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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26화 (10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26화

나준하의 분노에 찬 일갈에 로베르토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소리를 질러도 화가 다 가시지 않는지 나준하는 계속 말했다.

-진짜, 바뀌어야 하는데, 이딴 식이니까 발전이 없지. 발전이 없어.

이사장과 마주 보면서 눈동자만 움직였다. 그만큼 나준하의 목소리는 살벌했다.

나준하의 말이 끝나도 로베르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초 정도의 침묵이 흐른 후, 핸드폰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내가 흥분했구만,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예.”

-근데 로 감독은 말이야…….

“예.”

나준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볼일 있을 때만 전화하는 거야? 연락처 주고 한 번도 전화가 안 와서 내가 얼마나 민망했는 줄 알까?

“어…… 죄송합니다!”

로베르토의 몸이 마치 각 잡힌 군인처럼 굳어졌고, 목소리는 힘찼다. 이사장도 긴장했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기가 죽은 로베르토를 보는 게 재미도 있었고…… 나준하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담이야! 와하하하!

역시나다.

“그, 그렇습니까.”

로베르토는 여전히 굳은 몸인 채였다.

-내가 로 감독한테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당연히 농담이지. 놀란 거 아니지?

“아하하…… 당연……하죠.”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었다.

로베르토는 나준하 대하기가 불편한 것 같았지만, 새어 나오는 목소리를 들은 이사장의 입꼬리가 꿈틀대고 있다.

-근데 그 정도 일이면 내가 거기 애들 몇 명한테 얘기하면 금방 해결될 텐데. 그 지역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몇 명이랑 실업팀이랑 프로팀에 후배들 싹 깔려 있거든.

“정말입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로베르토가 반색하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근데! 그렇게 안 해줄래!

“예에?”

나준하의 변덕에 로베르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다행히 나준하는 바로 능글맞게 말했다.

-내가 로 감독 팀이랑 친선경기를 하고 싶거든. 대전에 있는 팀들은 복을 차버리네.

“저, 정말입니까?”

-당연하지. 아, 그리고 까먹고 있었는데 송현준 걔! 더 대단해졌나?

“그건…….”

로베르토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로베르토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항상 잘하긴 합니다……. 여전히 많이 뛰지는 못하지만요. 마지막으로 보셨을 때보다 2~3㎝ 더 크고 있어서…….”

-걔는 콩나물이래? 뭐 이리 팍팍 커!

“…….”

“…….”

“…….”

이사장마저 정색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농담이 재미없었나? 아무튼, 30분이면 충분해. 그러면 자네 쪽에서 한 번 올라오고, 우리 쪽에서 한 번 내려가지. 어때?

시무룩해진 나준하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혹시, 당장 이번 주랑 다음 주에 가능하겠습니까?”

흐름을 찾은 로베르토가 한결 여유 있게 질문했다.

-잠시만.

핸드폰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나준하가 크게 외쳤다.

-김 코치! 김 코치! 김 코치! 세 번이나 불렀는데 언제 오는 거야!

-왔습니다! 훈련 중입니다!

김 코치라고 불린 사람이 억울하다고 어필하는 것 같았지만, 나준하는 묵살했다.

-이번 주 토요일이랑 다음 주 토요일 일정 좀 말해봐. 앞뒤도 포함해서.

김 코치는 순순히 바로 얘기했다. 이 부분부턴 희미해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나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될 거 같은데, 이번 주에는 자네들이 올라와야 해. 지역 이동하려면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통지하기로 정해서.

로베르토와 이사장의 표정이 환해졌다. 나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로베르토가 이 기회를 놓치기 싫은지 빠르게 말했다.

“다음 주에는 버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버스? 그렇게 해주면 고맙지.

이사장이 웃다가 굳어지긴 했지만, 로베르토가 이사장을 빤히 바라보자 표정을 풀었다.

로베르토가 이어서 말했다.

“예, 옆에 우리 중학교 이사장님도 계신데 가능하시다네요.”

-이야~ 지원 끝내주네. 이사장님이 축구를 많이 좋아하시나 봐?

“그렇죠.”

언제 표정이 굳어졌냐는 듯 이사장의 표정이 다시금 환해졌다.

-아무튼, 그런 조건까지 달아주면 선수들한테 얘기하기도 편하지. 그리고 옆에 송현준도 있나?

자리에서 일어나 로베르토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오~ 송현준. 우리 애들이 너 벼르고 있는데 조심해야 할 거다.

“기대되는데요? 전 그때보다 더 잘해졌어요.”

