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17화
‘이거지…….’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슈팅을 했는데, 막혔다.
‘이게 축구지…….’
공현성의 한 점 흔들림 없는 또렷한 눈동자가 날 보고 있었다. 경기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기세가 느껴졌다.
잠깐이겠지만, 각성한 공현성의 퍼포먼스는 내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녀석을 향해 씩 웃어주고 코너킥 준비를 위해 공현성이 자리 잡고 있는 페널티아크 쪽으로 향했다. 공현성은 내게서 시선을 떼고는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위치를 지정해 주기 시작했다.
공현성이 방금 얼마나 대단한 플레이를 했는지는 계속 웃는 낯이었던 신영 중의 감독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자기가 데려오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겠지.
삑!
휘슬 소리가 들렸다.
친선경기라 코너킥은 윤태상이 찬다. 윤태상은 검지와 중지를 펼친 채로 손을 들었다. 2번 패턴, 저건 나에게 패스하겠다는 신호였다.
윤태상의 도움닫기가 시작되자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는 우리 축구부원들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신영 중의 축구부원들은 시선을 빼앗겼다. 그때, 윤태상이 나에게 긴 패스를 했다.
<와아아!>
내가 공을 잡자마자 환호성이 쏟아졌다. 슈팅을 해주고 싶었지만, 코너킥 상황에서는 팀에서 약속한 게 있었다. 곧장 반대 측면으로 패스했다. 바로 탄식이 쏟아졌다.
<아아아아…….>
측면에서 공을 받은 엄태영은 크로스를 올렸고, 공현성이 긴 팔로 가뿐하게 공을 잡아내면서 우리의 공격을 또 막아냈다.
“뛰어!”
그렇게 외친 공현성이 긴 팔을 휘둘러서 공을 던졌다.
공은 신영 중학교 공격수의 가슴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역습 방비를 위해 뒤로 물러나 있던 박범철이 자세를 낮추며 신영 중학교 공격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공격수가 머뭇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상대적으로 우리 진영에 가깝게 있던 나는 그동안 박범철의 근처까지 다가가서 공격수와 주변을 살폈다.
“패스!”
마침 신영 중학교의 오른쪽 윙이 그렇게 외치며 오른쪽 측면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뺏기 민망할 정도로 뻔한 궤적이었다.
“아악!”
오른쪽 윙이 비명을 질렀다. 안 뺏으면 직무유기였다. 경로를 예측한 덕에 공을 빼앗고도 여유가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내가 공을 잡았다고 학생들이 환호성을 보내준다.
대단한 슛을 두 번이나 보여줬으니 또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전해져 왔다. 피가 더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슈팅 타이밍이 아니었다. 역습 상황에서 공을 끊어냈기에 상대 팀 진영에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나는 왼쪽 측면에서 손을 든 박종혁에게 길게 패스했다.
<아아아…….>
학생들이 탄식했다.
그리고 5분이 흘렀다.
우리는 두 번의 슈팅 기회를 만들었고, 또 막혔다. 훈련대로 활기찬 공격을 반복했던 우리 축구부의 공격진들의 몸이 둔해지고 있었다. 패스도 앞으로 가는 게 뒤로 온다.
나한테 말이다.
“막아!”
“저 새끼 또 공 잡았다!”
“둘러싸!”
두 번이나 보여줬다. 신영 중학교 축구부도 내가 공을 잡으면 세 명 이상이 달라붙었다.
적 팀과 우리 팀의 전술적 움직임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쓸데없이 백패스 하지 마! 하던 대로 해!”
로베르토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공격진이 당장은 고개를 끄덕여도 조금만 지나면 또 나에게 패스할 것이다.
“수비 진영 지켜! 이 새끼들아! 왜 이렇게 앞으로 나가는 거야! 또 그런 슛을 쏠 리가 없잖아! 정신 안 차려!”
웃는 낯이던 신영 중학교의 감독이 정색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마찬가지다. 신영 중학교의 미드필더와 수비진은 시간이 흐르면 날 또 막아서려고 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한 선수가 경이로운 플레이를 연달아 보여주면, 같은 팀원들은 의지하고 상대 팀원들은 불안해서 경계한다.
경기의 흐름 자체를 뒤틀어 버리는 플레이, 최상위 리그에서 이 플레이를 꾸준히 해주면서 상대 팀에 균열을 만드는 선수들을 바로 월드클래스라고 부른다.
월드클래스,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차근차근 올라가는 단계였다. 머지않아 다시 내 자리를 되찾을 거라 확신하지만…… 지금 당장 그곳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움직임을 계속 관찰하는 공현성을 봤다. 평소보다 더 즐겁다. 매일같이 이런 경쟁을 하고 싶었다.
