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32화
경기가 시작하고 오 분이 지났다.
[네 번째 슈팅입니다! 송! 현! 준! 엄청납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부원의 해설을 들으면서 로베르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대 축구부원 세 명을 화려한 개인기로 제쳐내고, 골대 구석을 향해 공을 감아 찼다. 휘경 중 골키퍼의 멋진 선방 때문에 막혔지만,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는 게 당연한 수준의 멋진 플레이였다.
<와아아아아아!>
운동장으로 쏟아지는 함성을 들으며 송현준은 손을 살짝 흔들어주는 여유도 보였다.
로베르토도 힘찬 박수를 보태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기대 이상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첫 번째 골 이후 송현준의 플레이는 평소와 아주 달랐다.
송현준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효율적인 플레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패스!”
마침 송현준이 다시 공을 받았다.
휘경 중학교 골키퍼의 골킥을 정두식이 헤딩해 낸 덕에 윤태상이 공을 잡은 것이다. 송현준이 패스해 달라고 외치자, 윤태상은 곧장 공을 넘겨줬다.
공 소유권을 빼앗긴 휘경 중학교 축구부원들은 수비를 위해 전원이 움직였고, 운동장 오른쪽에 위치한 송현준은 공을 천천히 굴리면서 걷듯이 전진하며 로베르토의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휘경 중학교 축구부원 두 명이 정면과 측면을 막아섰고, 송현준이 양발로 공 위에 반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오 분 내내 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학생들도 송현준의 이 동작만 봐도 함성을 보내줬다.
스텝 오버, 한국에서는 헛다리 짚기라고 불리는 개인기였다.
평소 간결한 플레이를 추구하던 송현준이라면 달리면서 하는 스텝 오버 정도만 활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의 제 자리에 선 채로 스텝 오버를 반복하고 있었다.
로베르토는 제 자리에 선 채로 하는 스텝 오버를 싫어했다. 왜냐면 상대 선수들이 수비 진영을 갖출 시간을 쉽게 헌납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베르토는 눈에 힘을 줬다. 송현준은 그 상식을 송두리째 박살 내고 있었으니까.
“이익!”
상대 축구부원이 참지 못하고 공을 향해 발을 뻗자, 송현준은 원을 그리던 발을 어느새 공에 갖다 대면서 상대 축구부원이 발을 뻗느라 만들어진 좁은 공간으로 빠져나갔다.
“야! 진영 지키라니까!”
나준하의 호통과 무관한 송현준은 페널티박스 근처까지 돌진해서 또 속도를 늦췄다. 앞을 막아선 수비수 두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현준은 또 한 번 스텝 오버를 시작하는 척하더니 왼쪽으로 공을 치고 나가는 것처럼 몸을 기울였다. 수비수 둘은 송현준의 돌파를 막기 위해 송현준의 왼쪽을 막아서려고 했다.
그 순간, 송현준은 오른쪽으로 공을 차고 달렸다. 무게중심을 잃은 수비수 두 명이 동시에 넘어졌다.
공은 그대로 두고 몸만 왼쪽으로 가는 척한 거였다. 완벽한 바디페인팅에 밖에서 보던 로베르토마저도 속은 것이었다.
“어어?!”
그렇게 페널티박스 안까지 들어간 송현준은 안에서 상대 수비수와 몸싸움을 하면서 기다리던 노태신에게 패스했다.
“아…….”
아쉽게도 노태신의 트래핑이 조금 길었는데, 휘경 중학교 축구부원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공을 차낸 바람에 공격이 무산됐다.
로베르토는 멈췄던 숨을 쉬며 옆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김진호에게 물었다.
“저기, 김 코치.”
“……예?”
“쟤, 현준이 맞죠?”
팀원들이 최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돕기만 했던 송현준은 여기에 없었다. 팀의 템포보다 자기의 개인 기술을 더 중시하고, 그 기술로 성과를 내는 지금의 모습은 마치 브라질의 유명한 드리블러들 같았다.
“……유령이 씐 게 아닐까요? 브라질 유령이라던가.”
“……아하하.”
농담이라기에는 진지한 김진호의 말에 로베르토는 실없이 웃었다.
