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39화
팀 훈련을 시작하기 전, 로베르토는 전국대회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알아들었지?”
티알의 말대로였다.
“어중간한 리그제네.”
혼잣말로 작게 소감을 말했는데 용케 들은 로베르토가 대답했다.
“그래도 진지하게 뛸 경기가 많아지면 좋다고 생각한다. 리그제에서 올라가면 토너먼트 때 체력 관리가 되고, 리그제에서 떨어지면 평소 전국대회처럼 하면 되니까 불이익도 없고.”
마지막 인생이라고 별일이 다 일어난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이래도 되나?”
“우리 준비 어떡해.”
“……? 똑같은 거 아니야? 하던 대로 하면 되잖아.”
“아.”
축구부원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걸 로베르토는 가만히 두고 봤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자 말이 줄어들고 시선이 모였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걸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저기 앉아 있는 분은 누구예요? 아까부터 계속 쳐다보시는데.”
“아아, 전북축구협회장님, 이번 전국대회 개최자지.”
“나 본 적 있어.”
“나도 나도.”
축구부원들은 신기해했고, 나도 그제야 중년 남자의 정체를 알아봤다.
협회에서 오래 일하는 사람이고, 전생에서도 몇 번 마주쳤다 보니 얼굴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름까지 기억날 정도는 아니었다.
전국대회 개회식이나 시상식에서 몇 번 봤던 정도의 사이고, 특별히 뭘 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유소년 축구대회를 리그제로 전환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사람이라는데…… 그래서 존재감이 없었다.
신선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또, 궁금했다.
멀리 있어도 저 사람이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건 쉽게 느낄 수 있었으니까.
로베르토에게 말했다.
“부담스럽게 쳐다보시네요.”
“우리 훈련하는 걸 참관하신단다. 3주 전에 신문 난 걸 보셨다고.”
“알겠습니다.”
“너희들, 평소대로 하면 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고 긴장할 필요 없어.”
“예!”
변수가 일어난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자, 그럼 훈련 준비하고…… 오늘은 미니게임 할 거다. 내 앞은 A조, 김 코치님한테는 B조, 헤쳐모여!”
“예!”
힘차게 대답한 축구부원들은 흩어져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A조라 가만히 있던 내게 로베르토가 다가와서 작게 말했다.
“왜 너만 쳐다보냐면 영대 아저씨가 네 자랑을 엄청 했거든.”
“아.”
상황이 더 잘 이해 갔다.
“평소대로 하면 되죠?”
잘 보여야 하는 게 있는 건가 해서 물어봤다. 로베르토는 고개를 저었다.
“어, 그거면 된다.”
“알겠어요.”
변수가 생겼을 때는 하던 대로 해야 한다. 로베르토가 물러나서 모두에게 외쳤다.
“그럼 시작한다! 3초간 소리 지르고 시작하자!”
훈련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나는 로베르토가 시키는 대로 힘차게 소리쳤다.
“으아아악!”
* * *
임선호는 대영 중학교 축구부의 훈련 방식에 시작부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운동장을 돌지 않았다. 동그랗게 모이더니 서로 패스하는 걸 반복하기 시작했다. 축구부원들은 익숙한지 능숙하게 훈련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코디네이션 훈련과 양쪽 조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미니게임에 임선호는 시선을 빼앗겼다.
송현준만 보려고 했는데 훈련 방식에 눈이 가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또, 훈련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생각을 바꿨다.
로베르토의 훈련은 치열했다. 축구부원들은 넘치는 에너지로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미니게임을 실전처럼 말이다.
리그제로 전환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부분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걸 눈으로 본 임선호는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박종혁!”
그때, 한 선수가 거의 20초 동안 혼자 드리블을 하다가 로베르토한테 불려 나갔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를 가진 날렵해 보이는 선수였는데 로베르토 앞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로베르토는 선수를 어떻게 혼낼까, 임선호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였다.
“거기서 무슨 이득을 보려고 드리블을 한 거야? 수비가 너한테 두 명 붙을 때까지는 아주 좋았어. 근데 너는 공을 더 가지고 있다가 패스할 순간을 놓쳤다고. 언젠지 알겠어?”
“예! 알 것 같습니다.”
“계속 생각해. 드리블을 많이 해도 괜찮아. 더 시도해. 하지만, 다음에는 나한테 왜 그랬는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해.”
“감사합니다!”
로베르토는 큰 목소리로 냉정하게 선수의 플레이를 복기해 줬다.
“……화도 안 내네.”
지적도 합리적으로 들렸다. 선수들이 붙은 순간에 패스했으면 더 좋은 찬스를 만들었을 테니까.
“노태신! 노태신! 너도 나와 봐! 거기서 왜 패스해!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슈팅이 가능하면 양보하지 말라고! 넌 스트라이커야!”
로베르토의 지적은 계속됐다. 선수들은 미니게임을 하는 중간에 빠져나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면서 훈련을 이어나갔다.
다른 코치는 훈련 전반을 지휘했고, 또 다른 코치는 카메라를 설치한 후에 로베르토와 또 한 코치가 부르면 따라가서 훈련을 보조해 줬다.
조잡해 보이는 것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임선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을 참관했을 때의 느낌을 조금 받았다.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대단했다.
“근데…….”
임선호는 혼잣말을 하면서 요주의 인물이었던 송현준을 봤다.
훈련은 대단하지만 송현준이 대단한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자기 눈이 낮은 건지 과대평가가 된 건지.
“공수 교대!”
마침 송현준이 수비역할에서 공격역할로 옮겨갔다. 임선호는 눈을 더 크게 떴다.
잠시 후, 임선호는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미친 거 아니야?”
