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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16화 (9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16화

공현성은 골 때리는 놈이다.

녀석이 축구를 시작한 건 다섯 살, 아버지를 따라간 조기축구회에서 아저씨들이 놀아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사설 유소년센터에서 축구를 하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축구부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공현성은 미드필더로 시작해 공격수에 자리 잡았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키가 크다 보니 어느 포지션에 둬도 잘했고, 그 장점을 공격수 자리에서 살리기 위해 감독이 결정한 거였다.

공현성은 특이한 녀석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축구를 배우고 있었기에 말수가 적은 말 잘 듣고 가끔 고집을 부리는 아이일 뿐이었다.

근데, 인터넷이 문제였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인터넷에서는 올리버 칸을 비롯한 세계 골키퍼들의 멋진 선방을 모아놓은 영상이 떠돌았다.

우연히 그 영상을 접한 공현성은 영상을 밤새도록 반복해서 보면서 골키퍼를 하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행동으로 옮겼다. 공현성의 본성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와…… 진짜 미친놈이었네요. 아, 죄송해요.

-아니야…… 내 아들이지만 진짜 가끔은…… 하.

-아하하.

-그래도 현준이 덕에 쟤가 사람답게 사는 거니까……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에이, 저도 도움 많이 받는데요. 괜찮아요.

난 전생에서 공현성의 어머니에게 직접 그날의 일을 들을 수 있었다.

어제까지 공격수로 뛰던 놈이 다음 날 경기를 앞두고 감독에게 와서는 ‘골키퍼 안 시켜주면 안 뛸래요.’라고 선포한 후, 안 된다고 하니까 입 꾹 다물고 앉은 자리에서 안 일어나고…… 축구부원들이 와서 설득해 봐도 감독만 보고 있고…….

어머니까지 찾아와서 뭔 소리냐고 하는데 골키퍼 시켜달라고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심각한 분위기에도 공현성은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감독만 봤다고 한다.

저 이야길 들었을 때, 공현성과 나는 이미 3년 넘게 한 팀으로 뛴 사이였다.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공현성은 더럽게 에고가 강하다. 자기가 생각한 대로 수비수를 비롯한 모든 선수가 움직인다면 한 골도 실점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정도였다.

평소에는 조용하나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은 광기라는 소리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주장하고, 자기의 의견이 팀에 받아들여지거나 자기를 납득시킬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녀석의 고집을 유일하게 이론과 실력으로 꺾을 수 있는 나만이 공현성의 유일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소속팀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물론 멱살 잡고 몇 번 싸울 뻔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친한 사이였다.

반대로 말하면, 공현성은 세계에서도 먹힐 수준의 재능이라는 거다. 나와 프로팀에서 만나지 않았을 때는 개인 기량은 뛰어나나 팀 내 불화를 일으키고, 수비수들의 기량 저하까지 일으키는 사고뭉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무튼, 그날 공현성의 감독은 결국 공격수 한 번 뛰면 골키퍼도 한 번 뛰게 해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게 된다. 물론, 기존 골키퍼의 실력을 넘는다는 전제하에.

공현성은 고민하다가 어머니가 울기까지 하셔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에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공현성은 고집이 많이 셀 뿐이지 훌륭한 공격수였으니까.

하지만 공현성은 주전에서 반쯤 빠진 상황에서도 골키퍼 훈련에 합류해서 열심히 했고, 중학교 축구부로 올라갈 나이가 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제안은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제안 대부분이 다시 공격수로 뛰는 거였다. 그래서 그 당시 183㎝라는 사기적인 신체조건을 가지고도 전국대회에 이름 한번 못 남긴 신영 중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저기 있는 인상 좋은 신영 중학교의 감독님은 공현성이 골키퍼로서 자질이 있다는 걸 알아봤다고 한다. 참고로 저 감독님은 실업리그 골키퍼 출신이다.

저 감독님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일취월장하는 공현성을 보고, 다른 선수들에게 전부 공현성에게 맞추라는 지시를 내렸고, 공현성은 그 보답으로 골키퍼 하드캐리 쇼로 전국대회 4강 이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전생마다 시기가 좀 다르긴 했는데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무조건 보여준다.

축구는 골을 먹히지만 않으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게 바로 쟤다.

그래서 그런가.

“아 진짜!”

“하…….”

“아 놔…….”

“헐…… 저거 뭐냐.”

“말이 되나 이게 몇 번째야.”

우리 팀 공격수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하고 있었다.

방금 일대일 찬스를 막힌 윤태상은 말없이 공현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공현성은 아직 골키퍼로 포지션을 바꾼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아직 골키퍼로서의 지식이나 기술도 부족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 골키퍼가 실력 이상을 보여줄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전국대회의 강호들과 많은 스파링을 치른 대영 중학교 축구부 입장에서 신영 중학교의 선수들은 눈에 띄게 느리게 보였다.

우리 팀의 약점은 공격진과 수비진이 훈련을 따로 하는 바람에 중간이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중원에서 일부러 개인기도 하는 등 공을 지키면서 완벽하게 앞으로 전달해 주고, 진영을 갖출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로베르토가 바란 대로.

뒤에서 완벽한 패스를 계속 뿌려주니 우리 팀 공격수들은 신나서 계속 두들겼다.

이 점이 공현성을 각성시켰다.

“또 막았어!”

노태신이 비명을 질렀다.

골키퍼의 집중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는 경기가 될 때 높아지는데, 지금 상황이 그랬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쟤네 되게 느리다.’

라고 말했던 노태신의 표정이 심각해져 있었다. 다른 축구부원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라도 나는 착실하게 할 일을 했다. 공현성의 골킥을 헤딩으로 따내서 박범철에게 넘겨줬다. 박범철은 윤태상에게 패스하면서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박종혁의 중거리 슈팅으로 공격이 마무리됐다.

