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축구천재 147화
공현성은 한 번도 내 쪽으로 고갤 돌리지 않았다.
“왼쪽 비잖아! 중앙! 둘 다 좀 앞으로 가! 내가 커버할 수 있다니까! 중거리 슛 못 하게 앞 라인이랑 더 좁혀!”
하지만 나는 공현성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아아악! 뭐하냐고!”
녀석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는 게 아니었다.
공현성의 외침에 따라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이 장군의 명령을 듣는 병사처럼 움직이는 모습에 집중했다.
선방 능력에도 놀랐지만,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더 놀라웠다.
“현성이 말대로 해!”
신영 중의 감독이 공현성을 지지하는 건 놀랍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하지만, 신영 중의 모든 선수가 공현성을 신뢰하는 건 예상 밖의 일이다. 그들은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망설임 없이 공현성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팀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 공현성은 실력이든 뭐든 경기장에서 팀원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덕분에 신영 중학교는 공현성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전에 공현성에게 수준이 다른 슈팅을 보여준 건 한참 뒤를 위한 일이었다. 녀석은 내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공현성의 그릇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었던 게 틀림없었다.
심장이 계속 뛴다.
월드컵에 함께 나갈 동료가 엄청나게 성장해서 눈앞에 나타나서 기뻤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까부터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자리 잡고 있는지 나도 알고 있다.
‘승부 하고 싶다.’
존재감을 숨기겠다고 다짐하고, 다짐대로 경기를 치른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내 마음은 제멋대로였다.
공현성의 지휘에 따라 신영 중은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진현 중의 숨통을 천천히 조이고 있었다. 진현 중이 어떤 식으로 공격하더라도 막혔다. 어렵게 수비진을 뚫어내도 공현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겁먹는 거냐고! 슈팅 더 빨리하라고!”
진현 중 감독 지상철의 절규에도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 진현 중학교 선수들의 기세는 조금씩 깎여서 완전히 사라졌으니까.
오히려 경기 종료 직전 신영 중의 추가 골이 나왔다.
삑, 삐이이이익!
경기가 어느새 끝났다. 힘찬 휘슬과 함께 예선 리그 첫 이변이 나왔다.
대전 최강, 전국대회 8강 단골인 진현 중이 첫 경기에서 떨어지고, 여름 전국대회에서도 첫 경기에서 떨어진 신영 중에게 2-0으로 패배한 것이다.
* * *
“잘했다! 현성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경기장으로 뛰어든 신영 중의 감독이 점프해서 공현성의 품에 안겼다. 신영 중학교의 부원들은 자연스럽게 공현성 주위로 몰려들어 마치 결승전을 이긴 것처럼 환호했다.
공현성은 이런 분위기가 어색한지 시선은 왔다 갔다 하고 한쪽 입꼬리만 크게 올린 채로 어색하게 있었다.
역시 공현성은 강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 전생의 공현성들이 이 시절, 아니 나이를 먹어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기량이 빠르게 올라서 그런 걸까? 어떤 이유든 흥미로웠다.
“역시 골키퍼라면 카리스마가 있어야지! 공현성이라 기억해야겠어!”
김종엽이 감탄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공현성은 나와 다르게 김종엽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다.
그럴 만도 하다.
경기를 다시 떠올려봤다.
내가 본 것만 해도 어려운 유효슈팅을 7개나 막아냈다. 내가 보지 못한 전반전과 후반전 초반에도 그랬을 거다. 팀원들의 움직임에도 크게 관여해 여러모로 골키퍼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 것이다.
진현 중학교가 강팀이라고 해도 축구부원들은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중학생이다. 슈팅이든 전개든 계속 막히니 기세가 꺾여서 제대로 된 경기를 하지 못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놈들 죽었네~.”
정두식과 박범철의 유쾌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시선을 잠시 옮겼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진현 중학교 축구부가 있었다.
대영 중학교 출신인 홍준서를 비롯한 네 명을 포함해서 진현 중학교 선수들이 지상철을 앞에 두고, 뒷짐을 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너희들이 그러고도 축구 하는 놈들이야!? 휴가 취소야! 숙소 복귀해!”
