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마인드 축구천재-151화 (118/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1화

내 슈팅 이후 이어진 우리 팀의 코너킥은 무위로 돌아갔다.

박종혁이 침투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찼지만, 높게 점프한 공현성이 박종혁의 머리 위에서 공을 낚아챈 것이다.

“돌아가!”

윤태상이 크게 외쳤고, 공격 가담을 위해 달려온 정두식 같은 수비수들이 전력을 다해 우리 진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진영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공현성이 잡은 공을 띄우고 골킥을 했다.

전반전 내내 계속된 신영 중학교의 역습 패턴이었다.

공현성의 골킥을 가슴으로 받은 신영 중학교의 공격수가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패스하는 게 보였다.

돌아가라고 외친 윤태상은 공격진에 그대로 남아서 날 보고 있었다. 얘기했던 대로 공격수 역할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윤태상은 미드필더가 해야 할 수비부터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나한테 전부 넘겼다. 윤태상의 눈빛에서는 신뢰가 느껴졌다.

보답해 줘야겠지.

“여기!”

기운차게 외치면서 신영 중학교 공격형 미드필더가 침투하는 공격수를 향해 패스하려는 걸 뒤에서 슬라이딩 태클로 낚아챘다.

“뭐야!”

다급하게 공을 빼앗으려는 공격형 미드필더, 나는 상대를 등진 채로 일어나면서 공을 지켰고, 공을 발바닥으로 굴리는 볼롤과 함께 몸싸움을 시도해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미드필더가 세 명에서 두 명이 됐다.

수비 부담은 늘었고, 상대 팀원들이 날 더 집중해서 마크하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다.

“현준아! 패스!”

왼쪽에서 들리는 박종혁의 외침에 한 손을 높게 들면서 고개를 저었다. 패스하지 않겠다는 몸짓이었다.

알아들은 박종혁은 자리에서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공을 잡고 천천히 굴리면서 상대와 우리 축구부원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신영 중학교의 스타일은 전반전 내내 바깥에서 지켜봤지만, 경기장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보는 건 차이가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신영 중학교가 잘하는 것보다 우리가 헤매는 게 더 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경기장에서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은 공현성의 지시하에 측면을 버리고 중앙에 똘똘 뭉쳐 벽을 만들고 있었다. 간격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눈빛이 살아 있었다.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전해졌다.

전쟁으로 치면 사기가 높은 상태고, 우리 축구부원들이 위축될 만해 보였다.

나는 교체 투입됐다. 이게 프로 경기였다면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 5분에서 10분 정도는 천천히 했을 것이다. 미래에 최고의 축구선수 자리를 두고 펠레와 경합하는 메시도 경기가 시작하고 10분 동안은 상대를 관찰하는 습관이 있으니까, 흐름을 파악하는 건 중요하다.

물론 상대는 프로팀이 아니었다.

“티알!”

시간 굳이 끌 거 없었다.

박종혁에게 말한 대로 두 번째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수비가 헐거운 측면, 우측의 티알에게 패스하고 전방으로 천천히 뛰었다.

티알의 앞은 뻥 뚫려 있었기에 티알은 공을 몰고 빠르게 우측면을 타고 올라갔다.

상대 측면 수비수는 티알이 올라오는데도 지켜만 볼 뿐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페널티박스를 중심으로 한 수비벽을 없애고 싶지 않은 것이다.

8명으로 이뤄진 수비벽은 마치 한 생물처럼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페널티박스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이때였다.

“티! 알…….”

티알에게 손을 들면서 뒤로 패스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티알이 예상보다 조급하게 크로스를 올려 버렸다.

“아…….”

탄식이 나왔다. 티알의 크로스는 나쁘지 않았다. 상대 수비 라인과 골키퍼 사이, 노태신이 달려 들어가는 지점을 향했다.

하지만 페널티박스 안은 공현성이 손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크로스의 방향을 예측한 공현성은 높게 점프하더니 공을 쉽게 잡아냈다. 코너킥의 데자뷔가 느껴졌다.

이어서 헤딩을 위해 점프했던 노태신과 충돌했다.

“아악!”

노태신이 도움닫기 한 후 점프했는데도 제자리에서 뛴 공현성은 멀쩡하고 노태신이 장난감처럼 튕겨 나갔다.

삐빅!

노태신이 비명을 지르면서 넘어지자 심판이 휘슬을 불며 경기를 잠깐 멈췄다.

“아이 씨! 경기 안 멈춰도 돼요!”

노태신이 괜히 심판에게 성질을 냈다. 공현성에게 몸싸움에서 압도적인 차이를 느꼈기 때문일 거다.

심판은 노태신의 말투에 눈썹을 꿈틀대더니, 경기 재개 휘슬을 다시 불었다. 아마 성격 안 좋은 심판이었으면 한 소리 들었겠지.

