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45화
전국대회 예선 리그를 치르기 위해 대여한 경기장은 경기장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운동장이었다. 경기장 한쪽 측면에 작은 규모의 관객석이 있었고, 관객석을 시작으로 경기장은 철망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경기를 보러 온 임선호와 김종엽이 대회의 주최자라고 해도 환경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둘은 철망 밖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관객석은 관계자들과 학생들의 부모들로 진작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영 중학교와 송진 중학교 축구부의 경기가 시작하고 20분이 지났다.
임선호는 대영 중학교의 훈련을 본 날, 김종엽에게 늦은 밤까지 자랑하고 칭찬했다. 그래서 김종엽이 바쁜 와중에도 함께 경기를 보러 온 거였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던 임선호는 점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경기를 지켜보던 김종엽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임 협회장, 나는 자네 말을 믿어.”
“……예.”
“믿으니까 계속 봤어.”
“…….”
임선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김종엽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손가락으로는 송현준을 가리키면서.
“송현준 대단하면서.”
어렵게 고개를 든 임선호가 변명했다.
“고문님, 축구 좋아하시고, 많이 보셨잖아요. 쟤 볼 터치 봐요.”
“깔끔하긴 해. 근데 저거 봐. 또 실수하잖아.”“아, 아니. 진짜 쟤 왜 저래. 여유 있게 이기고 있는데! 천천히 하면 되잖아!”
임선호는 억울함을 담아 소리쳤다.
대영 중학교가 2-0으로 이기고 있는데도 송현준은 잔 실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경기가 막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다.
선제골이 들어가도, 추가 골이 들어가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송현준은 한마디로 별로였다.
송현준이 로베르토에게 말한 대로 연기 중이라는 걸 모르는 임선호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송현준은 상대 수비수가 근처에 없을 때나 아슬아슬하게 도착하지 못할 때를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볼 터치를 길게 하거나, 미묘하게 어긋난 방향으로 패스하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연기를 너무 잘한 나머지 임선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뒷사정을 모르는 김종엽은 갸우뚱했고, 임선호는 20분 동안 쌓인 억울함을 호소했다.
“아니, 제가 봤을 때는 정말 잘했다니까요……. 훈련 내내 저렇게 잘하는 대영 중학교의 중심이었고, 기술도 차원이 달랐어요!”
김종엽은 가는 눈으로 임선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훈련에서?”
임선호는 욱해서 반박하고 싶었다.
“그건…… 그렇긴 한데.”
싶기만 했다.
“훈련에서 잘하고 실전에서 못하는 새가슴들 있잖아. 지금은 실전이고.”
“그건 그렇긴 한데…… 새가슴일 수가 없는데…….”
축구협회에서 오래 일한 만큼 많은 선수를 봤다. 특히 유소년 선수들을 많이 본 임선호다. 임선호는 경험을 통해 새가슴 스타일은 타고나는 것이고, 어릴 때부터 그 기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5학년의 송현준은 절대 새가슴 기질 같은 건 없었다. 임선호는 비디오로 보관하고 있는 초등학교 전국대회 영상을 틈틈이 다 챙겨봤기 때문에 확신했다.
또, 대영 중학교와 자주 친선경기를 했다는 나준하 감독의 지인에게서도 얘길 전해 들었다. 나준하 감독은 송현준을 괴물처럼 여긴다고.
“어이쿠, 보는 것도 불안하네.”
송현준이 또 실수했고, 김종엽이 한탄했다.
근거를 여러 가지 갖고 있어서 그런지 임선호는 송현준의 실수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일부러 저러나?’
의심까지 들었다가 임선호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공식 경기에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심지어 너무 자연스러워 보였다.
“미치겠네, 진짜…….”
“괜찮아, 괜찮아.”
임선호의 답답한 마음이 그의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김종엽도 임선호의 태도를 보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새가슴인가 보네……. 임 협회장이 이렇게 말하는 건 처음 봤는데……. 아쉽구먼.’
그래서 송현준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더 언급하지 않게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자네 말대로 대영 중학교는 기대 이상으로 잘하는 구만.”
“……네! 그렇죠?”
기록으로만 본다면 송진중학교는 전국대회 토너먼트 1, 2회전에서 탈락하는 약체다. 대영 중학교는 가끔 성과를 내긴 했지만, 가장 최근인 하계 전국대회에서 끔찍한 성적을 냈다.
원래였다면 두 팀은 비슷한 경기력을 보여야 했다. 심지어 대영 중학교는 선수 유출이 있었다고 했다.
“경기가 재미있어.”
“맞아요, 맞아. 훈련 때도 그랬습니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데 패턴이 다양해.”
지금 양상은 최상위권과 최하위권 팀의 경기 같았다.
