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21화
늦은 저녁, 신영 중학교 축구부 감독실 안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차 있었다.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 감독, 김성민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 하나를 문 채로 멍하니 있었다. 김성민의 앞에는 텅 비어 있는 화이트보드가 보였다.
잠시 후, 김성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김성민은 다 피지도 않은 담배를 잡아 재떨이에 거칠게 문질러 불을 껐다.
이어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소리를 질렀다.
“다음 주…… 어떡하냐 진짜!”
아까부터 김성민의 머릿속에는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공현성을 뚫어내고 골을 넣는 장면들이 차례대로 재생되고 있었다. 김성민은 아까부터 이걸 어떻게 막아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하지만.
“답이 없는데…….”
김성민이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신영 중학교 쪽으로 찾아가겠습니다. 몇 시까지 갈까요?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엔 안 집니다.
오전에 경기 끝나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큰일이 났다.
“다음 주엔 안 집니다? 안 집니다아아?”
김성민은 자기가 했던 말을 되뇌며 머리를 붙잡고 흔들었다.
“으아아악! 어떡하냐 진짜!”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났다.
처음에 로베르토와 인사할 때는 호승심이 들었다. 외국인이기는 하지만, 같은 20대였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축구부 감독에 20대가 몹시 드문 걸 생각하면 친근감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감독 차이’뿐이었다.
모든 면에서 차이가 났다.
경기를 치르면서 로베르토가 자기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다는 걸 체감했다.
대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은 자유분방하게 공격하는 것 같았지만, 무작정 덤비는 게 아니었다. 선수들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자유분방하게 공격하는 연습을 한 것이었다.
“아악!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자신감. 자신감.”
다음 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 김성민은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작년 말에 감독으로 부임하고 거의 1년째다. 정이 많이 들었기에 축구부원들에게 미래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신영 중학교 축구부는 전국대회에서 언급도 안 되는 최약체, 그렇다 보니 2, 3학년들과 1학년 대부분은 좋은 중학교 축구부에 진학하는 데 실패한 인원들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전국대회 본선에 출전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예선전에서라도 좋은 경기를 하게 해주고 싶었다.
전국대회 본선에 못 간다면, 4강까지 못 올라갈 거라면 경기라도 잘해서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스카우트를 받거나 결원이 생긴 곳에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김성민은 침착해졌다. 자신이 흔들리면 안 된다.
“오히려 좋은 거야. 그 정도로 잘하는 애들이랑 매번 한다면…….”
침착해지니 긍정적인 면도 보였다. 아마 다음 경기도 비참하게 질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대영 중학교는 정말 강하다. 강한 팀과 반복해서 친선경기를 치를 수 있다면 승리를 위한 전술 하나 정도는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도 더 성장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은 실업리그에서도 자리를 못 잡은 실패한 선수였지만, 초, 중, 고등학교 축구부는 착실하게 거쳤기에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어느 정도 레벨인지는 가늠할 수 있었다.
윤태상, 노태신 둘은 전국대회 레벨이다. 박종혁, 지역 레벨인데 아직 1학년이란다. 티알이었나? 외국인 선수도 독특한 느낌이 났다.
수비진은 기억 안 난다.
왜냐면 송현준이라는 애의 존재감이 너무 압도적이었으니까.
“부럽다…….”
송현준의 이름을 떠올리니 로베르토에게 질투심이 생겼다.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그렇게 존재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구 하고 처음 알았다.
공현성 앞에 송현준을 세울 수 있으면 전국대회에서 무실점 우승도 꿈이 아닐 텐데…….
“아! 그래! 현성이! 공현성이 있지!”
김성민은 화이트보드 중앙에 공현성이라는 이름을 큼지막하게 썼다.
김성민은 초등학교 때부터 골키퍼를 맡은 전문 골키퍼 출신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키가 170㎝까지 자라서 골키퍼를 도맡았는데…… 그 이후 4㎝밖에 크지 않아서 고등학교 때부터 슬슬 주전에서 밀려나다가 성인이 돼서 완전히 멸망했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었다.
그래서 공현성을 만났을 때 기뻤다. 공격수 출신이라 골키퍼 지식은 부족한데, 신체적으로는 완벽했다. 185㎝라면 더 크지 않아도 괜찮았다.
