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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23화 (104/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23화

운동장으로 나오니 축구부의 절반 정도가 플라타너스 나무 밑에서 쉬는 게 보였다. 벤치에 앉아 있는 부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누워 있었다. 힘들었나 보다.

나머지 절반은 당연히 훈련 중이었다.

훈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운동장 테두리를 따라서 쉬고 있는 부원들에게 향했다.

날 발견한 부원들이 열렬하게 반겨줬다.

“와, 개꿀 빠는 놈 왔네.”

“와~ 송현준, 혼자 꿀 빨면 좋냐?”

“행복하지 아주?”

동기들과 선배들이 합심해서 공격해오니 어지러웠다.

내 표정이 일그러진 건지 그들이 낄낄대면서 웃었다.

“너무합니다. 진짜.”

혼자 꿀 빨면 좋냐고 물어봤던 정두식을 비롯한 선배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동기들 사이에 앉았다.

“어때? 달달 했어?”

누워 있던 박종혁이 놀리듯이 말했다. 눈을 찌푸렸다.

“훈련 못 해서 죽는 줄 알았거든.”

박종혁이 대자로 누운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게 적당히 뛰었어야지. 경기에서 신 내다가 무릎에 무리 가는 것도 모르다니…… 그런 건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처음 본다.”

“시절은 무슨…… 야, 우리 중학교 1학년이야. 얼마나 지났다고.”

“초등학생이랑 중학생은 겁나 차이나지.”

박종혁의 당당함에 축구부원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이가 없어졌다. 더 말을 해봤자 이들에게 말려들기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훈련 얼마나 남았냐?”

“10분은 더할 거 같은데. 우리 저렇게 30분 굴렀어…….”

훈련이 정말 힘들어 보이긴 했다.

“노태신 뛰어! 정신 안 차려!? 티알! 내 뒤에 있다고 안 보일 줄 알았어?! 안 뛰어?! 뛰어!”

경기장에 있는 열한 명의 축구부원들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작은 골대를 두고 6대 6 미니게임을 하고 있다. 참고로 공격팀은 축구부원 다섯에 로베르토였다.

훈련을 구경하고 있으니 박종혁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철인인 거 같아. 우리랑도 저렇게 해놓고 또 뛰시네.”

다른 축구부원들도 동감한다는 듯 한마디씩 하거나 고개를 끄덕였다.

미니게임의 축구부원들은 평소보다 더 뛰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는 정신없는 달리기. 공격이든 수비든 마찬가지였다.

미니게임은 경기장에서 나올 여러 상황을 미리 연습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늘은 빠른 템포의 정신없는 경기가 컨셉인가 보다.

조금 지켜보니 웬만한 인터벌보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축구부원들이 내게 투덜거렸는지 이해가 좀 갔다.

“나도 끼어서 하고 싶네.”

“뭐?”

박종혁이 프로레슬러 언더테이커처럼 상체만 벌떡 일으키더니 날 이상한 놈 보듯 봤다.

“미친놈.”

힘들어 보였지만, 재미도 있어 보였다. 로베르토가 경기장 중앙에 머무르면서 공을 양 측면으로 골고루 패스하고 있었다.

덕분에 공격수들이랑 수비수들은 죽을 맛이겠지만, 저것도 저거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로베르토가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뛰려고는 하지만, 로베르토도 사람이다. 솔직히 체력은 젊은 우리가 더 좋을 수밖에 없다. 회복 속도가 남다르니까.

아마 훈련 끝나면 앓아눕겠지.

로베르토의 열정적인 모습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거의 두 시간 동안 뭐 했냐?”

박종혁의 물음에 여태까지 해왔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맞다. 나 지금 사진부 갔다 왔어.”

“응? 왜?”

이사장실에 가고, 친선경기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만나서 도와줬다는 얘길 했다.

박종혁은 대놓고 부러워했다.

“좋겠다……. 훈련 끝나고 가도 있으려나?”

박종혁의 표정을 보다 보니 불현듯 전생 생각이 났다. 박종혁은 대개 프로 데뷔한 초중반에 정말 잘한다. 신체 능력이 유난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친구라서 장난삼아 놀리는 걸 배제한다면 얼굴도 꽤 괜찮게 생겼다. 활발하고 장난기 많아 보이는 인상이다.

