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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38화 (152/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38화

임선호가 다시 한번 물었다.

“훈련을 세 시간만 한다고요?”

말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로베르토가 대답했다.

“저녁 먹고 자율 훈련도 합니다. 이때는 기본기 테스트 통과한 부원들은 자유 시간을 가지고, 나머지는 기본기를 연습시키죠.”

임선호의 가치관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얘기였다. 숨을 헐떡이고 쓰러질 것 같은데 이 악물고 버티는 훈련, 그게 바로 임선호가 겪었고 지금도 흔하게 흔해지는 축구부 훈련이었다. 웬만하면 수업도 빼먹고 온종일 하는 건 당연했다.

“취지도 좋고 보기도 좋아요. 좋은데…….”

“문제가 있나요?”

“꼭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겁니까? 어차피 축구를 목표로 하는 애들인데. 아, 이사장님. 죄송합니다.”

임선호가 이사장의 눈치를 살피자, 이사장은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편하게 얘기해요.”

이사장은 새 차를 타오겠다고 말했다.

임선호는 로베르토의 대답을 기다렸다.

로베르토가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모두가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축구부원들을 의무교육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육체적인 훈련량이 너무 많았던 게 문제였습니다. 솔직히 수업을 듣는지 마는지는 관심 없습니다. 성적도 안 보고요.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부원은 듣고, 나머지 부원은 쉬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신선함을 넘어선 충격이었다.

물론 유소년 축구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육에 대한 논란은 자주 나오는 주제였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긴 사람을 처음 봤다. 그것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그래서 임선호는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물었다.

“그렇다면, 로 감독님은 고등학교 축구부를 맡았더라도 똑같이 했을까요?”

교육에 관한 얘기가 항상 나오지만, 바뀌지 않았던 이유는 정말 많았다. 임선호 같은 실무자가 되면 더 피부에 와닿게 느끼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차이는.

“왜 고등학교 얘기를 꺼냈냐면…….”

“수업의 양이 다르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업을 하고, 수업을 끝나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조기축구회 아저씨들한테 들어서 잘 압니다.”

“맞아요…….”

자기가 할 말을 대신한 로베르토 때문에 임선호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임선호는 축구 전문 대안학교 같은 걸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고민에서 끝났지만.

“제가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이었다면 지금처럼 안 하고 3시쯤부터 수업을 뺐을 겁니다. 공부도 체력이 드니까요. 그리고 고등학교 나이대에서는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충분히 프로로도 데뷔할 수 있는 나이니까요. 기왕이면 다른 커리큘럼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고는 생각하는데…… 솔직히 감독 일만 하는 것도 벅차서 그 이상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일하는 나라와 선수단의 문화의 맞춰서 최고의 결과를 뽑아내는 게 감독의 할 일이니까요. 그런 건 행정가들이 해야죠.”

임선호는 로베르토의 말을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계속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로 감독 사람이 괜찮죠?”

어느새 차를 타온 이사장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끄덕거림을 멈춘 임선호가 차를 받았다. 시원한 차라서 마시기 편했다.

차를 마신 임선호가 말했다.

“생각이 정말 깊네요. 나중에 꼭 더 얘기해 보고 싶어요. 돌아갈 때 주려고 했는데 지금 받아요. 제 명함이니까 나중에 꼭 문자 한 통 넣어줘요.”

“아…… 알겠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인맥을 또 하나 늘려버린 로베르토를 보며 이사장은 또 한 번 흐뭇하게 웃었다.

“제가 너무 진지했네요. 하던 얘기나 해보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애들이 공부는 열심히 합니까?”

흥분해서 엉뚱한 얘기까지 해 버린 자신을 자책한 임선호는 가벼운 질문을 했다.

그런데, 더 엉뚱하게 들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금까지 얘기하던 현준이가 이번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또 했죠.”

임선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라고요?”

“저번 학기 기말고사에서도 1등을 했죠. 물론 그땐 축구부가 아니었지만…… 연습은 열심히 했다고 하죠.”

“…….”

임선호는 이제 반응할 힘도 없었다.

임선호에게 송현준은 불세출의 천재처럼 들렸다.

임선호가 힘없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축구부원들의 기량은 유지됩니까? 훈련을 그렇게 조금 하는 건 여전히 이해가 안 가서요……. 아, 송현준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중학교 축구부에서 흔한 에이스 원맨팀, 노태신과 윤태상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임선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 그러면 가치관이 도저히 버티지 못할 거 같아서.