-와하하하! 축구 선수가 되려면 이래야지! 그럼 이번 주 토요일에 보자고.

내 대답에 나준하는 몹시 흡족스러워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뭘~

다시 핸드폰을 건넸다.

“다시 전화 받았습니다. 로베르토입니다.”

-그래, 그래, 로 감독. 그러면 자세한 시간은 오늘 내로 연락 줄게. 이번 주 토요일, 다음 주 토요일에 두 번 경기하는 건 확정이고…… 경기 끝나고 술 한 잔 어때? 이 주 연속으로 달려 보자고.

“……좋습니다.”

로베르토는 떨떠름하게 말했지만, 나는 저게 무슨 의도인 줄 알아서 기분이 좋았다.

나준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술자리를 통해 인맥이 부족한 후배들을 챙겨줄 때가 있었다.

거의 무조건 단둘이 하는 술자리가 아니라, 다른 축구인들과 함께인 자리일 거다. 로베르토에게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호의적인 태도가 기분 좋았다.

-그러면 수고해! 코치들이 자꾸 눈치 줘서!

-저희가 언제!

-내 근처에서 서성이는 게 눈치 주는 거지! 끊는다!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연스럽게 전화가 끊겼다. 지난번보다 코치들과 더 친해진 느낌이다. 나준하는 엄격할 땐 무섭지만, 친근한 이미지가 더 강한 사람이라 나도 저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던 로베르토가 이사장을 보며 물었다.

“……됐네요? 된 거죠?”

“그러게. 됐네.”

이사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럼 나는 선생님들한테 상대가 바뀌었다고 전해야겠네.”

“네. 협조해야 하는 거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사장과 로베르토의 순조로운 대화를 들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때, 이사장실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딩동댕동~

조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귀하고 첫 지각이다. 수업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조회 시간에 늦으면 쉬는 시간에 청소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저기 이사장님…….”

이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모인 건 비밀이니까 나 팔면 안 되고.”

“예?”

도와달라고 로베르토를 봤는데, 상황이 재미있는지 웃으면서 내 시선을 피했다.

한숨이 나왔다.

“진짜 믿을 사람 없네요…….”

* * *

대영중학교 축구부원들을 태운 버스가 막 삼성역 인근을 지나고 있었다.

“와! 에쿠스! 에쿠스다!”

“다른 차들도 봐봐, 비싼 차만 보인다.”

일부 축구부원의 푼수 짓을 정두식이 제지했다.

“아, 제발. 우리도 광역시 살잖아.”

푼수 짓에 참여하고 있었던 박범철이 반박했다.

“아니, 건물들 높이가 다르잖아.”

이어서 윤태상도 가담했다.

“난 시골 출신이야.”

“아니.”

2학년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웃었다. 선배, 선배 해도 중학생 느낌이 나서 재미있었다. 2학년들뿐만 아니라 많은 축구부원이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중에도 그렇지만, 이 시절은 명절이나 특별하게 놀러 오는 거 아니면 서울 올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심경이 이해가 갔다.

버스 맨 앞에 달린 시계를 바라봤다.

막 여덟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이모님이 챙겨준 간단한 밥을 먹고, 버스에 타서 바로 이동한 덕이다.

10시에서 10시 반에 친선경기를 시작할 거라고 하니 순조로웠다.

나는 턱에 손을 괸 채로 오랜만에 서울 풍경을 구경하며 생각에 잠겼다.

휘경중학교에는 당장 다음 월드컵에 후보로라도 차출될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이 몇 있다. 성시건 같은. 그들의 얼굴과 정보들을 떠올리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잠재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삼십 분 정도가 지나 우리는 휘경중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 로 감독.”

트레이닝복 차림의 나준하가 로베르토를 반갑게 맞이했다.

“너희 이거 먹고 나가. 자, 다 두 개씩 가져가.”

차가 멈추기 무섭게 김성빈 코치가 바나나 박스를 품에 안은 채로 버스를 한 바퀴 돌았다. 축구부원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바나나를 두 개씩 집어서 먹었다.

로베르토가 지시한 일이다. 경기 중이든 경기 전이든 바나나만큼 구하기 쉬우면서 무난한 영양 섭취용 음식이 없긴 하다.

그렇게 우리는 바나나 껍질을 맨 앞자리에 넣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오~ 서울 공기~.”

“오! 이게 서울 공긴가! 대단하다!”

“부끄러우니까 제발 하지 마…….”

박종혁과 티알의 푼수 짓을 잠이 덜 깬 엄태영이 화들짝 놀라면서 말리는 걸 보면서 낄낄거렸다.