특히, 대영 중학교의 공격형 미드필더 윤태상을 중심으로 공격진의 폼이 너무 좋았다. 시작하고 나서 계속 일방적인 공격을 했고, 공격은 전반전 10분 선제골, 15분 추가 골로 이어졌다.
“오!”
“오오!”
둘은 동시에 벤치에서 일어났다. 윤태상이 중앙에서 세 명을 직선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짝짝짝짝짝!
둘은 이어서 격렬하게 박수를 쳤다.
윤태상이 한 명 더 제치고 골키퍼의 키를 넘겨서 세 번째 골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윤태상은 득점을 축하해 주는 축구부원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김종엽과 임선호, 둘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삐익!
그때, 심판의 휘슬이 작게 울리고 송현준이 조용히 경기장 밖으로 나가고, 다른 선수가 들어왔다. 교체아웃이었다.
“……뭐야?”
“벌써?”
임선호는 더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김종엽은 진작 송현준에 대한 기대를 접은 상태였기에 괜찮았다.
“한 경기로 어떻게 다 평가하겠어? 아무튼, 대영 중은 잘하네. 자네 말대로 신식 훈련을 하면서 경기력도 이 정도면 기대해 봐도 좋겠어.”
임선호도 송현준에게서 고개를 돌려 다른 선수를 바라보았다.
“예…… 그렇죠. 에이, 송현준 얘긴 그만하죠. 윤태상, 쟤 보물이네요. 늦게 축구를 시작했다지만 경기력도 좋고, 특히 저 스타성이.”
“잘생기긴 했구만. 공 다루는 것도 우아하고.”
둘 사이에서 송현준은 자연스럽게 잊혔다. 둘은 윤태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경기에 집중했다.
벤치 역할을 하는 관객석 맨 앞줄에 앉은 송현준이 그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는 걸 모르고.
* * *
같은 시간, 소규모 관객석에 앉아 있는 한 청년이 휴대폰에 대고 화를 내고 있었다.
이 청년이 이름은 안보진, 유소년 국가대표팀의 코치였다.
그의 눈은 관객석 맨 앞줄에 앉은 송현준을 향하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잘한다며.”
안보진은 송현준이 들을까 봐 차마 이름은 말하지 못했다.
-뭔 소리야. 누구? 송현준?
“어.”
안보진과 통화하는 사람은 휘경 중학교의 코치였다. 둘은 친구였다. 휘경 중학교의 코치는 당연하게도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송현준이 못한다는 건 헛소리였으니까.
-잘하잖아?
“뭐?”
안보진은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안보진은 원래 어제부터 휴가였다. 그런데 감독이 ‘주말이니까 송현준 체크하고 와.’라고 말했고, 휴가 계획도 취소하고 대전으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안보진은 이를 악물기를 반복하면서 직접 본 걸 설명했다.
“2~3분에 한 번씩 기본적인 터치나 패스를 실수하는데, 장난치냐? 저 정도 에이스들은 널리고 널렸어. 기존 애들을 뺄 이유가 전혀 없잖아.”
물론 휘경 중학교 코치에게는 헛소리로 들렸다.
-……너 눈이 잘못된 거 아니냐? 어제 술 처먹었냐?
“뒤질래?”
휘경 중학교 코치가 진지하게 말했다. 코치 자리에서 매일 보고 듣는 게 있었다.
-나 감독님이 걔 보고 한국축구의 미래라고 툭 하면 얘기하는데. 우리 애들도 다 쟤 이겨보겠다고 개인 훈련 따로 할 정도고. 너희가 툭하면 데려가는 성시건이 송현준한테 벽 느꼈다니까? 나 감독님이나 성시건이가 축구 보는 눈이 없겠냐?
안보진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맞다.
성시건에게서 들은 건 아니지만, 유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은 나준하 감독과 친분이 있다. 나준하 감독에게 송현준의 칭찬을 들은 유소년 국가대표팀 감독님이 자길 파견한 거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이룬 주전 선수, 나준하의 위상을 아는 안보진은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직접 본 게 너무 달랐기 때문에 더듬더듬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내가 왜 여기 왔겠냐……. 우리 감독님이 나 감독님 얘기 듣고 날 보낸 거라고, 어제부터 휴가인데도 왔다고…… 근데, 하, 진짜 아닌 걸 어떡하냐?”
-……왜 평소보다 날이 서 있나 했네. 불쌍한 놈.
안보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휘경 중학교 코치의 누그러진 반응에 안보진은 설명을 덧붙였다.
“심지어 25분 만에 교체됐다고.”
-그러면 몸이 아픈 거 같은데?
“……그러니까 문제인 거야. 감독님이 또 갔다 오라고 하면 또 와야 하잖아. 왜, 하필 오늘!”
-아.
휘경 중학교 코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안보진은 하소연을 더 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교체선수들 사이에 앉은 송현준이 안보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송현준은 그가 하는 말이 자신의 얘기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전생을 통해 안보진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대놓고 관객석에 앉은 덕에 찾기 쉬웠다. 첫 경기부터 와 있을 줄 몰랐는데 미리 준비하고 실행한 덕에 계획은 성공했다.
