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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50화 (117/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0화

티알의 부모님을 만난 후에도 똑같은 일상이 이어졌다.

티알은 평소처럼 수업과 훈련을 열심히 들었고, 나는 팀 훈련과 함께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평소 같은 일주일을 보내니 어느덧 신영 중학교와 경기가 있는 날이 되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 우리는 몸풀기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늘은 지난주보다 잘하겠다.”

선발 명단에 들었다는 증거로 조끼를 입은 티알이 내게 굳은 결의를 말했다.

“나한테 그 얘길 왜 하는 거야?”

“도와줬으니까.”

티알의 덤덤한 말에 피식 웃었다.

“무리하지 마. 연습만 꾸준히 하면 충분하다니까.”

티알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김빠진다.”

“아, 그럼 열심히 해.”

“이미 늦었다.”

티알이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티알! 뭐 해?!”

이어지는 코치의 재촉에 여러 자세로 다양한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코디네이션 훈련이었다.

그냥 너무 부담가지지 않았으면 해서 한 말인데,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것까지 다 신경 써줄 순 없으니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아야지.

일단 당장은…….

“야, 너 뭐야?”

티알 다음은 내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코치도 재촉하지 않았고, 뒤 차례인 박종혁은 내가 아닌 내 앞에 선 사람에게 물었다.

성큼성큼이라는 의성어가 어울리는 걸음으로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 하나가 우리가 훈련 중인 곳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양 팀 다 몸풀기를 한다. 프로 경기든 아마추어 경기든 똑같다. 보통 경기장을 절반으로 나누고 양측 진영에서 몸을 푸는 게 일반적이다. 공이 넘어가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서로의 진영을 침범하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서로의 영역도 잘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데 공현성은 그런 관례 따위는 무시하겠다는 태도로 여기에 서 있었다.

티알이랑 얘기하는 동안 이쪽으로 오는 걸 봐서 마음의 준비는 해둔 상태여서 편안하게 마주 봤다.

공현성이 조금 더 커서 내가 올려다보는 형태다.

“…….”

“…….”

“뭐냐니까?”

나와 공현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대답을 못 들은 박종혁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몸풀기 훈련을 도와주던 코치도 인상을 찌푸리며 한 걸음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미안해. 얘한테 궁금한 게 있어서 왔어.”

근데, 공현성이 축구 할 때 미친놈이라도 사람이긴 하다. 공현성은 조금 늦긴 했지만 코치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고, 박종혁에게도 대답했다.

“……뭔데?”

공현성이 곱게 말했는데도 박종혁은 삐뚤게 대답했다. 기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 싸움이 맞긴 하지.

훈련이 멈춘 상태로 이상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양측 축구부원들, 감독들, 코치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주변이 어떻건 공현성은 날 보면서 물어봤다.

“야, 아까부터 설마 했는데…… 너 선발 명단에 없냐?”

예상대로였다. 공현성도 경기를 열심히 준비했다는 게 느껴져서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해줬다.

“응. 후반에 나갈 거야.”

“왜?”

“무릎이 약해서 감독님이 출전 시간 관리를 해주시거든.”

“아, 으으음…… 그렇구나…….”

완벽한 대답에 공현성은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친선경기 때도 풀타임을 안 뛴 거야.”

공현성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작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런 사정이…… 알았다. 알았어. 실례했다. 죄송합니다.”

공현성은 여러 명에게 꾸벅 인사하고 신영 중학교 진영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나는 공현성이 가기 전에 빠르게 말했다.

“나도 오늘 경기 많이 기대했으니까 후반전에 보자고.”

내 말에 공현석이 고개를 홱 돌려서 날 노려봤다.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한번 성큼성큼 걸어서 신영 중학교 진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현준아, 쟤랑 아는 사이야? 갑자기 뭐야? 시비 거는 줄 알았네.”

어느새 윤태상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쟤 그때 현준이한테 중거리로 시원하게 당했잖아요. 벼르고 있었나 봐요…….”

조용히 있던 엄태영의 나긋한 설명에 윤태상, 박종혁, 코치 형도 이해가 갔는지 납득하는 몸짓을 했다.

코치가 손뼉을 크게 두 번 쳤다.

“자자! 다시 하자! 현준이부터!”

“네!”

코치 형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장애물들을 한 바퀴 돌았다.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박종혁이 이어서 도착했다.

“쟤 덩치 엄청 크더라.”

“크긴 한데, 그 정돈 가?”

“키도 큰데 옆으로 크잖아.”