<와아아아아아!>
<또 해줘!>
더불어 최소 수만에서 십만이 넘는 관중의 환호성을 받고 싶었다.
그래도 지금은 참아야겠지. 내 몸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날 둘러싼 미드필더들을 상대로 공을 지키고 있으니 노태신과 눈이 마주쳤다. 턱짓했다. 노태신이 달리기 시작했다.
“받아요!”
노태신은 나한테 정신이 팔린 중앙 수비수 사이를 파고들었고, 동시에 노태신의 발 앞에 딱 떨어지는 패스를 보냈다.
노태신과 공현성의 일대일 찬스. 이번 경기에서 가장 골과 가까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공현성과 일대일 찬스를 맞이한 노태신이 평소처럼 과감하게 슈팅을 때리지 못했다. 멈칫하면서 드리블을 한 번 더 했다.
“어? 차요! 빨리!”
다급하게 외쳐봤지만 늦었다. 노태신이 슈팅까지 했지만, 공현성은 궤적을 예측했다는 듯 한 손을 뻗어서 손바닥으로 공을 막아냈다. 그리고 힘없이 떨어진 공을 양손으로 안전하게 잡아서 들었다. 노태신은 얼음이 된 것처럼 공현성의 앞에서 멈춰 있었다.
“……뭐야.”
날 마크하던 신영 중학교의 미드필더마저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렸다. 로베르토의 표정이 일그러진 게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노태신은 골키퍼, 그러니까 공현성의 기세에 눌려 버렸다. 다른 축구부원들을 돌아보니…… 다들 심각해지거나 얼이 빠져 보였다.
최고 수준의 경기에서도 간혹 골키퍼가 평점 9점 이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 흐름이 나타나려고 하고 있었다.
공현성은 우리가 추스를 틈을 주지 않았다. 양손으로 공을 던지고, 떨어지기 전에 강하게 찼다.
공현성의 강력한 골킥은 우리 진영에 있는 신영 중학교 공격수의 머리에 정확하게 전달됐고, 공격수의 머리에 맞는 순간 신영 중학교의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격수의 옆을 빠르게 지나면서 공이 떨어지는 방향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막아요!”
축구에는 흐름이 있다. 아무리 상대적 약팀이라도 좋은 플레이를 몇 번 해낸다면 기회를 얻는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신영 중학교의 공격형 미드필더는 발이 무척 빨랐다. 정두식과 엄태영이 급하게 쫓았지만, 어느새 골 에어리어 안까지 들어왔다. 우리 골키퍼가 몸을 낮추면서 양팔을 벌렸다.
뻥!
“……후우.”
다행히 슈팅은 골대에서 한 뼘 차이로 빗나갔다.
단 한 번의 슈팅이었다. 하지만, 우리 축구부원들은 평소보다 훨씬 더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또 5분이 흘렀다.
<…….>
운동장 스탠드에 모여 앉은 학생들 사이에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위협적인 슈팅 한 방 이후 서로 치고받는 양상이 됐지만, 우리 팀이 더 불안해 보인다는 걸 저들도 느낀 것이다.
“뭐 해?! 적극적으로 침투해!”
로베르토가 팔을 걷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상대 팀 감독은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있었다.
아까부터 몸이 둔해진 공격진뿐만이 아니다. 수비진도 간간이 실수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팀원들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내게 패스를 몰아주고 있었다. 모든 공이 날 통해서 움직였다.
그만큼 신영 중학교의 압박이 내게 쏠렸다. 이제는 네 명 정도가 상시 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 공격진에 공간이 만들어져서 앞으로 공을 보내줬는데, 자꾸 나한테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포기하고 외쳤다.
“패스! 리턴!”
공격진에게 패스하고, 다시 공을 받는 걸 반복하면서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고, 센터서클까지 지나서 신영 중학교의 진영 바로 앞까지 왔다.
“패스!”
또 패스를 받았다. 신영 중학교의 미드필더들은 짜증 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 명이 둘러싸고 있는데도 내가 어떻게든 움직여서 패스를 받고 다시 뿌려주니까 답답할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아까 노태신에게 기회를 만들어줬던 것처럼 앞으로 패스하는 게 더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득점 확률은 일반적으로 공이 골대와 가까울수록, 수비수가 적을수록 높아지니까.
골대와의 거리를 봤다. 40m보다 조금 더 가까운 느낌이다. 37, 38m 정도 되겠다.
그렇다면 이 거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가면 파이널 서드다. 파이널 서드는 경기장을 우리 진영, 중립 진영, 적 진영으로 3등분 했을 때 적 진영을 말한다.