지상철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생의 PTSD가 올 것 같았다.
“어우…… 빠따 맞겠네.”
그렇게 말하는 정두식의 입가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박범철도 마찬가지다.
정두식과 박범철은 지상철과 대영 중학교에서 전학 간 사람들을 싫어했다.
아무튼, 이제 내게 진현 중학교는 관심 밖이었다. 오늘 경기를 보니 더더욱 걱정되지 않았다. 지상철은 훌륭한 재능을 가진 선수를 엉뚱한 곳에 쓰고 있었으니까.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축하받는 공현성을 다시 바라보면서 오늘 경기를 떠올렸다. 전생의 공현성과 겹쳐볼수록 지금이 더 낫다는 확신이 들었다.
예선 리그에서 존재감을 숨기려고 한 건 이 시기에 눈에 띄면 유소년 국가대표팀 겨울 합숙에 차출돼서 몸 관리도 내 뜻대로 못 하고, 여러 연령대의 국가대표팀에 차출돼서 몸이 갈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월드컵에 같이 갈 동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게 눈에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내 최종 목표는 월드컵, 두 가지 요소 다 목표를 이룰 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토너먼트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동갑 친구 하나 키워놓으면 은퇴까지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포지션이기도 하다.
공현성은 슈팅 몇 번에 이만큼 성장했다. 그렇다면 다음 경기에서 또 그렇게 한다면? 기대가 점점 커졌다.
“그래.”
작게 중얼거렸다.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원래 예선 리그에선 질 것 같을 때만 나서고, 골을 아예 넣지 않을 생각이었다.
“한 번…… 아니 아니, 딱 두 번만 때리자.”
첫 경기를 존재감 없이 치르는 데 성공했으니, 두 번째 경기에서 슈팅 두 번은 괜찮을 거다.
경기를 치르고도 답답한 기분이 있었는데 약간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옆에 있던 정두식과 박범철은 떠났고, 김정빈 코치가 노트를 든 채로 신영 중 축구부를 보며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김정빈은 코치지만 형이라고 불러주는 걸 더 좋아했다.
“형, 우리 다음 상대가 쟤네 맞죠?”
아는 정보지만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응, 맞아. 그래서 내 의견 적고 있잖아. 근데 공현성 쟤 뭐냐. 저번 친선경기 때보다 업그레이드됐는데.”
김정빈이 눈을 찌푸리면서 공현성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맞아요. 그래서…….”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뒷말은 일부러 하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 * *
눈앞에 먹음직한 음식이 가득 놓인 식탁이 있었다.
식탁 건너편에는 아버지, 왼편에는 어머니, 오른편에는 동생이 앉아 있었다.
어제 공현성의 경기가 끝나자마자 휴가를 받은 나는 바로 집에 와서 푹 쉬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새벽에 일어난 나는 운동장을 가볍게 뛰고 돌아왔고, 어머니가 해준 아침을 먹고 방에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푹 쉬었다.
“안 먹고 뭐 하니?”
“잘 먹겠습니다. 근데…….”
어머니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면서 내 옆자리를 봤다. 의자도 있었고, 밥도 있고, 수저도 있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형은요?”
내 물음에 어머니가 어색하게 웃으셨다.
“방금 나갔어. 재수학원 알아보러 간대.”
“아…… 밥은 먹고 가지…….”
“그러니까 말이야…….”
어머니가 우울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11월이다. 전교 5등 밑으로 내려가 본 적 없던 형의 수능이 망했다. 시험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가채점만 해봐도 알 수 있으니까.
가족들은 수능 얘기를 아예 피했지만, 형이 눈치를 보고 늘 조용히 빠져나간다고 어제 어머니에게 들었다.
이번 생은 시험을 잘 보고 넘어갔으면 했는데, 아쉽게 됐다.
“자자, 점심이나 먹자고. 민준이가 너무 열심히 해서 더 힘들 거야. 추스를 시간은 줘야지.”
아버지가 모처럼 아버지다운 말을 했다.
“그럼 먹어도 돼? 아싸.”