로베르토는 한결같았다.

“현준이도 잘하긴 하는데 우리 팀에는 현준이만 있는 게 아닙니다. 현준이는 지금 급격한 성장기를 겪고 있고, 타고난 무릎이 약해서 친선경기에서 풀타임으로 경기를 뛴 적 없어요.”

임선호의 가치관을 계속 박살 냈다.

평온하게 거짓말 같은 내용을 말하는데, 다 사실 같았다.

하지만 가치관과 너무 동떨어져서 믿을 수가 없었다. 임선호는 다른 세계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남은 차를 단숨에 마시고 머리를 차갑게 하고 물었다.

“아까도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 들었네요. 오늘 훈련에 참관할 수 있습니까?”

직접 보면 되는 문제였다. 이사장이 갸웃했다.

“약속이 있으시다고…….”

“취소해야겠습니다. 꼭 봐야겠어요.”

이사장이 로베르토를 봤다.

“하루 정도는 괜찮습니다.”

로베르토의 대답에 임선호는 안도했다. 임선호는 참관이 끝나면 김종엽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영 중은 거짓말쟁이로 가득한 곳이라던가, 고문님이 말씀하신 것 이상의 더 대단한 곳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둘 중 어느 내용으로 자신이 말하게 될지 궁금했다.

“그럼 송현준이나 축구부원들은 지금 다 수업 듣고 있는 겁니까?”

“예, 어제까진 수련회도 다녀왔죠.”

수련회까지? 이건 축구부원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중학생 아닌가. 학원도 아니고. 분명 더 바람직해 보이는 건 맞다. 임선호를 비롯한 축구계 사람들의 가치관을 박살 내는 내용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임선호는 저절로 나오는 질문들을 꾹 참았다.

직접 보고 말해도 늦지 않으니까.

* * *

“호우!”

“호우!”

친구 송시환의 독특한 함성을 따라서 외쳤다. 나뿐만 아니라 반 친구들도 함께였다.

지금은 쉬는 시간, 1학년 2반 맨 뒤에서 프로레슬링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친구 두 녀석, 지상준과 송시환이 둘 다 웃통을 벗고 프로레슬러들을 흉내 내고 있다.

이 시절 TV에서 자주 틀어줬기에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에는 스톤콜드 티셔츠가 대유행할 정도로 이 시절 프로레슬링은 인기 많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였다.

“호우! 호우!”

송시환이 특이한 함성을 내지르며 손바닥으로 지상준의 가슴을 때렸다. 릭플레어라는 전설적인 프로레슬러를 흉내 내는 거다.

송시환은 전생마다 매번 저랬다. 찹이 들어갈 때마다 나는 소리는 어느 전생에서 들어도 찰졌다. 물론 지금도 찰지다.

짝! 짜악!

“아악! 진짜 따가워! 와 빨개지는 거 봐!”

지상준이 소리를 지르면서 비틀거렸다. 송시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급소를 차는 시늉을 했다.

“끄아악!”

지상준은 급소를 맞은 척 오버하면서 넘어졌다. 아파하면서도 연기는 충실하게 한다. ……아니, 진짜로 맞은 건가?

지상준이 괴로워하는 표정을 하건 말건 구경하던 반 친구들은 송시환을 재촉했다.

“송시환! 피겨 포 레그락 가자!”

송시환이 가슴을 두드리면서 물었다.

“보여줘? 보여줘?”

“보여줘!”

뭘 따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송시환은 가슴을 두드리면서 지랄발광을 했다. 고릴라 같다.

아무튼 재미있었으니 나도 관객으로서 한마디 보탰다.

“시환아 가자! 지상준 쟤 신문부 애랑 지난주부터 사귀기로 했대!”

지상준이 연기하는 것도 잊고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야! 송현준!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잖아!”

물론 잠깐이었다. 송시환이 지상준을 붙잡으면서 외쳤다.

“와 이 자식 안 되겠네! 얘들아 잡아!”

관객으로 있던 반 친구들이 합류했다. 지상준이 붙들린 채로 송시환에게 피겨 포 레그락이라는 이름의 관절기를 당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배신자! 아아악!”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대면서 웃었다. 나만 알고 있으라는 건 개뿔이다. 입이 근질거리는지 웬만한 애들한테는 다 얘기했다. 대놓고 손을 잡고 다니기도 해서 반 친구들도 절반 이상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중요할까.

