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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37화 (151/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37화

잠시 고민하던 이사장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뭐부터 얘기해야 할까…… 아! 차에 좀 다녀와야겠습니다.”

“예?”

“잠깐이면 됩니다.”

친선경기 얘기를 기대하던 임선호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사장은 뭐가 그렇게 들뜬 건지 신난 얼굴로 재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뭘…… 가져오시려는 걸까요?”

“친선경기 때 학생들이 만든 물품들이랑 기념품일 겁니다. 상자에 담아서 가지고 다니거든요.”

“아아…… 그렇군요…….”

“네.”

“…….”

“…….”

가장 활발했던 이사장이 사라지니 어색한 분위기가 깔렸다. 로베르토도 마찬가지인지 차도 안 마시고 괜히 시계를 봤다.

임선호는 자신이 나이가 많으니 먼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차장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으니 잡담할 시간은 충분할 터다.

“어머니가 한국분이라는 건 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아예 사신 거라고…….”

이사장이 로베르토를 소개하면서 한 말이었다. 로베르토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적응하는데 어렵진 않으십니까? 문화가 많이 다를 텐데요.”

“저도 걱정했는데 아이들이 착해서요.”

로베르토가 옅게 웃었다. 임선호는 순간 로베르토가 좋은 감독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물어보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고 이사장이 들어왔다.

“왔습니다~ 기왕이면 그때 사진 같은 거 보면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들뜬 목소리의 이사장이 성큼성큼 걸어서 상자를 가져 왔다. 로베르토는 재빠르게 찻잔과 과자들을 치웠다.

“로 감독, 고마워.”

이사장이 상자를 내려놓았다. 상자에는 뚜껑이 따로 있었다. 이사장이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뭔가 많이 들어 있었다.

임선호는 당황했다.

가장 궁금한 건 송현준이었는데 친선경기 얘기로 몇 시간을 잡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후에는 대전의 다른 축구부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중등부뿐만 아니라 고등부까지 찾아가야 해서 갈 곳이 많았다.

최대한 돌려서 말하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1시간 뒤에는 다른 곳에 방문해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할 말이 많지는 않아요. 경기시간 빼면 1~2시간짜리 축제였으니까요. 이게 이렇게 많은 건…….”

상자 속에는 친선경기 당시 걸려 있었던 포스터가 종류별로 동그랗게 말려 있었고, 경기 팸플릿이나 방송부원들이 해설하기 위해 준비한 대본을 비롯한 각종 물품과 사진으로 꽉 채운 앨범도 몇 권 있었다.

“그날 정말 즐거워서…… 간직할 수 있는 건 다 간직하자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쌓인 겁니다.”

임선호는 이사장이 다르게 보였다.

운동을 좋아하는지 몸이 탄탄했지만, 50대는 50대였다. 나이 든 사람이 아이처럼 즐겁게 말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그래서 임선호는 다음 약속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이사장의 반응을 보니 김종엽 고문에게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김종엽은 임선호에게 친선경기에서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에게 들려달라고 말했었다.

뭐가 궁금하냐는 듯한 이사장에게 임선호는 차례로 질문하기로 했다.

“일단…… 휘경 중학교와는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이사장이 로베르토를 바라보았다.

“여름 전지훈련 때 친선경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때 나준하 감독님과 처음 만나서 연락처를 주고받았죠.”

“나준하 선수…… 아니, 감독님이 우리 로 감독을 정말 좋아합니다. 로 감독 칭찬을 얼마나 많이 하던지…….”

이사장이 끼어들자 로베르토가 쑥스러워했다.

임선호의 눈에 로베르토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친선경기를 자주 했다라…….”

자주라, 임선호의 말을 들은 로베르토의 머릿속에는 2주 전에 했던 경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첫 친선경기에서 5-4로 패한 이후, 나준하는 또 경기하자고 다음 주에 약속을 잡더니 정말로 내려왔다.

그 경기에서 송현준은 측면 윙어로 출전하겠다고 주장했고, 철저하게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데 주력했다.

덕분에 헤딩으로만 두 골이 나왔는데, 휘경 중이 점점 패턴에 익숙해지면서 그 이상 실점하진 않았다.

임선호가 물어본 건 휘경중학교와 어떻게 알게 됐느냐지 경기 내용이 아니었다.

로베르토는 이사장이 말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2주 후에 또 친선경기를 하자고 했는데, 전국대회 일정대로면 취소해야 할 거 같아서 아쉽습니다.”

“괜히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그런데 대체 왜 대회 규칙이 바뀐 건가요?”

이사장의 물음에 로베르토도 임선호를 쳐다봤다.

로베르토도 나름 작년에 열렸던 전국대회를 기준으로 훈련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그게…… 경기 수가 너무 적다는 의견이 많아서요.”

차마 ‘당신들 때문입니다’라고 말할 수 없어서 임선호는 적당히 변명했다.

로베르토와 이사장 박영대. 자신들이 한 일의 나비효과라고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아무튼, 지금까지 얘기대로라면 대영 중학교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건 틀림없었다. 노태신이나 윤태상 정도만 알고 있었던 임선호는 에이스로 추정되는 송현준이 더 궁금해졌다.

물론, 친선경기에 관해서도 알아가야 했다. 임선호는 이사장이 가져온 상자 안에 든 것들을 보면서 물어봤다.

“이건 뭐죠?”

“포스터입니다. 자. 보세요.”

이사장이 줄을 풀어서 포스터를 내밀었다. 축구부원으로 보이는 학생이 포효하는 사진이었다.

