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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13화 (9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13화

“아니, 이게 말이 돼?!”

교실 앞문을 확 열어젖힌 여학생이 씩씩대며 걸어 나왔다.

앞문 위에는 1학년 7반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 여학생은 1학년 7반이 아니었다.

오늘은 특별활동이 열리는 토요일, 1학년 7반은 오늘만큼은 ‘신문부’가 된다.

기자가 되는 게 목표인 중학교 1학년, 신문부원 기자윤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말이 되냐고!”

기자윤이 발을 구르자 그녀의 검은 뿔테 안경이 코 밑까지 흘러내렸다. 기자윤은 신경질적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자신을 따라 나오는 또 다른 신문부원을 쳐다봤다.

“야야, 진정해.”

송현준의 친구이자 신문부에 소속된 지상준이었다.

기자윤이 지상준에게 하소연을 늘어놨다.

“오늘 공모전에 제출할 신문 기획 회의하기로 했잖아 선배들이나 애들이나…….”

“잠깐, 잠깐.”

“왜!”

“좀 걸어가고 얘기하자. 응?”

“이 씨…….”

기자윤은 지상준의 말대로 분함을 억누르고 교실에서 어느 정도 멀어졌다. 기자윤이 지상준을 올려다봤고, 지상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던 말을 계속했다.

“자기들이 하자고 해놓고! 맨날 학원 간다 숙제해야 한다면서 미루니까 오늘 다 하려고 했단 말이야!”

“알지…… 그런데 어쩌겠냐.”

기자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진심으로 분노했다는 걸 알았기에 지상준은 기자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애썼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지상준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신문부원들이었다. 기지개를 켜는 게 느긋해 보였다. 기자윤을 흘겨보거나, 지상준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부원들도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신문부가 한 달 뒤에 열릴 전국학생신문공모전에 나가기로 한 건 맞았다. 선생님이 이런 공모전이 있다면서 가져왔고, 선배들이 재밌겠다고 하자고 주도한 것도 맞았다.

하지만, 기자윤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충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기자윤은 진지하게 공모전에 참가하고 싶었다. 이쪽 분야에 애초에 관심이 많았다.

아는 게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더 높은 퀄리티를 자연스럽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선배들과 동기들의 아이디어를 반대했다.

재미있게 공모전에 참가하자~ 는 가벼운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내던 선배들과 친구들의 기분은 상했고, 공모전은 됐고 알아서 하라는 태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었다.

다만, 신문부 담당인 신세연 선생님은 이 사건을 몰랐기에 오늘 공모전 준비를 하자고 말했고, 기자윤은 책임감을 갖고 인터넷을 붙잡고 여러 종류의 신문들을 조사하는 등 공모전 준비를 혼자 도맡았다.

아, 정확하게 말하면 지상준이 30% 정도 도왔다.

인간관계는 복잡하다.

지상준은 양측의 입장 다 이해가 갔기에 일단 기자윤부터 말리고 중재해볼 생각이었다.

근데.

“너도! 세연 쌤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야지.”

“내가 어떻게 하냐…… 난 전달한 죄밖에 없어.”

지상준은 학교에 오자마자 신문부 담당 교사인 신세연을 만났고, ‘오늘 부활동 1교시는 취소고, 축구부 친선 경기 전반전을 봐야 한대. 이사장님 지시야. 나 지금 교감 선생님이 불러서 그런데 대신 전달해 줄래?’라는 부탁을 받았다.

지상준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신문부원들은 좋아했고, 기자윤만 분노했다.

“아악! 진짜 어떡하냐. 이제 하기 싫을 지경이야…….”

기자윤이 시무룩해졌다.

지상준은 기자윤을 멋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목표에 열정을 쏟고, 행동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에서는 욕도 하고 장난도 치지만, 허술한 박종혁이나 잠만보 엄태영이나 갑자기 모범생이 된 송현준이나…… 전부 대단하다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인간관계는 인간관계였다.

지상준은 양측 다 잘하는 축구부원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축구 친선 경기를 보라고? 이건 이사장의 폭거야. 대자보를 만들어서 정문에다 붙일 거야.”

기자윤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위로하는 시늉만 하던 지상준이 기겁했다.

“야야, 진정해. 전부 보라는 것도 아니고 전반전만 보라고 했잖아. 그 이후에는 자유라고 했고.”

“그래도! 학기 중에 몇 번 없는 시간인데…… 특별활동에 신문부가 있어서 정말 기대했었는데…… 중간고사다 기말고사다 체육대회다 해서 특별활동 시간에 공부나 시키고! 대체 그러면 왜 특별활동을 하는 건데!”

“맞는 말이야.”

기자윤이 눈을 흘겼다.

“너도 1학기 때는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신문부 활동 많이 빼먹어놓고서.”