장난칠 기회인데.

“으아아악! 내가 잘못했어!”

“커플 죽어!”

모처럼 마음 편한 쉬는 시간이었다.

엊그제 수련회를 다녀오고 첫 수업인데 도덕 선생 배영호가 진도를 빨리 나갔다고 영화를 틀어주고, 쉬는 시간 10분 전에 나가 버려서 복습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쟤네는 힘도 좋다. 난 수련회에서 기합 준 거 때문에 알배어서 못 움직이겠는데.”

또 다른 친구 송재영의 말에 내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던 박종혁이 말했다.

“돼지야. 내가 평소에 운동하라고 그랬잖아. 맨날 만화책만 보면서.”

송재영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슬램덩크 안 빌려준다?”

박종혁은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

“잘못했습니다. 송 선생님…… 저는 슬램덩크를 보고 싶어요…….”

“빠른 반성 좋아.”

박종혁을 침몰시킨 송재영이 날 바라봤다.

어깨를 으쓱했다.

“난 불만 없으니까 원피스 신간 나오면 부탁한다.”

송재영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재영의 부모님은 대여점을 하신다. 덕분에 신간이 나오면 바로 빌려올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시절 나오는 만화책들은 재미있는 게 정말 많아서 볼 게 넘쳤다. 회귀하기 전에는 항상 수업 끝나면 송재영의 대여점, PC방 중 한 곳을 갈 정도였다.

전생하면 기억이 옅어지기에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이 내용을 처음 본 애들이랑 만화 얘기하면서 시간을 즐기는 것도 좋고.

지상준이 기술을 당하기만 하니 재미가 없어졌다. 흥미를 잃은 송재영이 내게 물었다.

“근데 현준아, 너는 알 안 배겼냐? 신기하네.”

나한테 물어보긴 했지만, 송재영은 나, 박종혁, 구석에서 자고 있는 박종혁을 번갈아 봤다. 축구부원들이 말짱해 보여서 궁금한 모양이다. 참고로 티알은 당번이라서 교무실 갔다.

“평소 하는 거에 비하면 그닥 힘들진 않아.”

“너희들 참 대단하다.”

수련회 교관들이 기합을 주긴 했는데 오히려 재미있었다.

기합 하니 훈련소나 군 생활도 떠올랐다.

현역으로 두 번 갔던 건 기억하기 싫으니까 지우고……. 전생에서도 몇 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을 통해서 병역면제를 받을 때, 훈련소 생활은 프로선수로서 훈련할 때보다 편했다고 기억한다. 보통 전지훈련을 빼먹고 가는 거니까 더 그랬다. 물론 폼을 복구해야 했기에 나와서 더 열심히 해야 했지만. 다른 메달리스트들과도 보통 함께 생활하는데 그들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이번 생에서도 또 가겠지 생각하는데 뒷문이 갑자기 열렸다.

여전히 관절기를 당하고 있던 지상준을 비롯해서 모두가 멈췄다. 반 친구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흩어졌다.

프로레슬링 하는 걸 선생님에게 걸리면 교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혼날 수도 있었다.

“아 뭐야!”

그런데 문을 연 건 티알이었다.

지상준이 투정했다.

“티알! 선생님 모셔 와! 이대로면 나 죽어!”

“고생해라~.”

“야!”

티알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다들 낄낄거렸다.

반 생활에 잘 적응한 티알은 자기 자리, 그러니까 내 옆자리에 앉았다. 교복도 뻣뻣하지 않은 게 이제 잘 어울린다.

“잘 갔다 왔어?”

“응.”

티알의 대답을 들은 나는 다시 지상준을 바라보았다. 송시환이 새로운 관절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현준, 나 방금 들었다.”

“뭘?”

티알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적당히 대답했다. 티알은 별거 아닌 내용을 심각하게 말할 때가 자주 있었다.

“전국대회가 바뀌었다고 한다.”

“어떻게?”

“다음, 다음 주부터 경기한다고 한다.”

고개를 홱 움직여 티알을 봤다.

“뭐? 왜? 진짜? 왜 바뀐 거래?”

전생에선 없었던 일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그건 나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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