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44화
“일부러 실수한다고?”
“예, 본선부터 눈에 띌 계획이에요.”
예선 리그를 치르는 건 송현준의 전생을 통틀어도 처음이었다. 그래도 송현준은 다양한 대회를 치러봤기에 이번 대회에서 어떤 것에 대해 신경 써야 하는지 알았다.
급조된 리그제라고 하더라도 공식 경기다. 공식 경기에는 관심이 더 붙고, 축구 관계자들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력을 분석하러 온 다음 경기 상대 축구부 관계자일 수도 있고, 데려갈 선수가 있나 확인하려는 고등학교 축구부 관계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드물게, 유소년 국가대표팀 소속의 관계자가 찾아올 수도 있다.
송현준은 특히 조심해야 했다. 축구부에 들어오고 치른 친선경기 상대 중에는 나준하를 비롯한 축구계의 중요 인사들과 연결된 사람들이 몇 있었다. 훈련을 보고 간 임선호도 마찬가지다.
송현준은 자신의 이름이 은연 중에 알려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하고 있었다.
“…….”
로베르토는 탐탁잖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송현준의 추가 설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부러 실수한다. 이 말은 로베르토에게 있어서 불쾌하게 들렸다. 하지만, 말하는 게 송현준이었기에 이유를 듣고 싶었다.
송현준이 말했다.
“경기의 흐름에 영향이 없을 정도로만 잔 실수를 할 거예요. 화려한 플레이도 최대한 자제할 거예요.”
로베르토가 눈썹을 꿈틀댔다. 기다리던 내용이 아니었다.
“이유를 말해주면 좋겠는데.”
“지금은 유소년 대표팀에 차출되면 안 돼요.”
“왜?”
송현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해봤다.
유소년 국가대표팀. 영광스러운 자리다. 솔직히 하고 싶다. 그런데, 선수 보호를 위한 규정이나 문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유소년 국가대표팀은 나이가 많은 선수에게는 제한이 있지만, 어린 선수에게는 제한이 없다.
그만큼 온갖 연령대에 차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전생에서 겪어본 적도 있었다. 축구부 생활을 계속한다면 모를까, 송현준은 자신의 몸이 강행군을 견딜 수준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상철을 피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본선에서 돋보이는 건 괜찮았다.
한국에서 첫 프로팀을 고른다면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감독에게 갈 것이고, 언론과 관계자들의 관심과 물리적으로 멀어질 수 있는 해외로 가서 대리인을 내세울 생각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송현준이 솔직하게 말했다.
“저 같은 어린 선수를 보호할 규정과 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요, 경기 수가 부족한 축구부 소속이라면 모를까 내년에 프로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더 감당 못 해요.”
“그냥 거절하면 안 되는 거냐?”
“분위기 때문에 불가능하죠. 모험하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형이나 이사장 아저씨나 부모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로베르토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라.”
“예, 죄송해요.”
일부러 실수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생겼던 불쾌함은 어느새 사라졌다. 송현준의 솔직함 때문이었다. 왜냐면 송현준은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고, 그냥 폼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도 됐으니까.
그래도 로베르토는 확인해야 했다.
“축구부원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지는 않겠지?”
“당연하죠!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들인데요.”
송현준이 정색하고 말해서 로베르토는 안심할 수 있었다.
송현준이 계속 설명했다.
“존재감을 줄이고, 잔 실수를 한다는 건 경기 결과에 영향이 가지 않는 선까지만 할 거예요.”
로베르토도 송현준의 실력이 2학기에 들어서면서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까지 성장하는 걸 보긴 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진지하게 할 정도라면 이미 유소년 수준은 예전에 넘었다고 확신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좋아. 그리고 예선 리그에서는 절반은 선발로 전반만 뛰게 할 거고, 절반은 교체로 후반에만 뛰게 할 거야.”
송현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해요.”
로베르토는 이해심이 큰 사람이었기에 이 시기 송현준에게 있어 최고의 감독이었다. 송현준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포지션도 멋대로 바꿔 뛸 때도 많았는데 다른 감독이었으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불만이 쌓이든 겉으로 갈등이 드러나든 했을 테니까.
로베르토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합당한 이유만 있다면 선수의 말을 잘 들어줬다.
로베르토가 말했다.
“예선 리그 끝나면 병원 가서 검사 또 받아보고.”
“예.”
급격한 성장기가 끝났다는 건 로베르토도 송현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확신할 수 있었다.
“여전히 별로라면 전국대회 때는 후반 교체로만 뛰게 할 거야. 결과를 내야 하니까.”
로베르토의 말에는 검사 결과가 긍정적이라면 전부 선발로 뛰게 될 거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끝이지?”
“네. 감사합니다. 형.”
“그래그래, 물이나 마시자, 진지한 얘기 했더니 목말라 죽겠다.”
송현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송현준은 별 얘기를 다 했다는 사실에 민망함을 느꼈다.
“지금 보니까 키가 참 많이 컸다.”
“매일 봤다고 해도 이 정도는 진작 알아봤어야죠.”
“알긴 아는데 지금 체감이 된다는 얘기잖아.”