“할 건 다 했잖아~ 그리고 중요한 대회였다고~ 반 친구들의 우정과 화합, 남자의 로망이 달려 있었다니까? 심지어 우승까지 했고.”

지상준은 당당했다.

“으음…… 그건 맞아. 할 건 다 했지.”

기자윤은 누그러졌다. 지상준은 기자윤 다음으로 열심히 하는 부원이었다. 내심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또, 지상준 특유의 역사 관련 에세이는 아주 퀄리티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체육대회 축구 결승전도 인상 깊었다.

지상준은 골키퍼 자리에서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렇게 기자윤은 그렇게 진지하고 처절한 모습의 지상준을 처음 봤었다.

“그랬지…… 너 결승전에서 되게 열심히 하던데…… 신기하더라.”

“올~ 기자윤이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야! 사람이 칭찬을 했더니…… 됐어.”

“칭찬이었냐?”

“됐어.”

기자윤이 걸음을 빨리했고, 지상준이 졸졸 따라가서 또 옆에 섰다.

“내가 체육대회 결승하고 나서 열정이 막, 막 넘쳐나서 방학 때 너랑 공모전도 한 거라고. 막, 박물관도 열 곳 다녀오고 그거 토대로 역사신문 기깔 나게 뽑았잖아.

방학 내내, 그리고 개학 후에도 친구들에게 거상이라는 온라인 게임을 전파할 정도로 쉴 때는 거상만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기자윤과 함께 전국중학역사신문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자료수집과 답사 등을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대상은 못 탓지만, 장려상은 타서 내년 여름방학 때도 또 대회에 나갈 생각이었다.

지상준이 우쭐했다. 기자윤은 쭈그러들었다.

“그건…… 인정. 분했지만, 아주 잘했어.”

“뭐가 분하냐?”

“그건 솔직히 네가 더 많이 한 거니까…… 나도 많이 하고 싶었고.”

“많이 하고 싶다니, 기자윤 너 진짜 이상하다. 너 그러다가 나중에 직장 들어가서 착취 당한다.”

“웃기시네.”

“아니, 친구끼리 이기고 지고 할 게 있나. 그리고 넌 공부 잘하잖아. 전교 6등이면서.”

그런 얘기를 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운동장에 가까워진 둘이었다.

뚱해 있던 기자윤이 지상준에게 물었다.

“넌 부활동 시간에 축구 경기 보라고 하는 거 괜찮아?”

“어? 응. 우리 반 애들이 세 명…… 아니, 네 명이나 있어서. 게네랑 다 친하거든.”

“그래? 난 축구 재미있는지 모르겠던데.”

“결승전은 재밌게 봤다면서?”

“그건 네가 뛰니까 그런 거지.”

공감이 가는 말이라 지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거지. 나도 아는 사람 뛰는 거 보니까 재밌을 거 같거든…… 뭣보다 현준이가 축구부 들어가서 제대로 경기하는 걸 처음 보는 거라서 궁금해. 체육대회 준비하면서 깜짝 놀랐거든. 나는 애들이랑 놀 때만 축구 하는 거니까…… 잘 모르긴 하지만 현준이만큼 잘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거든. 막, 브라질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멋진 개인기를 부리는데…….”

“……현준이?”

기자윤이 지상준의 말을 끊으면서 갸웃거렸다. 지상준이 되물었다.

“기억 안 나? 결승전 후반전에 들어와서 다섯 골 넣은 애.”

“……?”

기자윤은 정말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너 진짜 관심 없긴 하구나.”

“나는 축구 잘 모르니까…… 그냥 아는 사람이 하는 것만 계속 봤는데.”

“아는 사람? 나?”

“어. 너만 봤는데.”

“……?”

지상준은 다섯 골을 넣은 선수도 모르는 기자윤 때문에 어처구니없어하다가…… 기자윤이 훅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뇌가 멈춰 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 같은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상준의 눈이 갈피를 못 잡는 걸 이상하게 보던 기자윤도 불현듯 자기가 무슨 말을 했고, 이게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깨달아 버렸다.

기자윤도 뇌가 멈춰 버렸다.

미묘하면서 꽁냥한 분위기, 지상준은 말을 꺼내려다가 멈추고, 기자윤도 말을 꺼내려다가 멈추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기자윤과 함께 운동장으로 걸어가는 지상준을 발견하고, 지상준을 놀라게 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 몰래 뒤를 쫓던 송현준은 방금의 대화를 다 들었다.

모처럼 아저씨의 마음이 돼서 흐뭇하게 둘을 보다가 “왁!”하고 소리치면서 지상준의 양어깨를 갑자기 붙잡았다.

“으으악!”

“꺄아악!”

지상준이 펄쩍 하고 뛰었다가 송현준을 발견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상준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고, 송현준은 크게 웃었다.