그렇다 보니 인기가 많아지고, 관심도 많이 받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지없이 우쭐거리면서 다녔다.

-나 어제 김수빈이랑 일촌 맺었다. 부럽지? 아니, 김수빈이 누군지 모른다고? 연예인 아니야! 연예인! 이 자식 축구만 잘하지 아무것도 모르네. 이 형님이 한 수 가르쳐주마. 내가 말이야 막 비밀 방명록으로 이런 것도 받았거든? 봐 봐.

경기력이 흔들리는 건 아닌데 자랑을 시작하면 기본이 두 시간이다. 그러면 내가 귀찮다. 예방주사를 놓기로 했다.

“왜, 관심받으러 가게?”

“뭔 관심!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지.”

“스타병 걸리면 안 된다.”

내가 힘들어.

“스타병, 스타병, 스타병을 조심해야 해.”

“아 미친놈이 뭔 스타병이야.”

박종혁은 의외로 덤덤했다. 박종혁이 운동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런 건 저기 태상 선배 같은 사람이 걸리는 거지.”

“인정, 쉬는 시간마다 아주……. 난 윤태상 반이 여자 반인 줄 알았다고.”

갑자기 정두식이 끼어들었다.

정두식은 이어서 윤태상이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어서, 자기가 훈련 가야 한다면서 데리고 나왔다는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근데 정두식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 선배님은 안 둘러싸였나요.”

“야 이 자식아.”

정두식이 슬픈 눈을 했다.

“그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야…….”

“아니 아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이 자식 훈련도 빠지고, 선배도 놀려먹고……. 아주 신났지?”

정두식의 투덜거림에 쉬던 축구부원들이 동조했다. 나는 얌전히 말로 얻어맞았다. 이번엔 맞아야 하는 게 맞다.

그렇게 놀고 있으니 훈련이 끝났다.

“다들 이쪽으로 집합!”

로베르토가 우리를 불러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다.

박종혁과 나란히 걷고 있는데 박종혁이 주변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뭐 할 거냐? 태신 선배가 아는 여자 선배들이랑 학교 끝나자마자 노래방 갔다가, 시내 가서 저녁 먹고 놀자는데. 태신 선배가 너도 데려오래.”

훈련 끝나기 전에 운동장으로 오라고 했던 이유는, 오늘부터 모레 오후 훈련 전까지 짧은 휴가였기 때문이었다.

윤태상 같은 다른 지역에 살던 학생들은 숙소에만 머물러야 하는 아쉬운 휴가였지만, 로베르토는 훈련을 아예 쉬는 휴식도 필요하다면서 계획표에 집어넣고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휴가 계획은 미리 짜놓을 수 있었다.

“으음…… 시환이랑 상준이랑 재영이랑 PC방 가기로 했는데.”

“아니, 취소해!”

박종혁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의리 없는 놈. 난 의리를 지킬 거야. 그리고 내일 저녁에는 약속이 있어. 조기축구회에서 회식한다고 하거든.”

부부동반이라 아버지랑 어머니도 가시고, 이사장이나 로베르토도 있다.

뭣보다 흑돼지 삼겹살 구이 맛집에 간다고 해서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아쉬워하는 박종혁을 뒤로하고, 노태신에게 선약이 있어서 안 된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로베르토에게 휴가 기간 주의사항에 대해서 듣고, 해산해서 숙소가 아닌 집으로 향했다.

* * *

알찬 휴가였다.

어젯밤에 집에 돌아오고,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여동생을 놀린 후에 미리 사 온 아이돌 앨범을 줘서 달래고 푹 잤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평소처럼 공부하고 있는 형과 오랜만에 잡담을 하고, 가볍게 몸만 푸는 수준의 운동을 한 후 아침을 먹고 등교했다.

학교에서는 수업 듣고, 넘쳐나는 체력으로 복습도 하고, 친선경기를 준비하는 걸 도왔다.

오늘은 심지어 한 교시 적은 날이라 3시에 수업이 끝났다. 끝나자마자 지상준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축구부에 들어가기 전에 애용하던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유즈맵을 3시간 내내 했다.

그리고 날 데리러 온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오늘 뭐 했냐?”

“알찬 하루를 보냈어요.”

“뭐?”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로베르토가 갸웃하면서 고기를 뒤집었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PC방에서 게임 했어요.”

로베르토가 날 신기하게 쳐다봤다.

