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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축구천재-152화 (119/173)

리마인드 축구천재 152화

“우와아아아!”

우리 축구부원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분한 표정을 짓는 공현성을 지켜보다가 우리 축구부원들에게 둘러싸였다. 아쉽게도 세레머니는 못 했다.

“야야, 방금 어떻게 찬 거야!?”

잔뜩 흥분한 박종혁이 내 어깨를 붙잡고 막 흔들어 댔다.

물어보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 건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공이 어떻게 그런 각도로 떨어져!”

이어지는 박종혁의 말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잘, 적당히 차면 됨.”

“와…… 이 자식 봐라. 혼자만 알려고.”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박종혁이 낄낄대면서 내게 헤드락을 걸었다.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궤적이 신기하더라…….”

날 축하해 주는 건 박종혁뿐만이 아니었다. 윤태상이 옆에서 순수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전반전에도 직접 프리킥 찬스는 많았지만, 키커였던 윤태상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차냐…….”

이어지는 윤태상의 말에서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윤태상에게는 진지하게 말했다.

“축구부에 들어오기 전에 많이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그래?”

윤태상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는 다른 축구부원들과도 득점의 기쁨을 나눴다. 로베르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줬다.

누가 이 모습을 보면 종료 직전에 골이 들어간 줄 알 거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할 게 남아있었다.

아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윤태상에게 다가갔다.

“선배, 이번에는 제가 공격수 자리에 서도 될까요?”

“어, 그래. 그리고 아까 해준 말 고맙다.”

프리킥을 차기 직전 윤태상에게 너무 급하다고 차갑게 말했던 게 떠올랐다.

“……제가 건방졌죠?”

“괜찮아, 괜찮아. 덕분에 많이 배우니까 앞으로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윤태상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자신이 나보다 못하다는 걸 알면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데 윤태상은 그런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전지훈련 때 로베르토가 대체 무슨 말을 해준 건지. 나중에 꼭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태도의 윤태상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 움직임을 잘 관찰해 주세요.”

“알겠어.”

미운 놈보다는 좋은 놈한테 떡 하나를 더 주고 싶었다.

* * *

상대가 킥오프를 준비하는 동안 노태신이 말을 걸어왔다.

“태상이랑 자리 바꾼 거야?”

“네.”

“오늘은 컨디션 좋냐?”

“그런 거 같아요.”

“너는 우리랑 같은 수준이 아니라고 느껴져서 그런가 질투도 안 난다.”

노태신의 시니컬한 말에 대답 없이 웃었다.

“애늙은이 같은 놈…….”

그렇게 중얼거리는 노태신의 시선은 공현성에게 향했다. 노태신의 눈이 짜증스럽게 찌푸려졌다.

“저거 상대로 어떻게 골을 넣은 거냐? 국가대표 경기에서도 저런 골키퍼는 못 봤어. 친선경기 때는 저 정도가 아니었는데…….”

노태신의 국가대표 경기는 유소년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말하는 거다. 공현성은 노태신의 말만큼 몇 개월 만에 급격하게 성장했다. 이 나이대의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 그렇다. 계기만 생기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성장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신영 중학교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길게 하는지 축구부원들끼리 어깨동무하고 이야기 중이었다. 경기가 너무 지체되자 심판이 경기 시작을 재촉하기 위해 다가가고 있었다.

시간이 남았기에 노태신에게 궁금한 걸 물어봤다.

“쟤 상대하면 무슨 느낌을 받아요?”

노태신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얍삽이 쓰는 오락실 게임 상대 같아. 뭘 해도 똑같이 막아버리니까 답답해서 미치겠다니까?”

표현이 어이없어서 작게 웃었다.

노태신은 내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공현성을 향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경기를 시작하려는지 킥오프를 하기 위해 상대 축구부의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가 공을 가지고 센터서클 쪽으로 다가왔다.

노태신에게 말했다.

“선배, 헤딩 또 시도할 거죠?”