박종혁과 나는 키가 상당히 큰 편이었다. 둘 다 180㎝을 살짝 넘는데 우리는 중학교 1학년생이니까.

그래서 공현성과도 크게 차이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공현성은 어깨가 넓고 팔이 길었다. 생긴 것도 솔직히 좀 험악하게 생기긴 했다. 그렇다 보니 위압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설마…… 너 쫄았냐?”

“뭐?! 내가?”

박종혁을 팔꿈치로 툭 치면서 장난스럽게 떠보니 박종혁이 과민반응 했다.

이 자식, 진짜 겁먹었다.

“……불안한데. 나 들어가기 전에 한 골도 못 넣는 거 아니냐?”

“웃기지 마, 내가 보여준다. 솔직히 우리 팀이 평가는 낮아도 실력은 훨씬 좋잖아. 진현 중처럼은 절대 안 될 거야.”

“그래? 그럼 기대한다?”

“얼마든지.”

박종혁이 자신 있게 말했다.

* * *

“……어우 창피해.”

전반전이 끝나고 박종혁에게 수건과 음료수를 건네니 박종혁이 이렇게 말했다.

“이긴다며?”

“그만해, 내가 잘못했어.”

음료수를 내려놓은 박종혁에게 장난을 치니, 박종혁이 우울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텅 빈 음료수병을 마시는 시늉을 했다.

정신이 나갔다.

다른 선수들도 박종혁과 흡사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

로베르토도 마찬가지였다.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발로 출전했고 후반에도 나갈 선수들, 그리고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갈 나까지 로베르토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프타임은 15분,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로베르토가 말문을 열었다.

“이래서 상대 팀 경기를 미리 봐 둬야 한다는 거다.”

신영 중학교는 한 번 이겼던 상대다. 진현 중학교를 이겼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방심했을 거다.

“전반전은 솔직히 잘했다. 하지만, 점수가 이런 이유는…….”

로베르토가 말을 흐리면서 점수판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우리도 따라서 움직였다.

[0-0]

전반전 동안 신영 중학교와 우리가 한 골도 못 넣었다는 게 두 개의 숫자로 표현돼 있었다.

로베르토가 낮은 목소리로 질책하듯 말했다.

“얘들아, 우리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신영 중학교와 비슷한 약체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 거다. 우리는 휘경 중학교를 비롯한 훌륭한 팀들과 교류했고, 실력을 많이 쌓았다. 박종혁, 우리의 전력이라면 신영 중학교를 상대로 어땠어야 할 거 같나.”

로베르토는 가장 시무룩해져 있는 박종혁을 지목했다.

“……어려운 상대지만 이겨야 합니다.”

“그래. 나는 전반전을 다 보고도 그렇게 생각했다. 평균을 내면 우리 축구부가 훨씬 더 잘해. 이건 사실이다.”

“맞습니다…….”

박종혁이 힘없이 대답했다. 왜냐면 신영 중학교를 일방적으로 두들기는 것까진 성공했는데 골을 못 넣은 장본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같은 처지인 노태신과 티알도 비슷한 얼굴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던 윤태상도.

로베르토의 말이 이어졌다.

“대회에서 강한 팀으로 생각되면 상대는 오늘 상대처럼 잠근다. 오늘 상대는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거다. 이걸 못 뚫어내면 우리는 이번 대회에서 어중간한 성적밖에 못 낼 거다.”

로베르토는 덤덤하게 쓴소리를 마무리 지었다.

로베르토도 공현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경기를 생각하면 방법이 보이는 것이다.

“후반전에는 어떻게 플레이해야겠냐?”

로베르토가 우리에게 물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라면 지시만 하겠지만, 로베르토는 이번 대회에서 배움도 겸하겠다고 했다. 로베르토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윤태상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더 공격해야 합니다.”

“그렇지.”

로베르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기다리던 대답이 아니라는 뜻인데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로베르토가 원하는 답을 알았지만, 다른 축구부원이 대답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조용히 있었다.

“5분 뒤 경기 시작합니다. 슬슬 나와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윤태상, 송현준, 둘이 주도해서 공격패턴을 계속 바꿔라. 훈련 때 많은 패턴을 연습한 건 이 상황을 위해서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패턴도 있겠지만, 흔드는 게 더 중요하다.”

심판의 재촉에 로베르토는 가르침을 멈추고 지시를 시작했다.

“예!”

“예!”

힘차게 대답했다.