골키퍼로만 쓰겠다는 약속을 하니 공현성은 기꺼이 따랐다.
골키퍼를 하고 싶다는 공현성에게 기본기부터 시작해서 자잘한 기술들을 최대한 전수했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고, 공현성은 오늘 자신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줬다.
“현성이 중심으로 짜면 될 것 같아…….”
후반전에 2실점을 하긴 했지만, 수비수들이 흥분하거나 좌절해서 움직임이 부족한 것 때문이었다.
공현성은 막아야 하는 골은 다 막았고, 그 이상까지도 해냈다. 솔직히 수비수들이 정신 줄만 잡았더라면 후반전은 무실점이었을 것이다.
공현성 중심으로 지독한 수비 전술을 구성하고,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빠른 발을 이용해서 역습을 한다.
골키퍼 중심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였지만, 개개인의 격차가 큰 중학교 축구에서는 먹힐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김성민은 전술의 기본적인 골자를 먼저 적었다. 이런 건 비전문가도 할 수 있다. 감독이라면 이 전술이 경기장에 구현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김성민은 이어서 골자를 바탕으로 브레인스토밍 기법을 활용해서 세부적인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띠리리~ 띠리리~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집중하고 있었기에 일부러 무시하고, 계속 적었다.
띠리리~ 띠리리~
한참을 울리다 끊어진 핸드폰이 또 울린다.
또 무시했다.
띠리리~ 띠리리~!
이제는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전화벨 소리, 공현성은 짜증이 났지만 핸드폰을 확인했다. 급한 일일지도 모르니까.
근데, 아니었다.
[지상철 감독님]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이 일자리를 소개해 준 실업 축구팀 선배의 친구, 지상철이었다. 대전에 오자마자 술자리를 가졌었는데, 자기가 당연히 위라는 듯한 강압적인 태도가 싫었다.
술값도 김성민에게 떠넘겼다.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았다.
-아이 씨! 왜 전화를 이렇게 늦게 받아?
“죄송합니다…… 폰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와서요.”
당연하지만 전화는 공손히 받았다.
-……그래? 다음부턴 챙기고 다녀. 무슨 연락이 올지 모르는데 핸드폰을 놓고 다니는 게 말이 돼?!
“명심하겠습니다.”
김성민은 말은 공손하게 하면서도 입 모양으로는 욕을 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대영 중학교랑 친선경기했다고 했지?
뜬금없이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고민하던 김성민은 대영 중학교가 지상철의 전 직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성민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예.”
-어땠어?
“잘하더라고요.”
-……잘한다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어떻게 졌는데?
지상철이 재촉했다.
김성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는데, 남 비위만 맞춰야 한다니.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김성민은 경기도 출신이어서 충청권에 인맥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상철은 충청권 내에서 어느 정도 입김이 있었다.
괜히 밉보이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다. 예를 들면 친선경기 잡기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축구계는 좁아서 같은 지역 사람이면 대부분 한 다리 걸치면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김성민은 먼저 다섯 골을 먹혀서 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송현준에 대해서 얘길 시작했다.
“특히 송현준이라는 애가 문제였어요. 걔가 중앙에서 중심을 너무 잘 잡더라고요. 우리 애들은 공격 못 하게 하고, 자기가 공을 잡으면 팀 분위기 추슬러주고…… 심지어 대충 40m쯤 거리에서 중거리 슛을 넣었다니까요? 미친놈인 줄 알았어요.”
-……어. ……으음. 계속해 봐.
“예,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 지상철은 성의 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어.
-또?
김성민은 얘기하면서 점점 짜증이 쌓이는 걸 느꼈다.
그래서 작은 복수를 하기로 했다. 지상철 다음으로 감독이 된 로베르토를 칭찬하는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칭찬하면 쌍욕 먹을지도 모르니 간접적으로.
“뭣보다 인상 깊었던 건, 대영 중학교가 한 팀으로 잘 움직이더라고요. 공격 전술도 정말 다양해서 어떻게 공격할지 예상이 안 됐어요. 역시…… 감독님이 지도했던 애들답게 잘하더라고요.”
