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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41화 (155/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41화

정미영 선생님이 기지개를 켰다.

“끝이다!”

“수고하셨어요.”

오늘 마지막 수업이 영어라서 선생님은 수업을 일찍 끝내고 종례까지 미리 했다.

“현준이도 당번하느라 수고 많았어. 교무실에서 뭣 좀 마시고 가.”

“네, 그러면 녹차 주세요.”

“오렌지 주스도 있는데?”

“곧 대회라서 몸 관리 좀 하려고요.”

“올~ 프로 선수 같은데?”

선생님은 교재를 들고, 나는 수업 용품을 든 채로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오늘은 푹 주무세요!”

팬더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다크 서클이 짙은 정미영 선생님에게 다른 반 학생이 장난을 쳤다.

“이게!”

“안녕히 계세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선생님은 발끈하는 척하면서 장난을 받아주고, 인사를 받자마자 상냥하게 말했다. 선생님에게 인사하는 학생들은 많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 보니 금세 교무실에 도착했다.

아직 종례 중인 선생님들도 많아서 교무실은 한적했다.

가정 선생님이랑 정미영 선생님이 눈인사를 하는 걸 보고 나도 따라서 인사했다. 가정 선생님은 내게 손을 흔들어 주고 독수리타법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여기다 두면 돼요?”

“응. 잠깐만 내 자리에 가 있어.”

“네.”

선생님의 의자 옆에 놓인 접이식 의자를 펴서 앉았다.

선생님이 녹차를 가져오는 걸 기다리는 동안 교무실을 둘러봤다. 1학기 때는 자주 왔었는데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과목의 선생님들이 손을 흔들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 있으니 선생님이 찻잔을 두 개 들고 왔다.

“선생님들한테 인사하고 있었어? 자.”

“눈이 마주쳐서요. 감사합니다.”

교무실에 비치된 티백으로 탄 차다. 호록 소리 나게 한 모금 마셨다. 선생님은 믹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가 달콤한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셨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수업 끝나고 한 시간 있다가 시작하지?”

“잘 아시네요.”

보통 토요일에 친선경기를 하기 때문에 금요일에는 살살 훈련한다.

“우리 반은 축구부만 네 명인걸.”

선생님이 우쭐하면서 날 바라보았다. 이어서 내 얼굴을 보고 몸통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셨다.

“현준아, 잠깐 서볼래?”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도 일어나서 나와 가까이 서서 날 올려다봤다.

“더 큰 거 아니야? 나보다 조금 컸던 거 같은데. 이제는 한참 올려다봐야 하네.”

“제가 봐도 빨리 크긴 했어요.”

지금은 10월의 마지막 주, 여름방학부터 시작된 급격한 성장이 끝났다.

유전자라는 건 신기해서 전생마다 매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지금 키는 박종혁보다 조금 큰 181㎝. 앞으로 스물두 살까지 조금씩 커서 184~186㎝ 정도가 될 것이다.

덕분에 이번 달부터 신체의 밸런스를 잡기 위한 운동을 하나씩 늘리고 있었다. 키가 커지면 균형감각이 많이 달라지고, 패스나 슈팅이나 드리블할 때의 폼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김채아를 만나서 도와달라고도 하고, 축구부에 있는 캠코더를 사용해서 요령껏 폼을 맞췄지만, 성장이 끝난 지금은 최적화를 시작해야 했다.

평범한 프로선수가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건 말건 정미영 선생님은 커피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더 크려나? 1학기 현준이한테는 귀여운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얼굴에 각도 지고 징그러워졌어.”

심한 말에 고개를 떨구면서 항의했다.

“선생님, 너무하세요…….”

“농담이지~ 사실 듬직해졌어~.”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우리는 모처럼 잡담을 나눴다. 2학기 들어서 선생님과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건 처음 같았다.

“축구부 해서 그런가? 나중에 애 낳으면 축구 시켜야겠어. 현준이 쑥쑥 크는 거나 종혁이나 티알이 큰 거 보면 틀림없는 거 같단 말이야.”

체격 좋은 애들이 축구를 하는 게 아닐까요? 라는 딴지를 걸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진 않았다.

“하고 싶어 한다면 시켜 보는 게 맞죠.”

“이 애늙은이. 대답 참 어른스럽게 한다.”

입술만 웃는 거로 대답을 대신 하자 선생님은 또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대화가 잠깐 멈췄다.

선생님이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일 년이 끝나가네……. 현준이한테 축구 다시 시작하면 어떻겠냐고 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러니까요.”