공현성은 노태신이 그러건 말건 재개 휘슬이 울리자마자 골킥을 했다.

“나이스!”

다행히 이번에는 정두식이 상대 공격수와의 헤딩 경합에서 승리했다. 또 한 번 우리의 공격이었다.

내 외침이 무색하게 우리 축구부원들은 조용했다.

전반전부터 반복되는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공격하는데 항상 마무리가 골을 넣고 난 후의 킥오프가 아닌 공현성이 골킥이 반복되니 정신적으로 흔들릴 만했다.

박범철이 내게 패스했다. 또 공을 가지고 전진하면서 한 명을 제치고, 티알을 살폈다. 티알의 얼굴이 멍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운데의 윤태상에게 패스했다.

윤태상은 유려한 턴으로 공을 흘리면서 전진했고, 상대 수비수를 등진 채로 있는 노태신에게 패스하고 달렸다.

“아니! 선배! 나한테 패! 스…….”

목소리를 높여봤지만 윤태상에겐 내 말이 들리지 않았다. 노태신에게 패스를 돌려받은 윤태상은 중앙을 드리블로 돌파하려고 했다.

얼굴은 침착해 보이지만, 속은 티알처럼 급한 거다.

삐익!

여덟 명이 똘똘 뭉쳐 있는 중앙을 혼자서 뚫어내려는 건 무모한 짓이다. 중앙에 여덟 명이 뭉쳐 있으니 수비 간격은 좁았고, 상대 수비수는 윤태상에게 몸싸움을 걸어서 넘어뜨렸다.

간격이 좁으니 동작도 클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카드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에게 좋은 찬스가 왔다. 26m 거리에서 프리킥.

나는 손을 번쩍 들면서 크게 외쳤다.

“제가! 아니!”

후반전 시작 전에 계획도 짜길래 침착한 줄 알았더니, 윤태상은 프리킥을 준비하고 차지 않고 바로 짧게 패스해 버렸다.

패스를 받은 노태신은 공을 받더니 상대 수비수 둘을 등진 채로 억지로 터닝 슛을 시도했다.

당연하게도 공은 골대에서 먼 곳으로 향했다.

“……이 사람들이.”

안 되겠다. 강팀이 스스로 무너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노태신의 슈팅이 허망하게 날아가는 걸 굳은 표정으로 보는 중인 중앙미드필더 파트너 박범철을 불렀다.

“범철 선배? 다들 왜 이렇게 급해요?”

“……급하다고?”

대답이 느리다.

“아니에요.”

이런 얘기를 할 틈이 없었다. 또 공현성이 정확한 골킥으로 공격수에게 공을 배달했다.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각자가 수비 해야 하는 공간으로 흩어졌다.

“나이스 엄태영!”

다행히 이번에는 엄태영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들어오면서 공격수의 공을 빼앗았다.

확실히 우리가 더 잘하는데.

“땡큐.”

고맙다고 맹하게 말하는 엄태영에게 외쳤다.

“패스!”

엄태영에게 패스를 받은 나는 또 한 번 공격하기 위해 전진했다. 중앙선 부근이었는데 공현성의 시선이 보였다. 우리 축구부원들에게는 저 눈빛이 악몽처럼 느껴지겠지. 저번 경기에서 당한 진현 중학교도 그럴 테고.

한 번 노려봐 주고, 왼쪽의 박종혁에게 패스했다.

박종혁은 공을 잡고 중앙으로 드리블했고, 왼쪽 풀백으로 출전한 엄태영이 어느새 왼쪽 측면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왼쪽 측면 공격을 위한 기본적인 전술이다. 상대 팀의 시선이 박종혁과 엄태영에게 몰렸다.

“박종혁! 패스 내놔!”

박종혁도 조급한 플레이를 할까 봐 이번에는 선수를 쳤다. 평소에 내놓으라는 식으로 말한 적이 없기에 박종혁도 움찔했다가 뒤늦게 패스했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원하던 기회가 왔다.

나는 박종혁이 패스해 준 공을 향해 곧장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막아!”

“저 새끼 또 한다!”

거리는 20m 후반 정도, 내 슈팅만큼은 무서운지 상대 축구부원들이 다급하게 외치면서 뛰쳐나왔다.

하지만 늦었다.

“한 번 더!”

이번엔 중장거리가 아니라 중거리 슛이다. 발등에 공이 정확하게 맞는 느낌이 났다.

뻐어엉!

큰 소리와 함께 공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골대 구석을 정확하게 향하는 공, 날 주시하던 공현성은 예상한 건지 벌써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찼다고 생각한 중거리 슛이 공현성의 손바닥에 맞고 공중에 떴다. 바닥에 떨어진 공현성이 점프해서 떠 있는 공을 낚아채면서 포효했다.