“오…… 이건 뭡니까?”

“신문부 학생들이 만든 팸플릿입니다. 애들이 열심히 만들었어요.”

임선호는 빠르게 팸플릿을 읽었다. 정성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이사장이 계속 자랑했다.

“요리부원들이 떡꼬치도 팔고, 방송부원들은 해설하고, 댄스부원들은 하프타임에 춤도 추고 그랬죠. 학생들한테 정말 고마워요. 자, 이것도 보세요. 그날 찍은 사진들을 모아 놓은 앨범입니다.”

앨범을 자랑스럽게 내민 이사장의 얼굴을 한 번 본 임선호는 앨범을 펼쳤다. 사진들을 보아하니 이사장의 말은 사실 같았다.

“이사장님 말대로네요. 다들 행복해 보입니다. 신문에 날 만했어요.”

“그렇죠?”

이사장이 환하게 웃었다.

임선호는 앨범을 보면서 약간의 패배감을 느꼈다. 질은 부족할지 몰라도 구색만큼은 전부 갖춰져 있는 경기다.

한국 최고의 중학교 축구부와 고등학교 축구부를 뽑는다는 전국대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나아 보였다. 전국대회는 항상 삭막한 분위기였으니까.

임선호는 김종엽과 그의 선생님이었던 이홍룡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나중에 김종엽에게 대영 중을 한 번 찾아오면 좋겠다는 얘길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임선호는 앨범을 접으면서 물었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걸 다 기획하시다니.”

이사장과 로베르토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사장이 머쓱하게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기획자가 따로 있는 겁니까? 설마 로 감독이?”

이사장이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로 감독도 아닙니다. 송현준이라고 축구부원이 있는데 걔 아이디어입니다.”

로베르토가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학생들이 준비할 때 현준이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경기에 필요한 것들을 얘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송현준의 이름이 나왔다. 임선호는 좋아하지도 못하고 바로 물었다. 궁금증이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기사를 보면 해트트릭을 했다고 하던데…… 머리도 많이 좋은가요?”

이사장과 로베르토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로베르토가 말했다.

“원래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은 머리도 좋죠. 사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필드 위에서 똑똑한 선수는 실제로도 똑똑합니다.”

“아하, 머리로 축구 하는 선수였군요. 고병훈 선수처럼.”

고병훈은 보통 체격에 발은 느리지만 좋은 위치선정을 비롯한 지능적인 플레이로 국가대표에 가끔 뽑히는 스트라이커였다.

임선호는 송현준의 정체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어음…….”

그런데 로베르토와 이사장이 서로를 보며 갸웃거리고 있었다.

임선호가 물었다.

“아닌가요?”

“고병훈 선수랑은 전혀 다른데…… 드리블할 때 보면 현준이 정말 빨라 보이고…… 중거리, 아니 장거리슛도 대단하고.”

이사장의 말에 임선호가 어리둥절해 있자, 로베르토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고병훈 선수가 누군지 모릅니다만…… 현준이는 신체적인 능력도 동 나이대 최고 수준입니다. 기술은 그 이상이고…… 두뇌가 두 가지보다 더 뛰어난 것뿐입니다.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예?”

임선호는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신체능력, 기술, 두뇌 전부 동 나이대 최고라니. 로베르토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는데 그게 허세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그 정도라고요?”

“모르실 수 있어요. 현준이는 5학년 때 손백호 축구상 받고, 축구 그만뒀다가 올해 여름부터 다시 시작한 거니까요.”

임선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더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이사장이 신나서 송현준에 관해 설명했다.

정미영이라는 담임선생님이 축구를 다시 시작해 보자고 권유했고, 여름에 복귀했다는 내용이었다.

정미영이 권유하기 전에는 학교에서 전혀 운동하지 않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얘길 다 들은 임선호가 물었다.

“……지금 저 놀리는 겁니까?”

들으면 들을수록 거짓말 같았다. 임선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임선호는 전북축구협회에서 보관하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송현준의 경기를 비디오로 보고 왔다.

지금 모습을 모르는 거지 과거에 어땠는지는 약간이지만 알고 있었다.

“손백호 선수상 받을 당시 송현준 선수의 경기를 봤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땐 어땠습니까?”

로베르토는 신기해하고 이사장은 궁금해했다. 너무 천연덕스러우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용이 너무 거짓말 같아서 머리가 아팠다.

“잘했죠. 잘했는데…… 매년 나오는 잘하는 선수 정도였지 지금 얘기하시는 것처럼 초월적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로베르토와 이사장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로베르토가 자신 있게 말했다.

“직접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저는 매일 보는데도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대체 어떤 선수길래.

말로만 들어서는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커지기만 했다. 임선호는 양해를 구하고, 수첩을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오늘 일정을 미뤄서라도 훈련 참관을 하겠다.

굳게 결심한 임선호가 로베르토에게 물었다.

“로 감독님, 오늘은 언제 훈련하죠? 지금 여기 계신 걸 보면 점심 먹고 오후 훈련 바로 들어가나요? 궁금해서 안 되겠습니다. 참관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축구부가 그랬다.

수업은 뒷전이고 훈련을 중시하니까.

그런데 또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우리는 수업 다 끝나고 훈련합니다만…….”

“예?”

이사장이 또 신난 얼굴로 끼어들었다.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로 감독이 오고 팀 훈련은 하루에 세 시간 정도만 합니다. 우리 축구부원들은 학교 수업을 다 들어요.”

임선호는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대화할수록 상식이 박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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