“다음 주에 우리가 내려갈 때는 행사 식으로 진행한다고 했지?”

“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시도라서 관심이 가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 뭘.”

그러면서 나준하와 로베르토의 대화를 들었다. 나준하가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고, 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나준하가 어깨동무까지 걸자 로베르토가 당황스러워했다. 나준하가 붙임성이 좋긴 하다.

“오늘 친선경기는 30분으로 3쿼터 하자고.”

“좋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같이 훈련하는 거 어때?”

“어…… 괜찮을까요? 그것까지는 생각 못 하고 왔는데…….”

“우리가 점심부터 저녁까지 싹 책임져 줄게~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 이모님 음식 솜씨가 기가 막혀.”

“감사합니다.”

“저녁 먹고 애들 보내고, 우리는 술 한잔하고. 딱이지?”

“예, 예.”

다른 한쪽에서는 각 축구부 코치들끼리의 대화가 이뤄지고 있었다.

김성빈 코치가 휘경중학교의 코치 중 최고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있었다.

“선수들 영상이랑 사진이랑 이름 좀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다음 주 행사를 위한 자료 및 소스 때문이었다.

참고로 김성빈 코치는 저거 다 모으면 바로 대전으로 내려가서 자료 건네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럴 때는 2020년대가 그립다. 파일 전송이든 뭐든 인터넷 하나만큼은 정말 빠른데.

그건 그렇고, 휘경중학교 코치는 정색하며 되묻고 있었다.

“왜요?”

“그게요…….”

김성빈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김성빈이 저자세로 나오자 휘경중 코치도 순순히 얘길 들어줬다.

“아…… 별걸 다 하네요. 근데 감독님한테 물어봐야…….”

“돼, 돼. 얼마 걸리지도 않는 거.”

그때 로베르토와 함께 두 코치 쪽으로 다가가던 나준하가 끼어들었다.

나준하가 계속 말했다.

“혁신적인 시도야. 유소년들 경기도 이런 식으로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있어야지.”

“그런데 전력유출…….”

“뭔 유출이야. 훈련 훔쳐보면서 분석해 가는 것도 아니고, 경기만 보고 특징 적어가는 게 뭔…… 다 이건 기본으로 하잖아.”

휘경중 코치가 수긍했다.

김성빈 코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휘경중 코치와 함께 휘경중학교 축구부에게로 이동했다.

마침 휘경중학교 축구부원들도 쉬고 있었다.

친선경기가 10시로 정해져서 잠시 쉬다가 몸풀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였다.

우리도 짐을 가지고 휘경중의 다른 코치가 안내해 준 운동장 스탠드로 이동해서 짐을 놨다.

그러고 있으니 휘경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이 다가왔다. 친선경기를 몇 번 해서 친분이 있는 인원들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세 명의 축구부원도 내게 다가왔다.

“여기까지 왔냐.”

“잘 왔다.”

“이번에는 안 질걸?”

“…….”

친근하게 인사하는 세 명을 지그시 바라봤다.

이들이 누군지는 안다.

“너 설마…….”

풋살대회 결승전에서 붙었고, 전지훈련 때도 붙었던 강원도 삼인방이다.

이번에는 따로 적어놓고 이름을 외워 왔다.

한 명이 지레짐작하고 발끈했다.

“우리 이름 까먹었지!”

“아니야. 이번엔 아니라고. 너희는 우찬우, 장연준, 최윤찬이잖아.”

강원도 삼인방 중 두 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맨 앞에 선 한 명은 여전히 의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럼 내 이름이 뭔데?”

“……장연준?”

“우찬우거든!”

“아.”

“두고 보자!”

셋은 그렇게 말하면서 떠났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친선경기를 더 열심히 할 거 같아서 좋게 풀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들도 잠재력이 일찍 터진다면 다음 월드컵 전에 국가대표 명단에 포함될지도 모르니까.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고, 저들은 보통 이상은 되는 편이다. 다음 주에는 꼭 이름을 다 외울 거다.

그러면 이제.

시선을 옮겼다.

이어서 본 건 노태신과 인사 중인 휘경중학교의 에이스이자 U-15 국가대표의 주전 스트라이커 성시건이었다.

성시건은 노태신과는 밝게 인사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복잡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지난번에는 전지훈련과 우리 축구부원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지금은 성시건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줘서 성시건에게 씨앗을 심어 뒀다.

그는 바로 다음 월드컵부터 나와 함께할지도 모르는 동료 후보였으니까 신경 좀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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