“우워어어어어어!”

“와 씨, 이것도 막는다고?”

말은 그렇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좋은 모습을 보이면 상대도 성장한다. 공현성은 내 생각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뭣보다 재미있었다. 이 시절에는 보통 이 정도 하는 상대가 없었는데.

“어떡하냐?”

근처에 있었던 박종혁이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도 남은 거 있어. 또 골킥이다. 뛰어!”

수비를 위해 돌아가는 동안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자기들을 침몰시킨 적 있었던 내 슈팅이 두 번이나 막힌 것에서 자신감을 얻은 걸까.

이번 골킥은 신영 중학교 공격수의 머리에 맞고, 공격형 미드필더의 질주 후 슈팅까지 이어졌다.

우리 골키퍼가 막아내긴 했지만, 위험한 흐름이었다.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의 움직임이 더 활기차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기니 패스도 좋아지고, 움직임도 좋아지는 게 보였다.

“태상 선배!”

그러건 말건 나는 다음 공격패턴을 시도했다. 아까 실패했던 윤태상에게 다시 공을 줬다.

윤태상은 여전히 조급했다. 노태신에게 패스하고 다시 공을 받아서 드리블하다가 파울에 끊겼다.

삐익!

또 한 번의 프리킥 찬스였다.

“또 한 번 그렇게 태클하면 경고야.”

심판이 신영 중학교의 수비수에게 주의를 줬기 때문에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생겼다. 우리 축구부원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멍한 얼굴로 심판을 보고 있었다.

경기 중에는 공이 살아 있다고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 중에 계속 움직이니까 그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을 틈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팀 스포츠는 흐름이 중요하다.

하지만, 공이 멈추는, 죽어 있는 순간들도 있었다.

프리킥, 코너킥, 페널티킥, 킥오프 같은 순간들.

공을 든 채로 멍하니 있는 윤태상을 강하게 불렀다.

“선배! 내가 찰래요! 주세요!”

“어? 어어.”

공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윤태상이 엉겁결에 내게 공을 넘겼다.

윤태상은 내가 떠난 후에 축구부를 이끌어야 한다. 나중에 국가대표 유력후보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성장할지도 모른다.

후배였지만, 따끔하게 한 마디 했다.

“주장이 정신을 못 차리면 어떡해요? 너무 급해요. 천천히 하면 되는데 누가 보면 3대 0으로 지고 있는 줄 알겠어요.”

“어…….”

윤태상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상에게 신경을 끄고, 프리킥을 찰 곳에 공을 놓았다.

“후우…….”

소리 내서 숨을 내쉬었다.

프리킥을 차기 전까지 공을 비롯한 경기는 멈춘다.

공이 죽어 있는 것이다.

팀의 기세가 어떻고 게임의 흐름이 어떻고는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기에 이 기회를 데드볼 상황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들을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현성은 신영 중학교의 축구부원들로 세운 벽 뒤에서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신영 중학교가 이 위험한 자리에서 과감한 태클을 하는 이유는 뻔하다. 공현성을 믿기 때문이다.

프리킥은 의외로 재능보다는 노력이 많이 필요한 분야다.

데이비드 베컴 같은 선수들도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아무리 프리킥을 잘 찰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자주 차지 않으면 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나는 열 번의 전생을 살면서 프리킥을 수없이 차고, 수없이 연습했다.

일주일 동안 감각을 일깨우는 것만으로 충분할 정도로 지독하게 했다.

삐익!

“빨리 차!”

심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공에서 두 걸음 물러났다.

프리킥을 연습한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팀과 경기의 분위기가 아무리 엉망이라도, 공이 멈춰있는 이 상황에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분위기를 바꿔버릴 수 있는 환상적인 기회였기 때문이다.

왼발을 천천히 내디뎠다.

이어서 오른발과 왼발을 리듬감 있게 디뎠다. 왼발은 바닥에 내 발을 붙인다는 느낌으로 강하게 땅을 밟았다.

그렇게 왼발을 고정한 채로 오른발로 공의 우측면 아래쪽을 강하게 찼다.

공이 내 발을 떠난 순간 신영 중학교의 수비벽이 점프했다. 공은 수비벽을 훌쩍 넘어서 골대로 향했다. 공현성이 다이빙하면서 팔을 뻗었다.

하지만 공은, 공현성의 손바닥 한참 밑으로 뚝 떨어졌다. 뒤늦게 공현성이 공중에서 팔을 내리려고 했지만 늦었다.

공이 골망을 흔들었다.

그 후 바닥에 착지한 공현성이 골망을 흔들고 굴러 나오는 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우리 팀 축구부원들이 심판의 골을 알리는 휘슬을 듣고, 뒤늦게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