김성민은 중간부터 괜히 걱정돼서 지상철의 칭찬까지 덧붙였다. 김성민은 자괴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으음…… 하 씨.
지상철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화난 것 같이 들렸다. 김성민은 기분이 약간 좋아지는 걸 느꼈다.
지상철의 한숨이 몇 번 더 들리고, 또렷한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들려왔다.
-야.
“예.”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할까. 걱정부터 들었다.
-대영 중학교랑 친선경기하지 마라.
“예?”
-하지 말라고.
예상 이상으로 어이없는 지시였다.
“어…… 이미 다음 주에 약속도 잡았는데요?”
-아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니까? 아니? 아주 상전 납셨네. 너 태균이 소개로 여기 온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인맥의 무서운 점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특히, 김성민 같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태균이라는 이름의 선배의 소개를 받아서 오긴 했지만, 그 선배와 지상철이 더 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태균 선배도 딱히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
-끊는다. 친선경기했다는 얘기 들리기만 해봐.
“예…….”
대답을 하는 도중에 전화가 끊어졌다.
머리가 아파서 얼굴을 찌푸리고 가만히 있었다.
“하…… 진짜 엿 같네.”
공현성이 대영 중학교에 복수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데, 어떻게 달래줄지도 막막했다.
또, 팀에 좋은 기회를 이렇게 날려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다.
“하아…….”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김성민이 지상철의 지시대로 할 거라는 점이었다. 김성민은 큰 자괴감을 느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대체 왜? 굳이? 친선경기까지 못 하게 하는 거야?”
김성민의 말은 허공만 맴돌았다.
* * *
월요일 아침, 축구부원 네 명이 등교하자마자 1학년 2반이 떠들썩해졌다.
날 포함한 축구부원들의 자리는 맨 뒤 구석에 모여 있었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축구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친하게 지낸 송시환이 박종혁에게 말했다.
“박종혁, 너 점심시간에 시간 돼?”
“왜?”
“우리 사진부 선배가 사진 찍고 싶대. 경기 포스터 만들어보고 싶대. 네가 길쭉해서 그림이 잘 나올 거 같다더라.”
“정말? 좋지. 근데 발목훈련 하고 가도 되지?”
“당연. 금방 한다고 했어.”
박종혁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은근히 관심받는 거 좋아한다.
박종혁이 송시환의 뱃살을 팔꿈치로 찌르면서 말했다.
“야, 근데 네가 만들면 안 되냐? 나 나루토처럼 막 효과 넣어서 만들어줘.”
“지랄, 선배가 진지하게 만든대.”
박종혁은 눈에 띄게 아쉬워하며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포토샵이라고 했나? 그거 배웠을 거 아니야. 합성하면 별거 다 만들 수 있다던데…….”
“난 아직 배우는 중이야. 근데 박종혁, 너 나루토 다 봤냐?”
“저번 휴가 때 대여점에서 싹 빌려서 봤지, 그…… 안 본 애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사스케랑 나루토 싸운 것까지 봤어.”
“오오오! 거기! 알지!”
만화 친구의 등장에 송시환이 신이 났다.
박종혁뿐만이 아니었다. 티알도 지상준에게 붙잡혀 있었다. 지상준은 티알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있었다. 지상준도 신문부 선배가 부탁했다고 한다.
티알은 곤란해했다.
“나, 말실수하면 어떡하냐…….”
걱정할만한 내용이라 거들어줬다.
“같이 가줄게. 나도 신문부에서 인터뷰해 달라고 했으니까…… 상준아, 동시에 가능하지?”
“오~ 좋지~ 점심시간 콜?”
“콜.”
엄태영은 워낙 평화롭게 자기 시작해서 용건 있는 애들이 쪽지만 대충 팔 밑에 끼워놨다. 사실 애들이 깨우긴 했는데 잠들고 10초밖에 안 됐는데 안 일어나서 어쩔 수 없었다.
“종혁아! 우리도 좀 도와줘!”
“나만 믿어!”
박종혁에게는 또 요청이 들어왔다. 나도 몇 가지 들어왔지만, 웬만하면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말한 아이디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 요즘 자잘한 훈련 시간도 줄어들어서 여유가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반 친구들, 정신없어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 축구부 친구들을 보니 다 잘 풀릴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