가만히 눈치만 보던 동생이 촐싹대는 말을 하며 반찬을 집었다. 형이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가족이 쳐져 있으면 민준이도 우울할 거야. 우리는 평소처럼 하자고. 여보, 빨리 먹어.”
아버지의 말을 들은 어머니도 숟가락을 들었다. 아버지는 밥을 한 숟가락 뜬 채로 크게 하품을 하셨다.
“졸리세요?”
“어제 밤을 새워서.”
아버지는 어제 숙직을 하셨다. 때문에 조기축구회도 못 가고, 오늘 아침에 퇴근해서 방금까지 주무시다가 이제야 첫 끼였다.
아버지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아침에 축구도 못 했네.”
“밤새 해외리그 봤을 거 아녜요.”
사실 아버지는 숙직하면 돈도 벌고 해외축구도 볼 수 있다고 주말 숙직을 자주 맡으시는 편이다.
식사를 시작한 아버지가 반찬을 문 채로 말했다.
“크으, 재미있었지. 어제 강태훈 선수가 1골 1어시스트 했다고. 현준아, 너도 봤냐?”
“아쉽지만 자느라고요. 대단하네요.”
“잘하면 나카타처럼 세리에로 갈지도 몰라. 프랑스 리그도 만만한 곳이 아닌데 팀에서 유난히 돋보였다니까?”
아버지는 진짜로 감탄하신 것 같았다.
강태훈은 2002년 월드컵에서 전 경기 주전으로 뛴 윙이었다. 지금은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축구의 자랑이 되는 대단한 선수다.
태훈이 형은 내가 선수로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몇 년 뒤부터는 주장을 맡으니까.
아버지가 세리에를 좋아하셔서 세리에만 언급했지만, 스페인이든 잉글랜드든 무조건 상위리그를 갈 것이다. 태훈이 형은 실력이 되니까 어느 전생에서나 그랬다.
“그건 그렇고 현준아, 다음 경기는 꼭 보러 간다. 어제 경기 못 가서 미안해.”
“그러네…… 다른 애들 부모님들은 다 왔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말했다. 어머니는 어제도 미안하다고 하셔 놓고 또 미안해하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본선 경기할 때는 급한 일이 있는 게 아니라면 휴가까지 내고 따라오시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예선이었다.
두 분 다 바빴다.
물론 박종혁의 부모님을 비롯해 축구부원 절반 정도의 부모님들이 오긴 했다.
식사를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무리해서 올 필요 없어요. 지금 하는 거 탈락한다고 해서 본선 토너먼트 못 나가는 거 아니니까 본선 때 오세요.”
“그래도 갈 건데~.”
아버지가 장난기 담긴 목소리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뭐…… 그러세요.”
잘하든 못하든 자식이 하는 거 보고 싶어 하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다. 무슨 심정인지 잘 알아서 토를 달지 않았다.
“다음 주에는 모처럼 구경 가야겠네. 현지도 갈래?”
아버지가 물었다.
“나? 오빠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나는 안 가는 거로 할래! 알아서 잘하겠지, 뭐.”
동생이 입에 밥을 햄스터처럼 문 채로 또박또박 말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그런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좋은 선택이야. 현지야.”
“그렇지?”
동생과 하이파이브하는 시늉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형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 후, 나는 훈련을 하면서 있었던 소소한 얘기를 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도 한 시간 정도 함께 티비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한 시 반이 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슬슬 가야겠어요.”
“벌써? 저녁에 복귀라면서.”
아버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네, 오늘은 일찍 가서 티알이랑 같이 훈련하기로 했거든요.”
“그래, 잘 가고, 건강하고…….”
어제 짐을 미리 챙기면서 어머니에겐 얘기해 뒀다. 어머니는 아쉬워하는 기색만 보였다.
“열심히 하고 올게요.”
부모님과 얘길 마친 나는 방에 미리 챙겨놓은 짐과 축구공을 들고 나왔다. 거실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녀올게요.”
밥을 먹고 재미없는 표정으로 있다가 방으로 돌아간 동생에게는 문밖에서 대충 인사했다.
“갔다 온다!”
-어! 잘 다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