“으으악이 뭐냐, 개 웃기네 진짜.”

“야, 이 시키야! 깜짝 놀랐잖아!”

얼마나 놀란 건지 가슴팍을 손으로 세게 쥐고 있던 기자윤이 송현준을 노려봤다.

“아, 죄송합니다. 상준이 놀린다고…….”

“…….”

“그…… 죄송합니다.”

기자윤의 눈이 점점 분노로 차오르는 게 보여서 송현준은 지상준을 방패막이로 기자윤의 시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했다.

기자윤의 눈동자는 송현준을 계속 따라갔다.

송현준은 기자윤을 잘 알았다. 그녀는 열 번의 전생 모두 지상준의 부인이었다. 또, 열 번의 전생 모두 유력 신문사의 기자가 되기도 해서, 송현준의 인터뷰를 자주 따갔었다.

스포츠 담당이 아닌데도 송현준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위에서 닦달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거라고 푸념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아무튼, 지상준과 기자윤이 중학생 시절 연애하는 모습이 반갑고 그리워서 장난을 친 건데, 송현준은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윤이 한 성격 하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서 더 그랬다.

“야! 송현준! 감독님이 빨리 오래!”

근데 하필, 멀리서 박종혁이 송현준을 불렀다. 축구부 집합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상준아, 나 진짜 평소에 안 이러잖아. 말 좀 잘 해줘.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또 사과할게요!”

“어, 어어…… 그래, 가 봐.”

“…….”

송현준이 황급히 떠났고, 기자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송현준의 뒷모습을 보다가, 축구부에 합류하는 것까지 보고 말했다.

“쟤가 네가 말한 송현준이야?”

“어…… 응.”

“오늘 경기도 뛰겠지?”

“다, 당연하지.”

지상준은 고개를 열성적으로 끄덕였다.

“얼마나 잘하나 봐야겠네…… 진짜, 진짜…… 유치원 이후로 이렇게 빡치는 건 처음이야…….”

“……유치원 때는 뭣 때문에 화났었는데?”

“아빠랑 엄마가 학예회 때 온다고 해놓고 안 와서.”

말로만 들어도 얼마나 화났을지 상상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것보다 더 화가 난다니. 지상준은 송현준을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

“아직도 생생해. 근데 오늘도…… 참.”

“아하하, 쟤가 진짜 참 착한 앤데…….”

기자윤이 눈을 부릅떴다.

“착한 애가 그 분위기를 망쳐? 눈치 없는 애 아니야?!”

“그 분위기?”

지상준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고, 금세 기자윤이 왜 이 정도로 화가 났는지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송현준이 오기 직전까지 뭔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 생각을 하면서 기자윤을 보니, 또 머리가 하얘졌다. 기자윤도 아차 했는지 입을 막고 있었다. 또 핑크빛 분위기가 생기려고 했다.

“어머머, 우리 신문부 에이스 1학년들 아니야? 둘이 꽁냥꽁냥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이번에는 신문부 담당이자 국어 선생님인 신세연이 방해했다. 신세연은 둘 사이로 끼어들면서 양쪽에 팔짱을 꼈다.

기자윤은 선생님을 보고, 이번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쌤…….”

“왜?”

“타이밍이 좋으시네요…….”

“응? 갑자기? 근데 내가 그런 소리를 좀 듣긴 해.”

기자윤이 반어법을 썼다는 걸 아는 지상준이 옆에서 웃었다.

“상준이 왜 웃니? 아, 이러다 늦겠다. 다들 빨리 가자!”

“어딜요?”

기자윤의 물음에 신세연이 기자윤과 지상준을 앞으로 이끌며 말했다.

“축구 보러 가야지. 아까 미영이…… 아니, 미영 쌤 만났는데 현준이가 나오는 거면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현준이…… 송현준이요?”

“역시 자윤이도 아는구나?”

“알죠…… 잘…….”

“기왕 보는 거 재밌게 봐야지. 안 그래?”

“맞아요…… 꼼꼼하게…… 아주 꼼꼼하게 봐서…… 그걸 기사로 쓰면 어떨까 해요…….”

기자윤이 음습하게 말했다. 지상준은 저게 무슨 기사일지 두려웠다. 최근에 기자윤이 각종 음해 기사나 파파라치 기사들을 스크랩하던 게 왜 떠오르는 건지. 혹여나 그런다면 지상준이 나서서 말릴 생각이었다.

물론, 기자윤이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건 지상준이 가장 잘 알았다.

“응? 축구 경기를 기사로? 아! 스포츠 기사 써보려고? 그것도 괜찮지.”

둘의 대화가 기묘하게 어긋나있다는 걸 아는 지상준은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송현준이 경기를 잘하길 빌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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