지시를 마친 로베르토가 날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팀의 분위기가 안 좋을 때는 평소처럼 경기하겠다고 했으니 로베르토가 내게 부탁하는듯한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로베르토가 원하는 답은 공현성을 제외한 상대 축구부원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 점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일 거다. 팀 적으로는 공현성에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선수를 흔들면 공현성 혼자서는 막기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좋은 방향성이었다. 로베르토는 이유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경기를 통해 스스로 깨달으라는 거겠지. 프로 감독으로서는 좋지 않은 태도일지 몰라도 유소년 감독으로서는 좋다고 생각한다.

손을 번쩍 들었다.

“친선경기 때 했던 것처럼 멀리서 때려도 될까요?”

“그것도 좋지. 처음 차 보고 감이 괜찮다면 여러 번 시도해도 좋다.”

팀 전술로는 상대 선수들을 흔드는 게 맞지만…… 일단은 정면 대결로 시작하고 싶었다. 전반전에 없었던 패턴이기도 하니 로베르토의 전술 지시와도 부합하는 일거양득의 기회였다.

* * *

입장 과정은 생략됐기에 바로 경기장으로 나가서 우리 진영에 섰다.

기지개를 쭉 켜고 있으니 윤태상이 다가왔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보통이요. 저번보다 나아요.”

“좋아, 그러면 나는 공격수처럼 움직일게.”

“알겠습니다. 뒤를 받쳐줄게요.”

“그래.”

윤태상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 시원하게 대답했다.

우리 팀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4-3-2-1 형태의 양쪽 윙을 두고 공격수는 한 명이다.

미드필더 세 명을 보면 윤태상이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이고, 박범철이 공수 양면으로 뛰고, 내가 뒤에서 받쳐주는 형태다.

다만,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공격수 숫자를 늘려야 하고, 그 역할을 윤태상이 맡겠다는 거다.

좋은 생각이다. 단순한 전술적 변화지만, 이런 걸 고민하거나 실행에 옮기는 선수는 드물다. 선수들은 대부분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능동적인 행동을 반복하면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 윤태상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좋은 기분으로 관객석을 비롯해 벤치를 둘러봤다.

유소년 국가대표팀 관계자는 없었다. 코치 명단을 확인했고, 감독까지 그대로인 걸 알았기에 확신할 수 있다.

물론 경기중에 올 수도 있겠고 다른 관계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국가대표팀 코치들은 한 경기만 보고 선수를 뽑는 게 아니라 여러 경기를 지켜보니까 괜찮다.

“후…….”

지나칠 정도로 조심하는 건 좋지 않다. 오늘 하기로 한 건 안 바뀌니까 경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멀리서 날 노려보는 공현성을 마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현준아, 킥오프 패스는 너한테 한다.”

“예. 앞으로 쭉 달려주세요.”

윤태상은 그렇게 말하고 킥오프를 하러 갔다.

삐익!

심판의 휘슬이 울리고, 노태신이 윤태상에게 패스하면서 후반전이 시작됐다. 노태신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윤태상은 내게 패스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공을 잡고 천천히 굴리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중앙선을 지나서, 센터서클을 지났다. 상대 선수들은 내게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지만 긴장한 게 느껴졌다.

그래서 공을 슈팅하기 좋은 거리로 차 놓고 곧장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굳이 돌아갈 필요 있나. 정면돌파부터 시작이다.

“저 새끼 또 한다!”

“몸 던져!”

내 중장거리 슈팅을 기억하고 있는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알 바 아니다.

이들은 긴장을 너무 해서 그런가 내가 슈팅하는 순간까지 도착 못 한다. 확신이 있기에 내 슈팅 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뻐엉!

친선경기 때와 똑같은 궤적의 중장거리 슛이다. 얼마 안 되는 기간이지만 성장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파워를 올릴 수 있는 운동을 추가했기에 슈팅 파워는 더 강해져 있었다.

공은 마치 끊어진 빨랫줄처럼 일직선으로 골대 구석을 향했다.

공현성은 기다렸다는 듯 다이빙을 했고, 손 끝으로 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와아! 미친. 막았어!”

“공현성 쩐다.”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감탄을 들으면서 공현성을 바라보았다.

중거리슛을 선방하고 바닥에 한 바퀴 구른 공현성이 일어나자마자 양팔을 쭉 뻗으며 포효했다.

“우워어어어어어!”

많이 기쁘긴 한가 보다.

“고릴라냐.”

작게 소감을 말한 나는 우리 진영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에 박종혁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냐? 네 필살기가 막혔는데.”

“응, 괜찮아. 필살기는 아주 많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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