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12화
동심으로 반짝이는 박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를 들면, 경기 시작 전에는 방송으로 음악이 나오면 좋겠죠. 곡 선정은 음악 감상부에서 하는 거예요. 경기 시작 전, 경기 중간, 경기 후에 어울리는 곡 선정이라는 목적을 주면 좋겠죠. 경기 시작 전에는 축제 시작 전처럼 신나게, 좋잖아요?”
“오, 그렇네.”
“또, 요리부는 가정실에서 만들 수 있는 간편한 간식을 경기 보는 학생들한테 나눠줘도 좋겠고요…… 아니면 판다던가, 이런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축구 경기 볼 때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보는 게 좋아요.”
“오오.”
모든 전생을 포함해서 공식 경기만 약 10,000경기를 뛰었다. 중학교 전국대회나 유소년 팀 경기나 친선 경기나 이벤트 경기는 포함하지 않은 숫자가 그렇다.
그렇다 보니 어떤 경기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팬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고, 시끌벅적했던 경기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프 타임에 댄스부나 합창부에서 공연을 해도 좋잖아요? 경기 시작 전에는 방송부 친구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거나, 레크리에이션을 해도 좋고요.”
박영대는 탄성도 안 지르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냥 무작정 보라고 하면 안 돼요. 흥미 거리를 던져줘야죠.”
대화가 설교하는 것처럼 흘러갔지만, 박영대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잠깐만, 나도 생각 좀 해보자.”
“예, 기다릴게요.”
박영대는 뭘 상상하는 건지 혼자서 감탄하고, 갸웃거리는 걸 반복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전생들이 떠올라서 상념에 빠졌다.
중학교 축구부, 이 시기는 지상철이 감독이었던 1, 2회차와 이탈리아 유소년 축구팀으로 바로 건너갔던 회차를 제외하면 전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열 번의 전생 전부에서 봤을 때, 이 시기는 유일하게 축구가 전부가 아닌 시기였다. 다른 기간은 일상의 전부가 축구였지만, 이 시기만큼은 축구와 학교가 반반 가르고 있다.
내게 지금은 회사 일을 하다가 휴가를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게 많았다.
더 놀고, 더 웃고 떠들고 싶었지만 주 6일제라는 수업 시간과 학교가 끝나면 곧장 학원에 가는 친구들 때문에 그럴 시간 자체가 부족했다. 축구부 일정도 문제였다.
그냥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열 번째 전생에서 갑자기 이 아이디어가 생각났을 거다.
기왕 친선 훈련을 자주 하는 거, 이걸 이용해서 이것저것 해보자라고. 월드컵 우승을 향하는 여정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게 그 당시 내 생각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마지막 인생이니까 더.
“괜찮네. 괜찮아.”
“……그래요?”
생각을 마친 박영대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스무 살 이후에 내면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근데,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귀찮아하지 않을까?”
박영대는 합리적인 의문을 가졌다. 맞다, 나도 그럴 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죠. 그렇지만, 어차피 토요일에 학교 나와야 하는 건 법으로 정해져 있고, 그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사람보다 흐지부지 보내는 학생이 더 많단 말이에요? 이사장님도 아시죠? 저도 축구부 들어가기 전에는 뭐 했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토요일은 대충 보냈어요. 심지어 시험 기간에는 특별활동 안 하고 자습으로 돌려 버렸잖아요.”
나는 영화감상부다. 근데, 1학기 통틀어서 여섯 번도 안 한 거 같다. 회귀한 후부터는 두 번인가 밖에 안 했다. 체육대회랑 기간이 겹쳐서 쉬고,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몇 주를 쉬고, 제도는 좋았지만 실행이 안 되고 있었다.
“차라리 토요일이 휴일이면 더 좋겠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의미 없이 낭비되는 토요일에 뭐라도 하면 좋겠어요. 학생들을 자라고 내버려 두지도 않잖아요?”
“……흐음.”
박영대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내가 현준이한테 많이 배우네.”
“아니에요.”
박영대가 손뼉을 한 번 쳤다.
“좋아, 나도 재미있을 거 같다.”
“그래요?”
“응, 그래서 뭘 도와주면 되냐?”
이 말을 기다렸다.
“특별활동부 중에 미술부, 댄스부, 요리부, 방송부…….”
그 외의 부서도 생각이 안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축구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았기에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아무튼, 방금 제가 얘기한 계획에 도움이 될 거 같은 부에 소속된 학생들이 이번 주에 열릴 친선경기를 보게 해주세요.”
그래서 박영대에게 떠넘기기로 했다.