이어지는 대화는 다행히 편하게 흘러갔다.
로베르토는 그 와중에 궁금해진 걸 물어봤다.
“이제 편하게 얘기하자. 근데,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뭔데요?”
“굳이 한국 프로리그로 갈 필요가 있냐? 프로로 갈 거면 내가 해외 구단 소개해 줄게. 큰물에서 시작하는 게 좋아.”
“월드컵 우승을 하려면 선수들이 클 수 있는 리그가 커야 해요.”
송현준이 엉뚱한 대답을 했다고 생각해서 로베르토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뛸 리그를 키울 거예요. 그걸 위해서는 한국 리그에서 배출한 월드클래스 축구선수 스타라는 자격이 필요해요.”
송현준은 속으로 다른 이유를 삼켰다. 전생과 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송현준이 첫 프로팀으로 선택하려는 팀은 전생의 송현준을 손자처럼 잘 돌봐주던 감독님과 모든 생에서 첫 팬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마지막 생인 만큼 여러 가지를 엮어서 해내야 했다.
로베르토는 그동안 질색하고 있었다.
“야…… 꿈이 큰 건 좋은데 너무 멀리까지 보는 거 아니냐?”
로베르토는 송현준이 걱정됐다.
“계획적인 건 알았는데 뭔…… 한 나라 프로리그를 부흥시키겠다고? 부담되지 않냐? 힘들지 않냐?”
송현준은 덤덤하게 말했다.
“하고 싶은 걸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리그에 애정도 많고요.”
물어보고 싶은 게 계속 생겨났지만, 로베르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좋아, 네가 계획적이라는 건 알겠다. 그러면 당장 내일 경기를 위해서 자러 가야겠지?”
“……헐, 벌써 시간이.”
로베르토가 정한 취침 시간까지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송현준은 남은 물을 들이켜고, 벌떡 일어나서 잘 자라고 인사하고 떠났다.
* * *
어제 일을 세세히 떠올렸던 로베르토는 송현준을 보고 있었다.
송현준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들은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재능이 대단한 건 알았지만, 목표도 재능에 못지않게 크다는 게 놀라웠다.
송현준이 전국대회 본선에서, 프로 무대에서, 월드컵 본선에서 뛰는 모습이 진심으로 기대될 정도였다.
동시에 재능에 비해 목표가 너무 큰 것 같다는 걱정도 들었다. 월드컵은 펠레나 마라도나가 한국에 태어난다고 해도 우승을 장담 못 한다.
일부 축구팬은 월드컵을 3회나 우승한 펠레보다 1회 우승인 마라도나를 높게 치기도 했는데, 마라도나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개인 기량을 뽐내고 우승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한 경기를 제외하고 공격포인트를 전부 올렸고, 그 한 경기에서도 경기 최우수 선수에 선정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조차도 훌륭한 선수들이 많았다. 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스포츠, 그중에서도 월드컵은 그만큼 개인이 잘한다고 우승할 수 없는 대회였다.
송현준도 사람이다. 옆에서 봐온 로베르토였기에 잘 알았다. 목표가 너무 커서 송현준 혼자에게는 벅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에이 씨…….”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고, 혼란스러웠다.
확실한 건 송현준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는 거였다.
“감독님, 입장 준비하세요.”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덧 경기 시작 5분 전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들은 송현준을 포함한 축구부원들이 로베르토를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은 얼굴들이다.
“흠, 흠.”
로베르토는 헛기침을 했다.
상대 팀이 훈련하는 모습을 봤는데, 솔직히 자신 있었다. 다만, 첫 경기라 그런지 묘하게 가슴 부위가 답답했다. 긴장이 되는 거다.
축구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풀어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긴장한 인원들이 있었다. 특히, 주전들을 빼간 지상철 때문에 처음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절반은 여지없이 표정이 딱딱했다.
그들의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로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집중!”
강한 단어에 다들 눈을 부릅떴다.
“여름방학부터 지금까지, 너희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로베르토는 축구부원들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익숙하지 않은 훈련일 텐데도 축구부원들은 로베르토의 말을 잘 따라줬다. 덕분에 틀림없이 성장했다. 큰 변수가 없다면 이길 것이다.
그렇기에 긴장 때문에 그동안 노력한 걸 보여주지 못하는 건 싫었다.
부담, 언제나 부담이 문제였다. 첫 프로 경기를 뛸 때 로베르토도 잔뜩 긴장해서 제 기량을 못 보여줬던 경험이 있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너희들은 정말 열심히 했다. 자길 못 믿겠으면 내 말을 믿어라.”
큰 목표를 짊어지고 있는 송현준도 마찬가지일 거다. 지금은 이루려는 것보다 재능이 크다. 하지만, 목표가 재능보다 큰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송현준도 부담감을 느끼고, 긴장하게 될 것이다.
“경기 시작까지 5분도 안 남았다. 5분 만에 실력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 경기에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건 의미가 없는 거다. 그러니까.”
축구부원들에게, 미래의 송현준에게,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로베르토는 입 밖으로 꺼냈다.
“재밌게 놀다 와라. 즐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