“내 말 안 들었냐? 계속 막혔다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네가? 그러면 뭐…… 네가 올려주는 거지? 티알이랑 자리 바꾸면서 할 거야?”

“그건 아닌데…….”

말을 하다가 멈춰야 했다.

상대 축구부원의 패스로 경기가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해주려고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짧게 말하기로 했다.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그냥 보여드릴게요. 방금까지 했던 대로 똑같이 해주세요. 쟤랑 경합하는 상황 돼도 자신감 있게 해주시고요.”

“뭐? 자신감? 나 쫀 적 없어.”

자꾸 공을 빼앗기니 동작이 약해져서 한 말이었지만, 노태신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로 했다.

“쟤가 워낙 무섭게 생겨서 한 말이에요. 아무튼 부탁해요.”

“네 말이니까 믿는다.”

노태신은 그 말을 끝으로 최전방으로 달려가서 상대의 최종 수비라인과 비슷한 위치에 섰다.

나는 노태신보다 좀 더 아래, 그러니까 상대의 최종 수비라인과 다른 수비라인 사이에 섰다.

윤태상과 내 자리가 바뀌었어도 우리의 공세가 이어졌다. 윤태상이 오른쪽 윙 자리에 있는 티알에게 패스했다.

“티알! 크로스!”

다음 패턴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티알이 아까처럼 윤태상에게 크로스를 올려줘야 했다.

그런데 티알은 자기를 마크하는 수비수가 없음에도 내 쪽으로 패스했다.

“크로스!”

그렇게 외치면서 패스를 돌려줬다. 티알은 크로스를 올리기 위해 자세를 취하다가 멈칫하고 뒤쪽 수비수에게 패스했다.

자신감을 잃은 게 보였다.

팔짱을 낀 로베르토가 눈을 가늘게 떠서 티알을 보고 있었다. 교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이 잠깐 나가서 경기가 멈춘 사이 티알에게 다가갔다.

“크로스 올리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는 거겠지.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안 막히게 해줄 테니까 태신 선배한테 또 올려.”

“너한테가 아니라?”

“응.”

티알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티알을 격려해 줬다.

“크로스는 올리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받는 사람…… 아니, 사람들의 움직임이 중요해. 너는 아까도 괜찮게 올렸어. 그러니까 네가 못 올려서 골키퍼가 공을 낚아챈 게 아니라는 말이야. 알겠어? 이해해?”

“……응. 알겠다. 고맙다.”

티알과의 대화가 끝나고 5분이 지났다.

상대 축구부원들 한가운데에서 패스를 받았다.

앞에 있는 수비수나 뒤에 있는 미드필더나 전부 내 쪽으로 모이는 게 보이고 느껴졌다.

못 뚫을 건 없다. 하지만 이기고 있는데 쓸데없는 체력낭비나 부상을 감수할 생각도 없다. 오직 효율이다.

중앙에서 공을 드리블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니 상대 축구부원들이 나를 둘러쌌다. 한 명을 제쳐내고 우측면의 티알에게 정확하게 패스하고 패널티 박스 안으로 들어가서 수비수들과 뒤섞였다.

티알은 가슴으로 트래핑을 하려다가 약간 실수해서 공을 먼 쪽에 떨어뜨렸지만, 상대의 수비수들은 제 자리에 머물렀다. 측면을 버리고 중앙만 수비하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을 잡은 티알이 노태신을 보며 멈칫거리면서 크로스 타이밍을 쟀다.

아까처럼 급하게 올리는 것도 아니고 티알과 연습도 많이 해봤기에 티알의 크로스 궤적이 예상이 갔다.

그 순간, 나는 마치 티알이 지금 크로스를 올린 것처럼 갑자기 공현성 앞쪽을 향해 뛰쳐나갔다.

“막아!”

“저 새끼 또 뛴다!”

상대 수비수들은 공보다 내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나를 다급하게 쫓아왔다.

동시에 예상했던 대로 티알이 노태신을 노리는 크로스를 올렸다.