“친선경기를 보게 해달라고? 그러면 강제가 되지 않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 있었다.
“일단 데려만 와주시고, 왜 축구 경기를 보라고 했는지만 전해주세요.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이나 선배님들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제가, 아니 우리 축구부가 해결할게요.”
“어떻게?”
“결국 축구 경기가 메인이 돼야 하는 거잖아요? 재미있는 경기를 할게요. 저는 쉽게 보기 힘든 플레이를 할 거고요.”
“오…… 좋다!”
* * *
“최진호 선생님?”
대영 중학교의 체육 과목 담당, 최진호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허리를 숙여야 했다.
“안녕하세요! 김은주 선생님.”
송현준의 담임선생님인 정미영을 비롯해 최진호 같은 젊은 선생님들이 가장 따르는 대모 같은 느낌의 김은주가 혼자 앉아 있었다.
“네, 앉아요.”
최진호는 두리번거리면서 김은주의 옆에 앉았다.
“이사장님은……?”
“아직 안 오셨어요.”
“혹시 김은주 선생님, 이사장님이 저를 왜 부른 건지 아시나요?”
김은주가 갸우뚱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갑자기 불려와서.”
그때, 또 회의실 문이 열렸다.
“어머, 김은주 선생님, 최진호 쌤~.”
이번에 들어온 건 평소에는 음악실에만 있어서 쉽게 보기 힘든 음악 선생님이었다.
“앉아요.”
“전 진호 쌤 옆에 앉을래요!”
“그러던가요.”
음악 선생님은 싱글벙글하면서 최진호 옆에 앉았고, 최진호는 어색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사장님이 왜 부른 건지 들었어요?”
“저도 잘…….”
최진호가 그렇게 답하자 음악 선생님은 김은주를 바라봤다.
“저도 몰라요. 근데, 가정, 체육, 음악 과목 선생님들을 모은 거 보니까…… 예체능 관련해서 뭐 내려온 거 아니에요?”
“그런가…… 그런 거면 보통 교감 선생님이 얘기하시지 않나요?”
“그렇네요.”
김은주는 선선히 수긍했다.
그때였다. 또 문이 열렸다. 셋의 시선이 모였다.
이번에는 1학년 국어 선생님 신세연이었다. 김채아의 담임선생님이었고, 정미영과 최진호의 동기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진호도 있네? 이거 무슨 회읜 줄 알아?”
셋이 동시에 갸우뚱해서 신세연은 당황했다. 김은주가 설명했다.
“방금까지도 예체능 과목 회읜 줄 알았는데, 신 선생님이 오면서 모르게 돼버렸어요.”
“아앗, 그래요?!”
이어서 선생님들이 더 들어왔다. 컴퓨터 교육을 담당하는 정보 선생님부터 또 한 명의 국어 선생님까지(3학년), 그래서 이사장이 이들을 소집한 이유는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8명의 선생님이 모였어도, 김은주의 나이와 경력이 가장 많았다. 김은주가 입을 열었다.
“대체 우릴 왜 모은 거지? 이 정도면 수업 빼고 온 사람도 있지 않아요?”
선생님 중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은주는 짜증이 났다. 마침 수업이 없는 정미영과 차나 한잔하자고 약속했는데, 이사장 때문에 다 망쳤다.
[다음 교시 시작하면 회의실로 오세요.]
“그런 문자를 보냈으면 수업 종 치자마자 와야 할 거 아니야…….”
“맞습니다.”
“김은주 선생님 말이 맞아요.”
“맞죠!”
김은주의 말에 최진호, 신세연, 음악 선생님 다 동감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덜컥하고 열렸다.
선생님들 전부가 문을 바라봤다.
“아이고, 미안해. 늦었지? 이것 좀 사 오느라. 자자, 최 선생, 이것 좀 나눠줘.”
“알겠습니다.”
최진호가 마치 군대를 연상케 하는 빠른 움직임으로 이사장에 손에 들린 커다란 종이봉투를 받았다. 종이봉투에는 한자로 ‘믿을 신’자가 적혀 있었다. 단 것을 좋아하는 신세연의 눈동자가 반짝였고, 김은주는 그 봉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최진호는 봉투에서 대전의 3대 빵집 중 하나인 신이당의 케이크와 쿠키를 꺼냈다. 신이당은 3대 빵집 중 케이크와 쿠키 같은 디저트류를 가장 잘 만드는 곳이었다.
케이크와 쿠키의 양에 김은주의 분노는 눈 씻듯이 사라졌다.
“자자, 먹으면서 들어주세요.”