농담으로 받기에는 로베르토도 현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으니까.
“경기 전에는 똑같았는데…….”
로베르토는 경기 시작 전에 뭐가 달랐는지를 떠올려봤다.
훈련이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송현준은 자신의 배려로 훈련을 적게 했다.
자기중심으로 경기를 풀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껌을 씹으면서 집중력을 올리겠다고 했다.
로베르토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고작 그 두 가지만으로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는 건 로베르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로베르토는 경기 직전에 있었던 일까지 떠올려 보기로 했다.
경기 시작 직전, 송현준은 정두식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정두식 선수입니다. 중앙수비수고요, 여자친구 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헤실거리며 손을 흔들던 정두식이 정색하고 소리쳤다.
-으아아악! 저 새끼가!
송현준뿐만 아니라 모두가 웃었다. 일일 해설자로 나온 방송부원이 정두식의 반 친구라는 건 정두식이 말해서 모두 알고 있었다. 정두식은 자기소개를 잘해줄 거라고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거였다.
[마지막으로 감독님, 로베르토 그릴로! 성이 로베르토고 이름이 그릴로라고 합니다!]
로베르토는 별걸 다 한다고 생각하면서 멋쩍어하며 손을 흔들었다.
-꺄아아악!
-잘생겼어요!
-절 가져요!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다. 로베르토는 씩 웃으면서 자신감 있게 손을 흔들었다. 환호성이 더 커졌다.
그걸 지켜보던 송현준과 축구부원들이 외쳤다.
“우리도 가져요!”
“……죽는다.”
거뭇한 놈들이 그러니 로베르토는 진심으로 불쾌해져서 한마디 했었다.
덕분에 축구부원들은 전부 웃었다. 로베르토도 웃었다.
그리고 경기 직전 마지막 전술 정리를 했다.
방송부원들의 소개만 뺀다면 내부 친선경기를 준비할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전반전은 송현준 중심으로 풀어나갈 거라고 얘기했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윤태상을 프리롤로 놨을 때랑 똑같은 구성이지만, 송현준과 윤태상의 위치를 바꿨을 뿐이니까.”
“예!”
“다들 알지?”
“네!”
이것도 특별한 건 아니었다.
“잘 부탁해요.”
“그래. 기대한다.”
“오늘은 기대하셔도 돼요.”
송현준과 윤태상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로베르토는 이때까지만 해도 전에 몇 번 보여줬던 모습을 보여주겠거니 생각했다.
그렇다.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덕분에 로베르토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깨달았다.
그냥, 송현준이 로베르토의 상식을 벗어나는 천재인 거다.
“막아! 멍하니 지나가는 거 지켜보지 말고! 옷이라도 잡으라고!”
경기 시작 전까지만 해도 천사 같았던 나준하마저 다급하게 만든 송현준은 또 스텝 오버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제 모르겠다…….”
로베르토는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했다.
송현준을 지금부터 볼 수 있는 건 축구인으로서 축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송현준의 플레이를 두 눈에 담는데만 집중하자.
로베르토는 생각을 비우고 두 눈동자에 힘을 줬다.
* * *
송현준이 중앙선 뒤에서 공을 잡았다.
휘경 중 축구부원들은 이번에 작정했는지 네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송현준은 근처에 있는 윤태상에게 패스해서 압박을 벗어나고, 다시 패스를 받았다.
[오오오!]
해설이라고 둔 방송부원들은 어느 시점부터 감탄만 연발하고 있었다.
나준하는 관객 몇 명한테 마이크를 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거다.
“…….”
경기가 시작하고 십오 분이 흘렀다.
십 분 동안 소리를 치던 나준하는 정확히 십 분째에 나온 두 번째 골을 보고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송현준이 코너킥 수비를 해내고, 최후방 수비수 위치부터 휘경 중의 페널티박스까지 패스와 드리블만으로 올라오더니 골을 넣었다.
나준하는 그 이후로 경기만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송현준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경기 시작 전에 성시건과 강원도 3인방이 경쟁심을 드러냈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는 게 점점 실감 났다.
“……가지고 노는구만.”
허탈해진 나준하가 투덜댔다.