선생님은 전생마다 신기해하셨다. 축구부 돌아가라고 권유 한 번 했을 뿐인데 내가 온갖 일을 해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고.

물론, 선생님에게는 권유 한 번일 뿐일지라도 나한테는 의미가 아주 컸다.

“항상 감사합니다.”

“얘는, 됐어. 아아…… 이제 축구부 애들 공부하라고도 못 하겠네.”

부끄러워진 선생님이 말을 돌리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축구협회 거기는 왜 일을 그렇게 할까? 매년 똑같이 하던 걸 갑자기 바꾸는 게 말이 돼?”

그런데 본인 입에서 이어 나온 말에 화가 나시는 것 같았다. 갑자기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러게요. 저도 놀랐어요. 근데…….”

나비효과다. 그 친선 경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또, 리그제 도입은 어떤 방식이든 빠를수록 좋았다.

“오히려 좋아요. 경기를 더 많이 뛸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너희들한테도 안 좋을 거 같단 말이지.”

“괜찮아요. 그런데 이제 수업은…… 전부는 못 들을 수도 있겠네요.”

로베르토는 전국대회에 대비해서 다음 주부터 훈련 프로그램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경기 전인 금요일을 제외하곤 수업을 몇 개 빠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변경인 만큼 로베르토도 어쩔 수 없었다며 축구부원들에게 말을 바꾸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대회가 갑자기 바뀐 것이기에 축구부원들은 당연히 이해하고 넘어갔고.

“아아, 모처럼 태영이나 종혁이도 수업 열심히 들었는데.”

선생님이 한탄했다.

엄태영은 부모님에게 보여줄 성적표 때문인지 졸음을 참으면서 수업을 듣곤 했다. 대부분 결국 잠에 빠져서 내가 필기한 걸 보여주곤 했지만, 1학기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티알은 적응해 보겠다고 뭐든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요즘 체력이 부족한 게 얼굴에 보였다. 말수도 줄어들었고.

박종혁은 공부를 해야 할 이유는 없었으나 자길 뺀 나머지 셋이 수업을 열심히 들으니 자연스럽게 수업을 듣게 됐다. 암기만큼은 잘하는 편이라 중간고사 때 자기 인생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느새 불만으로 가득 찬 선생님을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아쉽긴 해요.”

“뭐가 아쉬운데?”

“기말고사도 1등 하려고 했거든요.”

능글맞게 너스레를 떨었다.

“뭐어? 얘가.”

“진짜로 아쉬워요.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정말이긴 하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든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었다.

만약에 전국대회에서 불운한 일로 성과를 내지 못해 프로 리그 직행이 어려워진다면, 로베르토에게 부탁해서 해외 리그 테스트를 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테스트에는 무조건 합격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전국대회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내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고, 중학교 성적을 잘 맞는 건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보너스 같은 거였으니까.

기억은 어느 정도 해서 성적은 잘 맞을 자신이 있었지만, 수업을 다 듣지 못한다면 1등까지는 어려울 것이다. 기억을 꺼내려면 복습이 필요하거든.

내 너스레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던 선생님이 말했다.

“말하는 거 봐. 전국대회서나 잘하면 충분해. 학교 성적까지 1등 해버리면 다른 애들은 뭐 먹고 사니?”

“그건 그렇네요. 그러면 기말고사 대신 전국대회에서 1등 하면 되죠?”

“오올, 송현준이. 자신감이 대단한데?”

“자신 있어요.”

“이번에도 기대한다?”

“좋아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원해 주는 사람의 기대를 증명해 주는 게 프로축구선수의 태도니까. 기대는 많고 클수록 좋다.

* * *

토요일 오전, 대영 중학교 운동장에서는 휘경 중학교 축구부와 대영 중학교 축구부의 친선경기가 한창이었다.

이번 학기 들어서만 네 번째고, 대영 중학교 운동장에서만 세 번째다.

지금은 당연히 축제처럼 하진 않았지만, 구경 나온 학생들은 1학기 때와 비교하면 많았다.

두 축구부의 감독, 로베르토와 나준하는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연설대에 나란히 선 채로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번 주에 내려오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내려와야지.”

로베르토의 물음에 나준하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러면서도 둘의 눈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꽂혀 있었다.

원래는 다음 주, 그러니까 전국대회 사전리그의 개막일에 친선경기가 잡혀 있었다. 오늘은 휘경 중 축구부에 일정이 있었다고 했다.

나준하가 말했다.

“다음 주부터 리그라는데 우리 일정을 바꿔서라도 한 판 더 해야지.”

“오늘 일정이 있으시다고…….”