김은주가 이사장을 바라봤고, 눈을 찌푸렸다. 이사장은 김은주의 장난꾸러기 막내아들과 유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여러분께 제안할 게 있습니다!”
* * *
“아…….”
이사장은 송현준과 했던 얘기를 자기가 다 구상해서 제안하는 것처럼 얘기했다. 송현준이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김은주는 불안함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자기가 잘못 알아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다다음 주에 축구부에서 친선경기를 하는데…… 그걸 실제 경기처럼 학생들이랑 꾸며 보자는 거죠?”
“맞아요! 역시 김은주 선생님!”
“아아…….”
김은주는 주변 선생님들을 돌아봤다. 다들 깨달은 모양이다. 여기 있는 선생님들이 어떤 교집합으로 모인 건지.
김은주는 토요일에 요리부를 담당하고, 최진호는 댄스부를 담당하며 신세연은 신문부 담당 선생님이었다.
애초에 과목은 상관없었던 거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해서 학생들이 소규모 교내축제를 꾸미는 거예요!”
김은주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차근차근 말했다.
“이사장님, 번거롭지 않을까요?”
“막, 그럴듯하게 하자는 게 아니에요. 딱 다음 주랑 다다음주 특별활동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소소한 걸 하자는 거예요.”
“어…… 음.”
김은주의 말문이 막혔다. 이사장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토요일 특별활동에는 따로 수업자료 같은 걸 준비하는 게 아니라 즉석으로 하는 편이었다. 느닷없이 하라고 내려온 일이었기에 다들 그렇게 하고 있었다.
“으음…… 한 번도 그런 걸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번에 해보자는 거죠.”
김은주는 이사장과 삼십 년 넘게 일한 사이였다. 이사장의 눈이 희번덕거리고 있었다. 저건 체육대회 예선을 하겠다고 수업을 압축해서 하라고 말했을 때의 광기와 흡사했다.
그동안 김은주의 뒤편에 앉은 신세연은 옆에 앉은 동기이자 정보 선생님 정보윤과 책상 아래에서 핸드폰으로 몰래 문자를 나누고 있었다,.
신세연 : [난 재밌을 거 같은데?]
정보윤 : [ㅇㅇ, 근데 너희 애들이나 우리 애들이나 귀찮아할 듯?]
신세연이 옆자리에 앉은 정보윤을 바라봤다. 잠시 후, 신세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윤의 얘기에 공감하기 때문이었다.
신세연은 신문부, 정보윤은 사진부 담당이었다. 신문부와 사진부 모두 소속된 학생들이 다른 부와 다르게 부활동에 의욕적이었다. 심지어 이들은 토요일 외 시간에도 자기들끼리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취미활동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들이 이사장의 제안을 기꺼이 들어줄지 걱정이 됐다.
마침 이사장과 김은주의 대화가 끝났고, 이사장이 모두에게 말을 시작했다.
“다들, 오해하는 거 같은데 축제하자는 건 강제가 아닙니다. 딱! 이번 주 토요일만 빌리겠습니다. 여기 모인 선생님들이 담당하는 특별활동 소속 학생들이랑 이번 주 토요일에 열릴 친선경기 전반전만 봐주세요. 그리고 제 제안을 물어봐 주세요. 과반수가 찬성한다면 진행하고, 찬성한 부만 참가시키도록 할 테니까요.”
김은주가 손을 들었다.
“저기…… 저는 이사장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젊은 선생님들은 그런 말에 압박을 느낄 수 있거든요? 불이익을 준다던가.”
이사장이 당황했다.
“절대, 절대 아닙니다. 이거 참가 안 한다고 불이익 같은 거 절대 없어요. 내 이름 걸고 약속할게요.”
체육대회를 중시하긴 하지만 이사장 차원에서 못하는 반이나 선생님에게 불이익 같은 건 주지 않았다. 선생님들끼리 놀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런 건 이사장 책임이 아니다.
이사장은 기본은 다 챙겨주고 잘 한 사람에게 당근을 주는 스타일이었다.
김은주는 수십 년간 이사장을 봐왔기에 잘 알았고, 이사장이 직접 설명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했다.
이사장이 열심히 자기가 불이익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걸 설명하는 동안, 김은주는 선생님들의 반응을 살폈다.
기꺼워하는 선생님은 하나도 없었다.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여는 축제라는 본질 때문에 김은주는 내심 혹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반응이 이래서야 어렵다.
‘친선경기만 보고 안 한다고 해야겠다…….’
김은주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이사장이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친선경기, 그것도 중학교 축구부가 하는 경기를 보고 마음이 바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