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14화
김채아가 자기의 길을 찾아 전학을 간 후, 김채아의 세 친구들에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정은영은 인터넷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이지혜는 수업을 더 열심히 듣겠다고 다짐하며 귀여운 공책과 필기도구를 수집했으며, 김혜진은 특별활동부 중 하나인 댄스부에 들어갔다.
댄스부는 다른 특별활동부와 달랐다.
대영 중학교의 특별활동부 중에는 대학교의 동아리 같은 부가 몇 개 존재한다. 방송부, 발명부, 댄스부 같은.
이 부들은 특별활동시간 외에도 따로 모이고, 자기들이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연습한다.
김혜진은 친한 언니가 댄스부 사람들과 함께 시내에서 공연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 광경은 김혜진의 뇌리에 ‘멋있다’라는 단어와 함께 남아 있었다. 그래서 김혜진은 친한 언니에게 부탁해서 댄스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김혜진은 후회했다.
댄스부는 보통 방과 후 운동장 연설대에서 앰프를 틀어놓고 연습하곤 했다. 이것도 멋져 보였었는데 학교에서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그랬다는 이유를 들으니 약간 슬퍼졌다.
또, 시내 가서 앰프 틀어놓고 공연하는 것도 당사자가 되니 무척 부끄러웠다.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실수하는 게 두렵기도 했고.
그런데 선배들이 진지하면서 즐겁게 춤을 추는 걸 보고 반성했다. 김채아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해 놓고서, 벌써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김혜진은 방학 내내 댄스부 모임에 전부 참석하면서 선배들의 이쁨을 독차지했다.
군기가 좀 있긴 했고, 무서운 언니들도 많았지만 괜찮았다. 김혜진은 나름 운동신경이 있어서 댄스도 곧잘 따라 할 수 있었고, 눈치도 빠른 편이라서 선배들은 자기들이 노는 데에 김혜진을 자주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덕분에 댄스부 생활은 즐거웠다.
2학기가 시작하고 처음 경험한 토요일도 좋았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1층 교실 하나를 부실로 쓰면서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다. 춥거나 덥거나 둘 중 하나인 바깥에서 춤을 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혜진은 두 번째 특별활동이 열리는 이번 주 토요일, 그러니까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특별활동 날인데 댄스부 전체는 운동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김혜진도 함께였다.
김혜진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선배들이랑 누가 더 웨이브를 잘하나 장난치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온 최진호 선생님, 체육 선생님이자 댄스부 담당 선생님의 말에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야 했다.
-……이런 이유로 1교시는 친선경기를 봐야 해. 알겠지?
최진호는 이사장님이 어떤 얘길 했는지 그대로 전했다.
김혜진은 이사장님의 제안이 불편했다. 댄스부에 들어온 지 3개월도 안 됐다 보니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춰야 할 수도 있다는 게 찝찝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달랐다.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 여자 무리의 가장 구석에서 조용히 따라가는 김혜진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얌전히 듣고 있었다.
“이사장님 짱이야. 우리 춤출 데 없어서 시내 가서 오디오 켜고 춤추는 거…… 불편한 거 개 많았잖아.”
“막, 자기 가게 앞에서 하지 말라고 그러고.”
“거기가 자기 땅인 줄 알겠어. 광장인데. 존나 짜증 났어.”
“근데 봐줄 사람을 모아주겠다는 거잖아! 그것도 이주 일에 한 번씩.”
“맞아, 맞아!”
“재밌겠다. 뭐 출까?”
선배들은 이사장님의 제안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다.
댄스부에 소속된 선배들은 정말로 춤추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들이었다. 앞쪽에 모여서 가고 있는 남자 선배들이나 여자 선배들이나 전부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노는 무리, 그러니까 일진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몇 년 전에 연예인으로 데뷔한 전설적인 선배가 댄스부 부장을 맡고 풍토가 바뀌었다고 들었다.
“……흐흐, 태상이도 볼 수 있고.”