“와…… 너도 그런 거 하는구나.”

“그런 거라뇨. 이래 봬도 축구 다시 시작하기 전에는 죽돌이였어요.”

막 회귀했을 때는 게임이나 모니터의 화질을 보면서 역체감을 느끼지만, 금세 익숙해지고 재밌어진다. 어려서 그런 거 같다.

“맞아요. 로베. 얘 맨날 담배 냄새 배 가지고, 담배 피우는 줄 알고 혼냈었다니까요?”

어머니가 내 말에 동조했다.

할 말이 없어서 미소만 지었다.

PC방에서 담배 냄새는 어쩔 수가 없었다. 흡연구역 이런 것도 제대로 안 돼 있었으니까. 그 당시 형이 오해를 풀어줘서 살았던 거로 기억한다.

오래돼도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희미했다. 내 입장에선 100년도 더 지난 일이었으니까.

로베르토가 주억거리더니 한마디 했다.

“그래도 담배 연기는 안 좋아.”

“맞는 말이에요. 근데, 내년에는 아예 안 갈 생각이라서 애들이랑 추억이나 많이 만들어 놓으려고요.”

“안 간다고? 그래?”

로베르토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얼이 빠진 것 같았다. 이것저것 다 맛있게 먹는 양반이, 이상했다.

어머니도 이상함을 느낀 건지 아버지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아버지도 궁금했나 보다. 로베르토에게 바로 물었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 하냐?”

“아아…… 원래 이번 주에 신영 중학교라는 데랑 친선경기를 하려고 했거든요.”

물어보니 술술 나온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맞아요, 하기로 했어요.”

동조해 주자 로베르토가 내 쪽을 보면서 말했다.

“그거 취소됐어.”

“네?”

“그래서 다음 주에는 괜찮냐고 물어봤거든?”

“설마…….”

불길했고, 역시나였다.

“그것도 안 한대. 선수들 몇 명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서 엄청 미안해하긴 하던데…… 으음…….”

로베르토가 집게를 놓고, 턱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가 집게를 가져와서 이어 굽기 시작했다.

바로 떠오른 이상한 점을 로베르토에게 말했다.

“이상하네요. 감기는 금방 낫잖아요. 이번 주라면 몰라도 다음 주까지 굳이…….”

“그렇지?”

전생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신영 중학교가 친선경기를 이상한 이유로 거절할 리가 없었다.

이쪽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였고, 신영 중은 약체였기에 다른 중학교 축구부와 친선경기를 하기 수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친선경기를 자주 치렀었다.

“근데 말이야…… 더 이상한 게 있어.”

“뭔데요?”

로베르토가 찝찝해하는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로 좀 더 멀리 있는 축구부에 연락했거든. 처음에는 긍정적이었어. 일정이 빈다고 그러더라. 근데, 우리 중학교 이름 듣자마자 갑자기 안 하겠다고 하더라고. 뭔…… 갑자기 까먹었던 일정이 생각났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 같단 말이지. 심지어 다른 중학교 축구부도 똑같은 반응이었어.”

“……진짜 뭐죠?”

이상했다. 로베르토는 들고 있던 소주잔에 담긴 소주를 좌우로 기울이면서 심각한 얼굴을 하다가, 주변의 분위기를 깨달았다. 우리 테이블은 다들 심각해져 있었다.

“아, 괜히 찝찝한 얘길 했네요. 여기 고기 엄청 맛있네요~ 반찬도 맛있고요. 특히 잡채 이거 보면 볼수록 한국식 파스타 같다니까요~.”

“그래? 파스타가 스파게티 말하는 거지?”

아버지가 물었다.

“예, 여기서는 토마스 소스 위주로만 팔던데 현지에서는 정말 다양하게 먹을 수 있거든요. 막, 마늘 기름이랑 볶아서 먹어도 맛있어요.”

“정말요? 로베, 그거 레시피 있어요?”

“알려드릴게요.”

로베르토는 순식간에 테이블의 분위기를 바꿨다. 나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식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계속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번득 하고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상철.

대영 중학교의 전 감독.

축구보다는 술 먹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양반이라 인맥이 꽤 됐던 거로 기억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는 상당했다.

“캬~ 죽이네요.”

“알베르토 시원하네!”

로베르토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하니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신나 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로베르토도 즐기는 거 같으니 회식이 끝나면 조용히 얘기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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