그런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한국 축구의 보물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르게 됐다.
“숨기고 있는 게 더 있으려나…….”
다른 포지션도 잘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파괴적일 줄은. 심지어 스타일마저 완벽하게 바꿔 버릴 줄은.
“그러면 저건 내가 담을 그릇이 아니지.”
높게 평가했지만, 그 이상을 해버리니. 나준하의 머릿속에서는 축구협회에서 얼마 전부터 진행하는 해외연수에 대한 것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자기 옆에 서 있는 코치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걸 깨닫고 한마디 했다.
“야, 김 코치.”
“…….”
“김 코치!”
“예, 에에.”
김 코치의 얼굴은 멍청해 보였다. 나준하는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시 안 해?”
김 코치는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휘경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을 보고, 다시 나준하를 보면서 작게 항변했다.
“……무슨 지시를 할까요.”
나준하는 코치마저 전의를 잃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영상은 다 찍고 있지?”
“예.”
“카메라 하나 더 있잖아. 그거 가지고 너도 찍어. 지시 같은 건 내가 할 테니까, 다른 각도로 플레이 영상 하나 더 찍어놔야겠어.”
[또! 또 제칩니다!]
“저건 또 뭐야…….”
송현준은 이번에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가 늦췄다가를 반복하는 완급 조절 드리블을 선보이고 있었다.
한 선수가 하나의 개인기를 숙달하기도 어려운데 대체 몇 가지를 보여주는 건지.
지금 휘경 중의 축구부원들은 열 명의 프로선수를 상대하는 기분일 거다.
“하아…….”
나준하의 앞을 지나가던 휘경 중학교의 축구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준하는 화가 났다.
“야, 이 자식아! 어디서 한숨이야!”
“어어? 감독님…….”
축구부원이 당황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너무 처참하게 당하고 있으니 면목이 안 서는 것이다. 나준하는 판단을 잘못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 있었다.
십 분 정도면 흐름이 넘어올 거라고 예상하고 선수들을 다그친 건데, 더 빨리 전술을 바꿨어야 했다. 이 정도 분위기라면 아무리 친선경기라고 해도 진심으로 임해야 했다.
“애들한테 전달해. 대학교 팀들이랑 붙을 때 쓰는 전술로 간다고.”
“예! 강팀 상대용 전술이요?”
“그래, 그거. 지금 그거 하라고 전달해. 그리고 찬우는 송현준 맨 마크 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드리블러라도 조직력을 갖춘 팀을 뚫기 어렵다.
나준하의 지시를 전달받은 선수들이 움직여서 진영을 바꾸기 시작했다.
수비수 4명, 미드필더 4명이 일정한 간격의 두 줄 수비를 만들었고, 우찬우는 송현준을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윙이었던 성시건이 중앙에 서면서 혼자 공격수 위치에 섰다.
“앞에서 뭘 하든 간격 유지해!”
나준하는 이어서 축구부원들을 다그치며 팀 적인 움직임을 다듬었고, 점점 송현준이 뒤로 패스하거나 송현준의 크로스를 대영 중의 축구부원들이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송현준에게 휘둘려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동네 축구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다르다.
지금 선보이는 전술은 고등학교 최상위권 팀, 대학생 팀들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공간 자체를 막아버리면 발이 공에 달라붙은 수준으로 드리블하면서 몸싸움을 견뎌낼 수 있는 선수가 아니라면 절대로 뚫어낼 수 없다.
아직 중학생 수준이라 공격을 목적으로 한 전술로 나왔을 때, 거꾸로 일방적인 공격을 받으면 크게 당황한다. 방금 송현준에게 두 골을 먹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수비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전술에서는 지금처럼 잘 막아낼 수 있다.
이게 바로 감독의 지시에 따라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팀 스포츠의 힘이었다.
나준하는 이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기대하며 송현준을 바라보았다.
“엥?”
그런데, 송현준이 갑자기 뒤로 물러나더니 평소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섰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송현준은 드리블을 전혀 하지 않고 볼 배급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당했다는 낭패감이 들었다.
휘경 중학교의 축구부원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나준하는 선수 시절 이후 가장 큰 승부욕을 느끼며 소매를 걷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