정확히 말하면 박종혁의 중거리 슈팅이 공현성의 양손에 쉽게 잡히면서 마무리됐다.

<…….>

경기 초반에 환호성과 비명으로 우리를 응원해 주던 학생들의 반응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슛이 전부 막힌 탓이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시기의 공현성은 기복이 몹시 심했으니까. 경계조차도 안 했다.

이번에는 티알의 일대일 찬스가 만들어졌다.

<오오오!>

공현성이 멋지게 선방해 냈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이 슬슬 공현성의 플레이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이런 것보다 그냥 딱 봤을 때 멋있는 게 최고니까 이해한다.

“쟤 대박이다”

“소림 축구 아니야?”

“그 이소룡 닮은 골키퍼 같은데! 진짜 잘 막는다!”

“골키퍼 파이팅!”

남학생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안 된다. 난 친선경기마다 학생들이 응원을 나왔으면 좋겠다.

직접 나서 공현성을 눌러줄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나는 수비형 미드필더고, 공현성은 골키퍼였다.

우리가 마주치는 일은 보통 상황에서는 거의 없다. 프리킥이나 코너킥 같은 세트피스 상황이나, 전술적으로 공격진영까지 올라갈 때 정도다.

물론, 한 가지 더 있다.

“패스!”

조용히 있던 내가 크게 외치자 앞에서 공을 가진 채로 머뭇거리던 윤태상이 몸을 돌려 내게 패스했다.

우리 학교 운동장은 정식 축구장과 유사한 크기였다. 이사장이 주변 땅을 사서 증축했다지.

공을 앞으로 차 놓고, 골대를 바라보았다. 작다. 골대에서 30m 정도 되는 거리다.

이사장에게 자신 있게 말한 이유는 멋진 걸 보여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의 볼 소유와 전진을 위한 개인기는 멋진 게 아니다.

멋진 거라는 건 강렬해야 한다.

개인기로 할 거면 3~4명을 한 번에 뚫어내야 하고, 화려한 슈팅을 할 거면 시저스 킥이나 오버헤드 킥으로 골을 넣어야 한다.

축구를 잘 아는 친구들은 팀 적인 움직임과 전술적인 움직임에도 관심을 보여주지만, 축구에 관심이 없거나 가벼운 관심만 보여주는 이들에게는, 한방이 필요하다.

공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전생을 다 합친다면 몇 번을 연습했는지 모르겠다. 숫자를 세는 건 진작 관뒀으니까.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걸 안 건 어제였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다.

오른발을 내디뎠다. 이제 크게 한 걸음 더 가면 공이 있는 위치였다.

세계 최고의 프로팀들,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전국대회 강호들에 비하면 신영 중학교 축구부의 수비는 헐거웠다. 날 막기 위해 달려오고 있긴 했지만, 압박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덕분에 연습 때 했던 것과 똑같은 슈팅을, 최고의 슈팅을 때릴 시간이 충분했다. 전생을 다 합친다면 만 번을 넘어서 십만 번, 아니면 백만 번 깎았을지도 모르는 슈팅이다.

왼발을 공 옆에 굳건히 딛고, 몸으로 체중을 실으며 오른발을 채찍처럼 사용해 공을 후려쳤다.

뻐엉!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면서 내 발에서 출발한 공이 골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최고의 기분이었다. 지금 내 신체조건으로 낼 수 있는 최대치, 아니 그 이상의 슈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발등에 공이 맞는 순간 얹히는 느낌이 나는 스윗스팟을 정확하게 때렸으니까.

유성처럼 날아가는 공의 무늬가 또렷하게 보였다.

완벽한 무회전 슈팅, 공은 대기의 흐름에 따라서 제멋대로 흔들리다가.

쩌엉!

큰 소리를 냈다.

* * *

쩌엉!

“아악!”

송현준의 탄식이 스탠드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그 소리에 스탠드에 있던 일부 학생들은 자기들이 어느새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는 걸 깨달으며 자리에 하나둘 앉았다.

송현준의 로켓 같은 중거리 슈팅은 골대 위 포스트를 때리면서 엄청난 소리를 냈고, 고개도 돌리지 못한 골키퍼 공현성의 머리 위를 지나서 그의 앞에 떨어졌다.

공이 세 번이 튕긴 후에야 정신을 차린 공현성이 다급히 공을 붙잡았다.

그제야 스탠드의 학생들이 입을 열었다.

“……뭐야!”

“……봤어!?”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슈팅에 학생들이 봤냐는 말만 반복하면서 자기들의 눈을 의심했다.

“진짜 잘 맞았는데!”

운동장의 송현준은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었다. 골도 아닌데 그의 주변으로 축구부원들이 잠시 모여서 위로하고 떠났다.

그만큼 대단한 슈팅이었다.

“……우연이겠지.”

“난 저런 슛은 처음 봤어. 깜짝 놀랐네. 근데 너 방금 비명 뭐냐.”

한 남학생이 감탄과 동시에 ‘으아악!’이라는 비명을 지른 친구를 놀렸다. 창피한 친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다리를 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민망했으니까.

“에이, 우연이겠지. 또 할 수 있을리가아아악!”

그 순간, 센터서클에서 10m가량을 혼자 드리블하던 송현준이 또 한 번 기습적인 슈팅을 날렸다.

또 한 번 큰 소리를 낸 공은 살짝 떠올랐다가 뚝 떨어지면서 골대 안을 정확하게 노렸다.

<와아아! 아아아…….>

하지만 이번에는 공현성이 간신히 공을 쳐냈다. 공현성은 수비수에게 소리도 안 치고, 송현준을 노려봤다.

송현준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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