상철 새끼한테는 버려지고, 나랑 같은 신세였던 두식이는 저번 달부터 갑자기 즐겁게 하고 있고, 실력도 느는 게 보이고…….”

1학년들이 박범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박범철은 그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말했다.

“같은 걸 해도 나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열등감 느끼고.”

박범철이 머리에서 손을 떼고 그대로 허공에 팔을 휘두르며 외쳤다.

“개 같다고! 미칠 거 같다고! 내가 역겨워 죽겠다고…….”

전생을 다 떠올려 봐도 박범철과는 친하게 지냈던 적이 없었다.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선배와 후배 정도 관계가 다였다.

그렇다고 해도 열 번의 전생을 살았다. 박범철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잘 알았다.

무리의 분위기에 따라 허세를 부릴 때도 있고, 억지를 부리거나 선배 대접을 받으려고 할 때도 있었다. 부조리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난 박범철이 싫지 않았다.

싫은 면만큼 좋은 면도 봤기 때문이었다.

분위기에 따라서 허세를 부릴 때도 있고, 억지를 부리거나 선배 대접을 받으려고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런 무리에 속했을 때였다.

정두식과만 다닐 때나…… 아니, 지금 1학년들을 이끄는 위치에 서면 그는 후배를 신경 써주는 배려심 많은 사람이 된다.

한마디로 박범철은 무리의 분위기에 따라 변화하는 사람이었다. 주변 환경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사람은 흔하니까.

주변에 민감한 사람이었던 만큼 급변하는 축구부 생활에 혼란을 느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더불어 지금 들은 나나 윤태상과의 재능 차이에 대한 열등감도 마음을 괴롭혔겠지.

재능 차이는 솔직해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선배님, 그리고 얘들아. 감독님이 준 건데 일단 보고 얘기하자.”

“…….”

“뭔데?! 봐봐!”

박범철은 아직 씩씩거리고 있었고, 눈치를 보던 1학년 중 김성호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관심을 보이는 척했다.

“감독님이 우릴 평가한 보고서야. 선배랑 너희들 걸 떼어 왔어. 그리고…… 전체 평균이랑 오늘 너희들이 상대한 우리 팀 평균까지.”

숫자와 친한 선수들이 적어서일까. 운동선수들은 자기들이 인정한 코치가 데이터를 가지고 오면 더 깊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다. 운동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 신기하다. 넌 몇 점이냐? 나 점프력 90점 받았는데.”

골키퍼 조재근의 말을 시작으로 1학년들이 종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는 게 재미있어하는 게 보였다.

자기들의 능력치를 수치화해서 보는 거다.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로베르토가 학기 중간에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사용할 자료였지만, 로베르토에게 부탁해서 받아왔다. 자세한 건 묻지 않았지만, 로베르토도 내가 이걸 어떻게 쓸지 알았을 거다.

“선배도 받으세요.”

“…….”

말은 없어도 박범철도 궁금했을 거다. 종이를 받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때, 김성호가 내게 말했다.

“이거 보면…… 우리가 성장했다는 거네?”

“그렇지.”

1학년들이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 기분 좋아 보였다.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이건 전체 평균이야.”

한 장에 요약된 종이를 내밀었다. 김성호가 종이를 받아 가서 네 명이 뭉쳐서 봤다. 그리고 굳어진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이상하지? 선배님이랑 너희 넷만 덜 발전한 게.”

“왜 이런 거야?”

“감독님은 최대한 선수들의 체력까지 고려해서 훈련을 짜고 있는데, 지금 하려고 했던 훈련으로 그 틀을 깨버리니까.”

1학년들이 입을 다물었다.

“3시간만 사용해야 하는 기계를 5시간 사용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기계가 조금씩 망가지는 게 당연하지.”

표정들이 굳어졌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다.

“개인 훈련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 안 해. 근데, 우리 감독님 같은 스타일이라면 개인 훈련은 독이 돼. 모든 걸 다 계산해서 하고 있는데 그 계산을 꼬이게 만들어 버리는 거잖아.”

“…….”

다들 내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더 자신감 있게 말했다.