‘김종엽 이사도 오고 코치도 오고, 오늘은 대성공이네.’
지금은 전북축구협회 고문이겠지만, 나중에는 축구협회 이사나 협회장까지 오르는 김종엽의 얼굴을 송현준이 모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임선호와 같이 있었고.
김종엽과 임선호는 반대쪽 벤치에서 경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송현준은 김종엽, 임선호, 안보진, 혹시 모를 관계자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최고의 폼으로 A매치 200경기 뛸게요.’
* * *
경기가 끝났다.
로베르토의 경기 후 연설도 끝났고, 우리는 옷을 갈아입거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현준아 너 어디 아파?”
그리고 주장 윤태상은 날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오늘 경기력을 얘기하는 거다. 죄책감이 들었다.
“집중이 잘 안 되네요. 컨디션이 별로인가 봐요.”
“열은?”
“재봤는데 정상이에요.”
“왜 그러지? 네가 그러는 거 처음 봐.”
윤태상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슬럼프일지도요.”
“네가?”
윤태상이 갸웃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그 와중에 윤태상의 뒤쪽은 시끌벅적했다.
“이겼다! 이겼어!”
박종혁이 방방 뛰고 있었다. 세 골을 넣어서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박종혁의 부모님도 보러 오셔서 기쁨이 두 배일 거다.
“오오오! 이게 승리의 맛인가!”
평소였다면 구수하게 투덜거릴 정두식도 박종혁에게 합세해 어깨동무하고 함께 뛰었다.
평일에 박종혁에게 들었는데 오늘 상대인 송진 중학교는 하계 전국대회 이전에 친선경기를 몇 번 했던 상대였다고 했다.
그때는 전부 졌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경기는…… 점수판을 봤다.
[7-0]
그냥 이긴 수준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찍어눌렀다.
송진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은 짐을 챙기는 몸짓마저도 슬퍼 보였다. 우리 축구부원들은 몸짓 하나하나에 즐거움이 느껴졌고.
날 걱정하는 중인 윤태상도 자세히 보면 웃는 낯이다.
고민하는 윤태상에게 칭찬이나 해주기로 했다. 노태신에게 잘 안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태신 선배랑 박종혁이 3골씩 넣었다지만, 오늘 MVP는 누가 뭐래도 태상 선배예요.”
“띄워주기는.”
“사실인데요~ 감독님도 태상 선배 칭찬했잖아요.”
윤태상은 헛기침을 하며 머쓱해했다.
“다음 경기에선 저도 MVP 노려볼게요.”
윤태상이 내 어깨를 두들겨줬다.
“……그래, 너니까 괜찮겠지. 그러면 슬슬 갈 준비해야 하는데…….”
로베르토는 축구부원들을 칭찬하고 진작 떠났고, 우리도 로베르토를 따라가야 했다. 로베르토가 어디로 갔냐 하면 옆 경기장으로 갔다.
옆 경기장에서는 우리보다 한 시간 늦게 진현 중학교의 경기가 치러지고 있었다. 상대는 공현성이 있는 신영 중학교다.
로베르토는 진현 중학교와 예선 리그 1위를 다툴지도 모른다고, 축구부원들에게 오늘은 의무적으로 경기를 함께 보겠다고 말했다.
짐을 챙기려고 하니 윤태상이 구석 자리를 바라보았다. 윤태상을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잔칫집 분위기에서 혼자 시무룩해하는 티알이 있었다. 나는 전력을 숨길 겸 개인 사정으로 일찍 교체된 거지만, 티알은 오늘 공격진에서 혼자 헤매다가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당했다.
윤태상은 주장으로서 오늘 경기력이 이상했던 나와 티알을 위로해 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윤태상에게 말했다.
“티알한테는 제가 갈까요? 선배보다 제가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그럴래? 그래주면 고맙고.”
윤태상은 짐을 챙기는 걸 감독하러 갔고, 나는 티알에게 다가가서 녀석의 옆에 앉았다.
티알은 요즘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생의 티알들도 이 과정을 꼭 거쳤다.
축구부에 들어와 팀 단위 축구를 새로 배우는 수준의 티알은 로베르토가 하려고 하는 축구를 하긴 일렀다. 로베르토는 공격적인 축구를 하려고 하고, 공격적인 축구는 일반적으로 팀 단위 창의성을 요구한다.
초보자인 티알에게는 더 어려운 게 당연하다.
처음에는 내가 시키는 대로 막 해서 괜찮았지만,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아가 생기고,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다 보니 경기 템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평소 훈련에서도, 오늘 경기에서도 비슷한 모양새였다.
옆에 앉아도 조용히 있는 티알에게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