파이널 서드에서 어떤 전술적인 준비를 시키냐에 따라 감독의 역량이 달라진다. 골을 넣기 위한 최종작업을 하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많은 월드클래스 감독들은 이 위치에서 이거 하나만큼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파이널 서드 안에서 슈팅 찬스가 온다면 바로 시도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가 더 확률이 높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축구는 사람이 하는 스포츠, 기계가 하는 스포츠가 아니었기에 기회가 온 순간에 멈칫거리면 안 된다.
아까 노태신이 드리블을 한 번 더 해서 쉽게 선방 당했던 것처럼, 축구는 한 끗 차이로 갈리는 상황이 많다. 그래서 훌륭한 감독들은 다 저렇게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결정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했다면, 자신감을 갖고 이기적으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턴!”
그렇게 외치면서 앞으로 패스하는 시늉을 했다.
날 앞에서 압박하던 네 명의 상대 선수는 반복되는 상황에 마음이 헐거워진 것 같았다. 내가 리턴 패스를 하기도 전에 먼저 뒤로 물러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패스가 아니라 오른발로 오른쪽으로 툭 공을 밀어 찼다.
슈팅하기 딱 좋은 거리로.
<오오오!>
침묵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소리를 질렀다.
“막아!”
“몸으로라도!”
네 명의 상대 선수가 제각기 외치면서 다급하게 내 슈팅 각을 막기 위해 몸을 던졌다.
그래도 충분히 찰 수 있는 시간이다. 빠르게 도움닫기를 하면서 골대를 봤는데, 공현성과 눈이 마주쳤다.
‘읽혔다!’
공현성이 무릎을 구부리면서 내가 슈팅할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무슨 우연으로 저렇게 폼이 좋을까. 예상 못 한 즐거움에 웃음이 나왔다.
역시 재밌는 상대다.
슈팅하기 위해 공 옆에 디딘 왼발을 축으로, 슈팅하려고 뻗던 오른발의 힘을 빼면서 공의 우측을 쓸어 왼쪽으로 보내며 90도로 회전했다.
축구 게임에서 슛캔슬이라고 불리는 기술이다.
“아…….”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에 몸을 던지던 상대 선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제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왼발 앞으로 온 공을 왼발로 툭 밀었다. 방향만 달랐지 직전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만 기술을 섞느라 조금 실수했다. 대포알 슈팅을 위해 필요한 도움닫기 거리가 부족했다. 공과의 거리가 아까보다 가까웠다.
<오오오오!>
네 명을 속인 기술 덕에 환호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해내야 한다. 도움닫기를 할 거리가 부족하다면 파워가 아닌 다른 기술을 살리면 된다.
오른발을 공 옆에 내디뎠다. 이번 디딤발은 아까와는 다르게 마치 발목이 꺾인 것처럼 비틀었다.
그리고 비튼 만큼 몸을 눕히면서 공의 왼쪽 측면을 왼발 인프론트로, 채찍을 휘두르듯 후렸다.
이번에는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내 발을 떠난 공이 골대 바깥으로 나갈 것처럼 멀어지다가 급격하게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크고 아름다운 곡선이 골대 왼쪽 구석을 목표로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속임수 때문에 오른쪽으로 몸이 쏠렸었던 공현성은 기여코 왼쪽까지 와서 점프를 시작하고 있었다.
훌륭하다.
전생보다 더 성장한 거 같은 우리 축구부원들의 공격을 받아내다가 순간 각성한 걸까?
이유는 모른다.
원래는 중학교 이후나 프로에 들어간 후에 접촉할 생각이었다. 구체적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친해질 계획이었다.
신영 중학교의 감독이 공현성의 발전에 정말 도움이 될 사람이었으니까.
공현성이 공중에서 팔을 쭉 뻗고, 손가락까지 펼치면서 골대 구석으로 들어가는 공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 간절한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막진 못했지만, 훌륭했다.
삐, 삐이이이이익!
골을 멍하니 보던 심판 김진호 코치가 함성에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휘슬을 불었다. 골을 알리는 휘슬이다.
골망을 흔들고 바닥에서 통통 튀고 있는 공을 보고, 날 멍하니 보고 있는 공현성. 날 마크하던 적 미드필더 트리오와 수비수 한 명의 어처구니없는 얼굴들.
“미친 새끼냐!”
“이게 뭐야!”
“와 이 새끼 이런 것도 숨기고 있었냐!”
기뻐하는 동료들과
<와아아아아아!>
환호하는 관중들.
아마추어 축구나 유소년 축구나 풋살이나. 다 각자의 매력이 있고, 경기를 뛸 때 정말 즐겁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가장 갈망하는 건 이거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전력을 다하고, 쟁취해 내고, 관중의 함성을 받는다. 이 감정을 하루빨리 더 느끼고 싶었다.
빨리 프로축구선수가 되고 싶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 몸이 달아올라서 소리쳤다.
“아자!”
“방금 슛 미쳤냐!”
“베컴인줄 알았다! 돌았네 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