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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20화 (10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20화

삑, 삐이이익!

힘찬 휘슬과 함께 전반전이 끝났다. 로베르토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박범철과 정두식이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왜 이렇게 정신없지…….”

박범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두식이 박범철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재밌지 않았냐? 경기 뛸 맛 나던데.”

“그건 나도 그랬어.”

둘의 대화를 들으며 뒤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축구는 관중이 있으면 재미가 두 배가 된다.

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축구부원들의 표정이나 걸음걸이에서도 즐거워하는 걸 읽을 수 있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공현성을 비롯한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은 한층 더 좌절한 거 같았지만.

“수고했다! 아까 그 슛 뭐냐?”

노태신이 갑자기 어깨동무를 걸어와서 휘청했다. 픽 웃고 대답했다.

“운이 좋았어요.”

내가 생각해도 잘 차긴 했기 때문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노태신이 헤드락 비슷하게 목 옆을 조이며 말했다.

“이게, 운으로 세 번 차냐? 어디서 거짓말을 해?”

“아아, 아파요. 선배 헤딩 골도 멋졌어요. 클로제 같던데.”

“오~ 이거 봐라. 아부도 하네.”

우리는 낄낄거리면서 걸었다.

전반전은 나와 노태신, 윤태상의 골로 3-0으로 끝났다.

“간만에 재밌게 했네. 애들이 갑자기 구경해서 걱정했는데…….”

노태신과 함께 학생들이 잔뜩 나와 있는 스탠드를 바라봤다. 전반전이 끝나고 일부는 흩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이 그대로 있었다.

각 부마다 선생님이나 부장들이 앞에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이사장과의 계획이 성공한 것 같았다.

경기력을 통해 감명을 주는 걸 성공한 거 같아서 괜스레 뿌듯했다.

“세레머니 하니까 재밌더라. 너도 그랬지?”

“네. 당연하죠. 호응이 있으니까 더 힘이 나더라고요.”

공감대를 나눈 덕에 기쁜지 노태신이 히죽거렸다. 저 모습을 보면 여기서는 가장 선배라도 역시 중학생은 중학생이구나 싶었다.

그런 노태신이 스탠드를 보더니 눈을 살짝 찡그렸다.

“근데…… 좋은 건 좋은 거고…… 쟤네 너무하지 않냐?”

“네? 뭐가요?”

괜히 조심스러워져서 목소리를 낮췄다. 왜 경기를 재밌게 봐준 관객들에게 그런 말을 하나 싶어서.

“너나 나나 태상이나 다 비슷하게 손만 흔들었잖아?”

“그랬죠?”

노태신의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왜 태상이만…… 환호성이 두 배는 큰 걸까…….”

“아앗…….”

다시 생각해 보니 노태신의 말은 사실이었다. 윤태상의 세 번째 골은 팀플레이를 통해 만들어진 무난한 골이었는데도 호응이 가장 컸다.

왜일까?

순간이지만 까먹었던 이유가 윤태상을 보자마자 바로 생각났다.

“그…… 선배님.”

“왜.”

“왜 그런지 아시잖아요…….”

나와 노태신은 서로를 바라보고, 이미 경기장 밖에 나가서 물 마시고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는 윤태상을 보고, 윤태상을 보기 위해 스탠드 한쪽에 몰린 여학생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서로를 봤다.

왠지 모르게 노태신의 눈이 슬퍼 보였다.

“……그렇네.”

“다음부터는 격한 세레머니도 가능하게 협의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부족한 게 있으면 뭐라도 해야죠!”

힘차게 말했다. 상대측에서 거절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말은 해볼 수 있는 거잖아.

노태신이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더 비참한 거 같은데…….”

“아앗…… 그렇네요…….”

이것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노태신과 기이한 공감대를 느끼다 보니 어느새 로베르토의 근처까지 와 있었다. 로베르토는 처음엔 헤맸지만 중반부터 마지막까지 좋은 경기를 치른 선수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마지막인 것 같았다.

로베르토는 먼저 노태신에게 말했다. 노태신은 날 보고 있었기에 로베르토의 말이 들리자마자 당황했다.

“태신아, 잘했다. 중반에 막혀서 당황스러웠겠지만, 그걸 이겨내고 흐름을 잡아서 골까지 넣은 게 인상 깊었다. 후반전에는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서 해트트릭까지 노려보자. 교체는 안 한다. 알겠지?”

“……어, 어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 물 마시겠습니다.”

“그래.”

로베르토의 칭찬까지 합쳐지니 몹시 당황한 노태신이 말을 더듬거리다가 뻣뻣한 걸음으로 도망쳤다. 재미있었다.

로베르토도 같은 마음인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준아, 아까…… 후…… 소름이 끼쳤다.”

“제가 이 정도죠.”

“이번 건 인정.”

로베르토가 엄지를 들었다. 로베르토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거 이탈리아에서 욕이잖아요.”