송현준은 훈련을 시작하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안 했다. 모든 동작과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공을 받으면 항상 최적의 위치에 떨어졌고, 패스는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기본기가 대단하다는 의미였다. 대체 얼마나 연습한 걸까. 영상에서 본 2년 전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유소년 선수들과 비교할 게 아니었다. 이미 프로 선수들과 비교해도 될 수준 같았다.
임선호는 등에 돋은 소름을 느끼면서 송현준의 훈련에 빠져들었다.
경기처럼 훈련하는 축구부원들이 송현준에게 아무도 쉽사리 달려들지 못했다. 덮칠 때는 세 명 이상이 동시에 압박했다. 물론 송현준은 그것마저도 가볍게 빠져나왔다. 축구부 내에서도 얼마나 인정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훈련만 보고 있어도 경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피어오를 정도였다.
“기가 차네…….”
임선호는 오늘이 축구를 시작하고 가장 충격을 많이 받은 날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항상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살아오면서 굳어졌던 가치관을 신선한 충격들이 계속해서 때리고 있었다.
* * *
“어떠셨습니까?”
훈련이 끝나고, 로베르토가 임선호에게 다가왔다.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축구부원들이 저녁을 먹으러 뛰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픈지 전력질주 하는 모습에 임선호는 웃었다.
저 모습을 보면 그냥 중학생들인데, 감독 수준에 따라 그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니.
“정말 미치겠네요.”
“……예?”
임선호의 뜬금없는 말에 로베르토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너무 훌륭했어요. 이게 유럽식 훈련인가요?”
로베르토는 피식 웃었다.
“뭐…… 비슷하겠죠. 어릴 때 배운 거랑 공부한 거 합쳐서 하는 거니까. 저도 이번이 첫 감독이라서요.”
“이번이 처음이라니…… 축구부원들이 잘 따르던데요?”
“운이 좋았죠.”
“운이 아닙니다.”
임선호는 그동안 봐 왔던 축구부 감독들을 떠올려 봤다. 그들이 하는 훈련도 많이 지켜봤다. 그들은 항상 축구부원들을 윽박질렀다. 솔직히 화내고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싸이코 감독들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하게 됐다.
중학생, 그것도 축구부라는 에너지 넘치는 축구부원들을 컨트롤하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그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로 감독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감독이 될 겁니다.”
“어……감사합니다.”
“축구부원들이 공 차는 모습을 보면 즐거워 보이거든요.”
이제는 김종엽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기분 좋은 칭찬이네요.”
임선호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로베르토의 얼굴을 봤다. 보면 볼수록 사람이 진국이다.
임선호가 물었다.
“저녁 먹은 다음에는 자율 훈련을 한다고 했죠?”
“예. 기본기 시험을 통과 못 하면 기본기만 2시간 동안 반복합니다.”
“내용은?”
“양발로 번갈아서 리프팅 하면서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합니다. 시험에 통과 못 하면 2시간 동안 리프팅만 해야 합니다. 테스트는 일주일에 한 번만 통과하면 테스트는 없음. 다음 주에 통과 못 하면 다시 통과할 때까지 다시 기본기 훈련을 하죠.”
“새벽에도 훈련한다고 하던데.”
“체력 유지, 감각 위주의 훈련입니다. 1시간 내외로 짧게 합니다.”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은요?”
“전지훈련 같이 일정에 여유가 있을 때 몰아서 하는 걸 선호합니다. 평소에는 최소 기준만 통과한다면 자율에 맡기는 편입니다.”
임선호는 너무 만족스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버렸다. 김종엽과 할 얘기가 정말 많을 거 같았다.
“훌륭해요. 훌륭해. 솔직히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너무 좋습니다.”
“효과도 있을 겁니다.”
로베르토의 자신감도 마음에 들었다.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예, 좋게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할게요. 전국대회에서 꼭 성과를 내줬으면 좋겠어요.”
로베르토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최 측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합니까?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임선호도 아차 했다.
“실수했네요. 죄송합니다. 판정에는 어떤 이익도 없을 겁니다. 그러면 안 되죠.”
사과에 고개를 끄덕인 로베르토가 불만을 걷어내고 물어봤다.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임선호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국에서는 말이죠. 성공한 사람을 유난히 따라 하는 문화가 있어요. 특이한 훈련으로 성공한 축구부가 있다면 다른 축구부들도 따라 하겠죠. 물론, 이 성공에는 외부의 개입이 없어야 해요. 오히려 힘들거나 압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죠.”
그래야 주변에서 인정하게 되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는 압도적인 과정을 거치면 되겠습니다.”
임선호가 씩 웃었다.
“자신감은 좋은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휘경 중 같은 팀이 전국에 세 팀 정도 더 있어요. 휘경 중도 매번 이기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고요.”
“우리 애들은 앞으로 더 발전할 테니까요.”
로베르토는 덤덤했다.
이번 대답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면 가볼게요. 문자로 꼭 연락처 줘요. 좋은 데서 밥 한번 살 테니까.”
“예.”
임선호는 교문에서 나오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김종엽 고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땡땡이 아니야?
“고문님…… 땡땡이라니요.”
-오늘 일정 다 직원들한테 짬처리했다면서? 대체 뭘 하려고 그랬던 거야? 대영 중학교는 오전이면 충분하잖아.
김종엽의 목소리에서 화가 느껴졌다. 그래도 임선호는 자신 있었다.
“더 가치 있는 걸 봐야 했습니다. 대영 중학교는 고문님이 기사로 본 것보다 더 대단한 팀이었어요. 고문님 덕분에 이렇게 좋은 것들을 보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뭐라는 거야. 하나하나 말해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