“오오! 윤태상 그 바른생활이랑?!”
……물론, 선배들은 한창 남자에 관심이 많은 나이다.
축구부 주장 윤태상은 1학년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축구부 주장에 에이스인데…… 피부도 새하얗고 이목구비도 또렷했다.
병약한 스타일의 미남, 불쌍해 보이는데 잘생김. 그게 1학년 여자들 사이에서 윤태상이 인기가 많은 이유였다.
김혜진도 자기도 모르게 선배들 쪽으로 몸을 붙였다.
선배들은 자연스럽게 축구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축구부원 중 일부는 휴가받았을 때나, 주말의 자유시간을 활용해서 댄스부에 있는 선배들과 밥 먹고 노래방 가고, 노는 선배들이 꽤 있었다.
“얘들아, 태상이는 당연히 최고고, 그다음으로 태신이는 어때?”
댄스부 부장, 3학년의 말에 2학년들이 바로 대답 못 하고 서로를 쳐다봤다. 질문을 한 부장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하하, 노태신이 좀 애매하긴 해.”
부장은 노태신과 서로 욕하면서 대화할 때도 있는 친구 사이였다.
방학 종료 직전에 이 선배가 불러서 축구부원들과 함께 김혜진도 놀았던 적이 있다. 말은 거의 못 했지만, 노태신이라는 축구부 전 주장이라는 사람과 3학년 축구부원 몇 명, 그리고 인원수 맞춘다고 정두식이라는 선배가 끌려온 걸 봤다. 송현준이랑 건너서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다들 잘 해줬다.
축구부 활동을 나름 잘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김채아에게 핸드폰으로 연락했던 기억이 있었다.
“2학년은 누가 있을까…… 아, 다 나갔지.”
“준서가 싸가지 없게 말하긴 해도 재밌는 애였는데.”
다른 3학년생이 아쉬워했다. 축구부의 2학년생 대거 이탈 사건은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다.
학기가 시작하고 보니 뭉텅이로 사라져 버렸으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히긴 했지만.
부장이 새로운 이름을 꺼냈다.
“정두식이…… 두식이는…….”
“이름만큼 친근하지.”
“착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1학년 중에는 괜찮은 애 없나?”
“종혁이! 종혁이 걔 귀엽잖아.”
부장의 말에 김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종혁은 워낙 노는 걸 좋아해서 김혜진도 몇 번 같은 무리에 껴서 논 적이 있었다. 박종혁은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거 같아서 같이 놀면 재미있었다.
“맞아, 맞아. 애가 활발하고 애교도 있고, 키는 커 가지고. 노래방에서 싸이 춤추는데…… 그치 혜진아?”
“맞아요. 박종혁 걔 웃겨요. 인기도 꽤 많고.”
“그럴 만해. 애가 성격이 좋잖아~.”
이어서 나온 축구부원의 이름에 김혜진은 약간 당황했다.
“아, 그 송현준이라는 애도 괜찮게 생겼던데. 막, 윤태상만큼 튈 정도로 잘생긴 건 아닌데 얼굴이 뭐라고 해야 하나…… 차분하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체육대회 결승 때 잘했던 애 말하는 거지? 걔 키 작지 않아? 박종혁이랑 자주 같이 다니는 거 봤는데 작아서 애 같던데?”
“걔 방학 끝나고 갑자기 컸던데?”
“정말? 얼마나?”
“혜진아, 너 송현준 알지 않아? 저번에 매점에서 인사하던데.”
선배들은 갸웃거리다가 부장의 물음에 일제히 김혜진을 바라보았다.
“네…… 제 친구랑 절친이라서요. 저랑은 그냥 건너서 아는 사이에요.”
“걔는 노래방 같은 데 안 다녀?”
“모르겠어요…… 친구 말로는…….”
말을 흐리며 기억을 되짚던 김혜진은 김채아와의 통화 내용을 떠올리는 데 성공했다.
-송현준 미친 축구귀신이야……. 축구악귀야…….