“고등학교 축구부랑 친선경기가 잡혀 있었는데 취소했지. 너희한테 배우는 게 더 많은데.”

나준하의 말에 부담을 느낀 로베르토가 진지하게 말했다.

“……더 열심히 뛰라고 할까요?”

“지금도 잘 하고 있는데 뭘, 오늘은 합동훈련도 하자고 한 거 기억하지?”

“예, 훈련 프로그램은 보내드렸던 대로고, 제 마음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고마워.”

나준하가 흡족해하자 로베르토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선수들 말고 다른 선수들은 어떤지 궁금했거든요. 전국대회에서도 만날지 모르니 분석도 하고요.”

“이야, 그런 것까지 말해도 돼?”

“나 감독님도 그렇게 하실 테니까…….”

“난 안 할 건데?”

“…….”

“농담이야.”

나준하가 계속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떤가? 조는 괜찮나?”

로베르토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경기장을 계속 보고 있었다.

“이 근처 팀들이랑 친선경기를 못 해봐서……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아는 곳이라고는 신영 중학교인데…… 이 팀은 골키퍼가 까다로운 팀이라 걱정이고요.”

키가 크고 잠재력도 무척 높아 보였기 때문에 걱정이었다.

“골키퍼가 특출 나다고? 이름이 뭔데?”

“공현성입니다.”

“이름은 들어본 적 있는데……. 아무튼, 그리고? 다른 팀은 뭐 없어?”

“아.”

“있구만.”

로베르토가 나준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상철이 감독하는 진현 중학교랑 같은 조입니다. 심지어 마지막 경기고요.”

“오…… 구경 와야겠는데.”

나준하는 진심으로 재미있어했다.

로베르토는 별말 없이 다시 운동장을 내려다봤다.

“진현 중학교나 여기나 전승하겠네.”

“그럴까요? 진현 중학교가 이 지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던데, 그렇게 잘 합니까?”

“명문이긴 하지. 국가대표 출신도 몇 있어.”

“대단하네요. 갚아줄 보람이 있겠어요.”

“보람?”

“축구인이라면 당한 걸 축구로 갚아줘야죠. 심지어 평가도 높은 팀이라면 이기는 맛도 있을 테고요.”

로베르토의 말이 만족스러워서 나준하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아주 좋은 대답이야.”

로베르토가 물었다.

“휘경 중은 어떻습니까?”

“우리 조? 중구난방이야. 서울이라 강한 팀이 유난히 많다 보니까 찢어놓는다고…… 그래도 쉽게 올라갈 거야.”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태도에서 휘경 중학교가 얼마나 강팀인지가 드러났다.

그런 팀과 마지막 친선경기를 할 수 있다니.

로베르토는 이 기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마침 대영 중학교의 역습이 어중간하게 끝났다.

로베르토가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안 차려? 집중해! 더 과감하게 해!”

“예!”

대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조금 느슨하다고 느꼈던 대영 중의 움직임이 과격해졌다.

“자네는 친선경기를 유별나게 열심히 해. 다른 이유라도 있나?”

로베르토는 솔직하게 답했다.

“최선을 다하는 게 습관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친선경기 때도 열심히 못 하면서 실전이 아니라고 핑계 대는 선수는 실전에서도 무조건 못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친선경기를 실제 경기라고 생각하라고 많이 얘기합니다. 훈련도 실제 경기를 준비하는 것처럼 하고요.”

나준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말했다.

“그럼 다음 주 경기도 오늘처럼 하는 건가?”

“당연합니다. 저는 그럼 선수교체 지시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오늘은 시간 많으니까 나는 살살 할 거야.”

“예.”

로베르토가 떠나고 나준하는 혼자 남았다. 나준하는 고개를 돌려 대영 중학교의 후보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송현준이 있었다.

송현준은 전반전에 아예 출전하지 않을 생각인지 몸도 안 풀고 주변 축구부원들과 잡담하고 있었다.

나준하는 송현준을 불렀다.

“송현준이~ 잠깐 와봐.”

송현준은 연설대로 재빠르게 뛰어왔다. 나준하는 송현준에게 다가가면서 감탄했다.

“어우, 이거 봐라. 키가 또 컸네.”

“감사합니다.”

나준하는 로베르토의 관리법이 송현준에게만큼은 잘 적용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감독이었다면 송현준의 몸 어딘가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들었다.

“오늘 나오는 거지? 우리 애들이 이번에는 기필코 너 잡겠다고 이 갈면서 준비했어.”

송현준이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후반전에 나가기로 했으니까 단단히 준비하라고 하세요. 오늘은 뭐로 나갈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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