“나는 축구를 쉰 2년 동안 공부랑 개인 훈련을 많이 했어. 그 덕에 우리 감독님이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감독 중에 최고라고 확신할 수 있어. 솔직히 나 축구부에서 축구 가장 잘하잖아?”

당당하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 말대로 딱 한 달만 해봐. 달라진 게 없으면 다시 개인 훈련해도 되니까.”

“……현준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게 할게.”

대답은 두 명이 했지만, 나머지 둘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내 쪽으로 다가온 박범철은 수긍 못 하는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한다는 거야. 얘들아, 똑같이 하면 송현준이나 윤태상이나 노태신 선배 같은 사람들 못 이겨.”

박범철이 말을 계속했다.

“단순하게 생각해 봐. 저 사람들이랑 우리랑 똑같이 훈련하면 누가 더 효율이 높겠냐?”

1학년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박범철은 계속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우울했지만, 할 말을 다 했다.

“우리는 나중에 질 걸 알면서도 똑같이 해야 한다는 거야? 너, 이건 기억해? 2년 전에 나랑 전국대회에서 만났던 거.”

“……알죠.”

“그때 너랑 내 차이랑, 지금 너랑 내 차이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똑같다고 생각해?”

“다르죠. 지금 차이가 더 크죠.”

내 말에 박범철이 김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발끈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라고요? 선배랑 친구들이 무리하다가 훈련 효율 망가지는 걸 보고 있으라고요?”

“축복받은 너는 몰라.”

“이익…….”

말문이 막혔다.

박범철 기분을 내가 왜 모를까. 재능은 상대적인 거다. 나는 박범철의 기분으로 초반 몇십 년을 헤맸으니까.

근데, 지금은 모르는 게 맞다. 전생은 언급할 수 없으니까.

“모르는 거 맞죠. 근데, 내가 왜 거기까지 신경 써야 해요?”

싸가지 없게 들릴 말이라는 거 안다. 근데 나도 열받았다. 박범철과 친구들이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바라는 건 우리가 하나의 팀이 돼서, 전국대회 전까지 최대한으로 발전하는 거예요. 난 축구부원 하나하나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요.”

“잘되긴 무슨.”

“참나, 야, 김성호.”

“으, 으응?”

나와 박범철이 싸우는 것처럼 되어버리자 쭈글해져 있던 김성호가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넌 몸싸움이나 헤딩 따내는 건 솔직히 정두식 선배보다 나아, 머리도 좋은 편이라서 지능적인 수비를 잘해. 근데 패스나 트래핑이 약하지. 그래서 야간 자율 훈련 시간에 유난히 공 다루는 거에 집중하고 있잖아. 평소 훈련 때도 감독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도 이 내용이지?”

“……어, 맞아.”

“조재근, 너는 신체 능력이 좋다는 걸 알아서 휴가 때마다 헬스 트레이너님을 찾아가서 근육 훈련법을 배워오잖아. 그렇지?”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안 중요하고. 그리고…….”

나머지 둘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마지막은 범철 선배, 선배는 단점이 없어요.”

“뭐? 나 놀리냐?”

“선배도 알잖아요. 그러니까 매번 모든 걸 다 훈련하려고 하죠.”

박범철이 입을 다물었다.

이런 선수들을 해야 하는 게 많은 만큼 늦게 완성된다. 모든 게 압도적으로 타고나서 잘하는 게 아니면 성장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다른 부원들이 하나에 집중할 때, 선배는 이것저것 다 하고 있었어요. 하나만 하면 불안하다는 듯 말이죠. 옆에서 보면 알아요.”

전생에서 친한 선배는 아니라지만, 열 번을 반복했으면 그래도 박범철이 어떤 선수가 되는지는 알 수밖에 없다.

박범철은 반 정도 확률로 프로가 된다. 그리고 프로가 되는 데 성공했을 때, 내가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도 현역으로 남는다.

늦게 핀 만큼 오래 피어 있는 것이다. 국가대표까지 오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는 자기의 프로팀에서 인정받는 선수였다.

“잘 아네…… 그렇게 아등바등하는 거 보면 어땠냐? 우습냐?”

“대체!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난 전국대회를 우승하고 싶다고요. 그것도 내년 2월에 열릴 대회에서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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