내 움직임에 속지 않은 공현성은 노태신에게 향하는 공을 막으려고 달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도 예상했다.

나는 재빠르게 노태신과 공현성 사이를 노리고 달려갔다.

“뭐야! 비켜!”

날 막으려고 쫓아왔던 수비수들이 오히려 공현성을 가로막는 형태가 순간적으로 만들어졌다.

공현성은 다급하게 같은 팀 수비수들의 어깨를 짚고 점프하면서 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다만, 크로스가 올라오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공현성의 손은 또 한 번 허공을 갈랐고 노태신의 머리에 정확히 도착한 공은 노태신의 머리를 맞고 골망을 흔들었다.

공중에 떴던 공현성이 같은 팀 수비수들과 뒤얽히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현성아 괜찮아?”

“…….”

공현성은 대답 없이 팀원들과 엉킨 채로 공이 골대 안에서 작게 튕기는 걸 무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골을 넣은 노태신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크게 소리쳤다. 관객석에서 부모님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노태신은 그 이상 기뻐하진 않았다. 내게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했다.

“진짜 너…… 미친놈이다. 방금 일부러 그렇게 한 거지?”

“다 저만 보고 있으면 이렇게 해야죠.”

“최고야 최고. 한 수 배웠다.”

노태신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약하게 헤드락을 걸었다가 풀고 어깨를 팡팡 두들겨 줬다. 이어서 축하하기 위해 온 우리 축구부원들과 기쁨을 나눴다.

축구부원들 사이에 있는 윤태상을 바라보았다. 윤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내 움직임에서 얻어간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스 좋았다.”

“가, 감사합니다.”

이어서 보인 건 노태신에게 칭찬 받는 티알이었다. 노태신이 티알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티알은 머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내게 다가왔다.

“크로스 좋았어.”

“다행이다. 네 덕분이다. 그리고…….”

“별거 아니었어. 잠시만.”

손을 들어서 티알의 말을 멈추게 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상대의 골대 바로 앞이었다. 우리의 주변에는 우울한 얼굴의 신영 중학교 축구부원들이 있었고, 내게서 대충 다섯 걸음 앞에는 공현성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공현성에게 다가서서 손을 내밀었다.

“잡아.”

공현성은 내 손을 이상한 물건 보듯이 보면서 큰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거 같았다.

잠시 후, 공현성의 미간이 좁아지며 벌떡 일어났다. 내밀었던 손이 민망해서 거둬들였다.

공현성은 한 걸음만 걸으면 부딪힐 거리에서 내 눈을 내려다봤다. 키가 많이 차이나는 건 아닌데 덩치 때문인지 나보다 훨씬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현성이 입을 열었다.

“……뭐하는 거냐?”

“뭐긴, 일으켜 세워주려고 했지.”

당연히 나는 기가 죽지 않아서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일으켜 세워준 후에 경기 끝나고 잠깐 얘기 좀 하자고 말하려고 했을 뿐인데.

원래도 월드컵 동료로 계획했던 공현성은 지난 경기와 오늘 경기에서 전생의 자신을 훌쩍 앞선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괜찮다. 내가 도와주면 더 잘해질 수 있을 거다.

지금의 공현성이 어떤 점이 일취월장했고, 어떤 점이 약한지 함께 훈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확인해 보고 싶었기에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왜냐면 말이야…….”

“왜긴, 시비 거는 거 아니야?”

우려했던 대로 공현성의 반응은 차가웠다. 본론을 말하기도 전에 내 말을 끊었다.

대화를 원했기에 차분하게 물었다.

“시비라니? 오해야.”

“교체로 들어오자마자 두 골 넣고, 손 내밀고, 내가 우습냐?”

공현성은 이를 악물면서 말하고 있었다. 공현성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양이다.

“미안. 그런 의도가 아닌데…….”

“에이 씨.”

더 얘기하기도 싫은지 공현성이 몸을 돌려 팀원들에게 향했다.

“야, 공현성.”

공현성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 대신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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