“축구에 미쳐 있어 가지고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한다던데요. 아, 맛집을 잘 안다고 했어요. 먹는 거랑 축구 하는 거. 두 개 말고는 관심이 없대요.”
“되게 자세히 아네? 그 친구 누구야? 걔랑 사귄대?”
“김채아라고 있어요. 사귀는 건 아니라던데…… 뭐…….”
고백도 거절했다면서 방학 때 둘이 몇 번을 만나는 건지. 둘이 아주 잘 논다고, 김혜진과 정은영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김채아가 좋다니까 봐주는 거라고.
“아, 김채아? 풋살전국대회 우승하고 배구부 있는 대로 전학 간 애지?”
“네에~ 요즘도 가끔 봐요. 배구부 생활이 바빠서 자주 못 보지만…….”
김혜진은 여전히 아쉬웠다. 평소에 조용하던 김채아였지만, 빈자리가 꽤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었다.
채아 보고 싶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학교에 놀러 오라고 해야겠다고, 김혜진은 생각했다. 대신 송현준에게 뺏길지도 모르니 송현준에게 말하지 말고 오라고 신신당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댄스부는 어느새 운동장 스탠드에 도착했다.
* * *
신문부, 댄스부 같은 격한 반응은 사실 소수였다.
“어디 가?”
“이사장님 지시…….”
“아, 그거?”
“진짜, 축구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귀찮아 죽겠네.”
이사장의 지시 때문에 학생들을 데리고 나온 선생님 둘이 모여서 귀찮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바깥 공기 쐬니까 좋네…….”
아무 생각 없는 선생님도 있었다.
축구 경기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고, 그 외에도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시키니까 한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이었다.
“두식이 실수하면 두고두고 조리돌림 해야지~.”
“범철이도 뒤졌다.”
축구부에 있는 친구를 놀릴 생각에 기대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전반전만 보고 나면 오늘 자유시간이라며?”
“뭐할까?”
“나 PMP에 미드 담아왔는데.”
“오! 그거 보자!”
“나도 나도!”
“컴퓨터랑 연결해서 볼 수 있나?”
“나 할 줄 알아.”
운동장으로 나가면서도 경기에는 시선도 안 줄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학생들이 모이니 스탠드가 가득 차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교생의 1/4에 달하는 수였다.
* * *
“……뭐야? 저거 뭔데?”
축구부원들은 눈을 찌푸리면서 서로에게 이 사태에 대해 묻고 있었다.
스탠드에 학생들이 하나둘 오더니 스탠드가 가득 찼다.
줄 맞춰서 꽉 붙어 앉으면 전교생이 앉을 법도 하지만, 지금은 토요일이고 특별활동 시간이라 통제하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전교생의 1/4만으로도 스탠드가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다 띄엄띄엄 앉아서.
아무튼, 축구부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축구부의 친선경기뿐만 아니라 전국대회에서도 관객은 거의 없었다. 축구부원들의 친인척이나 다른 팀의 관계자들, 가끔 축구계 직원들이나 프로팀 스카우트가 오는 게 다였기 때문이었다.
100명이 넘는 관중이라는 걸 쉽게 접하지 못했던 축구부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송현준은 몹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운동장 스탠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역시, 관중이 있어야 진짜 축구지.’
전생에서 축구부 활동을 할 대 가장 마음에 안 든 게 관중이 없는 거였다.
축구 선수로서 경기를 뛰는 것과 동등한 기쁨을 주는 게 바로 관중의 온갖 반응이라는 걸 송현준은 잘 알았다.
물론, 야유는 빼고.
“뭔 아저씨처럼 웃고 있냐?”
박종혁이 어느새 송현준 옆에 와 있었다.
“쟤네 진짜 왜 모인 거야? 축구부 경기 끝나고 공연이라도 해?”
“……무섭다. ……두렵다.”
엄태영과 티알이 이어서 말했다.
이 사태를 유도한 흑막인 송현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나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