로베르토는 황급히 엄지를 접고, 뒤늦게 깨달았는지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여기 한국이거든.”

“알죠. 장난이에요. 감사합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이번엔 로베르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로베르토의 눈이 내 무릎을 빤히 바라봤다.

망했다. 장난을 쳐서 분위기 좀 풀려고 했는데, 실패한 모양이다.

어색하게 웃으니 로베르토가 진지하게 말했다.

“자, 이제 얘기해 보자. 무릎은 어떠냐? 골 넣고 난 다음부터 갑자기 활동량을 줄이던데. 발을 절지는 않아서 교체하진 않았지만…… 괜찮은 거 맞냐?”

다른 감독이었다면 내가 골을 넣고 게으름을 피웠다고 생각하겠지만, 로베르토는 달랐다. 이게 로베르토를 신뢰하는 이유였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무리했어요.”

“무리? 그 정도라고?”

“예…… 아파요…… 쉬어야 할거같아요.”

이건 면목이 없었다. 너무 몰입했다. 중학교 시절, 그것도 근육이나 뼈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지금은 이 정도 대포알 슛을 자주 때리면 안 됐다. 연습할 땐 시도조차 안 했다.

“야, 이 자식아!”

로베르토가 화를 냈다.

재빨리 신영 중학교 진영을 바라보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쟤가 너무 잘해서 저도 흥분했어요.”

“저쪽 골키퍼? 아, 엄청나긴 하더라.”

화제를 돌리니 로베르토의 눈이 반짝였다.

유망주에 정신 못 차리는 성향은 이 순간에도 여전했다.

“네, 최고였어요. 이따 유니폼 교환하고 싶을 정도던데.”

로베르토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쟤 진짜배기긴 하더라. 살다 살다 유소년 축구에서 심리전을 저렇게 잘 쓰는 놈은 처음 보네.”

“그건 그래요”

화냈다가 감탄하다가,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로베르토가 헛기침을 했다. 화가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아, 크흠. 그러고 보니 유니폼 교환은 안 되나? 뭐 이건 유럽도 유소년 레벨에선 잘 안 하지. 유니폼이 한 푼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아쉬워요. 경기용 유니폼은 두 벌뿐이라. 앞으로는 폴라로이드 사진이라도 갖고 다니면서 사진이라도 찍어둬야겠어요.”

“그건 좋은데? 근데 핸드폰으로 찍으면 되잖아. 얼마 전에 무려 300만 화소짜리 핸드폰도 나왔던데. 안 사냐?”

“으음…… 화질도 별로고…… 아직 쓸 일이 없어서요. 내년에 사려고요.”

대화가 산으로 갔지만, 로베르토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너 교체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 더 뛰고 싶지만, 지금 관리해야 앞으로 20년을 계획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때, 변성기가 완전히 지나지 않은 공현성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아니! 애초에 중거리 슛은 무시하고 수비 라인을 형성하는 게 맞다니까? 그리고! 수비 라인 유지 안 하고 우르르 몰려갈 거면 적어도 두 명만 슈팅각도 막고! 남은 두 명은 반대쪽 막았어야 할 거 아니야!”

공현성의 목소리가 워낙 컸기에 우리 축구부원들의 시선도 공현성을 향했다. 공현성은 관우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날 마크하던 신영 중학교의 미드필더가 반박했다. 목소리를 높였기에 여기까지 들렸다.

“그 거리에서 중거리 슛 먹혀 놓고 뭐가 잘났다고!”

“다음엔 안 먹혀!”

공현성은 그렇게 외쳤다. 신기한 놈이다. 내 기억으로 미드필더는 2학년이고 쟤는 1학년인데. 진짜 막 나가는 놈이다. 왕따 당해도 안 이상한데…… 역시 재능이 최고다. 평소에 조용한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저 녀석이 흥분하는 건 보통 이론이나 경기력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때였다.

공현성이 갑자기 날 바라봤다.

깜짝 놀라서 움찔할 뻔했다.

그리고 미안함이 찾아왔다. 나한테 복수하고 싶은 거 같은데…… 난 후반전을 안 뛰니까.

“중거리 슛을 무시하고 수비 라인을 형성하는 게 맞다. 다들! 후반전은 그렇게 해라!”

그때, 감독이 공현성의 의견을 중심으로 교통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공현성은 그제야 내게서 시선을 뗐다.

저 팀은 아직 준비되고 있는 단계다. 내년이나 내 후년에 팀의 조직력이 반 정도만 완성되면 공현성 중심으로 지독한 실리축구를 보여줄 것이다.

다만, 후반전은 몇 분만 있으면 재개된다.

감독이 수다맨이 된 것처럼 후반전에 뭘 해야할지 얘기하고 있었지만, 신영 중학교의 선수들은 화가 나 있거나 얼이 빠져 있었다.

후반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 *

스탠드에 앉아서 다른 부원들과 후반전을 편하게 감상했다.

후반전에 우리는 두 골을 더 넣었고, 5-0으로 승리했다.

“현준아! 최고였어!”

경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들린 목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정미영 선생님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보셨어요?”

“다 봤지~ 우리 영어부는 이사장님이 안 불러서…… 영화 틀어주고 구경 왔지.”

“……그래도 되는 거예요?”

“다들 좋아하던데?”

아, 특별활동이 원래 이런 거였지. 스탠드에 나와 있는 소수의 열정 가득한 부들과 막 열의가 생긴 부들의 열기를 느끼다 보니 헷갈렸다.

“그건 그렇고, 잠깐 이쪽으로 와 볼래?”

“네? 네.”

정미영을 따라 학생들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니, 선생님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열려 있는 채였다. 통화 중이라는 화면도 떠 있었다.

“자, 이사장님이 바꿔 달래.”

“아아, 네. 전화받았습니다.”

-현준이! 당장 뛰어와!

이사장의 목소리가 무척 들떠 있었다.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이사장실이지!

이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배경음이 시끌벅적한 걸 보면 스탠드 위쪽 어딘가에 있는 거 같은데…… 굳이?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선생님, 이사장님이 부르셔서 가 볼게요.”

“그래그래, 다음에도 경기 꼭 볼게.”

“감사합니다.”

물론, 뛰어갈 생각은 없었고 천천히 걸어서 스탠드를 올라갔다. 무릎보호를 위해서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쟤가 아까 골 넣은 애지?”

그렇게 한 계단씩 올라가니 학생들의 쑥덕거림도 들렸고,

“…….”

남자 선배들의 말없는 따봉에 나도 따봉으로 답하기도 했다.

“야.”

그리고 반친구 지상준을 마주쳤다.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나 쩔었지?”

“대박이더라.”

지상준은 그렇게 말하고 옆을 바라보았다. 옆에는 경기 전에 내가 놀라게 했던 기자윤이 있었다.

이번 생도 똑같이 흘러간다면 지상준의 부인이 될 거고…… 부부 모임 때도 볼 거고…… 기자로도 만날 거다.

그러니까 머리부터 숙였다.

“……아까는 죄송했어요…….”

아무리 장난이었다지만 기자윤은 정말 심장 떨어질 정도로 놀란 것 같았다.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였으니까.

기자윤은 뚱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다음에 인터뷰 하나 해줘. 공모전 준비용으로 스포츠 신문 만들어볼 거거든. 네 인터뷰가 필요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해달라고는 안 해. 문화상품권이나 밥이라도 사줄게.”

“좋아, 그러면 상준이 통해서 말해줘.”

분위기가 풀린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이번에는 기자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에도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거 보면 재미있다. 옆에서 눈치를 보다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지상준도 재미있었고.

아무튼, 그들까지 지나쳐서 스탠드를 완전히 올라서 본관으로 들어갔다.

이사장실은 본관 1층에 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이사장실의 문을 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이사장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날 발견한 이사장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리! 현준이! 왔구나!”

“예? 예에?”

“아까 그 슛 뭐냐? 이 영대 아저씨는 감동했다!”

“그…… 진정하세요.”

부끄러워서 재빠르게 문부터 닫았다. 이사장도 엄지를 들고 있었다. 그것도 양손으로. 오늘은 여러 곳에서 따봉을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진정해야지…… 흐흐.”

이사장이 이상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생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얘기할 걸 그랬다.

이사장이 그나마 진정된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용건을 물었다.

“저기…… 영대 아저씨, 왜 부르셨나요?”

“아아~ 일이 어떻게 됐나 말해주려고 그랬지~.”

물론 이사장은 계속 들떠 있었다. 그나마 진정된 거다.

“어떻게 됐는데요?”

“선생님들이 네 골 터지고 얼마 안 있어서 직접 오기도 하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지. 내 제안대로 하겠다고! 다음 친선경기를 축제처럼 꾸며 보자고.”

“잘됐네요.”

“그렇지? 심지어 학생들도 긍정적이라니까 너무 좋구나. 자발적인 축제라니…… 그것도 축구로…… 내 꿈을 이룬 기분이라서 너무 좋아!”

“아, 하하.”

이사장의 텐션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이사장이 양팔을 벌렸다.

“자, 한번 안아보자.”

“예? 안는다고요? 왜요?”

“이 축제가 우리 학교 명물이 될지도 모르겠거든. 네 아이디어도 최고고…… 다른 이사장들한테 자랑할 거리도 생기고! 슈팅도 멋지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안아주고 싶구나!”

“어, 어어…….”

피해 보려고 했지만, 이사장에게 붙잡혔다. 수염이 따가웠지만, 난 몇 분 동안 풀려나지 못했다.

이사장은 오늘 경기에서 뭐가 좋았는지 얘기했다. 다다음 주에 경기가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하는 얘기도 했다.

너무 좋아하니까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품에 안긴 채로 가만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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